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쏟아지는 비난 속에 미국의 선물
-충격! 베어링스 그룹 해외법인 KJ컴퍼니에 인수되다! 금일 오후 2시경 베어링스 그룹이 KJ컴퍼니에 인수되었음을 알려왔다. 업계 관계자는 KJ컴퍼니에 대해 알려진 게 없어 당황하는 눈치다. 그룹 내 회장이었던 제임스 맥어보이 회장은 대표로 발령되어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KJ컴퍼니는 어떤 회사인가?! 미스터 케이라 알려진 그는 누구일까?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20대 동양인이라는…
“시끌시끌하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영국이 아주 시끌시끌하다. 내 얼굴을 아는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 나는 신비주의 인물로 남게 됐다.
내 정체를 밝히기 위하여 관계자들이 나섰지만, 쉽지 않을 거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는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밝히지 않겠다 했다.
물론, 시간이 좀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그전까지는 조용히 지내고 싶다.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뭐, 그 알려지는 시기가 확 단축될 거 같지만…”
이번 증시 사건은 영국과 일본에만 일어난 게 아니다. 이는 미국에도 해당되는 사항이기도 했다.
달러화의 가치 하락. 복구작업을 하기 위하여 대량으로 달러를 매각하기에 이른다. 난 여기에도 돈을 쏟아부었다.
“이것도 슬슬 준비하자.”
베어링스 은행에 방문하기 전 미국증시에 배팅했다. 당연히 떨어지는 쪽으로.
FRB(미국의 연방준비 이사회, Federal Reserve Board) 고위관리인 로렌스 린제이는 일본 지지통신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미국의 달러화가 엔화에 대해 위험 수준까지 떨어진 거 같지 않습니다’
이 발언은 투자자들의 생각을 확 틀어버렸다.
달러화 하락을 막는 데 개입하지 않을 거란 말로 해석이 된 까닭.
투자자들의 마음은 미국을 버리고 금리가 높은 독일의 마르크화로 향했다. 미국의 달러는 빠르게 시장에 풀렸다.
거기에 덩달아 일본은 대지진 피해복구에 나서기 위하여 며칠 뒤 대량의 달러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들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덕분에 난 돈을 벌게 됐지만. 후후.”
몇몇 기관들도 이런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나와 같은 노선을 걷는 이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투자 규모 자체는 다르겠지만.
“행사에 들어가세요.”
난 지금이 바닥이라 보고, 제2차 옵션행사에 들어갔다.
내 계좌에 숫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제 내 재산은 58조에서 70조가 넘어섰다.
“이제 한국으로 가자.”
워너 브라더스는 블롬즈버리 출판사가 준비됐다 싶을 때, 방문할 생각이다. 이제 한국으로 넘어가 쉬고 싶었다. 돈도 벌 만큼 벌었고.
외국 생활이 이제 좀 적응이 되기는 했지만 내 고향, 내 집만큼 편한 건 아니기에 그날 저녁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급히 잡은 탓에 비즈니스석이 아닌 일반석이기는 했지만, 한국으로 간다는 들뜬 마음에 개의치 않았다.
***
세계 비공식 10대 재벌로 등극했다. 감회가 새롭다.
기억 속에 자리한 올리버 스미스가 감격에 겨워하는 기분이다.
장칠성의 기억은 돈보다 보물을 훔치는 데 특화돼 있어서인지, 어떤 감각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내 심장은 거세게 요동쳤다.
“95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시간 참 빠르네.”
한 장씩 찢어낸 달력의 장 수가 고작 세 장 남았다. 그중 한 장을 손으로 잡았다.
찌-익 소리가 나며 가로로 뜯겨져 나갔다.
11월이 시작되었다. 사늘하게 식은 날씨는 겨울이 왔음을 알렸다.
켜 놓은 TV 화면에서 기상캐스터가 한파 특보를 알려왔다.
이번 겨울도 눈이 많이 내릴 거 같다.
따르릉—
-윤다훈입니다. 대표님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려 전화했습니다.
다모커뮤니케이션에서 걸려온 전화다. 윤다훈 대표의 목소리가 상당히 들떠 있었다.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다.
“좋은 일 있었나 보네요. 목소리가 좋아 보여 무척 기대되는데요?”
-대표님의 지원 덕에 개발이 상당 부분 당겨졌습니다. 하하. 돈 걱정 없이 개발에 집중해 보기는 처음입니다.
“오! 그게 정말인가요!? 정말 놀랍습니다. 축하해요!”
진짜 깜짝 놀라 엉덩이가 들썩였다. 정말이지, 이 사람도 천재의 반열에 오른 사람임에는 분명했다.
이번에 투자한 자금을 최대로 활용해 개발에 집중을 한 모양이다.
외국에 다녀온 사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내다니. 잘만 하면 다음을 있게 해 준 웹 메일이 앞당겨질지 모르겠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제가 크게 한턱내겠습니다. 하하.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지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공기를 힘껏 입안으로 들이마셨다 내보냈다.
“크게 한 건 없지만, 뿌듯하네.”
비록 물주에 불과했지만, 개발에 내 피 같은 돈이 큰 도움을 줬다 생각하니 뿌듯함이 몰려와 심장에 자리했다.
“이제 컴퓨터를 하는 재미가 생기겠네.”
마이크로 소프트사로 인하여 현대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방에 자리한 486컴퓨터.
추억이란 생각에 버리지 않고 보관 중이다.
게임을 할 때면 ‘/M’을 치고 게임방에 들어가 게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초보자는 다루기 힘든 설계.
하나, 지금은 초보자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변경됐다.
이 모든 것이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회장 빌 게이츠 덕이 컸다.
“음? 가만. 그러고 보니… 그렇게 하면 나쁘지 않겠는데?!”
그러던 중 머릿속에 아주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눈을 빛내며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윙—!! 시끄럽게 울어대는 데스크탑의 소리를 들으며 컴퓨터가 켜지기를 기다렸다.
-Window95
파란 화면에 윈도우 창이 떴다. 인터넷 브라우저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갔다. 하얀 화살표가 깜박이며 인터넷 브라우저를 클릭했다. 따닥.
바로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창이 뜨고, 그곳에 간략한 내용을 담았다.
-11월 20일에 베어링스 은행으로 가겠습니다.
-베어링스 그룹으로 300억 달러 보내세요.
총 두 곳에 메일을 보냈다.
한 곳은 베어링스 그룹 대표실.
한 곳은 KJ컴퍼니.
난 다시 영국 길에 올랐다.
조금도 쉴 틈이 없다.
***
쉬이이—
흰색 구름 사이를 뚫고 영국공항에 도착했다. 내 정체는 아직까지 비밀리에 부쳐져 있기에 그룹 내에 알고 있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중 엘리베이터에서 날 안내했던 남자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시러 왔습니다.”
메컨 마클,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의 최측근에 있는 인물로 유명하다.
권력보다 명예를 중시하고 의가 강한 인물이라 들었다. 어찌나 이 사람을 자랑해대던지. 내가 영국에 머물 때는 수행비서로 활용을 하란다.
나와 비슷한 체격을 갖춘 그를 슬쩍 봤다.
관상을 볼 줄은 모르지만, 사람을 쉽게 배반할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부탁하죠.”
그의 친절한 안내로 편안하게 그룹 본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도 나가봤어야 했는데, 마중을 나가지 못해 죄송하게 됐습니다.”
“바쁜 거 뻔히 아는데, 괜찮으니 평소대로 하세요.”
내가 이곳의 주인이 되고 베어링스 그룹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내가 바꾼 건 아니고, 지난날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가 느낀 바가 컸는지 적극적으로 잘못된 문화를 뜯어 고쳐갔다.
“KJ에서 300억 달러가 입금된 걸 확인했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자금을 보내신 건지요?”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덕에 몹시도 궁금한 얼굴이다. 정점에 서 있던 그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꼈다.
처음 봤을 때는 다 죽어가던 늙은 호랑이였다면 이제는 충실한 사냥견의 모습을 갖춘 모습이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마이크로 소프트와 인텔 지분을 매수하려 합니다. 주식시장에 있는 모든 매물을 베어링스 은행 이름으로 말이죠.”
KJ컴퍼니보다 이제는 베어링스 은행을 적극 활용할 참이다.
“헉. 저, 정말… 대단하군요.”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져, 감기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지만, 내 머리에 있는 걸 내보이기에는 아직 그와 난 신뢰 관계가 부족했다.
당분간 지켜보다 믿을 만하다 싶을 때, 그때 능력과 같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개할 예정이다.
“그 정도는 가볍게 가야 맞지 않나요? 제가 운영하는데 말이죠.”
미래를 읽고 모든 중요한 기업들의 정보가 머릿속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런 사기 능력이 존재하는 이상 내 행동에는 거침이 없을 터.
위기가 대한민국을 덮치는 때 난 하나의 제국을 건설할 거다.
그러자면 최대한 많은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허허, 참으로 회장님은 신비한 분입니다.”
300억 달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내 말이 그렇게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의 얼굴이 매우 허탈해 보인다.
“우리의 신뢰 관계가 돈독해지면 많은 걸 알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때를 기다리지요.”
“그럼, 인텔과 마이크로 소프트는 대표님께 맡기겠습니다. 전 바로 약속 있어 일어나겠습니다.”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에게 뒤를 맡기고, 나는 블롬즈버리 출판사로 떠났다.
거기서 기쁜 소식이 들려온 탓이다.
“크하하. 기다렸습니다. 회장님.”
어라, 호칭이 바뀌어 있다.
전보다 더욱 거대해진 출판사 사무실로 들어서자, 주드 로 대표가 양팔을 뻗어 날 반겨주었다.
“소식 들었습니다.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베어링스 그룹을 단번에 인수하실 줄 몰랐습니다.”
KJ컴퍼니의 비밀에 조금씩 양지로 올라서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 음지에 있길 원하는데.
아무래도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정말로 나스닥에 공개하게 된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하. IPO가 받아들여졌습니다! 푸하하.”
“정말 잘됐습니다.”
“이제 투자금은 빵빵하겠군요.”
“그렇지요. 이게 다 회장님 덕이 큽니다.”
“뭘 요. 이제 블롬즈버리는 대그룹으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게임 시작이다.
나는 블롬즈버리 대표와 함께 미국 워너 브라더스로 향했다.
정말 정신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영국의 어둡던 하늘은 어느덧 미국의 밝은 하늘로 바뀌었다.
맑은 하늘 아래 비행기는 고도를 낮춰 활주로를 긁었다.
끼—!!
“제가 모시겠습니다. 워너 브라더스로.”
기분이 들뜬 주드 로 대표가 앞장서 걸어간다. 난 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워너 브라더스로 이동했다.
캘리포니아 버뱅크로.
“블롬즈버리 출판사 되십니까?”
입구에 당도하자, 사전에 연락을 받았는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슈퍼맨에 나오는 남자배우를 닮은 남자였다. 잘생겼다는 거다. 그것도 겁나게.
“그렇습니다.”
주드 로 대표가 나섰다. 나는 뒤에서 조용히 지켜봤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아무래도 나를 주드 로 대표의 수행직원이나 비서쯤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나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턱.
도리도리.
그게 못마땅했는지 남자에게 따지려던 주드 로 대표의 어깨를 가볍게 잡고는 고개를 조용히 좌우로 저었다. 남자는 등지고 있어 우리의 이런 행동을 보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주드 로 대표가 작게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고 남자의 뒤를 따랐다.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자리한 이 건물의 최상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