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파트너
워너 브라더스 회장을 내가 만나는 날이 올 줄이야. 요즘 노는 물이 달라지고 있음을 확연히 느낀다.
가슴 깊이 차오르는 벅찬 심정,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
“우리와 파트너십을 맺고 싶다 했습니까?”
케빈 츠지하라 워너 브라더스 회장이 입술을 뗐다. 고요함 속에 그의 목소리가 고막을 타고 들어왔다.
“그렇습니다.”
“음.”
“블롬버즈 출판사는 영국에서 알아주는 최고의 출판사입니다. 아실지 모르겠으나, 미국에서 떠들썩한 판타지 소설을 출판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그의 눈이 찌푸려졌다. 수행원으로 알고 있어 눈길조차 주지 않던 남자가 출판사 대표를 제쳐 두고 말하니 어이없었을 거다.
“아, 제 소개를 하지 못했군요. 작은 투자사를 운영하고 있는 케이입니다.”
정수가 아닌 케이라 소개했다.
“70%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요.”
“?”
그제야 날 바라보는 눈빛이 확 바뀐다. 난 여유로이 그의 얼굴을 응시하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
“이거 황당하군.”
늘 봐오던 표정과 반응이기에 이젠 새롭지도 않다.
변화하는 표정 변화를 그의 생각을 읽고자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여유는 잃지 않았다.
“다들 회장님과 같은 표정을 짓더군요. 익숙합니다. 이런 분위기.”
“큼, 내가 실례했군요. 말이야 누가 하건, 상관없는 건데… 허허. 그 해리포터는 관심 있게 보고 있던 중이라 잘 압니다. 그래서 블롬즈버리 출판사에 대해 조사 좀 했지요. 자금 능력이 좋은 곳이라 놀랐는데. 이제 알 거 같군요.”
블롬즈버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형 출판사. 당연히 알려진 소설도 없고, 확 뜬 작품도 없는 그저 그런 출판사에 지나지 않은 걸 내가 나서면서 달라졌다.
그가 놀란 이유? 해리포터를 제외하면 알려진 작품도 없는 출판사다. 의외로 풍족한 자본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일 거라 짐작한다.
“과거야 어찌 되었든 지금은 블롬즈버리 출판사가 영국을 대표합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전 세계가 블롬즈버리를 알게 될 겁니다.”
“자신감이 대단하군요. 해리포터에 큰 기대를 하고 있나 보군요.”
“네. 이 책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거니까요. 5억 부 이상을 보고 있습니다.”
“5, 5…. 억…”
지금 반응은 주드 로 대표이다.
“허허. 꿈이 너무 큰 거 아닙니까?”
지금은 케빈 츠지하라 회장.
내가 말한 게 허황된 꿈이라 생각하는 모습이다.
“꿈도 과장도 아닙니다. 출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불과하고 증쇄는 200만 부를 넘어섰습니다. 주문은 계속 이뤄지고 있고. 5억 부 달성 5년 봅니다.”
이건 약간 뻥이다.
2018년 기준으로 5억 부지 2000년 기준으로 5억 부가 아니다.
그냥 던진 거다. 그의 관심을 확 쏠리게 하기 위한 술수다.
하지만, 당시와 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내가 있다는 것. 내가 블롬즈버리의 역사를 바꿔가고 있다는 부분이다.
“허—”
나의 확답에 당황을 넘어 어이없는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어쩔까? 진실인데.
난 뻔뻔함을 무장한 허세가 아닌, 진실을 말하는 거기에 찔릴 부분은 없었다.
“5억 부면 그 작가는 엄청난 거부가 되겠군요.”
“이 작품 하나로 세계적인 부자가 될 겁니다. 영국 왕실과 비견되는 부를 말이죠.”
“너무 허황된 꿈입니다. 고작 책 하나로 왕실의 자산을… 정말 그렇다면 세상 모든 작가들은 부자겠군요.”
그때는 소설의 성격이 많이 달라지고,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기는 한다. 인터넷 소설. 그리고 스마트폰. 국내에서만 2천억이던 시장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7천억 규모로 대폭 확대된다.
작가와 작품의 차이는 있겠지만, 90년대보다는 작가의 수입이 증가하는 건 맞다.
‘그 스마트폰이란 게 참 궁금해.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는 지지만, 본 적이 없으니까.’
생각하다 보니 별별 회사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애플, 육성, 안드로이드, 구글…
가치는 100조 단위에서 1000조 단위.
경악할 일이다.
‘나중에 알아보자.’
워너 브라더스와는 무관한 이야기. 흩어졌던 생각을 버리고, 다시 대화 주제에 집중했다.
“그건 아닙니다. 좋습니다. 이렇게 하지요. 저랑 내기를 하시는 겁니다. 우리의 파트너십은 1년으로 미루되 95년 지금 시점의 워너 브라더스의 기준가치로 블롬즈버리와 저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는 걸로. 어떻습니까?”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서 질렀다.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될 계약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상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로 하였다.
“이거 참, 대화할수록 당혹스러운 말만 하십니다. 제가 그 내기에 동참하리라 보십니까?”
시간이라도 낭비하는 기분에서일까? 그의 표정이 서서히 짜증으로 변하고 있었다. 목소리는 탁하기 이를 데 없다.
“이 내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제시해 드리죠. 지분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1억 달러를 투자해 드리죠. 이번에 준비하고 계신 CW인수에 보태시라고 말입니다.”
“허… 정말 사람 황당하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십니다.”
“만약 회장님께서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 못했다 생각하시면, 1억 달러는 꿀꺽하셔도 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전 그냥 넘기도록 하지요.”
“회, 회장님. 이건 말도 안 되는 게임…”
주드 로 대표가 급히 나선다. 내 신개념 내기에.
그러니 더 재밌게 다가왔다.
내 시선은 케빈 츠지하라의 두 눈과 맞닿은 상태. 그의 눈을 보며 심리를 읽어갔다.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제가 이길 내기예요. 지면 1억 달러는 좋은 데 썼다 생각하면 되는 거고. 고작 1억 달러입니다.”
그래 고작 1억이다. 곧 벌어지게 될 베어링스 매수 행렬을 떠올리면 말이다.
“고작 1억 달러라… 이런 재밌는 소리는 또 처음 들어보는군…요. 정말로 후회하지 않습니까? 제가 1억 달러를 그냥 가진다 쳐도?”
걸렸다. 도박은 배짱이다. 배짱 있는 놈이 이기는 게 도박판이고 내기판이다.
케빈 츠지하라는 의심 없이 자신이 이길 걸로 보고 있다.
잔잔하던 그의 눈동자에 욕심으로 채워진다. 그렇다면 이 내기 성사율은 높아진다.
“가지세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흥.”
이제는 비웃는다.
이런 사람으로 보지 않았는데, 좀 더 충격적으로 나가야겠다.
“제가 이겼을 시 워너 브라더스 지분의 30% 이상을 우리에게 넘겨주시고, 1억 달러는 계약금으로 돌리겠습니다. 가치는 아까도 말했다시피 95년도 지금의 기준입니다.”
그때 가면 워너 브라더스의 가치는 너무도 높아진다. 지금의 몇 배로 확 뛴다 이 소리.
절대 그때 가치로 계산해서 매입할 생각은 없다.
“정말 겁 없는 사람이군요. 정말로 후회 없으시겠습니까?”
“후회는 없습니다. 공증까지 완벽하게 해서 서류로 준비하죠. 나중에 서로 딴말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좋소. 이 내기 참여하지요.”
역시 1억 달러의 위력은 대단하다.
이렇게 된다면 이곳에 더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알아서 들어올 지분이었으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내 정말로 궁금해서 그러는데, 해리포터를 영화화까지 보시고 이러는 겁니까?”
“그런 것도 있고, 출판사에서 취급되는 소설 일부를 만화로 제작하는 것까지 보고 있지요.”
“… 내 만족도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내가 아니라 하면 그만일 건대.”
“숫자를 좋아하신다면, 제가 정해드리죠. 6천만 부. 어떻습니까?”
1억 부 할까 하다가 이건 조금 자신이 없었다. 미래가 살짝 뒤틀려 원 역사보다 출판이 빠르게 이뤄졌다.
광고효과도 엄청나, 과거의 판매량을 넘어서고 있지만.
1년 내 1억 부는 무리라 봤다.
“6천만 부… 거기에 서명하지요.”
우리의 내기는 변호사를 두고 이뤄졌다. 역대 최대규모의 내기라 봐야 했다.
“지분을 매입할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오늘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우리의 내기에 함께 자리한 변호사와 주드 로 대표가 넋이 빠졌다.
영혼이 가출한 그들의 표정을 머릿속에 담으며 워너 브라더스를 나왔다.
***
“팀장님, 이거 주식이 이상한데요?!”
모니터 화면 속에 빠르게 늘어나는 거래량, 그리고 빠르게 사라지는 매물들.
남자는 화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두고 이해할 수 없는 눈빛을 보내다 뒤쪽에 자리한 민머리 중년인을 불렀다.
“뭔 일인데, 표정이 심각해.”
모니터에 집중되어 있던 팀장의 시선이 옆으로 이동했다. 곧 시선은 직원에게 향했다. 얼빠진 모습의 직원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이걸 좀 봐 주셔야 할 것 같은데, 대체 이게 뭔 일인지…”
“오늘 뭐 잘못 먹었나? 대체 뭔데?!”
남자의 행동이 이상하다. 평소에 똑 부러지게 말을 잘하던 직원이 두서없이 산만하게 말하니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팀장이라 불린 중년인의 시선은 직원이 가리킨 화면으로 옮겨졌다.
-21,569
-0
-35,000
-0
-65,000
-0
“이거 왜 그래…”
화면에 시선을 가져간 중년인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맺혔다. 매물이 나오는 족족 빠르게 매수가 되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매물이 왜 이것만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머릿속으로 위험신호가 울렸다.
“저, 전화기…”
본능적으로 팔을 옆으로 뻗었다. 그 자리에 직원이 자리했다.
“여기…”
“비서실로 연결해. 빨리!”
멍청하게 있던 팀장의 얼굴은 이내 다급하게 변했다.
-마이크 소프트 비서실입니다.
곧 건너편에서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
“회장님 큰일입니다! 누군가 주식시장에 있는 매물을 대거 쓸어 담고 있습니다. 벌써 100억 규모가 넘어섰습니다.”
남자의 얼굴이 흙빛이 되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마이크로 소프트 비서실 실장 톰 홀랜드가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섰다.
그의 걸음은 소파 위에 앉아 느긋하게 신문을 보고 있는 남자에게 이동됐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 1위에 오른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가 보던 신문을 덮으며 물었다. 갑자기 들이닥쳤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엔 조금의 불쾌한 감정은 들어 있지 않았다.
“주식시장에 거래되고 있는 저희 매물이 시장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약 28%가 넘는 주식이 사라졌습니다.”
“…..”
실장의 보고에 자리에서 급히 일어난 빌 게이츠는 자리로 돌아가 컴퓨터를 켰다. 윙— 돌아가는 소음 속에 화면이 켜졌다.
-50,000
-31,000
-0
사태를 파악한 빌 게이츠의 손은 곧장 전화기로 향했다. 버튼을 딱딱 눌러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에서 신호음 소리가 뚜뚜— 들려왔다.
“나 빌 게이츠요. 지금 시장에 내놓은 당사의 주식매물을 누군가 쓸어 담고 있어. 한시 빨리 누가 어떤 이유로 우리 회사를 노리는지 확인해 연락 주게. 고맙네. 기다리지.”
모든 통화를 마치고, 빌 게이츠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졌다. 빌 게이츠는 이를 긴급하게 여겨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약 30% 매물이 나갔다는 소리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위기를 이야기했다. 그도 아니면 자신의 자리가 무척 위험해질지 몰랐다.
“자네도 어서 가서 알아보게. 확인되면 바로 내게 연락을 주고.”
톰 홀랜드 비서실장은 그의 지시에 즉각 움직였다.
한편, 이와 같은 일은 인텔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두 거대 기업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패닉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번 일은 크게 화제가 되어 전 세계로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