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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재벌 강림하다-2화 (2/145)

2화

#다시 시작

이 목소리는 대체?!

매우 낯이 익은 목소리다. 잊고 싶어도 이상하게 잊히지 않았던 그 목소리.

-내 좋은 일자를 뽑아 주겠네. 그때 복권을 한다면 좋은 일이 있을 게야.

“어르신은 그때… 그…”

[기억하는가? 허허.]

인자하게 웃는 저 얼굴,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덕분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난 거짓말을 했다. 어르신께 실망을 드리기 죄스러운 마음에서다.

[눈빛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데, 정말로 행복했는가?]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저 눈빛. 이유는 모르지만, 저 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과거가 어르신에게 낱낱이 파헤쳐지는 기분이다.

죽은 몸이지만 얼굴이 괜히 화끈거렸다.

[자네의 과거를 지켜봤네.]

“네에?!”

내 과거를 지켜봤다고? 정말로 내 눈을 통해 내 기억을 봤다는 소리인가?

[불쌍한지고.]

[그래도 자네의 심성이 변하지 않아 다행이야. 나 같은 노인들을 챙겨주는 자네의 마음씨에 크게 감복했네. 아직도 난 내게 건네어 준 그 국밥 맛을 잊지 못한다네.]

“그건 누구라도 했을 행동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하고 계시다니.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길거리에 앉아 배를 곯고 계시던 모습에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가진 전 재산을 털어 국밥을 대접한 적이 있다. 그저 작은 호의에 지나지 않았다.

어르신은 아직도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계셨다.

비록 자살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했지만, 마음이 뿌듯했다.

‘그래,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

자살은 자살이고, 이건 이거다.

후회로 가득하던 과거,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래서는 안 되지. 포기하지 말게. 자네의 그릇은 결코 작지 않아.]

“어르신 절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정말이다. 이제 나는 이승이 아닌 저승에 살아갈 사람. 더는 과거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허허. 내가 사람을 잘 봤음이야.]

“아닙니다. 전 어르신이 생각하는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전…”

[아니네. 아니야. 자넨 어떤 누구보다 훌륭하네. 그저 자네의 운이 거기서 끝났을 뿐이니.]

“……”

[다시 살아 볼 생각 없는가?]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삽니까? 그리고 더는 이승에 미련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욕심 속에서 경쟁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매일이 투쟁의 연속이다. 그런 생활은 이제는 지쳤다.

편히 쉬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하다.

[다시 살게. 다시 살아서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아니 대체 왜…”

잘 모르겠다. 다시 살 수 있다는 말보다, 내게 너무 잘 해주는 어르신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국밥 한 그릇이 별거라고,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지…

“죽다 살아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윽.”

그때였다. 머리가 핑 돌며, 눈앞이 흐릿하게 변해갔다.

[부탁하네. 내 부탁은…]

귀도 먹먹하다.

[국밥 한 그릇 챙겨주게.]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르신의 말은 너무도 또렷하게 들려왔다. 정확히는 귀가 아닌 머릿속으로 기억이 봇물처럼 파고든다는 점이다.

“머, 머리가… 윽!”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기억들이 해일이 되어 내 머릿속을 덮쳤다.

외환위기, 카드대란, IT, 핸드폰, 비트코인 등 알 수 없는 것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리고 죽었던 과거 인물들의 기억까지.

껍데기는 나이지만, 속은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기억으로 도배되었다.

미래 기억. 전문가들의 기억. 그 사람들이 살아온 일생이 내게 기록됐다.

[그냥 보낼 수 없어, 내 작은 선물을 보내네.]

[잘 가게. 내 몫까지 잘 살아 주게. 고맙네.]

어르신의 음성은 거기서 끝났다.

내 기억도 거기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

“으악!”

식은땀이 전신을 적셨다. 흐릿하던 시선이 또렷이 변했다.

“저승이구나. 그렇지 내가 다시 살아날 일 없지.”

어르신과의 만남은 죽으면 꾼다는 임종몽일 확률이 높다.

“응?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공간인데?!”

눈에 낯익은 물건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막 눈을 떠 잘 보이지 않았는데, 눈은 곧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시력이 완전히 돌아왔다.

“뭐지?!”

이부자리, 서랍장, 달력, TV 그리고… 응?! 이건.

“또또복권?!”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구입해 놓아둔 복권용지다. 그런데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죽으면 내 물건들도 같이 넘어오는 건가?

“저승이라고 막 무서운 곳은 아니구나. 이것도 나쁘지 않네. 그때 일이 떠오르네. 참 좋았지.”

살아있을 적 내 집 구조와 똑 닮아 있는 방안.

나는 그때처럼 이불 위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켰다.

-… 오늘의 당첨자가 누가 될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이승에서 봤던 MC가 나와 콩트를 하며, 추첨 준비를 했다.

곧 익숙한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익숙한 멘트가 들려왔다.

“오, 시작한다.”

이 장면을 어떻게 잊나? 그때 이후 몇 번이고 꿈속에 나타나,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는데.

-2, 4, 1, 3, 0, 8, 9

-일 단위 9번 축하합니다!

“진짜 같네. 뭐 이리 생생해.”

너무 생생하게 방송돼 소름마저 끼쳤다. 죽었는데, 이런 기분이라니. 거참.

이상한 기분이 드네.

“바깥도 이승과 같으려나? 아무래도 내 기억을 이용한 듯싶은데.”

날짜도 같고, 벌어지는 사건도 같다.

그 말은 내 기억을 기초 삼아 주변 환경이 결정된다는 의미였다.

약간은 기대 가득한 심정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와, 대박이네. 이럴 수가 있나? 이 정도면 죽어도 괜찮은데?”

정말 기막히도록 죽기 전 배경과 똑같다. 심지어 디테일까지 살렸다.

“형, 팽이 쳐요!”

그때도 저놈이 달려와 팽이를 치자고 졸랐지.

물론, 난 급한 마음에.

“싫어. 형은 바쁘다.”

거절했다. 이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고자 했으니까.

“아니지. 여기서 멈추자…”

부모님을 떠올리자, 너무 죄스러웠다. 끝내 효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불효만 저지르다 목숨을 끊었다.

무척 나약한 마음을 가진 놈이었다. 나란 놈.

“다시 돌아가자.”

걸음을 돌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기분 참 묘하네. 왜 이리 진짜 같지?”

이틀이 지났다. 세상이 내가 살아오던 세상과 매우 흡사했다. 모두가 살아있다는 듯이 움직였고, 무엇보다 시간마다 배가 고팠다.

꼬르륵. ‘귀신이 뭔 밥이냐?’ 무시했는데, 하루 정도 굶고 보니 무지 배고팠다.

자글자글, 덕분에 라면 한 봉지를 끓여 먹고 있다.

후르릅.

“맛나네. 허. 귀신도 맛을 보네. 이래서 제사상을 그리 풍족하게 차리는 거였나?”

제사를 지내면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가 있는다. 그때 귀신이 들어와 식사를 하고 간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좋아할 음식들로 잘 준비할 걸 그랬다.

“배도 찼으니, 당첨금이나 바꾸러 가자.”

난 기억을 떠올려 택시를 타고 은행으로 향했다.

딱히 할 일도 없지만, 귀신도 배가 고프다는 걸 알았기에 돈이 필요했다.

귀신이 되면서까지 일하는 건 거부한다.

이제 편하게 살 거다.

“축하드립니다. 김정수 씨.”

“아, 네.”

3억 원이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기타소득세와 지방소득세를 제외한 2억 3400만 원이 통장에 찍혔다.

“거참.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기분이 참 묘하다. 귀신이 복권 당첨금 수령이나 하고. 이승에 있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웃을지 몰랐다.

귀신도 복권해 먹고 산다고. 크크.

“그래도 돈이 있으니 든든하네.”

역시 돈은 위대하다. 귀신도 감복하게 만들 정도로.

세속에서 벗어나 살고 싶지만, 역시 이 맛을 잊을 수 없다.

“이리된 거 먹을 거나 챙겨 볼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모처럼 맛있는 걸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정수 총각 왔네. 뭐 줄까?”

아줌마가 반갑게 맞이한다. 그랬지. 이 집이 내 단골집이다. 내 입맛에 가장 잘 맞고, 내게 있어 맛집이다.

“해물파전 하나만 주세요. 막걸리 두 병 주시고요.”

해물 가득한 파전은 내게 있어 최고의 음식이요, 삶의… 아니지. 귀신의 낙이었다.

막걸리는 덤이고.

“좀만 기다려. 맛있게 해줄게.”

“진짜 현생 같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모르겠네.”

주인아줌마가 메뉴를 만드는 동안, 난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겉으로는 평온한 척했지만, 무척 혼란스러웠다.

-삼풍백화점 다음 달 휴가철을 앞두고 물놀이 기구 등 휴가 용품 실속 상품전을 실시—

“라디오도 나오고. 디테일 대박이네. 그런데 삼풍이라… 흠.”

우리나라 역대 큰 사건을 일으킨 집단. 회장은 살인자임에도, 자신의 재산이 날아간 걸 먼저 생각했다.

“저 늙은이도 참 어지간해. 그거 몇 푼 아낀다고 더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만들 때 제대로 좀 하지. 쯧쯧.”

삼풍 백화점은 곧 무너진다. 부실공사로 인하여.

붕괴는 건설 직전부터 예고된 사고였다.

“정수 총각. 다 됐어.”

타이밍 좋게도 파전이 노릇하게 익어 포장돼 나왔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삼풍 백화점 소식을 뒤로하고, 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조개싸움을 하는 아이들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크, 이 맛이지.”

나무젓가락으로 길게 찢어 한입 베어 물었다. 막걸리와 어우러지는 파전의 맛은 일품이었다.

“그런데, … 정말로 난 귀신일까?”

눈을 뜨고 하루가 지나고부터 드는 의문들이다. 나는 정말로 귀신일까?

사람들과 손을 만지면 감촉이 느껴지고, 지금처럼 음식을 먹을 때면 뜨거움과 맛을 느꼈다.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고 머리가 띵하다.

이게 내가 드는 의문점들이다.

[다시 살게. 다시 살아서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머릿속을 스치는 어르신의 말씀.

[국밥 한 그릇 챙겨주게.]

이 말들이 내 머릿속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혹… 시…”

에이, 설마. 그런 일이 내게 벌어질 수가…

“하지만…”

이쯤 되니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내 실수들을 만회하고 좀 더 멋진 삶을 살고 싶었다.

“확인할 필요가 있어. 내 머릿속에 자리한 남의 기억들… 이게 그냥 내게 있을 리 없잖아.”

의심이 들면서도 다시 세상으로 나간다는 무서운 생각에 회피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난 살아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것도 과거로 회귀한 사람으로.

“확인하자.”

접시 위에 작은 칼이 눈에 들어왔다.

“귀신이 살에서 피가 날 리 없겠지.”

그래, 귀신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인생 첫 자해다.

“으…”

칼의 날카로운 부위를 손가락 끝에 가져갔다. 피부를 타고 밀려오는 따가움. 날카로운 날붙이는 이내 피부를 뚫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뚝. 뚝.

“… 이럴 수가. 나 설마.”

손가락에서 핏방울이 맺혀 바닥에 떨어졌다. 방바닥에는 붉은 핏방울이 떨어져 내가 귀신이 아닌 진짜 사람임을 증명했다.

“판타지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내게 일어났다고…?!”

아픔은 꿈이 아니라 말해줬고, 붉은 피는 귀신이 아닌 사람임을 확인해 주었다. 나는 멍하니 달력을 바라봤다.

“그렇다는 소리는 삼풍 백화점이 다시 무너진다는 소리잖아.”

난 멍하니 삼풍백화점 앞에서 찍었던 내 사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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