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재벌 강림하다-3화 (3/145)

3화

#각성

모르고 당하면 괜찮다. 안타깝지만 위로의 말을 건네면 그만.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한다면 그건 마음의 죄로 남을지 몰랐다.

“제기랄!”

회귀했다는 걸 인지하기도 전에 오지랖으로 넘어갔다. 아니 이걸 오지랖이라고 해야 하나?!

딱히 영웅이 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죽어갈 사람들을 모른 척하는 몹쓸 놈이 되는 건 사양이다.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오지랖 한번 떨어 보자.”

술기운이 올라와서인지, 전신이 확 달아올랐다. 어떤 사명감이 내 심장에 각인됐다. 용기백배. 오지랖 백배.

“일단··· 자자.”

그러길 잠시. 난 몸을 뉘었다. 혼자 마신 막걸리는 세상을 빙글빙글 돌게 만들었다. 도저히 취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다. 스르르 눈꺼풀이 감기며 곧 세상은 암전이 되었다.

깜깜한 어둠으로.

짹짹—

“으··· 머리야.”

엄청난 숙취 속에 눈이 떠졌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어루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띵함이 정신을 앞질러 목으로 전해졌다.

목에 가뭄이 들고, 울렁이는 이 기분.

“망할, 마실 땐 좋았는데, 꼭 끝이 이 모양이야.”

최악이다.

저주받은 술의 숙취를 이겨내고자 안간힘을 썼다.

“물이 어딨지. 물··· 여깄다.”

냉장고에서 델몬트 병을 꺼냈다. 한 손에 잡히는 빡센 무게감을 느끼며 입에 가져갔다.

꿀꺽꿀꺽 넘어가는 물맛은 생명수 그 자체였다.

시원함이 목을 타고 넘어가 정신을 맑게 해줬다.

이 짓도 살짝 중독될 것만 같았다.

“후아. 살겠다. 괜히 기분에 취해서는, 전생 짓과 똑같이 행동하다니. 나란 놈도 참···”

아무리 여러 사람의 기억이 내 안에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나였다. 김정수라는 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조금은 안도했다. 나 자신이 내가 아니게 된다면, 그건 무척 슬픈 일이 될 거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너지는 삼풍 백화점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재벌 그룹의 핏줄이라면 이 문제는 상당히 쉽게 풀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난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다.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왕 뒤로 온 거, 재벌 핏줄로 태어났다면.

아니지. 내가 뭔 생각을 하는 건지. 절레절레.

“어쩔 수 없나?”

늘 이 오지랖이 문제다.

남들은 쉽게 가는 길을 나는 어렵게 가려 한다.

이런 성격 탓에 어르신에게도 작은 호의를 베풀게 되었다. 덕분에 이런 기회를 얻게 된 거 같은데.

“어르신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게 된 이 목숨 뜻깊게 사용하겠습니다.”

선행을 베풀게 됨으로 난 기회를 다시 얻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출발.

그에 대한 은혜라 깊이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까짓, 되는대로 해보자.

마음의 결정은 곧 행동으로 나타났다. 난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눌렀다.

***

“으, 알고 오니, 무섭네.”

지금 이곳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풍 백화점 1층 로비다.

대충 훑어봐도 천장과 벽 사이가 갈라진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됐다.

오금이 저리다.

“갑자기 무너지지 않겠지. 역사와 다르게 벌어지면 피 보는 건 난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진짜 괜한 오지랖으로 길게 살 수 있는 목숨, 허망하게 돌 더미에 깔려 뒈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으려나?

“아니야. 나쁜 생각은 이쯤 하자. 이래서야 될 일도 안 되지.”

정식을 빡 차리자.

두 손바닥으로 양 볼을 강하게 때리고 걸음을 옮겼다.

찰칵찰칵.

셔터가 연달아 눌려진다. 앵글에 비치는 곳은 벽과 천장이다.

심하게 갈라진 부분들을 집중해 찍었다.

“직원이다, 피하자.”

딱 봐도 직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괜히 찔려서 벽과 천장으로 향하던 카메라를 옷 쪽으로 향했다.

“와, 정말 예쁘네. 잘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여줘야지.”

열 걸음 정도 걸을 즈음, 친구들 이야기를 들먹이며 대놓고 시골 촌놈 행세를 했다. 목소리는 활발하고 쾌활함을 담았다.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연출했다.

힐끔.

두 직원이 날 힐끔 보고 지나갔다.

“시골에서 막 올라온 놈인가 보네. 사진 찍게 내버려 둬. 것도 홍보가 되겠지.”

“알겠습니다.”

휴···

아무래도 날 지켜보던 누군가의 신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름의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부터는 벽과 천장만을 찍는 게 아니라, 옷가지 생필품 등도 함께 찍었다.

또 신고가 들어갈 소지가 컸기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됐나?”

마지막 층은 들어가지 못했다. 그쪽은 아예 막아 놓아서 시도조차 하기 힘들었다.

“5층이 식당이었지. 거기가 문제가 돼서 막게 되고, 거기부터 무너져 내렸다 들은 거 같은데. 어찌한다.”

5층만 촬영이 가능하다면 사람들도 위험성을 인지하고 피하게 될 터다. 지금과 같은 잔금들 사진은 큰 효력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러는 건, 사람들에게 위험성을 알리기 위함이다.

천명의 사상자를 5백으로 줄인다면, 그것만도 성공이라 생각했다.

삼풍 백화점이 문 닫으면 좋은 거고.

“안 되겠어. 역시 5층을 찍어야 해.”

여기서 물러날까 싶었지만, 역시 포기하지 못하겠다. 지금 내가 있는 위치는 4층.

적당히 숨어 있을 곳이 있나 찾아봤다.

-4층 문화, 가정용품, 혼수용품

시야를 확장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윽!”

갑자기 머리가 띵하다. 현기증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도둑이었다. 내가 자수하지 않았다면, 경찰은 날 잡지 못했을 터다.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시작했다. 시작은 단순히 먹을 것과 생필품만을 노렸다.

-내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괴도 루팡을 따라 하고 나서다. 소설 속의 인물이나, 나는 그를 동경했다.

-나는 그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도둑이지만 신사였고 사기꾼에 모험가였다. 재벌 가문의 수행원이 되어 그들의 면면을 살피며, 제2의 괴도의 길로 들어섰다.

-꿈을 이뤘다. 내가 훔치지 못하는 건 없었다. 지루했다. 그래서 다른 걸 해보기로 했다. 탈옥. 최고의 마술이자, 도둑의 꽃이라 생각했다.

-탈옥을 성공하던 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짜릿함.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더는 이 사회에 미련이 없어졌다.

“··· 어째서 이런 일이.”

타인의 기억이 내게 전이됐다. 나이되 내가 아닌 감각.

이 감각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한데, 또 낯설지가 않았다.

원래부터 내 것이었다는 듯, 나와 하나가 됐다.

[그냥 보낼 수 없어, 내 작은 선물을 보내네.]

“설마···”

문득 어르신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스쳐 갔다. 선물이라는 것이 설마 이런 것인가?

가만. 그러고 보니.

아···

난 그제야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단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시절은 1997년 겨울.

한데, 내 머릿속에 자리한 기억들은 훨씬 앞선 미래로 흘러갔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까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겠어.”

삼풍 백화점이 붕괴되기까지 아직 여유가 있었다.

급하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주변을 냉정한 시선으로 살폈다.

“모텔로 간다.”

백화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무척 멀다. 그래서 장소를 집이 아닌 모텔로 정했다.

난 곧장 모텔로 향했다.

발걸음이 전보다 빨라지고 가벼워졌다.

“방 하나 주세요. 잠시 쉬고 갈 겁니다.”

모텔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걸렸다. 난 방을 잡고 침대 위에 앉았다.

“후— 만약 이게 진짜라면, 완전 대박이야. 그냥 불편하지 않게 살다 가자 가 목표였는데··· 이거라면···”

사업으로 시작해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했지만.

피는 바뀌지 않았나 보다. 접었던 목표가 우상향이 되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감았다.

두근거리던 심장이 잠잠하게 변했다.

외환위기, 카드대란, IT버블, 피씨 게임, 메신저, 코로나 바이러스···

1997년의 끝나던 기억이 2000년대 이상으로 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장칠성이란 괴짜 도둑까지··· 정말 엄청나잖아.”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억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시점. 내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너무도 엽기적인 일에, 소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어르신은 어째서 내게 이런 걸 준 거지.”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국밥 한 그릇,

당시 굶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리 큰 선행도 아니었다. 목숨을 구해준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한 번쯤 걸음을 멈춰 줄 수 있는 작은 호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르신은 내게 귀한 선물을 주셨다.

이 기억들이라면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데, 그 인물들의 기억은 언제 나타나는 거지?”

다른 건 거부감없이 받아들였지만, 장칠성처럼 전문가의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의 기억을 받아들이는 순간, 손과 발의 감각이 확 달라졌다.

그때 느꼈던 기분이란, 술에 취한 상태로 잠에 빠져드는 기분과 같았다.

“음.”

만약 이런 일까지 겹친다면, 그야말로 천하무적. 금상첨화 아닐까?

“상황을 냉정하게 봤을 때, 그때 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에 몰두했어. 그러다 머리가 핑 돌았지. 그걸 보자면···”

아무래도 사건과 맞물렸을 때, 관련된 이의 기억이 내게 들어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이론은 확실해. 그럼 그 다음에도 어떤 상황에 부딪히면 또 다른 이의 기억이 자리를 잡을지도 몰라.”

마치 빙의 되는 이 느낌.

썩 나쁘지 않다.

“정리는 이쯤하고. 이거라면···”

세상의 부를 훔치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불법이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말이다.

미래를 안다는 건, 그런 거다.

‘게다가 내게는 한 분야의 천재들의 기억각성이 있어. 세상의 부를 훔치지 못할 것도 없지. 충분히 가능해.’

잠잠하던 심장이 다시 떨렸다. 진한 흥분감이 정신을 사로잡았다.

이 기분 너무 좋다.

“기다려라. 이 일만 마무리 짓고, 세상의 부를 가져주마.”

내 꿈이 급성장했다. 난 이 일을 마무리 짓고 미국으로 떠날 거다. 내 사업자금을 만들기 위해서.

“후딱 끝내자.”

단순히 시위로 시작해 아는 지인을 통해 방송에 노출시키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직접 증거를 확보해, 삼풍 백화점을 문 닫게 만들기로 말이다.

***

영업 마감까지 30분 정도 남은 상황.

“혼수용품점으로 가자. 거기가 사람들 시선을 피해 숨어 있기 좋아. 5층으로 가는 동선도 짧고. 여차하면 탈출도 가능하고.”

아침에 미리 봐 둔 백화점의 동선을 떠올렸다.

심지어 화장실까지의 거리도 가까웠다. 최적의 장소였다.

“사진을 찍자. 그리고 퍼트린다.”

이게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몰고 올지는 잘 모른다. 모든 건 하늘에 맡길 뿐이다.

그럼에도 막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난 할 만큼 했다.

“모두 밖으로 내보내. 영업 종료!”

멀리서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미리 봐 둔 장소에 몸을 숨겼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밝은 복장에서 어두운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따닥.

주변이 암전돼, 어둠이 내려앉았다.

랜턴을 들고 돌아다니는 관계자들이 사라질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렸다.

째깍째깍.

12시 자정이 되는 시점.

“그럼 슬슬 올라가 볼까.”

숨겼던 몸을 빼냈다. 얼굴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어둠과 동화됐다.

가볍고 빠른 몸놀림. 장칠성의 능력이 시전됐다.

“이제 작업 시작이다.”

나의 첫 도둑질··· 임파서블(Impossible)이 시작됐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향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