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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38화 (38/145)

38화

#TSMC

TSMC, 반도체계 대장이라 할 수 있는 기업이다.

요즘 육성반도체가 뜨는 추세이기는 하나, TSMC를 따라가는 건 무리가 따른다. 그런 상황에 인텔과 마이크로 소프트 대표가 이런 품의서를 내게 보내왔다.

“TSMC, 매각이라. 이건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대표들 입장에서 봤을 때 나랑 생각이 다른가 보네.”

마이크로 소프트, 인텔, 베어링스, 기연 자동차, 진영, 볼롬즈버리 출판사, 한보.

이 정도만 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엄청난 괴물 기업이다.

모두가 엄청난 그룹이라 말할 수 있는 유수의 기업들을 KJ이란 이름 아래 품었다.

그뿐인가? 국내의 무너지는 대기업들을 품었다. 해태, 쌍방울, 삼미, 삼립, 뉴코아, 온누리, 고려증권, 한라그룹 등을 거둬들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나 혼자 재벌’ ‘나 혼자 왕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에 TSMC 인수는 욕심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다.

“필요하다면 하겠지만, 이건 협력을 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거야. 국내야 특수상황이라 그렇다 치지만. 해외에 너무 많은 적을 두는 건 바람직하지 못해.”

그냥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으니, 이제는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고자 했다.

“반려.”

품의서에 최종 결재를 하지 않았다.

그간 보인 내 성향을 비추어 봤을 때, 반대된 입장이라 당황할 걸로 보이지만.

‘이제 이 짓도 필요 없어졌지.’

이 모든 게 지난 과오를 갚기 위해,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주기 위하여 만들었던 일들이었다. 한데, 그 일이 무산되어 버리니 씁쓸함만이 가슴을 채웠다.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TSMC 기술협력, 반도체사업 검토 바람.

그래 이 정도면 되는 거다. 더는 미련 가지지 말자.

***

기존 역사와 많은 부분이 다르게 흘러갔다.

김영진 대통령이 내려오고, 다음 자리에 앉은 사람은 무소속 인물로 대학교수로 지냈다 한다.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 처음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당연히 DJ가 오르리라 봤는데, 전혀 생뚱맞은 인물이 되었으니.

그리고 대권후보로 나선 적도 없는 사람이 올랐으니, 기자들은 이를 두고 바쁘게 떠들어 댔다.

지난 외환위기로 두 당이 신뢰를 잃게 되었고, 이로 인해 대학 경제학 교수 출신인 황비선이 다음 대 대통령으로 앉게 되었다.

‘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 KJ그룹과 손을 잡아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어떤 당에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자세로 나라를 운영하겠습니다!’

그와 관련된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선출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김 회장님.”

그리고 내 앞에 자리한 황비선 대통령.

교수에서 정치계로 입문할 법한 뻔뻔한 얼굴이 내 맞은편에 자리했다.

“제가 도울 일이 뭐 있겠습니까? 그냥 제 일을 하며 열심히 살 뿐이죠.”

“그렇죠. 그렇지요. 회장님은 열심히 해주시면 되십니다. 해서 말인데, 회장님께 제안을 드릴 게 있습니다.”

제안? 음.

이상한 일이 아니기를 바란다.

“저에게 어떤 제안이 있을지, 좀 부담스럽네요.”

“그리 부담스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회장님께는 좋은 일이지요.”

실실 웃는 모습이 딱 여우다.

사람들을 잘 홀리게 생겼다.

“국내 인구수는 한계가 있는데, 은행이 너무 많다 생각하지 않습니까? 은행마다 현금이 부족해 늘 적자를 기록합니다. 해서 전 은행을 하나씩 묶어 통합을 할까 합니다. 마침 회장님께는 튼튼한 국내 금고를 책임지고 있는 베어링스 은행이 있습니다. 금융사도 같이 가지고 계시지요. 전 일부 은행과 증권사를 회장님이 맡아 주셨음 합니다.”

그래도 역사의 흐름은 바뀌지 않나 보다.

은행통합은 전에도 있었으니.

그런데 그 중심에 내가 있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은행은 그렇다 치고. 증권사는 이미 충분한 규모를 갖췄습니다. 국내 그룹이라 칭할 수 있는 기업들을 대거 받아들였습니다. 세계에서도 최고라 불릴 정도로 규모는 탑인데, 그걸 받게 되면 KJ가 대한민국 독점시장을 갖추게 될 겁니다.”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건 뭐니 뭐니 해도 나라는 인물과 새로이 등장한 KJ다.

괴물처럼 국내 20위권 기업들을 받아들이고, 덩치를 키운 상태.

세계 어느 가문을 가더라도 이만한 덩치를 가진 기업은 없다.

이미 마이크로 소프트, 인텔, 베어링스만 하더라도 세계 10위 내 안착했다.

세 그룹이 다 KJ이고 내 기업이었다.

그런 상황에 은행과 증권을 인수해 달라?

“다른 은행들은 믿고 맡기기 좀 그래서, 믿음직한 KJ그룹에 맡기려 하는 겁니다.”

좀 정직하고 중립적인 자리에서 일할 줄 알았다는 그런 기대는 해 보지 않았지만, 정치만 중립이었지 기업과의 관계는 중립이 아니었다. 이런 사람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사람은 대통령 자리에 올라가면 기존에 들고 있던 생각 자체가 바뀌나 보다.

“죄송합니다. 전 국내 독점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건 들어주기 힘들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인수할 여력이 된다.

그리고 남이 공짜로 넘겨주는 먹이는 무는 건 아니다. 올리버 스미스가 말하길, 받고자 한다면 그의 부탁도 들어줄 생각을 하라 말했다.

또한, 어떤 위험도 함께할 마음을 먹으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내 대답은, 노. 배탈 날 음식인 걸 알고 먹는 건 아이들이나 할 짓이지. 무엇보다, 저런 여우 같은 사람의 말은 신용할 수 없어. 나라야 어떻게 꾸리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날 건들면 그라도 가만히 두지 않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움직이면 대한민국 대통령도 끌어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난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통령과 엮이는 건 1997년 외환위기 때 이후 끝이다.

“일이 바빠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적당히 자리를 지키다 명예롭게 떠나길 바란다. 괜히 능력 밖의 일을 하다 저격당하지 않기를.

***

혼자 남게 된 방.

황비선의 두 눈이 새빨갛게 충혈돼 닫힌 문을 노려봤다.

“이런 애새끼가. 기껏 대우해줬더니, 날 무시하고 일어나!”

권력의 최고봉. 그 권좌의 자리에 앉게 됐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설마 자신이 대통령 당선인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KJ그룹 김정수 회장과 협업을 통해 대한민국을 이끌겠다.’

이 제안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었다.

시기도 좋았고, 몇몇 세력들도 밀어줬다.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생각해낸 계획이 김정수 회장과 손을 잡는 것.

그 정도면 정무 기간 동안 크게 할 일은 없다고 봤다.

그와의 시간만 함께 가져도 나라는 안정적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런데. 그런데. 빠드득.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삐그덕거렸다.

이런 개무시는 난생처음 받아봤다.

“제까짓 게 돈을 많이 벌면 다야! 난 대통령이라고! 이, 나. 라. 의! 대통령!”

혼자 남게 된 방 안에는 황비선의 처절하기까지 한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댔다.

***

-반려.

“허, 설마 이 품의가 반려를 받을 줄 몰랐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미국 뉴욕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국 본사에서 내려온 문서에 큰 충격을 받았다. 결제란에 큰 글씨로 ‘반려’가 적혀 있었다.

그간 보이던 성향을 보면 이번 품의는 무조건 받아들여진다 보았다. 그런데 모든 예상이 확 비껴갔다. 뭐랄까?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해야 되나?

-협력방안 검토, 기술협력 및 위탁생산 확인.

위에 내려온 대략적인 반려 내용이다.

인수가 아닌 협력을 받아 생산을 하거나, 반도체를 최대한 저렴하게 가져오라는 의미.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번 제안을 제시했던 인텔의 대표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빈틈없이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의욕이 확 죽어 버렸다.

“어쩌겠습니까? 회장님의 뜻인 것을.”

“별수 없지요.”

둘은 입맛을 다셨다.

둘의 대화는 이번 프로젝트의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다, 빌 게이츠가 주제를 바꿔 이야기를 이끌었다.

“아무래도 회장님은 진짜 천재가 맞는 모양입니다.”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꺼내십니까? 1년 만에 이룬 업적만 보더라도 충분히 천재가 맞는데 말입니다.”

“일반적인 천재의 범주를 넘었습니다.”

일반적인 천재의 범주라.

“라나 대표님은 모든 분야에 만능인 천재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모든 분야에서 천재 말입니다.”

“음… 그런 천재는 무리입니다. 한 가지에 대한 천재는 여럿 보았지만, 모든 분야는 무리가 따릅니다.”

1개국어만 외워도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천재라면 3개국어 4개국어 6개국어도 가능.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다는 건 무리가 따른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또 모를 일이나, 사람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무리라 생각을 했지요. 정말 얼마 전까지 하더라도 말입니다.”

빌 게이츠는 얼마 전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당시 회장님께서 한 가지 파일을 저에게 보내줬습니다. CD였지요. 여러 장의. 혹시 모른다며 해당 프로그램이 깔린 하드까지 보냈더군요. 편지에 적힌 설명을 보며 프로그램을 작동해 봤습니다.”

메일에 들어가 회신 된 메일을 확인하려 하자, 경고 메시지가 떴다.

‘이 파일은 위험성이 높은 파일입니다. 열지 않는 걸 권합니다’

이것만이 아니다.

컴퓨터를 켜자 자동으로 열리는 어떤 메시지.

‘어디 위치에 바이러스가 발견됐습니다. 해당 파일을 불러옵니다. 치료 불가. 삭제하세요.’

이 시대에는 발견할 수 없는 천부적인 기술력.

이거 하나만 내놓아도 충분히 밥벌이를 하며 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개발이고 발견이지 않을 수 없었다.

빌 게이츠는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히 그에게 나열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투자능력에, 미래를 읽는 안목, 프로그래머급 기술, 불어에 영어까지. 이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이게 정말이면…”

“이게 정말이고 이러한 사실을 세계가 알면, 엄청난 화제로 떠오르겠지요.”

두 사람의 얼굴에 큰 기대가 물씬 풍겼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몹시 기대하는 눈치였다.

올렸던 품의가 반려된 건 아쉬웠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로 인하여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럼 그 프로그램을 인텔에 적용하면…”

“죽어가는 인텔 컴퓨터의 시대가 다시 열리게 될 거라 봅니다.”

치킨 레이스로 버티고 있는 인텔 컴퓨터에 큰 한 방이 생겼다.

이를 잘 양념 쳐, 광고를 내보낸다면 상당한 효력이 있을 것이라 짐작됐다.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갔다.

“정말입니까? 그 말씀이.”

“네. 이번 프로그램은 경쟁업체가 아닌, 인텔에만 적용시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TSMC가 문제가 아니다.

인텔 대표는 빌 게이츠의 말에 찡하게 박혀 드는 감각에 빠졌다.

조금씩 잃어가던 꿈이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반도체도 반도체지만, 일단 이것부터 확실히 결과를 내놓고 반도체 부분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조금씩 잃어가는 시장점유율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심폐소생술을 받은 컴퓨터는 다시 한번 뛰어오를 찬스를 맞이하리라.

그렇게 이들도 1998년 3월을 넘겼다.

그리고 4월 말. 인텔은 시장에 새로운 도전장을 낼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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