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협상 결렬
“안녕하세요. 김정수입니다. 위원장님 되시죠?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고집쟁이에 회사를 망치는 사람이라고.
가장 먼저 내쳐야 할 사람이라고 말이죠.
“크음, 맞소. 내가 위원장 김봉만이오.”
…이오? 말 짧네. 이 사람.
“크흠…”
수행직원들이 불편한 음성을 내보냈다. 눈동자를 옆으로 살짝 돌려 확인하니, 목 부위가 빨갛다.
화가 치밀었나 보다. 내 눈치를 슬쩍슬쩍 보다 눈빛이 마주쳤다.
난 고개를 작게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복수는 해도 내가 하지. 당장 나서면 약점만 잡히는 꼴이야.’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소개는 이쯤하고 협상 들어가죠.”
내 자리를 창문이 보이는 맞은편 자리.
상대는 바깥 창문을 등지고 앉았다.
“우리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직원 감축 없이 유지하며 생계보장, 미지급된 급여에 대한 100% 지급, 동결된 급여 10% 인상, 생산량을 올려 안정적인 생산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가 내건 조건입니다.”
대충 부위원장으로 보이는 자가 조건에 대해 설명했다.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미지급된 월급에 대해 지급할 용의는 있다. 하지만, 10%의 급여인상, 생산량을 올려 달라?
이런 어이없는 조건이 있나?
자동차산업이 얼마나 커다란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지 알 것도 같다.
“좋아요. 다 좋은데, 이거 누구 돈으로 하는 건가요? 내 돈? 아니면 여기 계신 분들이?! 그도 아니면 여러분이 저에게 투자를 해주시나요? 이 중에 제가 경영자로 채용한 분이 계시던가? 이상하네요. 난 그런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무례하오! 지금 그 자세가 뭡니까! 지금 우리와 협상하러 온 자리라면 예를 지키시오!”
“무례?! 내게 무례라 했나? 당신… 아니지. 위원장?? 지금 당신이 내게 하는 건 예의가 맞고? 난 아니다? 날 너무… 등신으로 아나?”
“무, 뭐라고!! 지금 말 다 했어! 당신!!”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당신이 내가 한 질문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는 걸 잊으면 안 되지. 내 질문에 대해 말해봐. 내가 말한 것 중 그쪽에서 해준 게 있나?”
“우리는 노동자야. 근로자. 근로자가 뭔지 알고 지껄이는 거야!”
그래, 그래. 서로 야자도 하고 편하게 가자.
내 마음은 떠났으니, 내 머릿속의 직원 중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없다.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경영진을, 기업의 오너를 물주로 보는 직원은 필요 없다.
그런데 아쉬우니 노동자라니. 쯧쯧.
“노동자 참 좋지. 노동자. 회사와 계약해 노동력을 제공해 그 대가로 임금을 가지고 가는 사람들. 맞지? 그런데 말이야. 당신들 날 위해 일해 준 게 있나? 이 기업의 실적을 생각해 본 적 있어? 왜 본인만 생각하지?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이곳에 투자한 이유가 당신들에게 돈을 퍼 주기 위해 그런 거 같아?”
뉴스를 볼 때면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회사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본인들의 이득만을 취하려 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통틀어 강성노조라 일컬었다. 주어진 권력을 바람직하게 사용하지 않고,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합체.
그것이 내 머릿속에 강하게 틀어박힌 금속노조. 강성노조의 이미지다.
“이러고도 당신 무사할 것 같아! 우리가 없으면 이 회사 접어야 돼!”
“당신에게 내 돈을 풀 바에 그냥 망하는 게 나아. 좀 아깝긴 한데, 이깟 회사 버리면 그만이야. 이 회사 버려도 난 충분히 먹고 살아. 그런데 당신은? 아니지. 당신들은? 그게 가능해?”
아직 주식시장은 폐지 상태. 난 이 회사를 운영하지 않으면 된다. 이유는 노조를 들먹이며 1년이고 10년이고 이어가면 그만이다.
당연히 월급은 지급되지 않는다. 일한 게 있어야 지급하지.
“30년 정도 버티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없겠네. 난 50대이고 당신들과 몇몇은 정년을 넘을 테니. 오, 이거 괜찮은 방법인데? 30년 버티고 인원 깎고. 그때면 내 회사에 노조는 없겠네.”
“이보시오! 김 회장!”
“왜? 이렇게 나오니 신선하지? 내가 못 할 거 같아?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만큼 난 돈이 많아. 난 이 건물만 유지하며 30년을 버티면 돼. 적게는 10년만 버텨도 충분하겠네. 왜? 연맹에 전화해 도움을 구하고 싶어? 해. 맘껏. 내가 얼마나 돈을 부리며 잘 버티는지 보여줄게.”
내게 양보는 없다. 그저 내 안에 장칠성의 또라이 기질이 나를 더 자극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해커 그레이 헤먼드까지 내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 사실을 국민들이 알면, 직원들이 알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저놈의 느낌표 악센트 목소리. 참 신선치 못한 구시대 언변이다.
“휴… 릴렉스.”
내 자신도 좀 흥분한 거 같다. 올리버 스미스의 기억이 스며들어와 냉정을 찾아주었다.
그의 기억이 말해 준다. 가장 열 받게 하는 방법은 혼자 웃으며 침착함을 유지하는 거라고.
“제가 흥분했네요. 뭐 좋습니다. 제가 제안하죠. 그렇게 직원들이 걱정이라면. 여기 계신 분들이 연맹 탈퇴하고 그만둔다면, 나머지 직원들을 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임금은 현실적으로 5% 인상, 생산량은 상황에 맞게 올리고. 이것이 제 조건입니다. 직원들을 생각하고 국민경제를 생각하시는 분들이니, 가능하겠죠?”
“그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이 새끼야!”
와우, 대박. 아주 효과적인데?!
부들부들 떨리는 진동을 느꼈다.
옆에 자리한 비서실장과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경호원들의 움찔거리는 행동이 포착됐다.
난 신호를 줘 그들의 움직임을 말렸다. 그러자, 흥분한 위원장은 아차 싶던지, 입을 다물었다.
그들에게 시선을 떼고 다시 비서실장을 응시했다.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행동에 난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거 너무하십니다. 방금 전까지 직원들을 위해줄 것처럼 이야기해 제시한 조건인데. 급여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7%까지 고려해볼 만합니다.”
“그런 어이없는 말을 들어줄 거 같아… 습니까.”
위원장의 말투가 변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 일로 언사에 조심하는 모양새다.
이제야 자신의 실수와 언사를 깨달은 모습.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제명이다.
“시간을 드리지요. 직원들을 위해 여기 계신 분들이 그만두면 그런다는 말입니다. 물론, 정상가동까지 정상임금은 못 줍니다. 정상가동까지 미지급된 임금을 주는 걸로 하여 내년 7% 인상된 임금으로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노조 간부분들이 생각하는 직원들을 위해서 말이죠.”
“이보시오! 김 회장님. 그게 말이 되는 조건이라 보이십니까!”
다시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실적인 부분을 반영에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그들에게는 개소리로 들리겠지만… 다른 사람은 어쩔까?
“말이 되지요. 내 돈이 들어간 기업입니다. 지금의 인원을 50% 감축하고, 공장 규모를 줄이려 하였는데, 노조위원장님과 여기 계신 간부님들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꾼 겁니다.”
“오늘 만남은 없던 걸로 하지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건 어때요. 위원장님과 간부님들께 불리한 것 같으니, 조금은 공평하게 제안을 하지요. 방금 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반대로 여기 있는 분들을 전부 채용하고 10%, 20% 차등을 두어 임금을 올려드리지요. 대신, 인원 감축 50%, 어때요?”
“……”
“시간을 드리죠. 충분히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마시길.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개소리. 갑시다.”
우르르, 노조원들이 불쾌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방을 나섰다.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을 예상하지 못한 채.
“내 회사에는 강성노조는 필요 없지. 끝까지 녹음했죠?”
“완벽하게 했습니다. 한데, 저 개새… 죄송합니다. 위원장을 가만히 두실 겁니까?”
“가만히 두지 않으면, 죽이게요? 그럴 거 아니면, 그냥 두세요. 곧 무너질 자들이니까요.”
“… 알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절대 엄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럼 정말 실장님께 실망할지 모릅니다.”
“……”
“명심하세요. 허튼짓하면, 제 얼굴을 보지 못할 겁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경고했다. 때는 90년대 후반. 별사건들이 많은 시기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러한 부분이 많이 희석된다 하지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명심하겠습니다.”
위원장은 모를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그들은 기연 자동차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리라고.
“그래요. 회사로 돌아가면 대진과 쌍마도 그렇게 알고 준비하세요.”
“네!”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며 우리도 방을 나섰다.
***
“개새끼! 애새끼가 돈 벌었다고 싸가지가 없어! 뭐! 우리를 잘라!”
1차 협상 자리는 개판이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 자리는 협상이 아닌 싸우기 위한 자리였다.
그렇지 않고서 그 자리에서 그런 무시를 받다니.
“위원장님, 이제 어쩌실 겁니까? 이대로 있다가 정말로 저희들이 잘리면 큰일 아닙니까?”
“우리가 잘리긴 왜 잘려. 어디서 그딴 개소리를…”
“상황을 보니, 완전 미친놈이던데. 이대로 시간을 끌면 우리도 손해예요.”
“…우리가 손해면 그 애새끼는 더 손해야. 공장을 안 돌려? 무려 1조를 넘게 쏟아부었어. 그걸 손해를 감수하고 안 돌린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어디서 허세를 부려. 웃기는군. 기다려 봐, 알아서 찾아오게 될 테니까.”
위원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모습을 부위원장은 불안하게 바라봤지만, 그라고 딱히 할 수 있는 방도가 없기에 그의 말을 신용하기로 하였다.
***
자동차사로 온 신경을 집중할 때, 국내 스타벅스 1호점의 직원이 될 사람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총인원은 10명. 1기 지원자들 중 버티는 사람은 추후 본인들이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을 교육시켜 프렌차이즈 전문경영인으로 키울 예정으로, 가까운 미래 지점장, 체인점 사장, KJ프렌차이즈 간부가 될 예정이다.
그들은 아직 그런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고 못 하고 있겠지만.
“이대점 인테리어는 어떻게 돼 가나요?”
“2개월이면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한 층은 아예 대여점으로 활용하실 참인가요?”
스타벅스 1층 한 부분을 대여점으로 두고 2층부터 4층까지 커피점, 옥상을 야외로 꾸며 젊은이들의 감성 자극을 유도했다.
과연, 이게 먹힐지는 가봐야 아는 거지만, 여성과 학생들의 감성, 미래에 있을 일로 인해 어느 정도 자신감은 있었다.
“네. 기존의 커피점의 틀을 벗어나서 도서관, 대여점의 느낌을 살린 고급 커피점을 만들었음 합니다. 커피점은 단순히 커피만을 마시고 가는 게 아닌, 사람들과 사교활동, 공부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 갇혀 있는 틀을 벗어나 새로운 문화의 장소로 이끌어 볼까 해요.”
홍보라는 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거부감이 없는 궁합과 환경에 주어진 걸 활용해 사람들에게 제공하면 그만인 것이다.
단, 여기서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끼어든다면 사람들은 거부감을 드러낼 것이다.
뭐, 그것도 반대극복으로 홍보가 되기도 하지만, 잘될까 싶다.
“회장님의 사고는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거 같습니다. 이런 말씀드리기 송구하지만,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어쩔 땐 저보다 더 많이 사신 거 같고, 어쩔 땐 지금과 어울려 보이고… 하하.”
그래도 촉은 뛰어난 사람이네. 살짝 뜨끔했다.
“그런 말은 종종 들어요. 그 외 특별한 건 있나요?”
“아닙니다.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호영 실장은 머쓱하게 웃고는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1997년 12월. 그날로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