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22화 (22/145)

22화

#외환위기, 위기를 기회로

“20억 달러에 모두 넘기겠습니다.”

내부적으로 이미 이야기가 끝났는지 결론은 빨리 났다.

종이에 서명하는 시간만 걸렸을 뿐이다.

“깔끔하네요.”

“저희도 조금은 후련합니다.”

말과 표정이 다르다. 말은 후련하다고 하는데, 표정은 다 죽어가는 송장이다.

아무래도 20억 달러에 모든 걸 넘겨, 속상한 모양이다.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네요. 좋은 거래였습니다.”

그와는 빠른 시기에 다시 보게 될 거다.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제일은행을 떠났다.

“삼미도 흡수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네. 흡수해야죠.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당장 그곳을 인수할 기업은 없어요. 한보를 좀 비싼 값에 샀으니, 이번엔 잘 익을 때까지 숙성의 시간을 가질 참입니다.”

“숙… 성?”

“곧 가치가 떨어진다 뭐 그런 의미로 한 말이에요. 전 그때를 노릴 예정이고.”

한보그룹은 시작점이라 생각했다. 한국에서 사업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영웅.

이 한 단어는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다. 그리고 사람들은 97년의 영웅이 나타나기를 기도했다.

난 대한민국의 영웅이 되려 하고 있었다. 시장의 인지도를 올려 이를 마케팅 삼아 점유율을 확 끌어올릴 참이다.

‘좀 비싼 홍보네. 20억 달러짜리 홍보. 어떻게 나타날지 기다려 보자.’

멀어져 가는 제일은행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앞으로 나의 부동산 소개소가 될 금융권을 떠올리며.

***

은행의 자금 회수가 가속화되며 기업들의 부도 또한 빨라졌다. 삼미그룹에 이어 알짜기업으로 유명한 알코올 기업 진영그룹이 망했고, 빵 셔틀 수림식품이 문을 닫았다.

이밖에 국내 그룹들이 어음만기를 이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태국에 대한 공매도와 옵션에 들어가세요.”

나의 주머니를 채워줄 시기가 도래했다. 1997년 07월에 발생하는 태국의 외환위기.

조지 소로스는 태국에 공매도를 건다.

나도 그의 행렬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바트화 폭락에 대한 옵션을 진행하는 건 보너스!

“앞으로 아시아 경제는 폭삭 주저앉을 거예요.”

마이크로 소프트, 베어링스 그룹, 인텔까지 동참하기를 주문했다. 물론 KJ컴퍼니도 출격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을 즐기며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야후는 96년에 나스닥에 상장해, 빠른 발전을 이어갔다.

다모가 웹 메일을 내세워 이용객을 늘렸다면, 야후는 검색 서비스를 주로 다뤘다. 한국 시장에 상륙한 야후는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그러던 때, 기다리던 다모커뮤니케이션이 웹 메일을 출시했다. 나에게서 건네어 받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모는 빠르게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국내 대표 메일로 성장했다.

내 투자를 받은 두 포털 사이트가 국내 시장을 빠르게 흡수해 나갔다.

“이런 불경기에 다모는 승승장구하네요. 축하해요.”

“이게 다 회장님 덕입니다. 자금이 충분하니,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윤다훈 대표가 기분 좋게 웃는다. 그가 웃으니 내 입가에도 덩달아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 생각해 주니 감사합니다. 한데, 대표님. 메일 바이러스 문제는 어떻게 됐어요?”

“그것이 참…”

시원하게 웃던 윤다훈 대표의 얼굴 표정이 어색하게 변한다. 내가 일러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것에 민망함, 무안함 뭐 그런 것이라.

그 부분에 대해 나 또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모의 약점이야. 당장은 괜찮지만, 몇 년 가지 않아 바이러스 공격을 받게 돼. 이게 문제가 되면서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골똘히 생각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

그 순간, 잊고 있던 감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현기증을 유발하며 머릿속을 채우는 수많은 지식이 머릿속을 차지해 갔다.

그러던 그 순간!

-나는 그레이 헤먼드. 나는 세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내 나이 15살, 그저 재미로 시작했던 해킹은 법무부 컴퓨터로 향했다. 그들이 내린 판결문을 읽는 건 꽤 재밌었다.

-좀 더 대담해지기로 했다. 나사로부터 2억 달러를 훔칠 계획을 세웠고, 끝내 성공을 거뒀다. 16살 때 일이다.

-세상이 나를 욕했다. 화가 났다. 이런 예술을 몰라주고 욕을 하다니. 나는 결심했다. 세상에 바이러스를 퍼트리기로.

18살이 되던 해 세상에 바이러스를 살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난 결과를 끝까지 지켜볼 수 없었다. 나의 예술을 몰라주는 저주스러운 세상, 굿바이다.

“……”

강렬하게 각인된 천재 해커의 기억.

왜 하필 이자의 기억에 나와 하나가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낯선 감각이 익숙해지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눈을 몇 번 깜박이는 사이, 천재 해커의 기억은 온전히 내게 됐다.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귓가로 윤다훈 대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죄송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했네요. 그 문제는 생각해보기로 해요.”

덕분에 정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생각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느꼈다.

“제가 중대한 일이 있다는 걸 잠시 깜박했네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해요.”

인사를 끝으로 급히 자리를 떴다.

***

바트화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태국의 붕괴가 시작된 때, 기연 자동차 부도 소식이 전파를 탔다.

대한민국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런 상황 속에 KBC에서 어이없는 방송을 TV로 내보냈다.

-늘어난 해외여행으로 빠르게 외화가 소모되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해외여행 등과 같은 과소비를 줄일 것을 강조하며, 아나바다 운동을 실천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를 강조한 방송은 공항을 누비는 국민들의 모습을 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누비며 명품을 사들이는 모습을 공개했다.

“부곡 하와이 가기에 바쁜 국민들이 뭔 책임이 있다고 저런 걸 찍는지. 하여튼 빌어먹을 정부야.”

언론사도 정부와 한편이다.

저들은 정부 편에 서서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 해외여행을 어떻게 갈 거며, 고가의 명품을 어떻게 사들일까? 저 방송은 결국 부자, 재벌, 고위공직자에 오른 인물들 탓임을 광고하는 꼴임을 알까?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을 개소리에 TV를 꺼버렸다.

“저런 걸 뭔 생각으로 내보내는지. 쯧. 그나저나 기연 자동차가 결국 무너졌네.”

때를 보고 기다려왔던 순간이 찾아왔다. 태국의 바트화 고정환율제도 포기선언과 동시에 폭삭 주저앉았다. 그 여파로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주변국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통화가치가 급락했다.

“접니다. 모든 옵션에 대한 행사에 들어가세요.”

시간을 확인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태국에 투자한 공매도부터 시작해 옵션 등에 대하여 마무리를 지을 것을 지시했다.

요즘 돈 벌기가 왜 이리도 쉬운지 모르겠다.

“세 그룹 다 벌면 얼마나 되려나.”

얼마 전 세 사람은 자리를 오래 비웠다며, 미국과 영국으로 돌아갔다. 돌아간 그들에게 벌어질 엄청난 판타지를 떠올렸다.

가히 천문학적인 자금이 기업으로 들어올 터다.

KJ컴퍼니, 마이크로 소프트, 베어링스 그룹, 인텔.

벌써부터 흥분감에 콧노래가 술술 나온다.

정부로 인해 짜증 났던 마음이 확 가라앉았다.

“그럼, 다시 그걸 생각해보자.”

기쁨도 잠시.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눈을 감아 얼마 전 내게 찾아온 또 다른 기억을 살폈다.

“……”

아주 새롭고 신비로운 경험을 하였다. 어린 천재 해커의 기억이 내 미래의 기억을 탐구하며 연구했다. 낯설면서 익숙한, 익숙하면서 낯선 지식은 새로운 미래의 지식을 가져와 읽었다.

다형성 바이러스, 윈도우 NT 바이러스, 백오리피스, 다형성 매크로바이러스, CIH바이러스…

분명히 존재하지 않던 기억이었다. 한데, 해커의 기억은 그런 기억들을 서점에서 책을 빼 오듯, 필요한 정보들을 가져왔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어? 어라. 어?!!’

이 해커의 기억이 말해주고 있었다.

미래에 발생할 바이러스를 막을 방화벽, 백신을 만들어 보자고.

공격만 했던 기억은 방어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어린아이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즐거워했다.

“이러다 나도 누구처럼 나도… 아니지. 그래. 나도 안칠현처럼 백신 기업을 만드는 거야.”

이게 얼마나 중노동이 될지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을 설립하고 천재들을 뽑아, 내 기억 속에 있는 이론들을 그들에게 전파하면 그만이다.

이걸 인텔 컴퓨터와 연계해 기본 아이콘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그리고 이걸 삭제하기 힘들게 만들어, 바이러스와 연관된 프로그램 자체를 만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다면. 확산율이 대폭 감소하지 않을까?

생각은 나쁘지 않다. 충분히 해볼 만한 사업이었다.

“응, 그런데 이건 뭐지?!”

그러기를 잠시, 머릿속으로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논문.

매우 흥미로운 미래에 발생할 화폐가 머릿속에 자리를 잡아갔다.

***

-한보그룹을 인수한 기업은 어디? 금융권에 얼굴을 비친 A씨는 개인투자자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베어링스 그룹, 마이크로 소프트, 인텔의 최고 경영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재벌로 알려진 이들은 A씨를 수행하고 며칠 전 귀국길에 올랐다는 소식입니다.

-20억 달러를 일시에 지불한 재력에 그저 놀라울 따름인데요?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A씨는 베어링스 그룹 6천만 달러, 마이크로 소프트 200억 달러, 인텔 150억 달러로 인수했다 알려졌습니다. 국내 외환보유고를 넘어서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A씨의 방향에 따라 국내경제가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내 얼굴이 알려졌다. 영상에는 내 눈을 검게 칠한 사진을 내보냈지만, 저건 누가 보더라도 나였다.

“이로써 미국과 영국에도 알려진 건가?”

내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움직인 각국의 정보세력들.

이제 숨기고 자시고 없었다. 첩보원처럼 행동한 건 아니기는 했지만.

“기자들 무지 몰리겠네. 이리된 거 제대로 이제 대놓고 공개적으로 움직이자.”

세계 주요 국가들은 나를 주의 깊게 지켜볼 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럼 먼저 해야 할 건 인수한 한보그룹에 대한 걸 푸는 거겠지.”

인수만 해놓고 아직 풀지 않은 숙제를 해결할 일이 남았다. 그리고 그 해답은.

“내 돈으로 해결해야겠지.”

당장 당진 제철소의 쓰임새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지만, 제대로 개발만 이뤄진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링이 적용된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으로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난 이 고로를 두 개를 더 만들 예정이다. 세계최초로 한 해 세 개의 고로를 만들어 동시에 가동하는 신기원을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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