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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39화 (39/145)

39화

#새로운 기억

1998년 5월, 미국 하늘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밤하늘을 가르며 활주로로 내려섰다.

아픔을 힘겹게 이겨내 간신히 일어선 나는 오랜만에 미국을 방문했다. 비록 검게 물든 하늘이지만, 답답한 마음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다.

“회장님,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창가로 가져간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본능을 자극하는 미녀가 미소를 입가에 걸친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미소를 잠시 바라보다 옅게 웃었다.

“시원한 주스 한 잔 부탁드리죠.”

“네.”

그녀의 친절한 미소를 시선에 담기를 잠시, 다시 시선을 바깥으로 향했다.

바다만 보이던 시야에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스 가져왔습니다.”

방금 전의 승무원이 다가왔다. 손에는 주스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잔을 받아 들고 입에 가져갔다.

“시원하니 맛이 좋네요.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호출하세요.”

“그러죠.”

승무원이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앞으로 20분 정도인가, 잠시 눈을 붙이는 게 좋겠어.’

다리에 자리한 담요를 몸 위로 끌어올려 덮었다.

단 20분이지만, 피로를 풀기에 나쁘지 않으리라.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인텔 라나, 마이크로 소프트 빌 게이츠가 배웅나와 반겼다. 수백은 되어 보이는 경호원들이 주변을 경계했다.

국가원수도 이런 대접은 받기 힘들지 싶다.

“힘들 게 뭐 있나요, VIP 대접받으며 여기까지 날라왔는데. 그보다 오랜만에 한 잔 어때요?”

빌 게이츠와 어깨를 맞추고 잔을 드는 모습을 취하며, 살짝 꺾는 시늉을 하였다.

“마침 저희도 한잔하고 싶던 차였습니다. 라나 대표님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하하.”

라나 대표가 싱글싱글 웃는다.

“그럼 우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오, 그 유명한 대표님 댁을 다 가보네요. 영광입니다.”

빌 게이츠 저택은 세계에서 제법 유명하다. 호수를 기점으로 마당이 뻗어 있었다.

“영광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회장님이라면 더 멋진 집에서 지낼 수 있으실 텐데 그러지 않고 있는 거지 않습니까?”

마이크로 소프트의 시가총액은 전년 대비 2배로 올랐고, 인텔 또한 전년 대비 2배를 기록했다.

거기에 힘입어 베어링스 또한 2배를 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 집도 충분하지.’

지역구 하나를 내 집으로 만들었는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개발이 안 된 지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것도 그렇네요. 그래도 대표님 집에 비하면 뷰 자체가 다르지요. 그곳에서 한잔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하하.”

그의 말에 가벼이 웃고는 그가 이동하는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H’라 적힌 장소로 향하니, 그곳에 헬기 여러 대가 자리해 있었다.

“헬기로 이동하시죠. 이 시간에는 상당히 막혀 헬기를 준비했습니다.”

그곳에는 헬리콥터가 자리해 있었다. 우리는 헬리콥터 안으로 탑승해, 이륙 준비를 하였다. 서서히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시끄러운 소음을 일으켰다. 두두두.

거세게 돌아가는 프로펠러의 힘으로 기체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곧 옅은 기름 냄새와 함께 빌 게이츠 저택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우리 집에도 헬기 몇 대는 준비해 놓아야겠어.’

새로운 이동 수단이 머릿속에 잡혔다.

치이이—

호수를 배경으로 바비큐가 익으며 하얀 연기를 하늘 위로 피웠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고기의 향을 맡으며, 와인을 음미했다. 어두운 하늘, 밝은 조명 아래 우리는 열띤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프로그램은 언제 배우셨는지요?”

주로 나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중 가장 궁금한 부분이 이런 류였다.

“배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허, 그런데 그만한 프로그램을 만드신단 말입니까? 정말이지, 회장님은 늘 저를 놀라게 만드시는군요.”

빌 게이츠는 혀를 내둘렀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사기적인 능력이 맞긴 하다.

어떤 노력 없이 머릿속으로 천재들의 경험과 기억이 고스란히 자리하게 되니, 이보다 사기 능력은 없을 터다.

웃긴 건 맥주병인 내가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데 있다.

기억만이 머릿속에 자리하는 게 아닌, 그들이 즐겨 하던 취미활동도 나의 하나가 되었다.

“도스 시절부터 공부했지만, 저도 그만한 건 만들지 못합니다. 만약 회장님이 사업하기 전에 알게 되었다면, 무조건 높은 연봉을 약속했을 겁니다. 그것도 아니면 투자를 해 협력업체로 만들었을지도… 하하.”

빌 게이츠 얼굴에 허탈함이 묻어났다. 고기를 굽는 라나 대표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표정을 유지했다.

“그저 관심이 생겨 공부해 만들어 봤을 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TSMC 인수는 왜 나온 겁니까?”

내내 궁금했던 사항이다. 갑자기 TSMC에 대한 인수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했다.

“다른 게 아니라, 제 작은 꿈이기도 했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TSMC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기업을 인수한다면, KJ에 큰 힘이 되리라 봤습니다.”

“음.”

“사업의 연계성도 있고 말입니다. 인텔, 마이크로 소프트, TSMC까지 함께한다면, 상당한 경쟁력이 생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줄어든 시장 경쟁능력을 살리기 위함이었겠네요.”

“부끄럽지만, 사실 그렇습니다.”

와인 한 모금을 들이켜며, 그의 생각을 곱씹어 봤다.

인수에 성공만 한다면, 분명 좋을 것이다. 세계 최대 기업을 내 손에 쥐게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런다고 컴퓨터 시장을 바꿀 수 있을까?

‘아니, 절대.’

컴퓨터 보급률이 떨어질 때야 모를 일이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해갔다. 사람들은 컴퓨터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컴퓨터를 찾고 있다. 용산상가가 그 증거.

그렇다면.

“전략을 새롭게 짜보는 게 어때요?”

“전략을 말입니까?”

“네. 우리가 꼭 완제품만을 만들어 판매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비싼 광고비를 들여 고객들에게 접근하기보다, 고객들이 진짜 필요하다 느끼는 것들을 따로따로 판매하는 겁니다. 여기에는 인건비와 공정비가 빠질 테니, 회사에서는 이익률을 올릴 수 있을 거고, 완제품은 더욱 저렴하게 팔아 제품의 가치를 올리기보다 시장점유율을 올리는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꼭 용산에서만 그렇게 팔 필요 있나?

그럴 필요는 없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것만 해결되면 KJ는 하늘 위에 하늘을 날게 될 터다.

“세계 전역에 주문배달을 할 수 있는 포털 사이트를 만들어 고객들에게 접근을 새로이 하는 겁니다.”

머릿속으로 아마존이 떠올랐다. 시간을 두고 아마존과 협력하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시스템과 방향성이 모두 머릿속에 정리돼 있다.

그것을 내가 만들면 그만이지 않을까?

정확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직원들을 뽑아 그의 시스템을 내 회사에 적용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겸사겸사 서적과 같은 것들도 판매하면 좋겠지. 마침 내게 출판사도 있으니까. 그리고 사람들 시켜서 주변 출판도서와 협력도 맺고. 그럼 딱이지.’

“음.”

“아마 미래는 물류업이 상당히 발달하게 될 겁니다. 유통이 중요시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미리 읽고 움직여, 시장을 따라가기보다 우리가 선도해 나가는 거지요.”

이제 기업 인수가 꼭 답이 아니게 됐다. 앞선 생각과 기술을 기반으로 나아가, 시장을 주도해 나가는 것.

이것이 성공하면 기업을 인수하는 것보다 더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또한, 기업 인수는 자연히 따라오게 될 터.

‘아무리 기술력이 대단해도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기업은 죽게 돼. 우리가 먼저 선점해 세계를 이끈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니, 시야가 확대된다.

하나의 물건에 집중된 것이 아닌, 물건의 세부 구조부터 시작해 판매망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허… 회장님의 생각은 따라잡기 힘드네요. 어떻게 그런 생각들을…”

라나 대표가 놀란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고기가 타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의 생각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깝네. 저건 못 먹겠어.

“맞습니다. 이건 저도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입니다. 허허.”

“그럴 수 있죠. 두 분 다 좀 더 다르게 생각하며 일한다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될 거라 봅니다.”

어차피 난 사기적은 능력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언제 어떤 조건으로 천재들의 기억을 받아들이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굳이 그게 아닐지라도 미래의 지식은 사업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또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네요. 빌 게이츠 대표님은 노트북을 얇게 만드는 사업을 진행해 보세요. 그리고 라나 대표님은 컴퓨터를 작게 만드세요. 컴퓨터를 작게 만드는 것도 새로운 기술력으로 인정받게 될 겁니다.”

당장 LCD모니터를 만들고 싶지만, 부품이 없다.

관련 기업도 없고. 이것이 나오려면 시간이 꽤 필요해 보인다. 현 시장은 LCD 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

LCD모니터가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모니터도 너무 큽니다. 그것도 최대한 줄이세요. 얇게. 부피는 가볍게 나아가 보세요. 성공만 한다면, 인텔과 마이크로 소프트는 몇 단계는 뛰어넘는 기업으로 성장할 거라 봅니다.”

“……”

“……”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겠지.

둘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른다. 무척 충격을 받은 얼굴이다.

응?! 어라.

그때 어지럼증이 머리로 전해졌다.

비틀, 술기운이 올라오나?

-억울하다. 만들 수 있었는데, 연구실에 화재가 발생해 연구를 끝까지 하지 못했다.

-새 시장을 주도하고자, 혁신적인 개발을 할 수 있었는데. 원통하다. 원통해.

-세상이여, 왜 우리에게 이런 지옥을 주시나이까.

이건… 어떤 개발자의 기억이 내게 전해왔다.

한 분야에 탁월한 실력자. 억울하게 죽은 그들의 기억이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성공이 눈앞에 있었다. 이것만 성공하면 우리의 가난은 해결이 되리라 봤다. 하지만 부족한 연구비와 우리의 기술을 뺏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연구는 계속 지연됐다.

-그러다 일이 벌어졌다. 늦은 저녁 시간 잠시 눈을 붙이는 사이 연구실 1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우리가 있는 건물 전체를 덮쳤다. 우린 화마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영면에 들어야 했다.

-뜨겁다. 너무 뜨거워. 살려줘. 난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으아아아!!

“으…”

처절한 외침이 머릿속을 짓뭉갰다. 나는 말하다 말고 얕은 신음을 내뱉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꼭 부여잡았다.

“회,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귓가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그들의 말에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짓눌리는 고통을 참는 것만도 무척 힘겹게 다가왔다.

“어서 빨리 회장님을 옮기게! 어서! 난 의사를 부르겠네.”

“부탁합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목소리였다. 세상이 빙글 돌더니, 그 순간 기억이 뚝 끊겼다.

세상이 검게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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