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300억 달러
“무차별적으로 사들인 곳을 알아냈습니다.”
“어디인가? 대체 그곳이?!”
마이크로 소프트 시가총액은 결코 낮지 않다. 약 3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저들이 쓸어 담은 지분만 확 늘어 38%에 도달한 상황. 이 정도면 빌 게이츠 회장의 지분보다 10% 이상이 더 많은 상황.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최근 알려온 인텔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어 방어에 나섰다고 하는데.
대체 그런 자금을 운영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지, 정보망을 총동원에 확인에 나섰다.
다행히 얼마 가지 않아 그곳이 드러났다.
“영국에 있는 베어링스 그룹, 그곳에서 인텔과 저희 지분을 무분별로 매수에 들어갔다 합니다. 인텔은 경영권이 흔들릴 지경이라고…”
말을 하는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는지, 말을 끝까지 잊지 못했다. ‘파산 위기에 직면했던 베어링스 그룹의 자본 능력이 그 정도로 엄청났던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현실이 말해 주고 있으니 아리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어링스 말입니까? 자본 능력이 그 정도로 대단한 곳이었던가요?”
그의 보고에 빌 게이츠는 깜짝 놀란 얼굴이 되어 남자에게 물었다. 미국을 대표로 하는 두 기업을 상대로 공격매수에 들어갔다는 보고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베어링스 그룹의 자본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을 해봤는데, 베어링스 그룹을 인수한 KJ 측에서 나선 게 아닌지 싶습니다.”
“허…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아요. KJ의 자금 규모가 국가급이라도 된다고 합니까? 무려 몇백억 달러예요. 어느 기업이 그만한 현금을 한 번에 쏟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기업을 우리가 몰랐다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 혜성처럼 등장해 베어링스 그룹을 인수하고, 모든 부채를 탕감했다는 소식은 아주 유명한 일화다.
엄청난 자금 동원력은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한데, 그런 곳을 자신들이 몰랐다?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혼란을 겪었다.
덕분에 세계 유수의 기업과 정치인, 언론들은 KJ컴퍼니 조사에 나섰다.
“조금만 기다리면 KJ에 대해 정보가 넘어올 겁니다.”
이제 고작 하루 지났다.
곧 그들의 정체가 밝혀질 터다.
수백억 달러가 동원됐으니, 금방 찾아내리라 봤다.
“이사회를 준비하세요. 시급합니다. 서둘러 주세요.”
경영권에 큰 뜻은 없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현 자리에서 물러날 준비는 늘 되어 있다. 하지만, 기업 자체가 넘어가는 건 원하지 않았다.
지금의 기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사회의 도움은 필수가 되었다.
적어도 그들의 마음을 확실히 잡는다면, 기업을 지킬 수 있으리라 봤다.
남자의 걸음이 바빠졌다.
***
“워너 브라더스는 우리와 함께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워너 브라더스와의 미팅을 끝내고 호텔로 올라온 두 사람은 회의에 들어갔다.
주드 로 대표의 걱정을 해소해 주기 위한 회의였다.
“어떻게 그리 자신하십니까? 1억 달러라니요. 정말로 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회장님이 돈이 많다는 건 잘 알지만, 그렇게 돈을 쓰는 건 좋지 않습니다. 해리포터는 지금만 해도 충분히 성공한 책입니다. 1천만 부가 넘을 건 확실하지만, 5천만 부 이상은 어렵다는 게 이쪽 생각입니다.”
아무리 해리포터가 잘 팔린다 한들 ‘성경’ 책만큼 팔린다 보지 않을 터다.
난 그의 기분을 십분 이해한다. 나도 몰랐다면, 저런 반응을 보였을 거다.
이런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투자는 하지도 않았다. 정말로 ‘미친’ 짓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책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다면? 이야기는 180도 확 바뀐다.
도박이 아닌, ‘해볼 만하다’로 말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계책도 있지. 내가 이길 수 있도록 승률을 올릴 방법이.’
걱정으로 가득한 주드 로 대표와 달리 난 환하게 웃었다. 내 시선을 정면으로 받고 있던 주드 로 대표의 이마에 주름이 두드러진다.
“제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드리죠.”
내 머릿속에 정리된 부분을 밝히기로 하였다. 그래야 그가 안심하고 출판사 운영에 집중할 수 있을 거란 분석에서 내린 결정이다.
“말하기에 앞서 대표님은 마케팅의 중요성을 얼마나 보고 계십니까?”
“중요하지요.”
모르는 정보를 고객에게 알려, 고객의 걸음을 유도한다.
유입 증가폭이 커질수록 당연 판매율도 대폭 증가하게 된다.
“맞습니다. 매우 중요하지요. 전 그런 마케팅전략을 세울 겁니다. 그리고 전 그걸 대표님께 공개할 겁니다. 이걸 말씀드리는 이유는 대표님께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여 마케팅에 참여해 달라 부탁드리기 위함이 큽니다.”
‘그가 어떻게 해주느냐?’에 따라 책의 판매율이 달라진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적극 참여하겠습니다. 제 회사를 성장시키는 일인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우려 가득한 모습이 흐려지고, 충만한 의지가 몸 전체로 퍼졌다. 그 모습이 시야로 확인됐다.
눈빛, 자세. 모든 게 변했다.
그의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대표님을 영국으로 보내면 전 시애틀로 갈 거예요. 그곳에는 미국에서 세를 불리고 있는 커피전문점이 있습니다. 들어보셨을지 모르지만, 스타벅스라는 카페입니다. 그곳에서 미국인들은 커피의 맛에 빠지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지요. 전 그곳에서 창업주를 만나 협상을 벌일 겁니다.”
“스타벅스… 책과 커피가 어떤 연계점이 있기에 그곳에 가신다 말입니까?”
의아할 수도 있겠다. 이런 변화는 2000년도가 가까워지는 시점에 조금씩 나타나니까.
그 시기쯤 바뀌는 카페문화를 마케팅 중 하나로 써먹을 참이다.
카페가 꼭 ‘커피’만을 마시는 공간이 아닌, 또 다른 공간이란 사실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참이다. 그것은.
“잘 들으세요. 제 계획은…”
내가 세운 계획 전부를 그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그의 고개가 끄덕여지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대화는 장장 1시간 20분 정도 이어졌으며, 다음 날 주드 로 대표는 영국으로 떠났다.
쉬이이—
내 발걸음은 시애틀에 자리한 스타벅스로 향했다.
***
1971년도에 설립된 스타벅스는 커피와는 무관한 세 사람이 동업해 만들었다. 영어교사 제리 볼드윈, 역사 과목 교사 시글, 작가 고든 보커 이 세 사람이었다.
1980년대 초 하워드 슐츠가 합류한다.
원두만이 아니라 음료도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커피는 집에서 먹는 거다’ 선을 긋는 세 사람으로 인해 무산된다. 결국 하워드 슐츠는 그곳을 나와 커피 바를 창업하는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덕분에 스타벅스를 인수하게 되었다.
92년에 160개의 점포를 오픈하고, 96년에 북미를 넘어 일본에 매장을 내게 되는데.
“들어가 보실까.”
스타벅스의 역사를 떠올리다, 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스타벅스 본사에 도착했다.
내 걸음은 꺾여 출입문으로 옮겨졌다. 바 앞으로 향하니, 그곳에서 원두를 내리는 하워드 슐츠를 볼 수 있었다.
넓은 이마 아래로 커다란 코가 인상적이다. 콧볼이 넓은 게, 딱 성공할 상이었다.
그의 노력과 열정이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얼굴만 보더라도 그의 성공스토리가 이해되었다.
“뭐로 드릴까요?”
앞에 서자 날 손님으로 받아들였다.
뭐, 당연한 일이지만.
“하워드 슐츠, 당신과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저에게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나요?”
내가 스타벅스의 손님이 아님을 돌려 말했다. 내 목적은 커피가 아닌, 그였기에 대화를 유도했다.
“저에게 그리 요청하시는 분은 처음이군요. 커피 한 잔 정도 좋지요. 제 커피도 사주시는 거겠지요?”
이 사람 재밌는 사람이다.
내 말을 이렇게 받아치다니.
성공의 비결이 말에 있었나? 생각마저 들었다.
“좋지요.”
우리는 창가와 떨어져 있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딱히 뷰를 보며 커피를 마실 목적으로 온 건 아니기에 자리는 크게 따지지 않았다.
“저를 찾은 건 비즈니스인가요? 순수한 대화인가요?”
소개 자리를 가지며 시간을 보내길 10분 정도.
하워드 슐츠의 본격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그의 눈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걸 보니, 탐색에 나선 모습이다.
“둘 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비즈니스가 되겠네요.”
“옹, 제 회사에 투자를 하기 위함인가요?”
“그것도 좋지만,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입니다.”
스타벅스에 투자해도 나쁘지 않다. 훗날 1만6천여 개 체인점을 내는 스타벅스의 저력.
투자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건설적 이야기라… 흥미롭군요.”
“어쩌면 스타벅스와 상부상조, 즉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지요.”
“투자목적이 아니라는 의미인가요?”
“제 투자를 받아주신다면, 용의는 있습니다만. 그보다 이 부분에 대해 집중해 주셨음 합니다.”
투자 이야기까지 나오면 대화가 난잡해질 거 같아, 투자는 저 멀리 밀어버렸다.
당장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정말 신선한 충격이네요. 좋습니다. 들어보죠.”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된 느낌이다. 그는 본인이 내린 원두커피를 음미하며, 시선을 내게 집중했다.
“제가 투자한 곳 중 블롬즈버리 출판사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출판된 소설 중 해리포터란 책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 100만 부 이상이 뿌려진 소설입니다. 전 이걸 스타벅스에 책과 포스터를 카페 내부에 비치해 홍보하길 원합니다.”
내가 생각한 마케팅은 바로 이것이다. 하루에도 수백씩 오가는 곳이 스타벅스다. 심지어 스타벅스는 매년 놀라운 성적을 보인다.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지며 고가의 커피임에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브랜드로 성장한다.
특히, 난 내년에 일본으로 진출하게 될 스타벅스에 초점을 맞췄다.
1억2천 이상의 인구가 밀집된 국가. 비록 플라자 합의로 경제가 꺾인 국가이지만, 인구에서 나오는 경제적 효과는 무시 못한다.
인구의 5%만 풀려도 600만 부.
하나, 난 단순히 이 계산에 따르지 않을 예정이다.
일본은 스타벅스 지점이 가장 많은 국가 중 3위에 속하게 된다.
1600여 개가 넘어서는 기록을 세운다. 우리나라는 5위, 영국은 6위.
1위는 당연히 미국이며 2위는 중국이다.
“음, 그건 각 점주에게 직접 협조를 얻어, 부착해도 될 텐데요.”
그가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반면, 내 고개는 좌우로 저어졌다.
“아니요. 전 특정 지역만이 아닌 세계에 뿌려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스타벅스의 오너인 당신과 자리를 가진 겁니다. 전 이걸 문서로 계약하길 희망합니다.”
“음… 그럼 스타벅스가 얻는 효과는 무엇이 있나요?”
“해리포터 협찬사로 스타벅스가 지목돼, 해리포터 페이지 한 장을 차지하게 될 겁니다.”
이것이 상부상조 마케팅이다.
“어떻습니까?”
해리포터와 연관된 사람들은 엄청난 자금력을 가지게 된다.
영화, 캐릭터, 게임, 책 등등.
이 정도면 충분히 서로에게 남는 장사가 아닐까?
어쩌면 스타벅스가 더 이득일 수도 있다. 5억 부가 팔린다는 소리는 5억 명이 스타벅스의 브랜드를 알게 된다는 의미도 되었으니까.
“재밌는 발상이군요.”
그가 다시 웃으며 재밌는 표정을 지었다.
코믹으로 입성해도 잘 어울릴 거 같다.
“그뿐만이 아니죠. 이 소설은 영화화에도 성공하게 될 겁니다. 그때 스타벅스도 투자할 수 있도록, 우선권을 드리지요. 제가 확신합니다. 이는 스타벅스에 있어 아주 큰 기회로 작용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눈을 통해 보여주었다.
절대 내 말에 거짓도 허세도 아니란 사실을.
“영화라, … 결정된 사항입니까?”
“그리될 겁니다. 내년쯤 해서 한 영화사와 협의할 예정이지요.”
아직 벌어지지 않은 ‘예정’이라는 말에 고민하는 모습이 짙다. 유쾌하던 그의 얼굴은 풀어져 진지한 사업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커피가 반 정도 비워지는 시간.
“좋아요. 당신의 재밌는 발상에 스타벅스도 합류하죠.”
“긍정적인 답변 감사합니다.”
그에게서 긍정적인 답변이 들려왔다. 또 하나를 클리어했다는 생각에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책과 포스터는 당연히 무료로 제공이겠죠?”
“아니요. 포스터를 제외한 책은 유료입니다.”
아주 당당하게.
난 그에 대한 답을 꺼내 놓았다.
그의 표정이 확 일그러진다. 한 방 당했다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