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14화 (14/145)

14화

#베어링스 은행

초기 피해 금액 5천만 파운드(약 500억). 이때 숨기지 말고 상부에 보고를 해야 했다.

손해 금액을 메꾸기 위해 시도한 도박은 10억 달러가 아득히 넘어서는 말도 안 되는 피해 규모가 발생했다.

“이제 끝이야. 끝이라고. 큭.”

설마, 그 타이밍에 일본에서 대지진이 터질 줄이야. 이런 건 계산에도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만으로 현 자리까지 잘 올라왔는데.

“우리와 함께 가시죠.”

경찰이 들이닥쳤다. 두 손목에 은팔찌가 채워졌다. 경찰들에게 제압당한 난 기자들의 틈을 비집고 경찰차에 올랐다.

내 인생의 끝을 마음에 품으며.

***

“여왕 폐하, 파산만은 막아야 합니다.”

베어링스 은행 파산문제로 영국 왕실은 때아닌 진통을 겪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마에 깊은 골을 만들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왜, 이런 문제가 계속 영국에서 발생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뒷덜미가 너무도 당겨오고, 두통이 심하게 일었다.

“우리가 자금을 대주자는 건가요? 1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우리가 지원하면, 왕실재정은 어떻게 하죠?”

“그것이…”

“하아— 안타깝지만, 그 일은 우리 손을 벗어났어요. 세계 금융사에서 인수의향서를 보내고 있으니 지켜보지요.”

아무리 빚더미에 올라도 베어링스 은행의 가치는 엄청나다. 200년 역사가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영국 왕실과 연이 깊은 곳인 만큼 그 가치는 엄청나다.

“그것이 베어링스 은행에 구원의 길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베어링스 그룹을 원하는 곳은 많을 터.

엘리자베스 2세는 더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들의 운명에 맡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

“아무래도 난 영국과 연이 있나 봐. 영국에서 돈 벌 일이 참 많네.”

현금자산만 58조 원이 넘는 대부자가 된 난 이제 더는 거칠 게 없었다.

한순간의 선택과 기지로 이룩한 결과물은 내게 날개를 달게 해주었다.

-영국 유수의 베어링스 은행이 한 직원의 덧없는 행동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이에 세계은행 금융기업들이 이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후보지는 내셔널 웨스터민스 은행, 버클레이즈, HSBC, 네덜란드 ABN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베어링스 은행을 살리기 위하여 몇몇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벌였지만, 일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난 그들의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듯, 베어링스 그룹 본사에 우두커니 서서 건물을 바라봤다.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이, 그리 허무하게 망하다니.

피해 금액을 숨기는 것이 ‘관행’이던 영국의 금융권.

어쩌면 당연한 결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유로 시장의 급격한 침체로 계속하여 하락하는 주가로 해외DR(주식예탁증서) 공모발행 여건이 악화되었다. 대진그룹의 1/4분기분으로 허용된 7천만 달러어치 DR을 런던증권에 상장하는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공모발행이 어렵게 돼 채권 성격이 큰 CB로 전환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KJ컴퍼니에서 왔습니다. 이곳의 오너를 만나고 싶습니다.”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나요? 선약을 하셨나요?”

큰 기업이라 그런지 역시 절차가 까다롭다.

“베어링스 은행과 증권을 인수의향서를 제출도 하고, 음. 약속은 하지 못했네요.”

약속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쟁쟁한 기업들이 줄 서서 노리고 있는 까닭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하지만, 이 말 한마디면 만나주시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에도 지금처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는.

“120억 파운드 빚을 받으러 왔다고, 전해주세요.”

내 말에 놀라는 직원을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이 회사가 내게 얼마나 잘해 줄지 참으로 기대된다.

***

하아—

늘 웃음으로 가득하던 방 안이 이제 한숨으로 길게 채워졌다.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생각하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모든 신경은 곧 무너지게 될 베어링스 은행에 쏠렸다.

하아—

참고 싶지만, 한숨만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회장님! 큰일입니다.”

문을 벌컥 열고 중년인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돼 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기세에 제임스 맥어보이 회장의 눈가에 자리한 주름이 더욱 짙게 변했다.

파산보다 더한 큰일이 있었던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마저 들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나? 갈 데까지 간 마당인데, 그냥 말하게.”

어떤 희망도 없다. 직원의 잘못으로 지금껏 힘겹게 쌓아 올린 기업이 무너졌는데, 또 무엇에 놀랄까 싶다.

“그, 그게… 옵션행사 금액이.”

“…?”

남자의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말해보게. 뜸 들이지 말고.”

말을 하다가 멈추는 그의 모습에 짜증이 치밀었지만, 지금은 화낼 힘도 없다.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에 마음을 넓게 먹기로 하였다.

“120억 파운드가 발생했습니다.”

“자, 자네 지금 뭐라고 그랬나? 120만 파운드가 아니라, 120억?!”

멍한 시선을 보내던 두 눈이 급격히 떠졌다.

“그, 그렇습니다.”

“아…”

“회, 회장님!”

제임스 맥어보이 회장이 의자 뒤로 푹 쓰러졌다. 방금 들려온 정보가 너무도 충격적이었는지, 제임스 맥어보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바보처럼 눈만 멀거니 뜬 채 천장을 올려봤다.

직원은 그의 무사함에 안도하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뭐 죄송할 게 있겠나… 이 모든 게 내가 운영을 잘못한 게지.”

베어링스 은행뿐만 아니라, 모든 계열사가 위험에 처했다. 몇몇 계열사는 지키려 하였건만, 정말 자신의 손을 떠나게 됐다.

이건 국가에서 나서서 도움을 주지 않는 이상 해결이 불가능했다.

그는 잔뜩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 대에서 가문의 맥이 끊기는구나.”

제임스 맥어보이 회장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가 싶더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또르륵 떨어졌다.

눈물이었다. 눈물은 바닥에 깔린 카펫으로 스며들었다.

따르릉—

전화기 벨 소리가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강렬하게 울렸다. 남자는 소파에 힘없이 누워있는 제임스 맥어보이의 눈치를 보다, 그의 손짓에 수화기를 전달했다.

“그래, 무슨 일인가?”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기운 빠진 목소리가 방 안에 낮게 깔렸다.

“… 올리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그의 얼굴에 침통함이 맴돌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그는 눕다시피 한 몸을 들어, 자세를 고쳐 잡았다.

흐트러진 옷을 정비했다.

“타이밍이 기막히군. 허허… 밑에서 KJ컴퍼니라는 한국인 대표가 올 걸세. 나가서 데려와 주게.”

“알겠습니다.”

무슨 전화이기에 저럴까 싶지만, 남자는 궁금증을 깊이 밀어내고 입술을 닫았다. 제임스 맥어보이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란 사실을.

그는 곧장 밖으로 나가 숫자가 변하고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띵—

얼마 가지 않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내렸다.

젊은 남자를 본 남자는 살짝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허리를 작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범했습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리죠.”

젊은 남자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회장실로 향했다.

“역시 사람은 성공하고 볼 일이야.”

젊은 남자의 작은 속삭임이었다.

***

직원의 도움으로 들어온 회장실은 무척 고급지고 넓었다. 금융그룹이라 그런지, 황금색으로 장식된 물건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금을 꽤나 좋아하는 양반이다.

주변 사물을 구경하는 것도 여기까지. 내 시선은 눈앞에 노인에게 집중됐다.

“어리군.”

내 외모에 꽤 놀라는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돈으로 120억 파운드를 벌어들인 인물이 고작 20대다. 당연히 놀랄 만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며 한껏 여유를 부렸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 나이는 크게 상관없지요.”

“그렇지.”

그의 입가에 씁쓸함이 맺힌다. 예전의 성세라면, 날 무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내게 있어 철저한 ‘을’에 지나지 않았다.

갑과 을의 위치가 확 바뀐 것이다.

어쩌겠나? 현실이 이런 걸.

탓을 하려거든, 그 직원을 탓해야지.

“서로 바쁘니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보고를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베어링스 그룹에서 바로 120억 파운드를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조 원이 넘는 돈.

잘나가는 국내 그룹도 감당하기 힘든 자금이다. 설사 베어링스 그룹이 파산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이 돈은 감당하기 어렵다.

13억 파운드로 파산 위기에 처한 은행이 그보다 배가 넘는 자금을 갚을 능력이 될까?

답은 노. 절대 무리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룹은 보시는 바와 같이 갚을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하대하던 자세가 바뀌었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금액에 그도 굴복하고 만 것이다.

난 그를 잠시 응시하다 이내 입술을 뗐다.

“아니요. 충분히 갚을 능력이 될 겁니다. 현금이 없다면, 다른 걸로 받으면 되겠지요.”

“그, 그건…”

“어차피 은행은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 넘어가게 될 거라 생각하지만, 음… 글쎄요. 저에게 돈을 건넬 기업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베어링스 은행의 미래는 바뀌었다. 13억 파운드에 이어 발생한 120억 파운드.

총 133억 파운드를 감당할 기업은 없다 봐도 무방하다.

그러한 사유로 난 우선권이란 게 생겼다.

“은행은 사실 1파운드의 가치도 되지 않습니다. 그거라도 주고 넘긴다면 베어링스 그룹에 있어 엄청 좋은 조건이 되겠지요. 이젠 그냥 줘도 받기가 껄끄러운 은행이 되었습니다. 저로 인해서 말이죠.”

내 말에 그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린다. 내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에게 심한 부담으로 다가오리라.

입이 달싹이는 걸 보니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내 입이 굳게 닫히는가 싶더니, 모든 걸 포기한 눈으로 입술을 뗐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베어링스 그룹 전체를 저에게 넘기세요. 그리해주신다면, 지금 자리를 보존해 드리죠. 이것이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금액이군요.”

난 지갑에서 1파운드 10장을 꺼냈다.

“음…”

그의 얼굴이 불편하게 변했다.

참 처량하기 이를 데 없다.

“베어링스 그룹이 가진 부채 20억 파운드까지 가져가는 조건입니다. 너무 그런 표정은 짓지 마세요. 10파운드는 은행값이니.”

네덜란드에 자리한 ING그룹은 베어링스 은행을 1파운드에 인수한다. 그들에 비하면 난 후한 편이다.

“그 외 계열사는 경영진과 간부들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9천만 파운드를 드리죠. 더 시간을 끄신다면, 베어링스 은행의 가치는 더욱 떨어질 것이고, 직원들의 이탈로 인해 결국 파산하게 될 겁니다.”

현실적인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지금 베어링스 그룹은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한 상태다. 이를 해결 보지 못한다면, 분쟁과 소송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간이 없습니다. 곧 저에 대한 소문이 나돌 겁니다. 정확히는 120억 파운드에 해당하는 소문이 업계에 전해지겠죠. 그때는 뭐…”

“휴, 그만하시오. 내놓을 테니. 그러니 더는…”

“좋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 만약 좀 더 시간을 끌었다면, 일어나려 했는데 말이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거래라 해도 좋았다. 세상에 욕을 먹으면 또 어떤가?

현실적인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좋았다.

난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땅을 파서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니다.

이것이 내 일이고, 내가 누릴 권한을 행사했을 뿐이다.

“이제 베어링스 그룹은 KJ컴퍼니에 편입됐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죠. 제임스 맥어보이 대표님.”

그의 자리를 보존하지만, 직급은 다운을 시켰다.

그룹 내 회장은 나 하나로 족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