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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26화 (26/145)

26화

#바뀌다

기업에 관련된 욕심은 있다. 하지만 내 재산증식에 대한 욕심은 예전보다 많이 희석됐다.

미래에 세계적인 그룹으로 발전할 괴물 기업들을 내 발아래 두었으니까.

숨만 쉬어도 내게 쏟아지는 재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

몸속에 있는 화를 주체못하던 대통령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얼굴에는 화가 아닌 갈등의 늪에 빠진 모습만이 자리했다.

이해득실을 따지며 주판을 튕기고 있으리라.

10분의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아무런 말 없이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며 시간을 보냈다. 째깍째깍. 분침이 ‘3’에서 ‘4’로 향한다.

15분이 지나간다. 어르신들과 장기를 둬도 이리 기다려 본 적이 없는데.

더 이상 손을 가져갈 ‘말’이 없어 장군과 멍군을 반복하는 형국이 계속 이어졌다.

즉, 불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의미다. 비겼다 외치면 될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손실 규모를 키웠다.

“시간이 필요하군요.”

흐르는 정적이 깨어졌다. 하나, 그건 내가 기다린 대답이 아니었다.

시간을 더 달라는 의미였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지금 한국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시간을 미룬다? 다 같이 죽자는 소리밖에 안 됩니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중요한 때이다. 하루만 지나도 기업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무너지는 대기업에 깔려 죽는 협력기업들과 그들의 빚을 떠안아야 하는 영세 사업장.

은행이 살기 위해 회수하는 자금은 기업을 부도로 만들고, 이는 다시 은행의 숨통을 막는 악순환이 되어갔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오늘 내 결과를 내는 게 좋았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이어지는 정적 속에 서로의 생각이 충돌하려던 때, 적막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음··· 좋습니다. 회장님의 뜻에 따르지요.”

장장 20분이 다 되어 가서야 원하는 답이 들려왔다. 갈팡질팡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두 눈동자에 남아 있지만, 표정만큼은 확고하게 결정한 모습이다.

가족과 엮인 상황에 그의 결정도 어려웠을 터.

충분히 이해한다. 시간은 벌었다.

“한시라도 빨리 일을 수행하시기 바라지요.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셨으니, 한 가지 팁을 드리지요. 진짜로 국내 경제를 생각하는 대통령은 국민을 먼저 생각하셔야 합니다. 기업이 아닙니다. 국민을 생각하면 기업은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기업이 성장하는 건, 국민의 선택에 달린 거니까요. 사과를 하시고, 바꿔 가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럼, 결정하셨으니, 전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이제 나도 바빠졌다. 이제부터 나는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방어에 들어갈 것이다.

휴지보다 못한 가치로 팔려가는 국내의 기술을 내가 다 받아들이겠다.

***

“허허,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어. 경제수석.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내 생각한답시고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보게.”

이규석 경제수석에게 허무한 시선을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이 될 거라 큰 꿈을 가지며 정치에 입문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감정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솔직히 우리 한국은 외국인에게 신뢰를 잃었습니다. 국내에서 바라보는 합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안 됩니다. 외국인과 시선을 맞추고 이를 조화시키는 쪽이 우리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입니다. 기업과 금융의 구조적인 문제만 해결 후 실세환율(정부에서 정한 환율이 아닌, 자유외환시장에서 형성된 환율)로 가게 될 걸로 보입니다. 만약 그가 충격을 흡수해준다면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경제수석은 이번 일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붕괴되는 국내시장의 내부 문제를 얼마나 받쳐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 생각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약간의 도움을 준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베어링스, 마이크로, 인텔.

세 기업을 가진 김정수 회장의 영향력이라면, 세계는 긍정적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는 그만한 시장을 만들어갈 능력이 있었다.

“기자들 준비하고 수석은 내 뜻을 한국은행에 알리게. 그리고 검찰총장을 부르게.”

김영진은 결단을 내렸다. 둘의 움직임도 바쁘게 흘러갔다.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저의 잘못된 판단에 의하여 국내 경제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며칠 뒤 TV로 김영진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 생중계를 탔다.

-“무너지는 경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저는 과감히 부실기업들을 정리하는 한편, 그간 고수해온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골드만삭스가 진영그룹을 노리고 있다죠?”

TV를 보며 뒤에 대기 중인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골드만삭스, 세계에서 제법 유명한 금융그룹.

그들은 진영그룹을 노려왔고, 그들의 핸들링으로 진영그룹은 최종부도처리 되고 법정관리 절차를 밟아 국내시장에 매각된다.

“쓰레기들. 진영그룹의 부실채권을 전부 사들이세요. 지분도 받을 수 있는 만큼 챙기고. 그리고 그룹 회장을 만나 우리에게 기업을 넘기겠다는 서명도 받으세요. 골드만삭스가 나서면 정부에서 도움을 줄 겁니다.”

1차로 해결할 문제로 진영그룹을 뽑았다. 둘의 법정 싸움에서 골드만삭스가 승소했지만, 이 사이에는 구린 부분이 한두 가지 아니었다. 아무리 둘의 감정싸움에서 서로에 대해 신뢰를 잃었다 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기업은 아니었다.

비서가 나갔다. 그쪽은 그에게 맡기고 난 다른 일로 넘어가기로 했다.

“접니다. 은행장님. 지금 뵙고 싶은데,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음은···

“회장님과 이렇게 자주 보니 참으로 좋습니다.”

베어링스 한국지사로 제일은행장이 찾아왔다.

내게 손바닥을 비벼가며 아부하는 그의 모습에 내 위치를 실감했다.

“에둘러 말하지 않겠습니다.”

“네!?”

난데없는 내 요청에 제일은행장이 깜짝 놀란다.

난 지긋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모든 채권 제게 주세요. 기연, 쌍마, 해태, 뉴코아, 유원건설, 대진그룹, 쌍방울 등 전부. 들고 있는 지분까지.”

우리나라의 대부분을 떠맡고 있는 거대 자동차 산업.

그중 한 축을 담당하는 기연과 쌍마 자동차를 내가 맡고자 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제일은행은 해외차입이 막힐 위기에 처해 꽤 힘들다 들었습니다. 그걸 제가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대진그룹은 건재해 보이지만, 거기도 만만치 않게 부실기업이다. 자동차도 제대로 팔리지 않아, 99년에 몰락하고 만다.

이게 다 미국의 GM으로 발생한 문제로 대진의 경영에 계속된 관여로 제대로 날개도 펴 보지 못한 상태로 부도에 직면한다.

난 대진 자동차까지 인수해, GM과 경영 분리를 할 참이다.

“정말로 그러실 참이십니까?”

“대신 부채는 모두 0으로 만들었음 합니다.”

“그건 무리입니다!"

100% 부채탕감. 제일은행을 살려주는 가격으로 꽤 저렴하다 생각했는데, 은행장은 아닌 모양이다.

“제일은행을 인수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제가 왜 그러지 않을까요?”

제일은행은 SCB영국은행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SCB제일은행.

우리나라 최고의 은행이 망하는 순간이다.

“독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한다면 이 국내 은행을 전부 하나로 통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으려 합니다. 전 독점이 아닌 경쟁을 바라니까요.”

이대로 흘러가면 정부는 제일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해 감사를 실시한다.

8천 명에 이르던 직원은 50% 감소된 4천 명.

“잘 생각해 보세요. 나로 인해 부담을 덜고 살지, 이대로 무너지는 걸 바라만 볼지 말입니다. 모든 기업이 해외로 넘어가는 순간, 어떻게 될까요? 제일은행은 지금보다 더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겁니다.”

제일은행은 1조가 넘는 자금을 지원해도 살아남기 힘들다.

하지만, 내가 경제를 붙잡는다면 저들은 살아남을 여건이 생긴다.

내가 굳이 인수하지 않아도 한국은행의 도움으로 살게 되리라.

뭐, 싫다면 정부와 이야기를 해 제일은행을 달라고 하는 수밖에.

“그래도 전부 탕감을 해 달라는 건 무리입니다.”

“그럼 좋습니다. 한 곳만 이야기하세요. 딱 한 기업만 부채를 떠안고 제가 말한 모든 기업에 대해 인수하겠습니다.”

“··· 하아.”

“우리나라 기업에서 이걸 빠르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업이 있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 만약 이 모든 기업을 달.러로 구입할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

“······.”

기업 하나하나가 조 단위다. 그걸 달러로 준다고 생각해 보면 제일은행에 있어 엄청난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부족했던 체력이 살아나게 되는 거다.

“내부적인 회의를···”

“아니요. 지금. 전 1초도 급합니다. 지금 확답을 듣지 않는다면, 제일은행 파산을 앞당겨 드리죠. 제일은행에 제 달러가 좀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걸 회수한다면 제일은행이 얼마나 버틸지 기대되네요.”

은행장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습이다.

아주 좋은 현상이다.

“아시아와 기연··· 이 두 곳만 부탁합니다.”

“한 곳이라 했는데, 오케이. 좋습니다. 은행장님이 물러선 만큼 두 곳의 부채는 해결해 드리죠. 그 외 다른 그룹은 부채 없이 제가 인수하도록 하지요.”

아시아와 기연자동차 부채는 약 9조 원.

이 두 기업의 부채만 해결하고 나머지 그룹을 받기로 하였다.

KJ그룹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는 순간이다.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KJ그룹 김정수 회장이 국내 부도 사태에 직면한 기연자동차, 아시아 자동차, 쌍방울, 해태, 대진 자동차, 뉴코아 등 국내 재계 20위권 내 드는 기업들을 대거 인수를 감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금일 오후 2시에 전해졌습니다.

-인수대금만 수십조로 알려진 가운데, 모든 대금을 일시에 납부하기로 했습니다. 상장폐지 된 기업들에 대해 재점검에 들어가···

모든 기업에 대해 부채를 해결했다. 더는 부채로 쪼는 은행은 없을 터다. 내가 인수한 그룹들은 부채 없이 깨끗한 재무제표로 그리며 한국의 대표적인 그룹으로 성장하게 될 터다.

이런 과정에서 KJ그룹은 모든 업종에 대한 사업권을 운영하게 됐다.

‘게임사는 나중에 하면 될 거고. 이 정도면 무너진 경제가 회복하는 것도 금방이겠지.’

나는 약속대로 베어링스 은행 100억 달러, KJ컴퍼니 100억 달러를 한국에 투척할 준비에 들어갔다.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실장님.”

인터폰을 눌러 비서실장을 불렀다.

“네.”

“골드만삭스, JP모건, 퀀텀펀드, 시티그룹, AIG 등 회장들에게 연락해 전부 이곳으로 모이라 하세요.”

나는 한국을 떠나 세계 거부로 주목받는다. 이미 왕실의 자산을 뛰어넘은 상태.

그들이 내 소환에 응할지 모르지만, 난 이번 외환위기 사태를 그들과 함께 풀어보기로 하였다.

“하, 한국지사로 말입니까?”

내 지시에 비서실장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펀드사를 제외하면 모두 세계 50위권에 들어서는 대형금융그룹이다. 그들을 전부 한국으로 소환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잊지 마세요. 베어링스 그룹이 세계 1위 금융그룹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전 그런 그룹을 품은 사람입니다. 어깨를 펴시고 배짱 있게 움직이세요. 그들은 우리 밑이니까.”

“······”

내 눈웃음에 마비된 비서실장은 뻣뻣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이거 기대되는데. 저들의 반응이.”

비서실장이 빠져나간 문으로 가져간 시선을 가져와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향했다. 윈도우 97이 켜지며, 싱그러운 음악 소리를 냈다.

띠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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