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인터넷 투자
우리나라 인터넷은 96년도를 기점으로 크게 성장한다. 해외에서 넘어온 게임이 국내 인터넷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친 탓이다.
하나로통신, 라이코스 등등 머릿속으로 당장 인터넷 기업들의 상호가 꽂혔다.
“그러고 보니 블리자드 투자도 나쁘지 않겠는데?”
블리자드에서 개발한 게임, 스타 크래프트.
이 게임은 실업자로 나앉게 된 가정에게 희망을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 국보급 게임.
창업만 했다 하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해, 한 건물에 PC방이 몇 개나 됐던지. 한 발자국만 떼도 PC방 천지였다.
-컴퓨터 100대 보유! 초고속 인터넷 설치!
이런 광고까지 해가며, 사람들은 PC방 사업에 모든 인생을 바치다시피 하였다. 결과는 대박 행진.
덕분에 너나 할 거 없이 창업문을 두들기니, 스타 크래프트 판매량은 역대 최고의 매출을 자랑했다.
“이번 문제부터 해결하고 생각하자.”
어느덧,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미래와 확연히 차이 나는 규모.
이런 작은 기업이 우리나라 대표 사이트로 성장한다 생각하니, 참 신기하고 대단하게 여겨졌다.
6시 15분.
적당한 시간에 도착했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시간.
내 걸음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
“저희 기업에 관심이 있으시다 들었습니다.”
개발에 미친 사람이라 엄청 지저분한 차림으로 맞이할 줄 알았는데, 지극히 정상이다. 깔끔한 흰색 티에 면바지를 입은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얼굴은 미래에 알려지게 될 얼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젊은 CEO의 모습만이 다를 뿐.
“네, 앞으로 시대는 인터넷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대가 될 겁니다. 전 그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2, 3년 내 인터넷 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되리라 봅니다.”
시대는 말하고 있다. 투자하라고. 그럼 돈을 벌 수 있다고.
내 돈은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투자자라 그런지, 젊은 사람 치고 미래를 보는 눈이 좋네요.”.
상대가 진한 호기심을 드러내며, 흩어진 시선을 내게 집중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넘겼다.
이런 시선은 이제 너무도 익숙하다.
“음.”
상대의 동공이 크게 확대된다. 감정을 숨기고 있는 것 같지만 눈 안의 동공은 감추지 못했다.
내 무덤덤한 자세에 호기심이 호감으로 바뀌고 있는 단계로 짐작된다.
“다른 사람보다 미래를 읽는 눈은 밝다 자부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확실히 느꼈달까? 대표님을 보고 말이죠. 대표님께 투자하면 돈방석에 앉을 거란 확신이 생겼습니다.”
미래를 알아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미래정보는 어디까지나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난 정보가 아닌 내 앞에 앉은 남자를 보며 결정을 한 거다.
비록 잘못된 선택으로 1위, 2위로 올라선 시장에서 급격히 하락하지만, 그럼에도 다모커뮤니케이션의 미래는 무척 밝았다.
‘게다가 나와 인연이 닿았으니, 미래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약간의 도움을 준다면 다모는 우리나라 최고 포털 사이트로 자리를 보존하게 될 거다.
내 자산을 위해 미래의 물결을 살짝 틀어 보기로 했다.
뭣하면 네이버와 싸워도 되지 않을까? 검색엔진만 잘 갖춰진다면.
“지금 환경 자체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제 인생 최고의 투자가 될 거 같네요.”
2010년이 넘어가면서 죽어가던 다모에게 큰 기회가 찾아든다. 기회를 잡은 건 다모. 검색엔진에 밀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장 점유율과 가치가 크게 오른다.
나름의 선전이라 하겠다.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새로이 열리게 된 기회.
아직 실체를 보지 못했지만, 머릿속에 이미지화된 미래의 그림은 실로 대단했다.
“허허, 조수에게 들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군요. 제 아들 녀석과 동나이대로 보이는데, 외람된 말이지만 혹 재벌 가문의 핏줄인지요?”
내 이야기를 쭉 듣고 있던 윤다훈 대표의 물음이다. 여유 띤 얼굴이 조심스럽게 변했다.
내가 보통의 사람들과 다름을 느낀 모습이다.
재벌 가문의 혈족으로 오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닙니다. 그저 운 좋게 투자에 성공해 작은 투자사를 설립하게 됐을 뿐입니다.”
연달아 터진 복권이 자본금이 되어, 내 자산을 불려주었다. 이 사실은 당분간 심연 깊숙이 묻어 둘 생각이기에, 밝히지 않기로 했다.
이 사람에게 있어 난 대단해 보일 필요가 있다. 미래에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그것이 투자를 이끌어 내기에 이롭다.
“허허, 대단하군요. 전 그 나이에 뭘 했는지… 이거 회의감이 몰려옵니다.”
20대면 연애도 하고 친구들과 의기투합할 시기다.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 삼매경에 빠지기도 하고, 졸업반은 슬슬 취업시즌을 준비한다.
내 나이대에 자수성가한 사람은 극히 드물 터. 거의 없다 봐야 했다. 나처럼 운을 타고난 이가 아닌 이상은.
“회의감이 들다니요? 지금 이리도 멋진 회사를 설립하셨는데요. 제 투자는 대표님께 날개를 달게 해 줄 겁니다.”
다시 한번 투자를 언급해, 강하게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기 빠진 튜브처럼 보이는 그에게 바람을 넣어 주었다.
“정말로 제 회사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렇지 않다면, 전 이 자리에 없을뿐더러, 대표님 얼굴은 보지도 못했을 겁니다.”
“음.”
“전 경영에는 큰 뜻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제 투자 철칙입니다. 투자는 투자에서 끝나야 된다 봅니다. 제 돈에 손실을 보지 않도록 힘을 쓰는 정도에서 멈춰야, 진정한 투자자라 생각합니다.”
내가 운영할 건 KJ투자와 컴퍼니까지. 그 이상은 오지랖이다.
만약, 경영능력이 개판이라면, 주총을 열어 자리에서 끌어낼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게 아닌 무난한 수준이라면, 지켜만 볼 뿐이다.
“좋습니다. 투자를 받지요. 투자 규모는 100억만 받겠습니다.”
사실 지금 시대에 100억이면, 엄청난 자금이다. 강남 부동산 노른자 땅을 넉넉하게 매입할 정도로 엄청난 자금이다. 심지어 괜찮은 기업을 인수할 정도로 큰 금액이기도 했다.
애초에 천억이라 말한 건, 그의 관심을 사기 위한 일종의 미끼에 불과했다. 실제로 천억까지 투자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지분은 50%. 3년 뒤 대표님의 자금 능력에 맞춰, 지분을 넘기겠습니다.”
“많군요.”
“경영권 보호가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제3자에게 넘길 생각은 없습니다. 가지고 있으면 돈 될 지분을 넘길 만큼 전 멍청하지 않으니까요.”
그가 불안하게 생각할 요소에 대해 설명했다.
“계약서에 명시하셔도 됩니다.”
현재 투자를 많이 받아, 지분을 넘긴 상황이라면 좀 그렇지만, 그의 지분은 건재했다.
절대 무리한 조건이 아닌 합당한 계약이라 생각했다.
“좋습니다... 모든 내용을 계약서에 담겠습니다.”
“좋은 계약이었습니다. 제 돈을 바르게 불려주시기 바랍니다.”
내 나름의 최고의 계약이라 생각한다. 다모커뮤니케이션에 내 자금이 추가됐다. 다모는 더 이상 투자를 받지 않을 터.
이제 다모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일만 남았다.
“이제 야후인가? 기대되는데. 미국을 가게 됐으니, 돌아올 때 영국을 경유해서 오면 되겠어.”
다모와의 투자가 마무리된 지, 열흘 후 난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구름만이 가득한 널찍한 하늘.
내 시야는 드넓은 하늘을 담으며, 한 사람의 이름을 되뇌었다.
“올리버 스미스, 기다려요. 내가 갑니다.”
야후로 가기 전, 난 할 일이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자리한 친구, 올리버 스미스를 만나는 것.
내게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다.
끼리릭. 끽끽.
그린우드 공동묘지(Green Wood Cemetery).
1838년 뉴욕 킹스 카운티 외각에 설립된 묘지. 뉴욕시내 교회가 소유한 묘지가 도시화되면서 세워진 이곳에 올리버 스미스가 묻혀 있다.
저명한 지도자들이 묻혀 있기로 유명한 이곳은 뉴욕의 랜드마크로 부상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를 높게 평가해 준 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올리버 스미스, 내가 왔어요. 당신의 기억을 받아 전 다시 태어났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미국을 사랑했던 올리버 스미스를 위해 미국의 국화인 장미를 묘지 앞에 내려놓았다.
86년도에 레이건 정부가 국화로 지정하며 서명한 장미.
남자에게 장미를 주게 될 날이 올 줄이야. 후후.
“어떤 누구도 당신을 기억 못 할지 모르지만, 내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전 당신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합니다.”
고개를 천천히 아래로 떨궈, 잠시 묵례의 시간을 가졌다.
존경하는 그에게 주는 내 마음의 기도였다.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그의 비석 위에 쌓인 먼지를 닦아주고 자리를 떴다.
***
저벅저벅.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비석 사이를 지나 장미꽃 한 다발이 놓인 비석으로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걸어왔다.
남자의 시선은 장미에 꽂혔다.
“신기하군. 누가 대체 이곳을…”
사업으로 바빠 발걸음이 뜸했다. 거의 3개월 만에 방문한 터다.
자신 외에 발을 들이지 않는 장소. 몇십 년을 방문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없었다.
“비석도 깨끗해.”
이 정도면 친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남자가 알기로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내가 없는 동안, 돌봐준 이가 있어서.”
의구심은 사라졌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했다.
훗날 마주할 일이 있다면, 고맙다는 말을 꼭 건네고 싶었다.
“올리버 스미스… 그때가 참 재밌었는데, 자네가 없으니 매일이 무료하다네.”
자신을 늘 라이벌이라 외치며, 살아왔던 친구. 나이는 다르지만, 친구라 생각했던 그.
그가 있었기에 더욱 투자에 몰두할 수 있었다. 지지 않기 위해. 그의 목표가 되어 주기 위하여 한없이 달렸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인지. 그는 저주의 몸을 받아,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
그때 느꼈던 슬픔이란…
“자네가 있었기에, 내가 있었지. 숨을 쉰다고 꼭 산 것도 아닐세. 자네의 핏줄이라도 있었다면… 자네가 내게 남긴 재산이라도 넘겨주었을 터인데.”
[난 만족해. 조금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어서. 다음 승부는 다음 생에 하지. 잘 있게. 워런 버핏. 자네는 내 최고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떠났다. 그가 이룩한 결과를 넘긴 채.
그때의 친구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쓸쓸히 홀로 땅에 묻히는 그를 봤을 때, 모든 걸 잃은 기분이었다.
큰 행운을 잡았지만, 행복은 잡지 못한 그를 위해 자신으로 하여금 그가 행복해지기를.
그래서 시간이 될 때면, 이곳을 찾았다.
“내 꽃도 놓고 가지. 남자 꽃이라고 너무 싫어하지 말게.”
매일 들고 오던 꽃이지만, 자리에 놓인 장미꽃을 보자 조금은 샘이 나 장난기가 감돌았다. 조심히 장미꽃 옆에 새로운 꽃을 내려놓았다.
“응, 이건?!”
그때 영문의 글귀가 시야에 들어왔다. 장미꽃 아래에 새겨진 작은 글귀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당신을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평생토록 내 기억 속에 남기겠습니다.
-미스터 케이.
“다행이야. 자네를 위하는 이가 있어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펜을 가져갔다.
펜이 자유로이 움직여 문장을 만들어 냈다.
종이를 글귀 아래쪽에 내려놓았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돌을 올렸다.
“인연이 닿는다면 보겠지. 나는 이만 가겠네. 또 보자고.”
손수건을 꺼내 비석을 닦고 자리를 떴다.
휘이이—
떠난 자리에는 고요한 바람이 불며 비석 아래에 내려 둔 꽃다발을 흔들었다.
그 아래에 위치한 작은 쪽지와 함께.
-당신이 남긴 글을 보며 크게 감동했습니다. 내 친우를 기억해 주어 고맙습니다. 만약 이 쪽지를 본다면, 아래로 꼭 연락 주세요. 꼭 대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Ph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