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인터넷
우리나라 초기 인터넷 시장을 잠식했던 두 거대 포털사이트.
다모와 야후.
2000년 초반대 두 사이트는 포털 시장을 양분한 거대산맥으로 통했다.
감히 대항할 상대가 없던 국내 최강자.
난 두 곳에 내 돈을 집어넣을 참이다.
“일단 시작은 다모다.”
그 중 다모는 97년 외환위기쯤 웹 메일 서비스를 시작한다. 시장 점유율 70%.
그야말로 압도적인 웹 메일 강자로 떠올랐다.
당시 경쟁자도 없던 탓에, ‘.net’는 다모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온라인 우표제. 유료 악수만 두지 않았어도, 그런대로 승자로 군림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곳이야.”
아쉬운 건 아쉬운 것.
턱!
다모가 있는 건물을 쭉 올려봤다. 아직은 너무도 약소한 기업.
하지만, 이 기업이 인터넷 대항해가 시작되는 97년, 공룡기업으로 변모한다.
“나도 건물 하나 사든가 해야지. 이거 원. 폼이 나지 않네.”
나름 몇천억을 가진 이 시대 최고의 자산가인데, 국내에 아무것도 없으니 위신이 서지 않는다.
수행할 직원을 둔, 제법 그럴싸한 투자사를 설립할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이것부터 해결 보자. 기업설립은 그 후다.”
당당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97년 IT바다를 항해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힘껏 안으로 들어가, 해당 층으로 향했다.
“어떻게 오셨나요? 병역특례라도 받으러 오신 건가요?”
들어서자마자 뭔 병역특례야. 내 얼굴이 어려 보이지는 않을 건데. 이거 괜히 기분이 상했다. 병역에 ‘병’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내게 그런 몹쓸 소리를 하다니. 저 사람 눈여겨본다.
“그건 아닙니다. 전 외국법인 투자자 김정수입니다. 다모커뮤니케이션에 투자를 하고자 방문했습니다.”
품속에서 명함을 꺼내, 뚱한 시선을 고수하는 남자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나를 그럴싸하게 포장해 소개했다.
투자도 중요하지만, 그럴싸함도 필수다.
-KJ투자 대표 김정수.
“음, 그러시군요. 오해해 죄송합니다. 근데, 지금 대표님이 시간이 되실지 모르겠네요. 한창 바쁜 시간대라.”
명함을 받자, 상대가 깜짝 놀란다.
내 얼굴로 판단했던 가벼움과 다른 무게감에 꽤 놀랐을 거다.
“안 되면 다음도 있으니, 얘기만 전해주세요.”
행동은 여기서 바로 드러난다. 저 보라. 사람의 자세가 달라진다. 별 표정이 없던 얼굴에 감정이란 게 스며들었다.
경계 어린 시선은 이내 귀인을 대접하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그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둔해 보이는 남자의 몸이 뒤뚱뒤뚱 움직여, 정면으로 보이는 통로로 사라졌다.
“음, 얼마나 하는 게 좋을까?”
이쪽 계통은 잘 모르지만, 시설비보다 장비와 시스템 관련된 투자비용이 엄청나다 들었다. 그걸 유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설립 초기인 만큼 현금이 무지 필요할 터.
나는 다모에 할 투자 규모와 지분을 떠올리며, 남자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렸다.
“이거 어쩌죠. 지금 프로그램 개발 건으로 대표님이 시간 내기 어렵다 하십니다.”
슬슬 발에 난 땀으로 양말이 젖어가려 하는 시간, 안으로 들어갔던 남자가 나왔다. 얼굴에 곤란함이 머문다.
아무래도 오늘 만나기는 글렀나 보다.
“그럼 말씀만 전해주세요. 최대 천억까지 투자 가능하니, 시간 좀 내어 달라고요.”
상대의 머릿속에 각인이 될 만한 숫자를 불렀다. 이 정도는 해야 나를 가벼이 여기지 않을 거란 계산에서 나온 숫자다.
“네?! 처, 천억 말입니까?”
반응은 곧장 나왔다.
놀랍기도 하겠지. 재벌기업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 천억 단위로 투자를 해 줄 수 있는 곳은 없으니까.
물론, 전부 투자할 생각은 없다. 과한 투자는 좋지 않다.
“그렇게만 전해주세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르는 듯한 모습은 하수나 하는 것. 나는 기업의 가치를 보고 사람을 보며 투자를 하는 투자자다. 결코 봉이 아닌 것이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쨍쨍 쬐는 태양이 먼저 나를 반겼다.
“더럽게 더운 날씨네.”
햇볕은 쨍쨍, 아스팔트는 찜통.
아스팔트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을 느끼며,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이리된 거 부동산 쇼핑이나 하자.”
시간이 많아진 오늘, 일정을 당겨 부동산 쇼핑에 나서기로 했다.
내 걸음은 집이 아닌 부동산으로 향했다.
***
“음, KJ?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외국계라고?”
“네, 외국법인이라 했습니다.”
“외국 어디?”
“그건 듣지 못했네요. 물어보지를 않아서.”
PM 12시 50분, 늦은 점심시간.
잠시 일을 멈추고 식당으로 향하는 길, 명함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천억 원대 투자가 가능한 곳은 많지 않다. 이쪽 분야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들은 금융사는 상당하다.
천억 원대를 풀 정도면 꽤 큰 기업일 터. 한데, KJ투자라는 곳은 귀에 익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그의 입이 어렵게 열렸다.
“다음주에 보자 해봐. 이건 네가 가지고 있고.”
“네.”
남자는 자신의 주머니로 가져가려던 명함을 다시 꺼내어 부하직원에게 건넸다.
부하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그걸 받아 지갑에 챙겼다.
***
-입금 \1,500,000,000원, 해양수산부.
“그래도 일 처리는 빠르네.”
중장비사용료, 인부 인건비, 출장비 등등을 포함하여 해양수산부에 15억을 청구했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며 그쪽에서 펄펄 날뛰었지만.
‘해운에 청구하세요.’
이 한마디에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덕분에 공매도가 크게 성공했지.”
덤으로 해당 손해보험과 해운에 공매도를 걸면서 상당한 수익을 뽑았다.
14% 수익을 뽑아내면서 내 공개된 재산은 8억에서 8억 7천 정도 되었고, KJ컴퍼니는 10억 정도를 가져갔다.
드르륵—
문에 붙은 유리창이 부르르 떨며, 옆으로 열렸다.
-황금 부동산
빨갛고 파란 글씨로 적힌 ‘황금 부동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이발소 분위기다.
왜 이발소가 떠올랐나 했더니, 바로 옆이 이발소였다. 이발소 냄새가 코를 콕콕 찔렀다.
“어서 오세요.”
절대 옆쪽 이발소는 가지 말자.
머리를 심하게 볶은 기가 세 보이는 아줌마가 붉게 칠해진 입술을 선보이며 나를 반겼다.
약간 부담스럽다.
“빌딩 좀 알아볼까 하는데, 괜찮은 매물 있나요?”
일단 들어왔으니, 매물정보에 대해 물었다. 들어왔다 나가기도 뭐했고.
확인은 해보자. 혹시 모르니까.
“고럼, 많지. 일로 와 앉아요. 원하는 평수는 있고?”
반말과 존칭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구사력을 가진 상여자의 기질에 잠시 감복했다.
상황에 맞게 딱딱 정리하는 난이도가 수준급이다.
“층당 최소 100평이었음 좋겠고, 층수는 5층 내지 6층 정도면 되겠네요. 아, 좀 오래 쓸 생각이니, 신축으로 부탁해요.”
우뚝, 멈춰선 아줌마. 자존감을 속눈썹에 올인한 아줌마가 눈을 파들파들 떨며 나를 응시했다. 눈에는 딱 봐도 놀람이 떠올라 있었다.
아무래도 건물이 아닌, 일반 사무실 임차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가격 상관하지 말고 괜찮은 걸로 주세요.”
아줌마의 고개가 위아래로 작게 움직였다. 손을 가져가려던 방향이 옆으로 꺾였다.
저기는 좀 오래되어 보이는데?
“오래된 건물은 보지 않아요. 3년 내로 부탁드리죠.”
불안한 마음에 즉시 입을 열어, 조건을 확실히 말했다. 그랬더니 다시 손의 위치가 바뀌었다. 휴.
잠시도 한눈을 뗄 수가 없다.
“내가 실수를 할 뻔했네. 호호. 여기 세 곳이 있는데, 지금 사면 땡잡는 거 아니겠어요. 호호. 교통편이 조금 좋지 않아서 그렇지, 시에서 버스노선 깐다고 준비 중이에요.”
내 앞에 건네진 종이에 두 개의 건물자료가 놓였다. 층수는 똑같이 5층 건물.
도로는 4차선으로 되어 있고, 경기도에서 살짝 외곽에 빠져 있는 위치였다.
‘음, 여기는…’
2010년 정도는 되어야, 인프라가 구축되는 동네였다.
‘97년 98년 전까진 부동산은 관심 가지지 않기로 했으니까. 이 정도로 만족하자. 어차피 차 타고 다니면 그만인 동네인데.’
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은 그야말로 가치가 뚝 떨어진다.
내놓은 매물이 팔리지 않으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금액을 떨어트렸다.
내가 부동산을 매수하는 시기는 97년 중순부터. 그때부터 강남, 분당, 일산, 판교 등등 수도권 전 지역에 걸쳐 대량으로 매입할 예정이다.
‘안산과 시화공단부지를 싹 매입해도 나쁘지 않지. 2000년대에 꽤 짭짤해지니.’
그때까지 부동산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한번 가보죠.”
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줌마의 애마, 티코에 몸을 싣고 해당 건물이 있는 동네로 향했다.
두 건물을 둘러봤다. 두 건물의 차이점은 크지 않았다. 있다면 1층에 식당이 있고 없고. 그 외는 같았다.
“이 건물로 하죠.”
내가 선택한 건물은 식당도 없고 깨끗한 건물이었다.
즉 임차인이 한 명도 없는 빈 건물을 선택했다.
내가 어떻게 필요로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니, 되도록 빈 건물이 좋다 여겼다.
“저 공터까지 주세요. 모든 결제는 일시불로 치를 테니.”
2000년대로 들어서면 건물에는 널찍한 주차장이 들어선다. 하지만 지금은 1995년도. 주차장이 매우 협소하다. 그래서 옆쪽에 널따란 공터를 매입해, 주차장으로 건설할 예정이다. 지하 2층 지상 5층으로.
주차타워를 건설해 미래를 대비할 예정이다.
“누가 알까? 이 부지에 대형백화점이 들어서고 전철이 지나게 될지. 후후.”
아주 먼 미래의 계획을 세웠다.
따르릉—
따르릉—
여름휴가로 떠들썩한 기간이 지나, 9월로 넘어갈 즈음.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KJ투자 김정수입니다.”
세월아 네월아 삐딱하게 앉아 여유로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던 난 입가에 미소를 활짝 피웠다.
내가 기다린 연락이 왔음을 인지한 까닭이다.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사냥할 때 최대한 몸을 낮추고 기다린다.
나는 사자고, 곧 들릴 목소리는 초식동물.
장칠성과 올리버 스미스의 능력이 내 촉을 한껏 끌어올려 줬다.
-다모커뮤니케이션 이지환입니다. 대표님께서 오늘 시간이 된다 하시는데, 어떠신지요?
“지금 제가 손님을 만나고 있어 당장은 힘들고, 저녁 6시 어떠십니까? 그때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나 홀로 있는 사무실, 난 블러핑을 시전했다.
꼭 투자를 원한다 하여, 개처럼 달려드는 가벼운 행동은 피했다.
-아, 잠시만요.
“본인이 직접 전화를 하지 않고, 조수를 시켜 연락다리를 만든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
연구 외에 관심이 없는 자가 아니면, 정말 네가지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
이 사람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흐리다.
“만나보면 알겠지. 어떤 사람인지.”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6시 30분이면 좋다 하십니다.
이 사람, 정말 궁금하다. 어떤 사람인지…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그 시간에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시계를 응시했다.
-2시 45분 전.
만나기로 한 건 6시 반.
근처에 있는 박스를 몇 장씩 겹쳐 바닥에 길게 펼쳤다. 사람이 누울 만한 침대가 완성되었다.
나는 그곳에 몸을 길게 눕혔다.
“2시간 정도면 충분하지.”
몸을 편히 눕히자, 열린 창틈으로 선선한 바람이 몸을 감쌌다.
나는 바람을 이불 삼아 잠에 빠져들었다.
곧 내 심장은 일정한 규칙 속에 위아래로 움직였다.
따르릉—
2시간 정도 된 시점, 시계 알람 소리가 달팽이관을 타고 수면의 세계로 침투했다.
길게 찢어지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일어났다.
“역시, 컨디션 회복에는 잠이 최고지. 자, 계약서에 사인을 하러 가자.”
투자 쇼핑의 시간이 돌아왔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모 부설연구소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