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 237화빛과 그림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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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P.I.B의 크로노스피어를 훔쳐간 것들이 지금 더스트의 그것들이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P.I.B의 헤드 4인방 중에서 정후와 엘리스에 의해 공포를 맛보았던 루아르와 헤터는 서서히 공포심이 가라앉고 나자 공포심이 분노로 변해버렸다. 평생을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인정만 받아오다가 막대한 무력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던 자신들의 모습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 모욕감을 되갚아 주고 싶었고 죽여서 세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하하, 어디 숨지도 않고 이렇게 대놓고 활동을 하고 있다니. 이 무슨 광오한 자신감이야?”
“헤터 진정해...”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진정하게 생겼냐고! 죽여도 시원찮을 그 잡것들이 저렇게 다니고 있잖아. 그리고 이 사진 보여?”
헤터가 집어던진 사진에는 엘리스가 크로노스피어를 목걸이로 삼아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이 정확히 포착되어 있었다.
“P.I.B의 자산이야. 다른 녀석들이야 그때 그 녀석들이 보인 기이한 힘에 짓눌려 공포에 질렸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지. 너도 그렇잖아. 루아르. 안 그래?”
“맞아.”
매드 헤터라는 별명에 걸맞게 헤터가 옆에서 루아르를 들쑤시자 차갑게만 보이는 루아르의 눈빛에도 살심이 스쳐 지나갔다.
‘날 건드리고 여태껏 멀쩡히 살아남은 놈들은 없었어.’
중학교 시절 공부만 잘한다면서 작은 자신을 모욕하고 괴롭혔던 녀석들은 하나같이 폐인이 되어 있거나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모두 루아르가 자신의 과거를 영광으로 채색하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하지?”
“오!~ 루아르. 굳이 우리가 열심히 달려들 필요도 없을 것 같지 않아?”
P.I.B의 부하들이 열심히 조사해놓은 리포트에 따르면 더스트로 인해 물 먹은 기업들과 CEO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많이도 건드려놨군. 코인으로 재미보고 있던 중국 삼합회랑 곡물 기업 차질, 전기 자동차 업체인 퓨처 모터스와 아인슈타인, 알파구 연구하던 딥하트, 세상을 구할 청과상 비건 팩토리까지?”
“듣자하니 차질 회장과 전기톱 잭은 회장실에서 발광을 할 정도였다더라고. 이 상어떼에게 빌어먹을 세마리의 신상과 위치를 던져주자고. 피 냄새를 풍기면 알아서 물어뜯지 않겠어?”
“호오. 상상만 해도 재밌겠는걸.”
“우리는 먹잇감이 적당히 피가 튀고 무력해졌을 때 가장 맛있는 부위만 맛 보는 거야. 굳이 우리가 먼저 애써서 먹잇감의 힘을 빼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이 말이야.”
“어느 나라에선 헤터 니가 말한 계책을 이이제이(????)라고 하지.”
“니 모국? 칭챙총들이 득시글거리는 나라 말인가? 크크큭.”
“내 모국(?國)은 차이나 따위가 아니라 대국 프랑스야. 말 조심해. 내 피를 이루는 붉은 것은 무지한 자들을 현혹하여 그 고혈을 빨아먹는 공산당과 아무련 관련 없는 프랑스의 질 좋은 와인이야.”
“워워. 진정해. 농담이라고. 농담. 왜 이렇게 흥분하나? 흐크큭. 너무 흥분하면 정곡을 찔린 걸로 착각한다고~”
“...”
루아르는 한편인 자신에게도 이빨을 드러내는 미친 녀석하고 함께 일을 진행하는 것이 맞는지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이게 어디서 온 거지? 모자장수?”
잭 던렙은 뜬금없이 모자장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적인 용도의 스마트폰으로 날아온 메시지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과연 이 내용이 사실이 맞는지 궁금했다.
메시지에는 자신이 그토록 궁금해했던 더스트의 3인방의 사진과 함께 이들이 현재 어디에서 지내고 어디로 오가는지와 같은 정보들이 자세하게 담겨 있었다. 생각을 계속해봐도 누가 보낸 것인지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정보의 진위 자체는 옳은 것 같았다.
“더스트의 모든 개발의 주역은 엘리스라는 여자와 섀넌이라는 여자. 이 둘이라 이건가? 대표라던 이정후는 바지사장이고?”
사진을 모니터로 띄워 한참을 쳐다보던 잭 던렙은 고심을 오래 해봤자 지금 현재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평소처럼 자주 애용하던 용병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는 게 좋겠지. 우선은 정보의 진위 확인부터”
이런 상황은 삼합회라고 다르지 않았다.
“대국의 일에 소국의 것들이 끼어드는 것도 오만방자할 노릇인데 감히 소국의 것이 대국의 일을 그르쳐? 이 정보를 보낸 것이 누구고 왜 삼합회의 방주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 것인지 이유를 알아와라.”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방주들의 명령을 이행하려는 암살단의 수장을 불러세운 삼합회 방주 시저우룬은 한가지 명을 더 내렸다.
“물론 사진 속에 있는 방쯔 두 마리와 양키 한 마리를 되도록 생포해오는 것도 있지 말고.”
“무조건 생포입니까?”
“대국의 품에 들어오겠다는 것까지는 받아주자고. 넓은 아량으로 그 정도는 받아줄 수 있으니. 다만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까지 굳이 품어줄 필요는 없겠지.”
“명을 따르겠습니다.”
“가봐.”
방주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암살단주가 조용히 문 밖으로 빠져 나가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방주들의 모니터들도 자연스럽게 불이 꺼졌다. 시저우룬은 무선으로 조용히 부하를 불러 한가지 명을 추가로 전했다.
“다른 방주들이 알지 못하도록 무조건 죽였다고 알리고 생포해서 내 앞으로 데려와.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은 써먹어야하지 않겠나? 무엇보다 여기 목걸이를 하고 있는 여자애가 마음에 드는군.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시저우룬이 손짓을 하며 축객령을 전하자 부하는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보물이 있는데 나눌 필요는 없겠지. 기대가 되는군.”
차질의 회장은 자신에게 온 메시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이미 수집한 정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걸 내게 보내온 저의(??)가 무엇일 것 같나, 캐서린?”
“회장님의 손을 빌어 상대방을 없애고자 하는 수작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지? 내가 보기에도 그래.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그렇다고 내버려두자니 원숭이 세 마리가 날뛰는 꼴을 참을 수가 없군.”
차질은 세계의 각종 품종을 쥐고 흔드는 기업이었다. 자신의 손짓 한번이면 남아도는 식량들이 바다에 뿌려지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발생했고, 자신의 고개 끄덕임 한번이면 하늘의 은혜와 같이 은총이 난민들에게 뿌려졌다.
“추적을 붙여놓고 가장 진미는 회장님께 가져다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래주겠나. 캐서린?”
“차질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생명체 따위 있을 리가 없지요. 원하시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이 로드.”
“그래. 그럼. 난 미대통령과 지겨운 회동을 위해 또 가보도록 하지.”
더스트의 세명을 향해 악의가 넘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들이 가진 기술에 눈을 반짝이며 호의를 품은 이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엘븐트리에서 저희 비건 팩토리를 인수 합병하고 싶다. 이 말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샤이어 박사님.”
샤이어는 평생 자신이 쌓아올린 업적을 간단하게 뛰어넘은 더스트의 연구 총책임자라는 엘리스라는 소녀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비건 팩토리를 팔라고?’
샤이어가 주변에 풍기는 오라를 통해 어떤 심리 상태인지 파악한 엘리스는 샤이어에 대한 정보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가지 제안을 더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나 해드리고 싶네요.”
“거절할 숭 없는 제안이라...대부처럼 말인가?”
“네.”
엘리스가 꺼낸 제안이란 바로 엘븐트리의 핵심기술. 배양육과 채소 배양기술의 공유였다.
“이걸 내게 알려주겠다고? 엘븐트리의 핵심 자산 아닌가? 도대체 왜?”
‘그거야 당신이 결국 이 기술을 만든 장본인이니까. 도의상 그런 거지.’
엘리스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속내를 까발리진 않았다.
“비건 팩토리의 창립 의지에 대한 존중이자 같은 길을 먼저 걸으신 선구자에 대한 저희 엘븐트리의 성의입니다.”
“진심인가?”
“진심이 아니었다면 굳이 이렇게 거액을 들여서 인수합병을 해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는 비건 팩토리의 주가를 생각해봐도 분명 엘븐트리는 자신과 비건 팩토리 모두에게 호의를 품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인수합병을 제의하면서 제시한 금액은 비건 팩토리의 주가가 최고치를 경신했을 때보다 20% 이상 높은 금액으로 굳이 망할 것이 확실한 비건 팩토리에 이렇게 높은 가격을 제시할 이유가 없었다.
“흐음...”
“비건 팩토리에 속한 연구자들의 노력이 더 큰 빛을 품게 해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저희가 쌓아온 연구결과를 통해 한차원 더 성숙한다면 이는 인류에게 이득입니다.”
“엘븐트리가 아니라 인류에게 이득인가?”
“저희가 판매하고 있는 가격을 생각해보세요.”
분명 그러했다. 이들은 비건 팩토리의 제품보다 약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도 충분했을 상품들을 마진도 한푼 남기지 않고 판매하는 것처럼 덤핑수준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이게 아무래도 나의 인생에서 찾아온 마지막 기회일 것 같군.”
제안서에 사인을 하기 위해 펜을 꺼내 들면서 샤이어는 비건팩토리의 연구자들에게 과연 엘븐트리가 제공할 선진 기술이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감에 들뜨는 기분이 들었다.
“한방 크게 먹었습니다. 이정후 대표.”
“그런가요?”
“저번에 뵈었을 때만 해도 명품 쥬얼리는 파는 업체의 대표셨던 것 같습니다만?”
“지금도 드워브스는 제 것입니다.”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제프 머스크는 드워브스의 대표였던 이정후가 엘븐트리의 모기업인 더스트의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더스트에서 만든 신형 전기차는 다른 전기차에 비해 뛰어난 주행거리와 연비보다 더 대단한 주행성능을 보이며 아인슈타인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목과 허리 그리고 팔목에 차고 있는 드워브스 사의 제품들을 착용한 이후로 항상 과로에 시달리던 자신의 육체는 피로에 찌들었던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무리 이를 역설계하여 자신이 직접 생산해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그저 돈낭비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더스트에서 내놓은 신기술은 연일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머스크, 그대의 꿈은 진실로 무엇인가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정후가 입을 열자 제프 머스크는 이 상황에서도 씨익 웃으며 꿈을 꾸듯 대답했다.
“화성으로 가는 게 진정 그대의 꿈입니까?”
“아인슈타인을 만든 이유도, 코인을 하면서 돈을 벌어들이는 이유도 하나입니다. 지구는 언젠가 배터리처럼 수명을 다하는 날이 올 겁니다. 인류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대안이 화성으로의 이주다?”
“점차 지구에서의 삶은 모두에게 가혹해질 것이라는 건 이미 많은 학자들이 경고를 외치고 있으니 불보듯 뻔하죠. 그러니 새로운 요람을 찾아 건설해야하는 것이 이 시대의 기업가들이 해야할 책임입니다.”
“그대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 일을 하면서 제가 약간의 부를 향유하는 것 정도는 적당한 인센티브인 것 같습니다.”
인센티브라고 표현하기엔 너무나도 막대한 부였으나 제프가 말하는 대로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이어나갈 책임을 하고 있는 이에게 주는 인센티브로 그렇게 과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금액일 수 있었다.
“제프...만약 우리 더스트에 지금 당장이라도 화성으로 우주선을 날려보낼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하하하. 더스트에서요? 그 정도는 이미 NASA에서 이룬 과거에 불과합니다만.”
“제가 말하는 우주선이 과연 고작 그 정도 수준의 우주선일까요?”
이정후가 깍지를 끼며 자신의 턱을 그 위에 얹고 차분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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