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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8화 〉 238화­빛과 그림자(2) (238/239)

〈 238화 〉 238화­빛과 그림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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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에 대해 누군가는 코인판에 들어와 난장을 까고 다니는 악적이라고 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화성으로 인류를 데려가줄 프론티어라고도 말할 정도로 그에 대한 평가는 가진 바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하지만 제프는 전세계의 기업가 중에서도 지구 환경 문제와 폭발적인 인구 증가, 식량 부족으로 인한 인류의 종말을 우려하는 몇 안되는 기업가이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그의 걱정은 사업을 시작한 이유라고 과언이 아니었다.

“저희 더스트 사에서 보유한 기술을 가지고 우주선을 만든다면 그저 사람을 화성으로 데려갔다 데려오는 라운드 트립 버스 수준이 아니라 현지에 정착해 화성을 인류의 새로운 터전으로 만들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하하하, 사람들이 나보고 허황되다고 말하곤 하는데 미스터 리는 더 허황된 것 같군요. 당신의 말이 실현이 되어 화성을 인류의 새로운 터전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화성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나마 테라포밍을 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수적일 겁니다. 당신이 하는 말의 의미는 알고 말하는 건가요?”

나의 말을 들은 그는 코웃음을 치며 농담이 지나치다고 했지만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진지하게 그를 쳐다보자 제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진담입니까?”

“굳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농담을 하자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보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당신을 만나러 아인슈타인 사에 왔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엘리스, 그것 좀 가져다 줘.”

둘만 앉아 있는 공간에서 내가 엘리스를 부르자 제프는 누구한테 말하는 건가 싶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내 앞으로 돌린 순간에 이미 엘리스는 내 옆에 서서 꽤나 두꺼운 부피를 가진 듀랄루민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지금 이거 마술쇼인가요?”

문이 열린 적도 없는 그의 회장실에 엘리스가 발걸음 소리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자 제프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벽에 걸린 예술작품을 한동안 쳐다보다 당황해하던 그가 날 쳐다보고 있음을 느끼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안에 더스트에서 만든 물건이 들어있습니다. 이 물건이 무엇인지 한번 잘 알아보세요. 디스플레이에 112 97 110 100 111 114 97를 순서대로 입력하면 열릴 겁니다. 잘 기억하세요. 112 97 110 100 111 114 97. ”

제프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정후를 바라보며 정후가 다시 한번 더 불러주는 번호를 잊으면 안된다는 듯이 되뇌었다.

“이제 가는 거야, 아저씨?”

“전할 말은 다 했으니까. 가자.”

멍해져 있는 제프에게 둘이 인사를 하고 회장실에 있는 테이블 위에 케이스를 올려놓은 뒤 나와 엘리스가 함께 회장실 밖으로 나오자 의자에 앉아 있던 비서는 들어간 적도 없는 엘리스를 쳐다보며 제프와 비슷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녀에게 엘리스는 아주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 계세요~ 비서님, 이건 제 명함이에요.”

제프는 지금 저 문을 열고 나간 두 사람이 방금 전 자기 눈앞에서 뭘 했는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약을 한 것도 아닌데 멍해져 있다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찾았다.

“분명히 상자가 내 눈앞에 있군.”

열린 문을 닫던 비서는 제프와 눈이 마주치자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 두 사람이 회사를 떠났다는 사실을 전했다.

“회장실 밖으로 나간 사람이 정확히 두 사람 맞습니까?”

제프의 질문을 들은 비서는 당연히 둘이었다고 대답을 했다가 이내 제프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갔던 것은 한명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네! 어? 저기...음...그게...네. 더스트 사의 대표님과 그 누구셨더라...옆에 계신 분은 CTO 엘리스라고...”

대답을 하던 중 아직도 자신의 손에 있는 명함을 보며 최고기술책임자를 나타내는 CTO라는 직함 옆에 적혀 있던 엘리스라는 이름을 마치 글을 배운지 얼마 안된 사람처럼 천천히 읽어냈다.

평상시 그 도도한 느낌은 온데간데 없이 빙구미마저 풍기는 자신의 비서를 지켜보자 제프는 말도 없이 나타난 엘리스를 바라보던 자신의 표정도 저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걸어와 비서의 손에 들린 명함을 건네받고는 동질감을 느낀 비서에게 하던 일을 하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윽고 문이 닫히고 나서도 비서는 아까 전의 상황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분명 회장님과 손님 둘이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갔는데...문이 다시 열리니까 셋? 응? 왜 셋이지?”

30명도 아니고 고작 셋밖에 안되는 숫자를 자신이 못 샜던 것인지 아니면 분명 둘의 뒤를 따라오는 여자가 있었는데 자신이 못 알아차린 것인지를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분명 회장실로 들어간 것은 둘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의문은 하루 종일 그녀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일과를 마친 뒤 퇴근하기 전에 혼자 들어왔다 둘이 되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찍힌 회사 정문의 CCTV를 확인하고 나선 더욱 아리송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하루가 기묘함으로 가득찰 것인지를 예상하지 못한 제프는 회장실 안에서 CTO 엘리스라고 찍힌 명함과 듀랄루민 케이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머리에 수없이 많은 생각이 가득해졌다.

“112 97 110 100 111 114 97라...”

혹시 잊어먹을까 싶어 회장실 문을 닫자마자 메모장에 옮겨적은 숫자를 천천히 듀랄루민 케이스의 디스플레이에 입력하자 디스플레이에는 “확인”과 “취소” 버튼이 떠올랐다.

확인 버튼을 눌러서 상자를 여는 것이 맞나 살짝 두려움이 들 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문득 회장실 벽면에 걸려 있는 아스키코드를 바탕으로 만든 추상적인 예술작품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갔다. 예술작품에 적힌 아스키코드에는 숫자 옆에 알파벳들이 적혀 있었다. 메모장에 적힌 숫자와 이를 대조하여 만들어낸 알파벳들은 하나의 단어가 되어 있었다.

“P­A­N­D­O­R­A? 판도라? 이게 판도라의 상자란 말인가.”

제프는 정후라는 남자의 감각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선 여러 가지 스토리가 존재했지만 제프의 뇌리에는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전승이 떠올랐다.

제우스는 매력적인 여성인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에게 상자와 함께 선물로 주었다. 다만 판도라에게는 상자를 열어선 안된다는 경고와 함께 ‘호기심’이란 선물이자 저주를 내렸고 판도라는 결국 호기심을 참다 참다 이기지 못해 상자를 열어버린다. 열어젖힌 상자는 사실 인간에게 감히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복하기 위해 제우스가 숨겨놓은 심판이었기에 인간의 세상에는 온갖 나쁜 것이 퍼지고 희망만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 그 전승의 내용이었다.

제프는 본인이 상자를 여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지 꽤 오래 고민했지만 자신 역시 판도라와 다를 바 없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후가 알려준 번호를 입력한 뒤 다시 확인 버튼을 눌러버렸다.

“폭탄은 아니겠지?”

확인 버튼을 누르고 제프가 중얼거린 순간 상자가 로봇처럼 형태를 바꾸며 움직인 덕분에 제프는 깜짝 놀라며 잠시 두 팔로 자신을 가리고선 상자로부터 등을 돌리고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폭탄인가 싶어 놀랐던 제프의 생각과 다르게 상자는 어떤 기계장치처럼 변해 있었다.

“이게 뭐지?”

제프가 회사의 핵심 연구원들과 함께 정후가 남겨놓고 간 기계를 분석하고 분석한 결과 알게 된 것은 정후가 주고 간 기계가 산소를 발생시키며 주변의 대기 상태를 지구의 상태와 유사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완전히 진공 상태에 내버려 두어도 이 기계가 지구와 동일한 대기를 구성하도록 변화시킨다는 말인가?”

“이 기계가 정확한 어떤 메커니즘을 따라서 그런 효과를 발생시키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전혀 알 수 없으나 어떤 에너지를 제공하지 않음에도 알아서 기계 혼자서 말씀드린 효과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온도를 높여도 아무리 온도를 낮춰도 이 장치는 동일하게 대기 상태를 변화시킵니다.”

기실 이 장치의 능력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연구원들이 분석해서 알아낸 것은 아니었고 우연히도 연구원 중 하나가 실수로 에어컨을 껐음에도 변수를 줄이기 위해 격리되어 있는 공간이 유난히도 더운 날씨인데도 습하거나 더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발견한 것이었다. 이 장치의 기능에 대해서 알게 된 이들이 이후로 갖가지 검사를 진행했지만 장치에 대해 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기능 하나뿐이었다. 이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에너지원을 사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메커니즘이 적용되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분해를 하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 투과를 해도 내부가 보이질 않아 분해를 했을 때 다시 재기능하도록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자신들 앞에 놓인 장치는 자신들이 가진 기술로는 분해를 하려고 해도 분해할 방법이 없었다.

연구원들이 진행한 실험의 결과가 정리되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불명으로 채워진 리포트를 찬찬히 읽어보던 제프는 그제서야 정후가 가져온 물건이 진짜 테라포밍을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 중의 하나라는 것 정도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한편 섀넌은 정후가 제프에게 어떤 장치를 전해주기만 하고 제프를 딱히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납득이 안 가 정후에게 물었다.

“정후 씨, 난 이해가 잘 안 가는데. 그에게 어떤 설명도 하지 않고 더스트 사의 편으로 합류하라는 설득도 없이 어떻게 그를 우리 편에 서도록 만들어? 비건팩토리의 샤이어 박사 때는 안 그랬잖아.”

“섀넌, 사람마다 다르잖아. 그는 그렇게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게 엘리스의 분석 결과였고, 제프는 이게 효율적이라는 게 엘리스의 결론이었거든.”

“왜?”

내가 대답해주려고 했는데 쥬스를 따라 마시기 위해 거실로 나온 엘리스가 섀넌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지가 똑똑한 줄 아는 사람은 남의 말을 듣고 곧이곧대로 믿질 않거든. 그러니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아저씨 입만 아플 것이 뻔하고. 비싸디 비싼 아이슈타인 사를 굳이 생돈 주고 괜히 인수합병하자니 돈 낭비잖아? 그럼 남는 건 하나지. 지 머리로 생각해서 결론을 내리도록 유도를 하는 거. 그리고. 꿀꺽”

“그리고? 너?”

엘리스가 쥬스 병을 열어 입을 대고 마시자 이를 지켜보던 섀넌은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너! 내가 병에 입 대고 마시지 말라고 했지. 잔에 따라 마시라니까!”

“응?”

엘리스는 얄밉게도 섀넌을 향해 빈병을 흔들어 보였다.

“잔에 따라 마시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함께 마실 거니까 그런 거 아니야? 다 마셨는데?”

“아니! 그래도! 기본적인 매너라는 게...”

“아아, 네네~ 그래서 뒤는 안 궁금해?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그리고까지 말했지. 엘리스.”

섀넌의 양 어깨를 붙잡고 진정시키며 엘리스가 마지막으로 말한 부분을 내가 짚어주자 섀넌도 뒷 부분이 궁금했는지 엘리스에게 하던 말은 마무리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예전에 그랬잖아. 사람들에게 뭔가를 하게 만들고자 할 땐 그 일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대단한지와 같은 것들을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그 일을 하고 싶게 호기심을 품게 하고 스스로 참여하게 만들라고.”

“그랬지.”

“그는 스스로를 설득시켜 우리의 앞에 나타나게 될 거야.”

“니가 준 장치가 뭔데?”

“뭐긴. 테라포밍이 가능한 데모버젼 장치지.”

““뭐?””

엘리스의 대답을 들은 둘의 입에서 경악이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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