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25화 (25/145)

25화

#청와대와 단판 승부 (2)

부웅—

검은색 세단 승용차부터 시작해 SUV 차량이 길게 줄지어 일정한 간격에 맞춰 도로를 달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걷던 걸음도 멈추고 지나가는 차량을 넋 놓고 바라봤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은 속도를 줄여 거리를 벌려 달리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

중간에 경찰차도 끼어들어 도로를 통제했다.

“누가 알면 해외 왕족이라도 온 줄 알겠네.”

오해는 더욱 커져 경찰 차량이 청와대까지 안내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시선을 살짝 돌려 옆에 앉은 비서를 보니.

부들부들. 나와 같은 심경을 안고 참는 모습이 느껴졌다.

‘내 눈치 보느라 고생이 많네. 이럴 땐 내가 눈을 감아주는 게, 저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거겠지.’

노고가 많은 비서를 위해 선심 써 눈을 감아 잠든 척했다. 마침 뻑뻑해진 눈으로 휴식을 필요하던 차였다.

앞으로 50분간 눈을 감고 있자.

-긴급 뉴스입니다. 최근 포보스가 뽑은 세계재벌 1위, 세계 영향력 3위에 올라선 KJ그룹 김정수 회장이 금일 김영진 대통령과의 독대를 가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정재계에서 신경을 곤두서고 있습니다. 어떤 대화가 오갈지 국내뿐 아니라 세계가 관심을 보며 지켜보고 있는 때, 김정수 회장이 막 청와대로 들어섰다는 소식이 전해…

이번 일로 세계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사게 됐다. 그렇지 않아도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 열린 독대는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촉이 좋은 사람들은 내 목적에 대해 유추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사방에 뿌리고 있다.

그런 기대심리는 위축된 증시를 잠시 끌어올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글쎄.

난 되도록 투자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신문으로 보다 이리 보니 참으로 잘생기셨습니다. 하하.”

안전을 확보한 상태로 들어선 청와대.

김영진 대통령이 손수 마중 나와 반겼다.

‘초반엔 참 좋다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건넨 손을 맞잡으며, 씁쓸한 기억을 떠올렸다.

하나회 척결(사관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육군 내 만들어진 사조직), 금융실명제도입, 공직자재산 공개, 투기 의혹이 있는 공직자 부도덕 증식 협의 인사 정리 등을 시도하며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당시만 하더라도 파급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문제는 나라 운영에서 억지에 가까운 정책에 있었다.

국민소득을 1만 달러를 유지하고자, 원화 가치 고평가를 유지했다.

외환위기를 초기에 잡았다면, 어쩌면 큰 문제로 이어가지 않았을 문제인데.

외환보유고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원화 고평가 유지를 위하여 얼마 남지 않은 외환보유고를 시장에 풀어버렸다.

이러한 사실이 일본에 알려지면서 채권을 회수해 달러로 바꿔 가고, 이 소식은 세계로 퍼지면서 다른 국가에서도 채권 회수에 나섰다.

‘실무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대형 사고…’

그리고…

“얼굴로 칭찬받기는 처음이네요.”

그의 셋째아들과 정태수와의 관계.

이러한 원인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국가 부도에 직면하게 됐다.

IFM와의 어처구니없는 조건을 들으면서까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훤하니, 참 좋습니다. 그려.”

그의 발걸음이 건물로 향했다. 나 또한 옆쪽에 자리해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방 안으로 들기까지 우리는 잡스러운 대화를 이어갔다. 모든 대화는 나에 대한 것으로 맞춰졌다.

중간중간 민감한 질문도 들어왔지만, 웃음으로 넘어갔다.

“설마 유명하신 분이 저를 이리 찾아 주실지 몰랐습니다.”

동그란 얼굴에 달린 작은 입술이 양옆으로 길게 그어진다.

찢어질 듯한 미소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참으로 기대된다.

잡소리는 여기까지. 이제 내가 시간을 쪼개 이 자리에 온 목적을 달성할 차례다.

“나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님은 지금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자 했다.

경제 대통령으로 추앙을 받고 싶어 하는 그의 생각을.

“음…”

화기애애하던 가벼운 분위기는 신기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방 안은 적막감에 빠져,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김영진 대통령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는다.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들이 교차해, 답을 찾고 있을 것이다.

내 질문에 어떤 속뜻이 담겨 있는지를.

후루룹. 그의 답을 기다리며 커피를 홀짝였다.

“부실경영으로 발생한 일입니다. 경제는 상당히 좋은 편이지요. 무너질 기업은 무너져야 맞지 않겠습니까? 이번만 이겨내면 국내경제는 살아나게 될 겁니다. 하하.”

“……”

정말로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아니면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 걸까?

뻔히 보이는 현 위기 속에 저런 말을 태연하게 할 수 있다고?

지금 상황은 학생들도 피부로 느낄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말을 내뱉으니, 머리가 띵 하니 아파왔다.

“정말로 그걸 진심으로 하는 소리십니까? 당연히 무너질 기업은 무너져야 바람직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단순하게 그리 끝날 문제가 아니지요. 무리한 대출로 발생한 대출은 부실기업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엄한 사람들이 받고 있습니다.”

연기이기를, 음모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외환보유고가 텅텅 비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육성, 엔지와 같은 유수의 기업들이 달러로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외화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외국인투자자마저 한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럼 외환보유고는 어떻게 될까요? 지금 우리나라 보유고는 300억 달러를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입니다. 이 벽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 거 같은가요?”

이 문제는 내 자산이면 충분히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걸로 썩은 이 국가를 리모델링 할 수 없다. 사람들은, 기업들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있으니까, ‘안심하고 지금의 상황을 이어가자’

아닐 수도 있지만, 없을 수는 없다.

이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은행만 설립만 하고 국내에 달러를 들이지 않고 있다.

이 대한민국의 확실한 체질 개선을 위해서.

잘못된 걸 뿌리 뽑기 위하여.

“분위기가 무거워 이마에 땀이 다 나네요. 외환보유고. 심각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회장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베어링스 한국지사를 안산에 설립했다 들었습니다. 세계금융그룹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드는 금융그룹의 주인이 여기에 있는데, 걱정할 일이 있을지요.”

“……”

내가 듣고자 했던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역시 이 국가는 내 돈을 노리고 있었다. 내 품에 기대어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고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

결국, 이거였다.

망할 놈들, 망할 정치꾼들.

그리고 이와 연관된 기업의 총수들.

아주 진저리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따위 생각을 가진 채, 나라를! 기업을! 운영하겠다 하니 정나미가 뚝 떨어짐을 느꼈다.

휴—

릴렉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자.

“설마 했지만, 이런 생각을 직접 듣게 되니 충격이네요. 전 한국으로 달러를 들고 올 생각이 없습니다. 반대로 미국으로 채권을 회수하도록 하지요.”

정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무, 무슨 말입니까, 김 회장!”

온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그의 가면이 깨졌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볼살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인다.

정말 화를 낼 사람이 누구인지, 그는 모르는 모양이다.

“대통령님 말처럼 정재계가 똑같이 그런 생각을 들고 있다면, 이 나라에 미래는 없습니다. 전 기업가이자, 투자자입니다. 투자자에게 국가 따위 없습니다. 돈만 벌면 되고, 돈이 안 되는 일은 후퇴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 생각은 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와 투자자들이 그리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이 국가는 투자하기에 너무 매력이 없는 곳이라고. 저 또한 매력이 없네요. 이 국가는.”

“말이 심하오! 김 회장!”

끝내 방 안에 그의 고성이 터졌다. 고막이 짜르르 울렸다.

“심하다니요? 전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을 하였고, 이제 나만의 삶을 살고자 투자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한데, 제가 힘겹게 모은 돈으로 나라를 살려라? 그건 억지라 보지 않습니까? 그럼 제 돈은 어디로 흘러갈까요?”

아무리 그가 내 위에 있는 국가의 대표라 하지만, 그는 절대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내 위치, 내 돈, 내가 만들어 놓은 기업들이 나를 지켜줬다.

그리고 주변에 자리한 내 경호 인력은 아무리 청와대라도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난 그에 힘입어 마음을 굳게 먹었다.

“또 다른 부정부패가 발생하는 방향으로 흘러가, 또 다른 부실기업을 만들겠지요.”

완벽하게 신용을 잃은 국가와 기업이 살아갈 정도로 이 사회는 결코 다정하지 못하다.

내 지난 인생이 말해줬고, 내가 그러고 있었다.

“대통령님. 진짜 경제 대통령으로 남고 싶으십니까? 역사에 경제 대통령으로 기록이 남고 싶으신가요?”

마음을 다시 잡고 그에게 물었다. 정말로 그걸 원하는지.

이 나라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큼.”

격하게 끓어오르던 분위기 속.

이 열기를 조금은 식힐 필요가 있다 여겨 목소리에 힘을 뺐다. 너무 몰아붙이는 건 좋지 않기에, 비슷하면서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바뀐 분위기에 어색했는지, 김영진 대통령은 헛기침으로 머쓱함을 달렷다.

그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표정을 고치고 입술을 뗐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대통령님은 기업이 아닌 국민을 봤어야 했고, 전체를 봤어야 했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지인을 돕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공과 사는 지켰어야 했고, 자식도 팔 안에 품는 것이 아닌… 잘못된 점이 있을 때는 아버지 입장이 아닌 대통령으로서 혼을 냈어야 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요? 지금 내 가족을 욕보이는 겁니까?”

다시 그의 눈이 뾰족하게 변했다.

“한보그룹, 누구의 작품이라 생각하십니까? 과연 정태수 회장의 힘만으로 은행에서 5조 원 이상을 빌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

“인수과정에서 많은 부분들이 발견됐습니다. 거기서 대통령님 셋째 아드님께서도 연루돼 계시더군요. 은행종사자와 공무원들까지.”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게요? 애초부터 이럴 생각으로 나를 찾은 거 같은데.”

이제야 좀 상황파악이 되나 보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신 분이. 왜, 나라를 이렇게 운영했는지 모르겠다.

생각도 그렇고.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금리를 올리세요. 대기업을 압박해 금고에 쌓아 둔 달러를 풀게 하고, 거래를 하고 있는 하청업체에 어음으로 결제된 것들을 다 갚게 만드세요. 끝으로 아드님의 죄를 밝혀, 죗값을 받게 한다면….”

“……”

“그리된다면 흔들리는 기업들을 제가 인수해, 시장에 발생할 충격을 막아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외환보유고를 채워드리죠. 투자자를 모집해서. 이걸 대통령님께서 이끄신 것처럼 해드리지요.”

난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제 선택은 그의 몫이다.

그가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는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