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21화 (21/145)

21화

#신흥재벌 강림

“……”

“……”

“……”

고요함 속에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제일은행장. 조흥은행장, 산업은행장, 외환은행장 등등.

세상의 빛을 처음 본 강아지마냥 눈을 동그랗게 떠 멍때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절 쳐다보실 건가요? 이러다 동물원 우리에 가둬 두고 기를까 무서워지려 하는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테이블을 기준으로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건… 가?’

그러다 그들의 시선을 쫓아 왼쪽 오른쪽 따라갔다.

세계 금융그룹으로 유명한 베어링스 그룹 제임스 맥어보이.

세계재벌 1위에 당당히 기록된 빌 게이츠.

세계 컴퓨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인텔의 라나.

황금기가 끝나가는 기업이긴 하나, 세계적인 인물임에는 맞다.

이런 세 사람을 내 수행원으로 데리고 왔으니, 저들의 표정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 같다. 저들의 시선이 다시 내게 고정됐다.

시계의 추처럼 일정한 박자를 타며 움직이던 시선은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어느 재벌 가문의 자녀분이신지…”

분위기가 숙연하게 변한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은행장들의 시선이 기대감으로 물씬 풍겨왔다.

“자수성가했습니다. 어느 재벌 가문과도 연줄은 없습니다.”

“에?!”

사람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며, 분위기가 더욱 이상하게 변해갔다.

내 말을 안 믿는 눈치다.

“김정수 회장님은 투자로 많은 돈을 버신 분이십니다. 나이를 떠나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지요.”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로 인해 분위기는 왕을 알현하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은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와는 다른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뜻에 공감을 표했다.

“서, 설마… 우리나라에 이런 분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이러다 내 소개로 하루가 다 갈 거 같다. 이쯤에서 끊는 게 좋겠다.

“제 소개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한보그룹 저희가 통으로 인수하겠습니다.”

“허허, 이렇게 감사할 때가.”

“정말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리 훌륭한 분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맞아요. 진즉 알고 있었더라면, 이리 끙끙 앓지 않아도 되었을 건데. 정말 감사합니다.”

은행장들이 줄지어 고개를 숙였다. 어떤 사람은 배꼽 인사를 하며 나를 경배했다.

황홀함에 빠진 저들의 시선, 몹시도 흡족하게 다가왔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좋았던 분위기도 잠시.

내 말에 시끌시끌하던 분위기가 다시 조용하게 바뀌었다.

내가 말하는 ‘조건’에 긴장한 기색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채가 너무 많네요. 1년간 이자를 면제 바랍니다.”

부채만 해도 5조 원 근방이다. 비록 총알은 두둑하게 준비했지만, 한보그룹에 기존 가치 이상의 자금을 쓰려는 기업가는 없을 거다.

한보 철강에 대한 인수가를 2조 원 정도 부른 기업이 있다. 은행에서 생각한 인수가의 50%도 미치지 못하던 금액에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그, 그건 무리한 조건입니다. 이자를 낮춰줄 용의는 있으나, 면제는 어렵습니다.”

제일은행장이 호들갑을 떨며 나섰다.

“그렇습니까? 요즘 은행에 달러가 많이 필요해 보이던데. 제 착각인가요?”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 은행권만이 알고 있는 사실.

그렇기에 이들은 달러를 구하기에 혈안이 된다.

좀만 기다리면 내 달러는 부르는 게 값이 될 정도로 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난 한보그룹 인수대금을 달러로 처리할 겁니다. 당연히 인수대금 부분도 생각을 해볼 문제겠지요.”

난 절대 한보그룹을 정상가를 주고, 그리고 본 역사와 같은 금액을 주고 살 생각은 없다.

이 돈은 곧 한국에서 벌어질 사태에 대비한 자금이다. 연달아 무너지는 기업들. 기업들의 가치가 휴지보다 못한 가치가 되고, 외국기업의 먹이가 된다.

난 그것을 막고자 한다. 타기업에 넘어갈 거라면 내가 가지는 게 낫다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자금을 아껴야 했다.

“달러…”

달러에 은행장들의 눈이 뒤집히나 했는데,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그들의 흥분감은 숨길 수 없었다.

포철과 같은 2조 원을 불러도 가치가 확 달라진다.

7월, 8월이 되면 그 가치는 더욱 두드려지겠지만.

“그럼 이렇게 해드리죠. 인수가를 4조로 잡고, 이자는 5%대로 맞춰드리겠습니다.”

“?”

이런 도둑놈들.

사람을 호구로 보고 있다. 어떻게 그런 회사를 4조 원이나 불러.

“4조 원을 부르고 싶다면, 부채를 없애는 조건이나 한보그룹 전체를 넘기고 이자를 줄이거나. 이 정도가 계산이 맞다 생각이 드네요.”

어디서 철강을 내게 4조나 불러.

한보철강은 2000년대로 가도 주인이 계속 바뀐다.

그때는 조 단위가 아니라 천만 단위가 된다.

영국의 철강기업인 코러스사가 제시한 금액 4억8천만 달러였다.

즉, 미래로 가도 가치가 없다는 소리였다.

“말도 안 됩니다.”

“저도 납득이 안 가네요. 당장 수익도 기대하기 힘든 기업을 4조나 부르고 이자까지 받아먹으려 하다니. 제가 제시할 수 있는 금액은 20억 달러. 한보그룹 전체에 해당하는 인수가입니다. 이자율은 5% 이하. 이 이상은 부르기 힘들어요.”

정말 후하게 쳤다. 이 정도면 갖다 바치는 꼴이다.

한보철강에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 모르는 상황에 최적의 조건이라 생각했다.

한보그룹의 부도를 막는다면 일단 한보에 딸려 있는 기업들의 연쇄부도를 막을 수 있다. 증권가의 피해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고.

되돌아올 은행의 충격도 완충해주기까지 하니, 이보다 좋은 조건도 없다 생각했다.

“덧붙이자면 우리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곳은 없으리라 자신합니다.”

“……”

“… 그래도 그건 좀.”

“당장 결정하란 의미는 아닙니다. 충분히 생각해보세요. 단, 이번 제안이 밀리면 한보그룹 인수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국내 기업을 살리고 싶은 생각도 있고, 국내 시장을 내 입맛에 맞게 주물러 보고 싶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미래는 대기업들의 대제국 시대가 완성된다.

단연 돋보이는 기업은 육성전자. 400조가 오르는 국민주.

“육성은 놔두자, 경쟁하는 기업이 있어야 재밌지.”

육성전자의 미래를 떠올리며, 은행을 벗어났다. 침통한 그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따라오는 세 사람에게 말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죠.”

그들에게 한국의 스테이크와 양주를 맛보여주기로 하였다.

***

“제가 누굴 만난 건지 모르겠네요. 세계재벌을 직원으로 두고 있는 기업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방에 남겨진 은행장들은 닫힌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영국의 금융그룹 베어링스를 필두로 마이크로 소프트에 인텔까지.

과연 재벌기업이 세 그룹사를 인수할 능력이 될까?

절레절레.

절대 무리였다. 한데, 20대 남성이 세계적인 기업 세 곳을 인수를 했다. 그것을 그는 자수성가라 말했고.

“20억 달러에 넘기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달러라도 그건 말도 안 되는 금액입니다.”

20억 달러라고 해봐야 2조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걸 달러라 하더라도 그렇게 싸게 넘기는 건 무리가 따랐다.

“다시 한번 미래와 포철에 물어보죠.”

“그러다 김 대표가 물러서면 어쩝니까?”

“그렇다고 그 가격에 넘길 수 없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 움직여 봅시다.”

제일은행장의 말에 모두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거절한 건 아니니 움직여 보기로 하였다.

“총 외채가 천억 달러가 넘어서면서 환율 상승속도가 빨라 외채 이자가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사무실.

팀원들이 모여 열띤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한보그룹 부도는 한국은행에 있어서도 큰 타격으로 돌아왔다.

“끙.”

직원의 보고에 남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현실이 무척 절망스럽게 다가왔다.

“작년 말 기준 환율이 벌써 33원이 올랐어요. 문제가 심각해요.”

작년 말 환율이 844원.

단 두 달 만에 877원까지 뛰었다.

이렇게 뛴 환율로 인해 부채 부담 증가액은 1조8천에서 2조 후반대로 올랐다.

국민당 6만 원 정도씩 더 부담해야 하는 액수.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갔다.

“외환보유고 300억 달러가 무너졌어요. 팀장님!”

끙끙 앓기만 할 뿐 어떤 말도 못 하는 팀장의 모습에 직원들의 심정은 점점 타들어 갔다.

“할 수 없지. 은행에 있는 외화예탁금을 모두 회수해요.”

300억 달러 벽만큼은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갈등에 빠지던 팀장은 이내 굳은 결심에 이르렀다.

한국은행은 국내 은행 외화예탁금 회수에 나서기로 하였다.

-충격, 한보그룹 부도에 이어 재계 24위 삼미그룹 부도.

-한국은행은 금일 국내 전 은행에 외화예탁금 회수에 나서기로 결정을 내리면서 은행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게 갑자기 무슨 난리입니까? 이걸 빼 가면 망하라는 겁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은 외환보유고를 채우는 게 먼저입니다.”

국내 은행들은 한국은행의 선택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한국은행의 행사를 막을 수 없었다.

그저 눈뜬장님으로 빠져나가는 달러를 구경해야 하였다.

“어떻게 됐습니까? 뭐라고 합니까?”

“거절당했습니다. 여력이 되지 않는다 합니다.”

은행권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은행에서 회수하는 외화, 자금 회수가 어려운 대기업들. 모든 것이 악순환이었다. 그로 인하여 어음만기연장을 거부하고, 기업들 자금 회수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 과정에서 연신 부채로 자금난에 시달리던 삼미그룹은 부도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김정수 회장과 다시 협의를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정말 힘들어집니다.”

조흥은행장은 참다못해 20억 달러에 한보그룹을 넘길 것을 주문했다. 한보그룹이 멈추면서 자동차 회사들도 어려움에 처한 상황.

이를 빨리 해소하지 않는다면, 국내경제는 더욱 어려움에 빠져든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은행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군요. 휴…”

그간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제일은행장은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제일은행에서 전화 왔네요.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집으로 연락 왔다. 바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세 사람에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말해줬다.

“굳이 그런 볼품없는 기업을 인수해야 합니까?”

빌 게이츠가 물었다. 그로서는 이번 인수 건이 마음에 차지 않는 눈치다.

“앞으로 철강과 비철은 꽤 중요하게 취급될 거예요. 이참에 삼미그룹도 인수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최대 철강그룹으로 거듭나게 되리라 내다봤다.

“기업 사냥꾼이란 말이 참 잘 어울리시는 분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회장님의 사고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가지며 셋은 내 뒤를 따랐다.

“이제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그러니 잔뜩 기대해도 좋습니다.”

1997년 4월, 우리의 걸음은 제일은행 건물 최상층으로 향했다.

이제 2차전, 만루홈런을 칠 일만 남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