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 230화크로노스피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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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까 전만 해도 51구역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던 크로노스피어가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어 51구역의 4인은 이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것은 자신들이 수십년간 연구해온 연구물은 오렌지 주스를 마시는 소녀의 목걸이로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이 집 맛집이네. 쪼옵.”
“아우, 역시 플로리다가 가까워서 그런가. 산지에서 가까우니 오렌지가 싱싱해서 오렌지 주스도 이렇게 맛나네. 쭈웁.”
“섀넌, 여기 네바다주에서 대충 3천km도 넘게 떨어져 있을 플로리다 오렌지를 산지가 가깝다며 신선하다고 하는 건 하는 건 좀 말이 안되지 않아? 쭈웁.”
“자기, 한국에서 플로리다가 가까워? 아니면 네바다에서 플로리다가 가까워?”
“그거야 당연히 여기가 더 가깝겠지만...”
“그럼 내 말이 맞네.”
지금같이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말도 안되는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4인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건 플로리다가 아니라 캘리포니아산이라고.’
미국 오렌지 생산의 70%를 책임지는 플로리다 오렌지를 무시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51구역에서 그것도 4기사로 불리는 자신들이 마시는 오렌지는 블루라벨도 아닌 블랙라벨로 당도가 높은 오렌지였다. 그런 가운데 오렌지에 유독 진심인 헤터(Hatter Mad)는 이 수준낮은 대화를 듣고 있자니 갑갑해졌다.
“(캐터(cater), 우리가 이걸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하지?)”
키가 작은 흑인 남성인 케이터 필러(Cater Pillar)는 꼬장을 피우고 싶을 때면 자신의 이름을 원래대로 부르지 않고 캐터라고 부르는 헤터에게 한소리를 할까하다 미친 X 모드인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아 품 속에서 전자담배를 만지작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흡연욕구를 애써 참아냈다.
“(헤터, 미지의 무엇을 건드리려고 할 때는 조심해야 해.)”
“(알지! 아는데! 저들은 지금 미국 자산을 가져간 거라고!)”
영국인인 헤터의 개소리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남미 출신의 마치(March Hare)는 굳이 둘 사이에 끼어들기보다는 스탠에게 말을 걸었다.
“스탠, 지금 이 상황이 별로 평범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들에게 좀 이해를 시켜줄 수 있는 정보를 줄 수 있을까요? 판단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하하하, 그게...”
스탠은 감히 말할 수가 없었다. 인간같지 않은 능력을 보이는 엘리스와 상대적으론 별 능력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영화 속 액션스타나 보여줄 법한 쿵푸를 하는 정후의 심기를 건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탠이 뭔가 말해줄 듯 말해주지 않고 간간히 오가는 들릴 듯 말듯한 해터의 귓속말이 정적을 깨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프랑스인이라는 자부심이 넘치는 동양인 남자 루아르(loir)는 입을 열었다.
“레이디 엘리스? 제가 이렇게 불러도 될까요.”
프랑스식 억양이 섞인 정중한 영어에 옆에서 영국인 헤터와 미국인 케이터가 아주 느끼한 무언가를 먹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루아르는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했다.
“지금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160년간 미국에 존재한 크로노스피어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20대 여성의 등장을 저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160년 이전부터 내 거였으니까 당연하지.”
분명 자신은 아주 최대한 예의를 갖춰 이야기한 것 같은데 반말을 툭툭 내뱉으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젊은 여자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루아르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봐, 겉으로 보기엔 동양인인데 속내용은 프랑스인 아저씨. 이건 내 엄마가 내게 만들어 준 유일한 선물이야. 유품이라고 봐도 무방한 셈이지. 그런 유품을 마치 당신들 것인냥 이야기하는 걸 내가 많이 참아주고 있어.”
“내겐 루아르란 이름이 있는데...”
“그래 루아르 아저씨. 루아르 아저씨는 엄마가 만들어 준 물건을 누가 주웠다고 자기거라고 우기면 줄 거야?”
어릴 적에 프랑스로 입양되어 자란 루아르에게 트라우마이자 금기시되는 소재인 엄마 이야기를 꺼내는 여자 아이의 케이터는 순간 틀어막고 싶었지만 케이터는 너무 멀리 앉아 있었다.
거기다 엘리스가 엄마라고 부르는 존재가 이미 환생해서 새롭게 아기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정후네만 알고 있는 것이기에 과연 이 목걸이를 유품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 이들과 토론을 할 필요는 없었다.
“스탠, 이딴 소리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나? 160년 전 하늘에서 떨어진 물건을 자기 거라고 주장하는 20 살배기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당장 이들을 잡아쳐놓고 크로노스피어를 확보하도록 하자고. 이봐! 뭣들 하고 있어! 당장 이것들을 잡아!”
51구역의 4학자이자 다른 이들에겐 매드 티 파티라고 불리는 집단의 일원답게 루아르가 발작하듯 테이블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스탠은 루아르의 행동이 선을 넘는 미친 짓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일사불란하게 51구역의 경비를 책임지는 경비대가 무장한 상태로 들어와 자신들의 반대편에 앉아 있는 정후, 엘리스, 섀넌을 겨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마치 재미있는 쇼를 보기라도 하듯이 차분하게 마시고 있던 오렌지 주스를 마지막까지 들이켜고 컵을 내려놨다.
“아, 오렌지 주스 맛있게 먹고 마더가 만들어준 목걸이도 찾아서 기분 좋았는데.”
“그러게...나도.”
정후도 알고는 있었다. 귀중한 듯 이중 삼중 정도가 아니라 몇단계에 걸쳐 보관되고 있는 저 목걸이를 아주 쉽고 편하게 가져갈 수 있는 가능성따윈 매우 희박하다는 것 정도는.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무장 경비대를 휙 둘러본 엘리스와 눈빛을 교환한 정후는 테이블을 발로 스탠과 4명의 학자가 있는 쪽으로 걷어차며 시야를 가렸다.
“쾅!”
스탠이 말릴 사이도 없이 루아르의 입에서 사격 지시가 떨어졌다.
“쏴! 쏴!”
“드르륵! 드르륵!”
AR계열의 총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총탄의 음들이 순식간에 공간을 가득 채웠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스탠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며 경비대에게 사격 중지를 명령했다.
사격이 중지된 이후 경비대원들의 총기에서 탄창이 모두 비워져 숙달된 자세로 탄창을 순식간에 교체하는 사이 수없이 많은 구멍이 난 테이블을 가리고 있던 연기가 잠잠해질 때 테이블이 옆으로 치워졌다.
“이게 무슨?”
“말도 안돼!”
원목으로 된 테이블에 방탄 기능따위 있을 리 없다는 게 전무하다는 건 현재 이 장소에 있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구멍이 송송난 테이블이 치워지고 난 곳에는 자신들을 향해 손바닥을 내뻗고 있는 한 여자 아이,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달을 닮을 칼을 꺼낸 남자 그리고 우습게도 총기도 아니고 활을 꺼내서 들고 있는 여자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자신들을 향해 자세를 잡고 있었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어떻게 아무런 피해도 없이 멀쩡하게 있을 수 있는 거야!”
루아르가 발작하듯이 삿대질을 하며 프랑스로 욕을 내뱉었다. 전자 담배를 꺼내 피우고 있던 케이터는 자신의 무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놀랐다. 그 옆에선 스탠이 모두 끝났다며 좌절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이제 우리 턴이지? 분명 그쪽이 먼저 시작했어. 이건 정당방위야.”
어디서 꺼낸 것인지 모를 거대한 메이스를 어깨에 멘 소녀와 초승달을 닮은 듯한 검을 든 남자가 경비대원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탄창을 갈아 끼운 경비대원들이 깜짝 놀라 사격 명령이 없는데도 사격을 시작했다. 총기가 이미 주류가 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으나 소녀와 남자는 마치 총알이 날아가는 게 다 보인다는 듯이 회피동작을 취하며 자신들을 향해 성큼성큼 발을 구르며 날아왔다. 그리고 경비대원들의 눈앞엔 메이스가 큼지막하게 확대되어 다가와 있었다.
“팡!”
190cm는 다되는 거구의 남자들이 총탄을 피하고 날아온 소녀가 들고 있는 메이스에 맞아 날아가고 있는 장면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그 옆에선 초승달을 닮은 칼이 마치 레이저처럼 움직이며 종이를 자르는 것처럼 경비대원들이 가진 모든 총기를 잘라내 버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혹시라도 총기를 사용하려고 했던 이들의 손가락에는 여지없이 화살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루아르의 발작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볍게 크로노스피어를 확보할 수 있을 거란 예상과 다르게 4학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경비대원들이 순식간에 어디 한군데가 부러지고 의식을 잃었으며 가진 무기가 박살나서 마치 전쟁통의 그것과 별다를 바 없이 응접실 여기저기에서 널부러져 있었다.
스탠은 경비대원들이 날아감과 동시에 머리를 가린 채로 근처에 엄폐가 가능할 가구의 아래로 피해버렸다.
누가 비상버튼까지 눌렀는지 응접실은 빨간 경고등이 번쩍거리고 비상상황을 알리는 경고음이 터져 나오고 있어 상황이 마무리되었음에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종료된 지금 지시를 내린 루아르는 패닉때문인지 꿈을 깨려고 하는 듯이 자신의 뺨을 좌우로 후려치고 있었다.
스탠은 총소리가 멈추자 숨어 있던 곳에서 조심스럽게 기어나와 고개를 내밀더니 총알이 날아다니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자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2개 분대 인원은 되는 건장한 미국인 경비대원들이 순식간에 제압당해서 여기저기에 날아가 의식을 잃고 있는 상황은 스탠이 상상한 것보다 더욱 가혹한 것이었다. 그렇게 스탠과 51구역의 상위 책임자들이 평소같지 않게 어벙하게 구는 가운데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그동안 내 물건을 잘 보관하고 있어서 보관료라고 치고 여기서 멈춘 거야.”
“우리 쪽에서 다친 사람은 없으니까 공평하게 퉁치자고.”
한쪽은 다친 이들이 아무도 없고 다른 한쪽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은 상황이 절대 공평할 리가 없었지만 추가 경비대원들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엘리스와 정후 그리고 섀넌을 자극할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어이, 거기 느끼해빠진 작달만한 아저씨. 한, 두 번은 실수인데 세 번부턴 아니야. 잘 기억해둬. 당신은 카운트 두 번 지나갔어. 다음에도 이 지랄하면 그땐 아웃이야. 알았어?”
“...”
“대답이 없네. 알았어, 몰랐어?”
자신의 볼따구를 툭툭 건드리는 차가운 칼날에 콤플렉스인 키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분노조절잘해 상태가 된 루아르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스탠, 분명 우리가 먼저 일 시작한 거 아니니까 서로 피차 곤란한 상황이 더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게 좋겠지. 그치?”
51구역에서 미친 X로 유명한 헤터가 조신해지고 항상 평온하게 표정 변화가 없어보이는 케이터의 얼굴에 경악과 공포가 가득해지고 키와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발작하는 루아르가 조용해진 가운데 마치가 정신을 수습하고 스탠과 이 상황을 정리해보려고 했다.
“그쪽에서 크로노스피어를 가져가면 많이 골치아파질 겁니다. 그건 두고 가시죠. 스탠, 그렇죠?”
“네? 그...그렇긴 한데...”
“미국의 중요 자산에 등록되어 있는 물건입니다. 우리들은 당신들이 누구인지도 다 알고 있어요. 서로 문제될 일은 만들지 맙시다.”
마지막 말만 아니었다면 정후와 엘리스, 섀넌은 조용히 목걸이만 챙겨 여기를 빠져나갔을 것이었다.
“지금 거기 뭐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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