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구했으니 돈 벌러 가자
철컥!
“옳지, 열렸다.”
5층으로 연결된 잠겨진 문을 철사를 이용해 열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기억 속의 장칠성은 내가 열었던 속도보다 훨씬 빠르고 대담하게 움직였다.
그에 비하면 난 하수에 지나지 않았다.
“도둑 기술이 이리 좋은 줄은 몰랐네. 심장도 커진 기분이고.”
배짱이 좋아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경찰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졌다.
잡히면 잡히는 거고, 말면 마는 거다. 뭐 이런 심정이었다.
탁!
5층에 도착했다. 도착하는 동안 경비원과의 어떤 만남도 없었다.
이제부터 안전하리라 봤다.
어떤 미친놈이 5층에 올라와 물건을 털 생각을 하겠는가?
이건 삼풍그룹 관계자도 생각해보지 못할 별난 짓에 해당됐다.
찰칵찰칵.
셔터를 쉼 없이 눌렀다. 플래시가 팍팍 터지며 주변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진짜 장난 없네. 대체 이 망할 곳은 뭔 생각으로 이대로 놔둔 거야?”
5층은 그야말로 심각 수준을 넘어 매우 위험 단계에 달해 있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그렇지, 직접 보면 경악할 일이다.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무감각하게 변한다고 하더니, 딱 그랬다.
것도 아니면 장칠성의 영향을 받은 것일 터이고.
“누가 알면 대지진이라도 난 줄 알겠네. 바닥은 쩍쩍 갈라지고, 물바다에… 저긴 이미 무너져 내렸네.”
심각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섰다. 배관 자체도 기울어져 부서진 상태.
오래된 폐건물이 이보다 나을 거다.
“여기가 공개되면, 난리 나겠네. 올라와 보길 잘했어.”
이건 후일에도 계속 거론될 특종이다.
기자들에게 던져주면 참 좋아할 그런 류였다.
“이 정도 찍었음 됐겠지. 삼풍이란 마크까지 다 찍었으니까.”
삼풍 회장이 숨길 수 있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모든 사진에 삼풍 로고를 담았다.
예전에 와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알아볼 터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나.”
내려가는 건 올라온 것보다 어렵다. 이쪽에서 문을 열고 나가는 건 무리.
그렇다면.
“화장실을 통해 로프를 이용해야지.”
사전에 준비한 로프를 이용하기로 했다.
4층으로 내려가는 건 위험하다. 5층 창문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자.
“군시절이 떠오르네. 그때 이거 탄다고 개고생했는데.”
로프를 단단히 고정하고 창밖으로 던졌다. 후르륵 떨어지는 로프 소리를 들으며, 옛 추억에 잠겼다.
그때만 떠올리면, 스트레스가 막 몰려온다.
반면 장칠성에게 있어 로프는 너무도 친숙한 물건이었다.
“전역 당시 때려죽여도 군대 방향으로 소변조차 누지 않겠다 그랬는데. 크크.”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다니. 나 정말 미친놈이 됐나 보다.
몸을 천천히 화장실 유리창 밖으로 뺐다.
“높네.”
군대에서 느꼈던 공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즐거운 두근거림이라니.
장칠성의 영향을 받은 게 확실했다.
“가자.”
내 미션은 끝났다. 퍼펙트하게.
***
다음 날 오후 시간.
해가 저 멀리 떠서 대지를 비출 때, 가방을 들고 안양역으로 향했다.
“김정수, 여기야!”
개찰구를 통과하자, 중앙에 위치한 기둥에서 손을 흔드는 안경잡이가 시선을 끌었다.
내 고등학교 동창이다.
“이야, 역시 시간약속은 칼이라니까. 잘 지냈어? 오랜만이다.”
이 녀석과는 1년 만인지 2년 만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 오랜만이다. 설마 네가 연락할 줄 몰랐네. 어째 신수가 훤해 보인다?”
돈이 생기고 잘 챙겨 먹었더니, 살이 살짝 오르기는 했다.
예리한 녀석, 그러니 기자 노릇을 하고 있겠지.
멍든 얼굴을 봐도 좋아진 걸 맞추다니. 무서운 녀석.
“그냐? 잘 봤네. 내가 좀 좋아지긴 했지. 식전이지? 밥부터 먹자. 내가 살게.”
기자 친구는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거다. 나는 내가 어제 구한 사진들을 이 친구에게 맡길 작정이다. 앞으로 수고해줄 친구에게 밥 한 끼 정도는 예의다.
“이야, 돈 좀 벌었나 본데? 그 가난뱅이가.”
“뭐, 그리됐다. 가자.”
가볍게 히죽 웃어 주고는 기자 친구를 데리고 소고깃집으로 안내했다.
“와… 너 정말 돈 좀 벌었냐?”
녀석이 놀라는 걸 보니, 이것도 썩 나쁘지 않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돈을 버는지 모르겠다.
“공짜 아니니까. 실컷 먹어라.”
“응? 내게 부탁할 게 있었냐?”
“그렇지. 그러니 오랜만에 전화했지.”
“네가 부탁이라. 그래. 들어보자. 비싼 것도 얻어먹는데.”
“네 말 대로 나 돈 좀 만졌다. 그래서 이것저것 사려고 삼풍에 갔는데… 실수로 5층까지 올라갔지 뭐야. 근데,,, 거기서 본 걸 너에게 꼭 보여줘야 할 거 같아서 급히 보자 했다.”
“뭐? 거기를 올라가? 거기 막아 놔서 올라가지 못할 건데?! 그래서 뭔데?”
“암튼 됐고, 이거다.”
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사진들을 꺼내어 친구에게 건넸다.
비닐 안에 있는 사진들이 친구 손에 쥐어졌다.
“이, 이건… 맙소사.”
기자 짬밥이 얼마 되지 않아도 이게 얼마나 큰 특종인지… 아니 큰일인지 잘 알 거라 생각했다. 녀석의 눈빛이 반짝 빛을 뿌렸다.
갈라지다 못해 심각하게 주저앉은 바닥. 경사면대로 쓰러져 있는 식기들.
흠뻑 젖은 바닥.
이것이 예고하는 건 단 한 가지다.
붕괴.
꿀꺽.
녀석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이 사진이 정말이야?”
“아무렴. 내가 뭣 때문에 삼풍 로고가 그려진 부분들을 겨냥해서 찍었는데. 잘 보라고.”
“넌 정말 내 은인이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밥은 나중에 먹자. 미안하다. 정수야.”
직업정신이 세포 단위로 퍼진 녀석.
녀석은 급히 일어나 짐을 챙겼다.
“별수 없지. 너만 믿는다.”
“그래. 그리고 밥은 내가 사마. 고맙다. 정수야.”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쌩— 사라졌다.
“쩝. 모처럼 소고기 먹나 했더니. 아쉽네.”
하는 수 없이 입맛만 다신 채, 식당을 빠져나왔다.
아쉬운 마음에 식당을 한 차례 보다,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절레절레.
담에 반드시 소고기 얻어먹고 만다.
1995년 6월 25일.
붕괴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
-삼풍 백화점 붕괴예고!
-좌측으로 기울어진 건물의 모습이 보인다.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멘트 가루가 날리고, 천장과 벽면에 금이 가면서 붕괴 조짐을 예고했다. 그럼에도 삼풍그룹은 이를 외면하고 영업을 이어갔다.
-해당 사진은 삼풍 백화점 5층에 위치한 식당 내부의 모습이다. 확연히 기울어진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된다.
-깊게 파이고 갈라진 바닥 밑으로 보이는 파이프가 심하게 훼손돼 있다. 삼풍 백화점은 당장 영업을 중단하는 한편 철거해야 한다.
신문기사는 27일 아침에 뿌려졌다. 생각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들만의 속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넘겼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집니다!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직원분들도 어서 대피하세요!”
-삼풍그룹은 백화점을 철거하라!
-삼풍 백화점 영업을 중단하라!
피켓이 여기저기 설치됐다. 기사의 힘은 대단했다.
1인 시위를 하던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내 머리로 물이 떨어진 적 있었는데. 아, 끔찍하네. 시발.”
“무서워서 어디 갈 수 있겠어. 지영 엄마도 가지 마.”
“무섭네요. 그것도 모르고 저기서 쇼핑하고 나왔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삼풍 백화점 붕괴에 관련해 떠들어 댔다.
안으로 발길을 들이려던 사람들이 발길을 돌렸다.
그런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반은 성공한 건가?”
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크게 안도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붕괴로 발생한 끔찍한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거라 봤다.
쾅—!!
“어떤 새끼가 그딴 사진을 찍어 넘긴 거야! 어!”
회의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풀풀 날리는 냉기는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을 꽁꽁 얼려 버렸다.
어떤 이도 입을 뻥끗하지 못했다.
“입이 있으면 말을 하라고! 말을!”
이준 회장은 열이 뻗치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목의 핏대를 곤두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하나, 어떤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다.
“여러 차례 조사를 마쳤지만, 저희 직원의 소행은 아닌 걸로 조사됐습니다. 이 기자가 어떤 경로로 이 사진을 구했는지는 좀 더 확인을…”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해! 변명이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 개 같은 사진 때문에 백화점 매출이 엉망이 됐다고!”
어떻게든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려 했지만, 되려 욕만 더 먹었다.
남자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다, 이준 회장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급히 바닥으로 고개를 내렸다.
“기자를 만나 당장 기사를 내리게 하겠습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사를 내리게 하는 게 전부였다. 물론 이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습적으로 퍼진 기사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뚝 끊기게 만들었다.
당장 오늘 매출만 하더라도 반 토막이 났고, 몇몇 매장이 문을 닫았다.
“못난 놈들. 당장 내리라 그래. 당장 내리지 못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았…”
벌컥.
“이준 회장님, 저희와 검찰로 가주셔야겠습니다.”
그때였다. 이준 회장이 지시를 내리려 하던 때, 회의장 문이 벌컥 열리며 건장한 남자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중 한 남자가 종이를 들이밀며 이준 회장을 에워쌌다.
“여러분들도 함께해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전부 잡아들여.”
“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죄가 없음에도 본능적으로 도망치려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검찰을 욕하는 이도 있었다.
“누구 명령을 받고 온 거야. 당장 안 풀어! 어! 너희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놔!”
대표적인 인물로 이준 회장이 뽑혔다. 그는 자신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검찰을 향해 욕을 해대며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찰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준 회장이 휘두르는 팔을 포박하여 검찰로 끌고 갔다.
-긴급 뉴스입니다. 삼풍 백화점이 금일 오전 9시 30분경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 한편, 긴급 체포되어 검찰로 송치됐습니다. 죄명은 불법 건물 개조와 비리로…
“됐어!”
붕괴까지 이틀 남겨놓고 일이 마무리됐다.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인 검찰들로 인해, 영업이 정지됐다. 더불어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사실관계 조사를 위해 긴급 파견됐다.
“5층만 들어갔다 나올 예정이라 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걸 보는 순간 두 번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을 테니까.”
5층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삼풍 백화점.
1995년 최악의 해를 막았다.
비록, 사람들은 알아봐 주지 않지만, 이 기분 나쁘지 않다.
“이제 돈 벌 일만 남았나? 자, 그럼 뭐부터 시작해 볼까?”
TV를 껐다. 더는 삼풍 백화점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하였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살 일만 남았으니까.
그럼 어디 보자. 뭐가 좋을까?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확실히 성공할 수 있는 길을.
휘청.
앉았던 몸이 순간 옆으로 기울어졌다. 한데, 이 증상 전에도 분명 경험한 바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떠안고, 몰려오는 기억의 파편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아주 낯설면서 익숙한 감각이었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기억. 하지만 곧 내 기억이 되어 자리에 남게 되리라.
-난 미국에서 투자자로 이름을 알린 남자였다. 짧은 수명으로 내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내 시작은 복권이 당첨되고 시작됐다.
-난 즉시 투자에 나섰다. 워런 버핏을 만난 건 1960년. 내 나이 서른 살 때다. 난 그 친구를 라이벌로 삼았다. 그의 나이 35살 때다.
-그와의 경쟁은 재밌었다. 어느덧 그는 경쟁자가 아닌 롤모델이 되었다.
-그러다 내 꿈은 부서졌다. 저주받은 수명. 원통하다. 내게 시간만 주어졌더라면… 그와의 경쟁을 즐겼을 텐데. 워런 버핏. 잘 있게. 난 가네.
“이, 이건…”
기억이 정리된 시점. 난 멍하니 앉아 좁은 방구석에 설치된 거울을 멍하니 바라봤다.
입을 쩍 벌린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