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영국으로
1995년 8월 28일 아침 닭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점.
-주가 43,000원
엠지정보통신 주가가 4만 원 꼭짓점에 올라섰다.
“캬— 쥑이네. 단번에 4배 벌었네.”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주가는 43,500원에서 44,000원 정도를 가리켰지만, 이쯤에서 물러서기로 하였다. 더 욕심을 내봐야 더 벌 거 같지도 않았다.
이만한 수익을 냈으니, 충분히 만족했다.
내 개인 재산 2억이 8억이 되고, 버뮤다군도에 있는 KJ컴퍼니는 약 100억 원 상당의 이익을 거뒀다. 충분히 만족했다.
“좀 더 재미를 볼 만한 일이 없을까?”
숫자 놀이에 재미가 들렸지만, 음. 글쎄. 뭔가 부족했다.
피가 흐르지만, 심장이 뛰지 않는 기분.
삼풍백화점 안을 누비던, 그때의 떨림이 무척 그립다.
휘리릭—
손가락을 튕겨 펜을 빙글빙글 돌렸다. 골똘히 생각에 빠질 때면 펜을 돌리는 습관이 있었다.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돌 듯, 펜도 열심히 회전했다.
“뭐가 있을까?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 일이.”
-누구시죠?
-절 부른 사람이 누구세요
-꺄아악
-갑자기 왜 놀라?
-누가 날 보는 거 같았어.
-여긴 나 말고 없어. 괜찮아.
“음…”
켜 놓은 TV 화면에서 우뢰매 9탄 완결편 무적의 파이터가 시작했다..
1994년 제작된 아이들 영화.
심형래가 이걸로 돈 좀 벌었다고 했던가.
지금 보니 무지 유치하다.
“어, 가만. 영화. 그러고 보니. 뭔가 기억나려 하는데…?!”
우뢰매보다 몇 곱절로 수익을 낸 아주 유명한 영화가 있었는데.
그게 뭐더라.
“해리… 해리… 아, 그래! 해리포터!”
그제야 머릿속으로 세계를 강타한 영화의 제목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시기도 마침 이맘때야.”
내게 운이 따른 건지, 시기와 타이밍이 딱 들어맞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격과 가치관이 달랐던 남편과의 결혼생활. 이어진 이혼.
그녀는 딸 제시카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와 지인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
그녀의 이름은 조앤 K. 롤링.
세계에 이름을 알리며 100대 재벌에 등극할 이름이다.
“지금쯤 딸과 힘겹게 살고 있을 시기. 지금이 절호의 찬스야!”
이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녀가 쓴 책 하나가 전 세계로 공급되면서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 소설은 바로 뜨지 못했다. 대형출판사에서 모두 거절하고, 작은 출판사에 연결돼 초판 5백 부를 찍게 된 작품.
소재 자체가 돈이 안 된다는 결론에서 발생된 문제였다.
해리포터가 뜨게 된 시기는 미국에 있는 출판사와 아동도서를 10만 달러(1억 원)에 계약을 하면서부터다.
언론의 관심은 자연히 그녀의 책을 홍보했고, 사람들의 관심은 대폭 증가했다.
98년에 5만 부를 인쇄하게 되고, 판매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99년. ‘아즈카반의 죄수’가 이어지면서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내 취향은 아니라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확실히 투자할 가치가 있지.”
내가 가야 할 길이 정해졌다.
세계 작가계의 전설이 될 그녀, 조앤 K. 롤링을 만나기 위하여 내 걸음은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향했다.
***
“요즘 쓸 만한 작품이 없어. 어디 괜찮은 작품이 없나?”
블롬즈버리 출판사. 영국에 자리한 중소 출판사.
오늘도 편집장인 나이젤 뉴턴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출판사로 들어오는 작품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그런 게 있으면, 대형출판사로 가지. 우리에게 오겠어요. 편집장님. 참.”
그의 모습에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다시피 고개를 내리고 작업을 하고 있던 직원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지? 쩝. 정말 획기적인 거 하나면 참 좋겠는데. 아쉽다. 아쉬워.”
나이젤 뉴턴도 아주 잘 안다. 현실이 어떻고, 현재 출판사 시장이 어떤지에 대해서.
하지만 역시.
“아쉽군.”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가 블롬즈버리 출판사인가요?”
“앗 뜨뜨. 네, 맞습니다… 만. 어쩐 일로…?”
담배를 태우며 딴생각에 빠지던 때, 문을 열고 동양인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 머리에 제법 준수한 외모의 남자였다.
나이젤 뉴턴이 담뱃불을 끄고, 남자를 바라봤다.
귀티가 좔좔 흐르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곳 대표를 만나러 한국에서 온 투자자 김정수라 합니다.”
***
쉬이이—
끼리릭, 끼기. 끽!
건물만 한 바퀴가 몸체에서 내려와 활주로를 긁는다. 이곳은 영국에 위치한 공항.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지이익- 열리는 게이트 밖으로 영국의 모습이 시야로 들어왔다.
“돈이 참 좋네. 내가 비즈니스석을 이용해 영국까지 날아올 줄이야.”
이번이 두 번째 비행이었다. 미국에 갈 당시에는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는데, 하하. 좋아도 너무 좋았다.
진짜 뭐라도 된 기분에 빠져버렸다.
“밖으로 나오니 으— 좋구나! 킁킁. 김치 냄새도 참 좋고.”
지난 미국여행을 교훈 삼아 봉지에 이중삼중 포장해 김치를 싸 왔다.
당시 모든 밥들이 마음에 차지 않아 고생한 걸 떠올리면 끔찍하다. 역시 한국 사람은 김치가 최고의 음식이다.
“볼롬즈버리 출판사를 찾아야 하는데. 어디서 찾을 수 있으려나.”
영국에 온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출판사를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찾기 힘든 판국에, 타국인 영국에서 오죽할까?
공항을 나서며 고민에 빠지다 호텔로 향했다.
킹크로스역 3분 거리에 있는 알함브라 호텔.
영국풍을 느낄 수 있는 건물 양식들을 보며 호텔 안으로 접어들었다. 호텔이라 그런지 사람들 대부분이 여유로워 보인다.
중간중간 눈웃음을 치는 예쁜 아가씨들도 보이고.
그럴 때마다 올리버 스미스의 성격이 튀어나왔다.
윙크를 하며, 그녀들의 시선을 받아주었다.
꺄르르—
웃으며 지나가는 아가씨들을 보니, 영국 여행이 반은 성공한 기분이다. 그녀들에게 눈인사를 해주고, 호텔 주변을 둘러봤다.
“그래도 호텔인데,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카운터에서 키를 받고 방으로 올라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했다. 아무래도 돈을 주고 사람을 사는 게 좋으리라 봤다.
이 정도 호텔이면 한 곳 정도는 소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저기 실례합니다.”
딱 봐도 이곳에서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인물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다가가 그를 잡았다.
키가 나보다 한 뼘 정도 큰 꽤 멋진 남자였다.
“저희 호텔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메니저라 써진 영문의 이름이 시선에 들어온다. 지배인으로 보였다.
엄청 신사적으로 생긴 사람이 적당히 허리를 굽혀 질문을 던지니, 괜히 어깨가 올라간다. 대접을 받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보다.
“혹시, 저 대신 기업이나 사람을 찾아 줄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라면 지리에 밝은 분도 괜찮습니다.”
“음… 무슨 이유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살갑게 다가온 지배인의 얼굴에 경계심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오해가 생긴 모양이다.
“별다른 이유는 아닙니다. 전 투자자입니다. 꼭 투자하고 싶은 회사와 사람이 있습니다. 아, 사람의 직업은 작가입니다. 한데, 제가 이곳이 초행이고 잘 몰라, 사람을 고용해 도움을 받을까 합니다.”
지배인의 오해를 풀고자,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제야 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경계심이 사라졌다.
휴, 타국에 와서 이런 고생이라니. 이럴 때 영국인의 기억이 내게 전이되면 참 좋겠는데. 아쉽다.
“적당한 곳이 있습니다. 지금 가실 건지요?”
오, 즉각 원하는 답이 나왔다.
“알려주시면 바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이곳입니다.”
지배인은 품속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영문으로 해당 위치를 적었다. 친절하게 또박또박 영문으로 작성이 되어 있었다.
“혹시, 차량도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돈만 주시면, 언제든 이용 가능합니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덕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건 제 성의입니다.”
지배인 덕분에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100파운드를 내밀었다. 10파운드는 좀 모양새가 빠지기도 하였고.
“아닙니다. 손님. 전 팁을 받지 않습니다. 고객님께 도움이 되었다 하니 다행입니다. 좋은 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배인은 정중히 내 선물을 거절하고, 나를 지나쳐 2층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향했다. 걷는 모습도 참 모델 뺨친다.
참 멋진 사람이었다.
***
이틀이 지난 날, 부탁한 의뢰가 내게 전달됐다.
호텔의 도움을 빌려 차량을 타고 해당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이 블롬즈버리 출판사입니다.”
기사가 친절히 도착을 알렸다. 나는 그에게 팁을 건네고 차량에서 내렸다.
“이곳 대표를 만나러 한국에서 온 투자자 김정수라 합니다.”
문을 여니 종이책 냄새와 종이에 깔린 먼지가 허공에 흩날렸다. 탁한 공기를 호흡하며 급히 담배를 끄는 남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혹시, 약속을 하셨습니까?”
“급히 오느라, 약속은 하지 못했습니다. 설마 안 계십니까?”
이러면 곤란한데. 너무 급하게 와서 그 부분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음. 아닙니다. 안에 계십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남자가 일어나,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구석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날 신기한 사람 보듯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가만히 있으려니 좀 민망하다.
이럴 땐 두 인물의 기억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표님이 보시겠답니다. 이리로 모시겠습니다.”
2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남자가 내게 다가와 방으로 안내했다.
남자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배려를 받으며 대표실 안으로 들어섰다.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그렇습니다. KJ투자 김정수입니다.”
컴퍼니가 아닌 투자로 새겨진 명함을 건넸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군요. 한데, 우리 회사는 어쩐 일이십니까?”
의아함이 떠오르는 눈동자에 물음표가 가득 새겨졌다.
이런 작은 출판사에 투자자가 찾아오니, 이상하게 비쳤나 보다.
“당연히 투자를 위해 찾았지요. 전 이곳에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이런 보잘 데 없는 곳에… 투자를.”
“전 감이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소문을 통해 들었습니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작가들이 힘겹게 쓴 작품들을 무시하지 않고 출판을 해준다는 소리를요. 그리고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편집장님도 계시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형출판사에 투자를 하는 것보다, 성장 잠재력이 있는 곳에 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해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모두 지어낸 거짓말이다. 잠재력 성장은 오로지 해리포터에 달렸다. 대형출판사로 발돋움하게 도와준 해리포터는 많은 이들에게 행운을 거머쥐게 만들어 주었다.
수천억 자산가로 변신한 눈앞의 대표. 수억의 연봉을 받게 된 편집장.
그리고 그 외 직원들까지.
참으로 여럿 키워낸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거 참. 갑자기 이런 일을 겪게 되니 당혹스럽네요.”
“천만 파운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쿨럭!
나를 안내하고 자리에 앉아 잔을 입에 가져간 대표의 입에서 반투명한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사례가 걸렸는지, 계속 기침을 해댔다.
너무 금액을 크게 불렀나?
“죄, 죄송합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만한 돈을 저희에게…”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분 70%만 가져가겠습니다. 미래에 제 지분을 원하실 때 언제든 말씀해 주시면. 그때 시세에 맞게 넘겨드리겠습니다.”
“출판사는 좋은 작품이 나와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한데, 저희는 그런 작품이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좋은 작가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작가님과 계약을 해주신다면, 천만 파운드를 투자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입꼬리를 양옆으로 길게 그어 호선을 만들었다.
“… 음. 어떤 작가님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부담으로 가득하던 그의 눈빛이 변했다. 자신감이 없는 눈빛에서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나는 그의 변화하는 표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조앤 k. 롤링. 제가 소개를 시켜드릴 작가님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