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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32화 (32/145)

32화

#외환위기 탈출

세상을 가을로 도배한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날, 내 걸음은 청와대로 향했다. 선선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가을 분위기를 즐겼다.

“지금껏 느꼈던 어떤 때보다 올해 가을이 무척 좋게 다가옵니다.”

마당 한켠에 마련된 파라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김영진 대통령의 가을 감상문을 들어주었다.

나이를 먹으면 감성에 젖어든다 하더니, 김영진 대통령이라고 피해 가지 않나 보다.

“다행히 올해 겨울은 그리 춥지 않을 거 같아, 부담이 덜었습니다. 하하.”

전년도 외환위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날을 보냈다.

역사를 찾아볼 수 없던 자살률. 한국 역사에 길게 이어질 대사건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그때와 다르다. 외국으로 넘어가야 했던 기업들은 내 손에 있고, 불필요한 근로조건을 내가 막았다.

계약직, 연봉제.

연봉제가 좋을 수 있지만, 관리직군에 있어서 연봉은 그리 좋지 못하다.

특근을 하건, 야근을 하건 고정비로 나가는 덕에 사람들은 일한 만큼의 봉급을 받지 못했다.

“정말로 큰일을 해 주셨습니다.”

“큰일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저들과 저의 이해관계가 맞았을 뿐입니다.”

정말 그랬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이런 방법이 통할까? 그들을 자극시킬 수 있을까? 등등의 고민들을 많이 했다.

그들은 나보다 오래 살았고, 경력과 경험도 풍부한 사람들이다. 사람도 많이 접해 봤을 터. 그래서 내가 사용한 방법이 ‘자극’에 있었다.

그들이 설마 이런 부류의 사람을 접해 본 적이나 있었을까?

기가 찰지 모를 일이지만, 이런 류의 사람을 접해 본 건 생애 처음일 거다.

“그래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건, 김 회장이라 가능한 거지요. 어디 그 사람들이 쉽게 나설 사람들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제 대통령님의 수락만 남았을 뿐입니다.”

잡스러운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그들과 나누었던 협상 이야기는 어두웠던 한국경제를 희망으로 바꾸었다. 김영진 대통령은 그들과 나누었던 일들을 들으며 흡족한 웃음을 흘렸다.

“그들의 제안을 수락하겠습니다. 우리가 거절할 이유는 없지요. 하하.”

주름으로 가득하던 그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활짝 펴졌다.

“감사합니다.”

노력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급박하게 돌아갔던 대한민국의 1997년 10월 중순.

-“세계 각국의 금융그룹에서 우리의 대한민국 미래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투자를 약속받았습니다. 국내를 대표로 하는 KJ그룹 김정수 회장의 과감한 200억 달러의 지원, 세계 유수 금융그룹들로 500억 달러를 받게 되면서···”

총 700억 달러라는 막대한 투자 아래 외환위기를 벗어났음을 세계에 공표했다.

***

“···쟤 정수 아니여?!”

외환위기가 세상에 공표되기 얼마 전, 어느 한 가정집.

TV 화면으로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놀란 얼굴로 TV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KJ그룹 김정수 회장은 올해 나이 만 25살의 젊은 사업가로···

“맞는데. 쟤가 왜 저기서 나와?! 그룹 회장은 또 뭔 소리야?”

주변 소식이 어둡던 두 사람은 동네 주민의 언질에 TV를 켜 뉴스를 봤다. 그곳에 회사에 잘만 다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던 아들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영향력 3인으로 떠오른 젊은 사업가로 눈으로 보이는 자산만 수백조가 넘는 것으로 확인이 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세계 공식 1위 기업가···

“······”

“······”

달러, 조, 사업가 등등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이 멈춘 듯, 두 사람의 시선은 TV에서 떨어트리지 못했다.

똑똑—

-엄마, 아빠 저 왔어요!

“······”

“······”

둘의 시선이 떨어진 건, 그때였다. 밖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에.

“······”

“······”

***

“이제 알릴 때가 됐지.”

아무리 세상의 정보와 동떨어져 사시는 두 분이라도 곧 알게 되리라 봤다.

사업하기 바쁘다는 이유로 회귀한 이후로 몇 번 들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내 위치를 알리지 않았다.

갑자기 내 자산이 조 단위라 한다면 많이 놀라실 것도 같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복잡한 일들과 엮이기 싫었던 탓이다.

하지만, 이제 TV에 자신의 얼굴이 잡히며, 세상에 알려졌다.

우뚝, 멈춰선 집.

참 낡아빠진 집을 막상 접하게 되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집은 바로 옮기자 말하자.”

안산에 자리한 신도시에 10만 평을 사들여 한창 공사 중이다. 서울권은 너무 번잡해 내린 조치기도 하였지만, 내가 새롭게 시작한 장소라는 의미가 부여돼 안산으로 정했다.

회사와 가까운 것도 크게 한몫하기도 하였고.

현관문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덜컥덜컥.

잠겨 있었다.

“어디 나가신 건 아니겠지. 엄마 아빠 저 왔어요!”

노크를 하며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

“······”

안쪽에 자리한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곳에는 멍한 시선을 보내는 엄마와 아빠가 계셨다.

아무래도 알게 된 것 같다. 그것도···

-김정수 회장은···

막.

“죄송해요. 말씀을 드릴까 했는데, 제가 갑자기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숨겼어요.”

집안으로 들어와 난 사정설명을 이어야 하였다. 어떠한 방법으로 돈을 불려,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인지.

정확한 재산만 빼고, 세상에 공개된 재산만을 언급하며 두 분의 이해를 도왔다.

“정수 아빠···”

“나 원 참··· 이렇게 황당한 일이 다 있는지.”

엄마가 아빠를 보신다. 목소리에 떨림이 가득하시다.

아빠는 그런 엄마의 반응에 헛숨을 삼키며, 냉수 한 잔을 들이켰다.

“너무 늦게 알려 죄송해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걸출한 금융계 오너들과 김영진 대통령이 이 모습을 보면 무척 웃을지 모를 일이다.

늘 강인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나이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작아지는 자신이란 사실을.

“아픈 곳은 없고?”

아빠가 조용히 물으셨다.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어 보이지만, 참는 모습이다.

“네. 오히려 예전보다 건강해졌어요.”

“그럼 됐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말이 없기로 소문난 아빠는 사건을 더 키울 자신이 없으셨나 보다.

엄마도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아 보이지만, 어떤 말씀도 없으시다.

아무래도 시간을 들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게 좋아 보였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싶어 따로 집을 장만했는데,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요. 안산 신도시인데, 두 분 편하게 지내시라고 준비했어요.”

내 정체를 숨기느라 부모님께 드린 건, 월 10에서 20만 원 정도가 다였다. 그 이상 드리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 같아, 적정선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드렸다.

“그리고 아빠는 회사 그만두시고, 편히 지내세요.”

곧 50대 후반에 이르시는 두 분.

아직 젊고 정정하시지만, 자금적으로 여유가 생긴 지금 더는 고생을 시켜드리고 싶지 않다. 한번 태어난 인생, 노후는 즐겁게 보내셨음 좋겠다.

“생각해 보마.”

“고마워, 정수야. 우린 해준 것도 없는데.”

엄마가 눈물을 훔치신다. 내 앞에서는 늘 강인한 모습을 보이시던 엄마였는데, 슬쩍 시선을 돌려 아빠를 바라봤다.

민망해 표정을 숨기고 계시지만, 입가에 살짝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제 제가 두 분 모실게요.”

이제 이런 곰팡내 나는 비좁은 집은 영원히 바이다. 이제 우리도 재벌 가문답게 살아보자.

***

며칠 뒤 우리집은 이사를 했다. 딱히 챙길 건 없어 집안에 있는 모든 걸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새 보금자리로 옮겼다. 넓은 대지 위로 떡하니 서 있는 궁전 같은 집을 본 두 분의 놀라던 얼굴이 떠오른다.

“수백의 경호원과 수행원을 보셨을 땐, 기겁을 하셨죠. 하하.”

회사로 출근해 지난날 있었던 에피소드를 비서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하하. 저라도 그러겠습니다. 제 자식이 갑자기 재벌이 되어 떡하니 나타난다면··· 어휴. 벌써부터 가슴이 떨려오네요.”

“그런가요? 당시 어찌나 죄송스럽던지. 늦었지만 효도를 하게 돼 마음이 편하네요.”

평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어찌나 마음이 쓰이던지. 이제 일에만 집중할 수 있을 걸로 보였다.

‘아니지, 아직 한 가지 숙제가 남았지.’

혜영이와의 관계가 남았다.

이건 준비해 둔 부분이 있으니, 이번 일만 해결하고 움직이자.

“그렇죠. 이제 효도해야죠. 그보다, 기연 노조와의 미팅은 어떻게 됐나요?”

“3일 뒤 자리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대진과 쌍마는 어때요?”

“채권자들을 불러 매입에 들어갔고, 두 그룹의 경영진들과는 다음 주 수요일 9시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인수하는 데 큰 무리는 따르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쌍마 회장이 놓지 않으려 했을 건데, 오케이 했나요?”

쌍마 자동차를 망하게 한 원인, 시기와 국내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차량만을 고집하다 보니, 국내의 시장점유율을 잃어갔다.

잘 사는 사람도 없는 이때, 비싼 차만 고집하면서 생긴 문제점이었다.

“알겠어요. 문제없이 준비 부탁해요.”

***

“어떨 것 같아?”

기연 자동차 노동조합 내부.

생산이 중단된 상태로 바깥에 나앉아 있는 사람들은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며 회의를 가졌다.

“돈도 많은 사람인데, 뭔 걱정. 밀린 월급 받고, 급여 올리고, 인원은 유지하고 생산량 빵빵하게 올려 달라고 해야지.”

“그걸 다 들어줄까?”

“안 들어주면 지들이 어쩔 건데?! 그 많은 돈을 여기에 쏟아부었는데, 일해야지. 우리 없이 자기들이 어떻게 사업을 운영할 거야?”

“그도 그렇네. 내가 요즘 허해져서 마음이 약해졌나 봐. 별걱정을 다 하고 앉았네.”

기연 자동차 파업은 1월부터 진행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이것도 이들이 살아가는 방법.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피해보다 당장의 이익을 좇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걱정 마. 이 회사가 넘어가면 우리도 같이 넘어가는 거니까. 여기에 있는 인원 절대 감축 못 시켜.”

“암. 당연하지. 우린 무조건 하나야.”

이 세 가지를 들어주지 않는 이상, 그 어떤 누구도 자신들의 뜻을 꺾을 수 없을 것이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대동단결 하나로 묶여, 이번 협상전을 승리로 장식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부릉!

1997년 11월 5일 수요일 09시 10분.

수십 대의 고급승용차가 기연자동차 공장 안으로 줄지어 들어섰다.

심지어 뒤로 여러 대의 버스까지 들어서 공장 안을 채웠다.

곧 검은 양복을 입은 수십 수백의 인원이 각 차량에서 내려 주변을 에워쌌다.

붉은색 조끼를 입은 노조와 대치하는 모습을 보이며 중앙에 자리해 있던 차량에서 젊은 남자가 내려섰다.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써 주세요. 그럼 우리는 들어가죠.”

“네, 회장님.”

수많은 경호원의 보호 아래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남자가 계단으로 발을 들이미는 시각.

“위원장님! KJ그룹 김정수 회장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밖을 좀.”

남자는 파리해진 얼굴로 미리 건물 내부에서 대기 중인 중년남성에게 보고하며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 이 무슨.”

위원장은 남자의 보고에 시선은 바깥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끊임없이 들어서고 있는 수많은 승용차와 버스들이 보였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검은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공터를 점령했다.

마치 전쟁이라도 일으킬 분위기를 풍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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