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1등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인데요? 오늘의 행운을 거머쥘 당첨자가 누구일지 무척 기대됩니다.
-박미라 씨도 세 장을 가지고 있다죠? 하하. 사실 저도 한 장 가지고 있습니다.
오른손에 들려 있는 복권을 꼭 잡고 기도했다.
MC들의 잡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자, 그럼 준비하시고 쏘세요!
그러길 잠시.
툭! 툭! 툭!
MC의 신호에 화살들이 순차적으로 날아가 과녁에 꽂혔다. 예쁜 여자들의 미모는 그저 배경.
내 시야는 오로지 번호에 집중됐다.
“제발…”
-백십만 단위 2 4
-만 단위 1
“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숫자가 맞아떨어졌다.
-천 단위 3
-백 단위 0
“서, 설마…”
나는 귀를 열고 시선을 아래로 가져갔다.
-2, 4, 1, 3, 0, 8, 9
백 단위까지 틀리지 않고 맞은 상태. 심장이 마구 떨렸다.
-십 단위 8
-일 단위 9번 축하합니다!
“돼, 돼…”
-넌 너무 이상적이야 네 눈빛만 보고 네게 먼저 말 걸어 줄 그런 여자는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자자의 버스 안에서 노래가 들려오지만, 뒷전이 되어버렸다. 정확히는 그곳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눈이 한곳에서 떠날 줄 몰랐다.
“돼, 됐다. 3억… 3억이다!”
꿈은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내 꿈이 이뤄졌다.
가난에 쪼들려 살아온 인생. 단번에 인생역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됐다고. 큭큭.”
눈에서 눈물이 났다. 대물림으로 이어지던 가난을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복권은 내게 기회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수그려 절을 했다. 내게 행운을 건네준 어르신께 감사의 절을 올렸다.
-내 좋은 일자를 뽑아 주겠네. 그때 복권을 한다면 좋은 일이 있을 게야.
그 꿈이 아니었다면, 이런 행운은 내게 오지 않았을 터다.
“이제 나도 부자라고!”
내 인생은 바뀌었다. 복권이라는 거대한 행운을 안아 들고 더 큰돈을 벌기 위하여 도매상에 뛰어들었다. 풍족한 자본금은 내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것만 성공하면 우리 세 식구 풍족하게 살 수 있어.”
그동안 실패 없이 안정적인 사업을 이어온 난 자신했다.
이번에도 내 운은 돈 길을 걷게 해주리라고.
“진영이 아빠, 그러지 말고. 우리 그냥 이대로 살아요. 네?”
그 말을 들었어야 했다. 꼭 들었어야 했는데.
1997년 5월.
“마, 말도 안 돼.”
안전할 거라 믿었던 기업이 무너졌다. 들고 있는 어음이 휴지보다 못한 가치로 전락했다.
“내, 내 돈. 내 돈! 그게 어떤 돈인데!!”
길거리에는 부랑자들로 가득했다. 집회, 시위자들도 무더기로 보인다. 그들은 외쳤다.
돈을 돌려 달라고. 정부는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지만 우리는 어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1997년 11월 어느 날.
내가 들고 있던 종목들이 상장폐지를 당했다. 유일하게 믿고 버텨오던 동아줄이 끊어져 버렸다.
“개새끼들…”
-정부에서 긴급 IMF 구제금융신청을 했습니다. 정부는 약 550억 달러를 요청했으며, IMF 210억 달러, IBRD 세계은행이 100억 달러, ADB아시아 개발은행이 40억 달러 등 국제기구에서 350억 달러를 지원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정부의 늦은 대처는 많은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모든 빚은 기업이 아닌 개인이 짊어지게 됐다. 갚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딴 걸 해서 내게 뭔 도움이 된다고… 큭.”
매일같이 찾아오는 빚 독촉. 결국 난 이혼을 했고, 도망을 다녀야 했다. 수중에 남은 건 소주 두 병과 담배 하나.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이 다였다.
“조상님 죄송합니다. 제게 살 기회를 주셨는데, 제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 모양이 됐습니다. 많이 꾸짖어 주십쇼. 달게 받겠습니다.”
입에 물린 담배 불씨가 꺼졌다. 내 수명이 끊어질 시간임을 알리듯.
꿀꺽꿀꺽.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비우고, 몸을 일으켰다. 아래를 내려봤다. 검은빛을 반사하는 한강 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으로 뛰어들면 무척 차가울 거라 짐작됐다.
내게 어울리는 죽음일지 모르겠다.
“이제 마지막인가.”
주머니에서 남은 소주병을 달이 있는 방향으로 들었다.
“잘 있거라. 대한민국.”
이 한마디가 끝이었다. 더는 난 이 대한민국의 사람이 아니게 됐다. 휘청거리며 내디딘 내 한걸음은 차가운 한강과 하나가 됐다.
아무도 찾지 않을 그곳으로 내 인생은 종료됐다.
내 정신은 암전해 들어갔다.
[일어나게. 젊은이.]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때 들었던 어르신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