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229화크로노스피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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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에 헬기에서 바라보는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이 살만한 환경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는 자연을 거스르고 인간의 손길이 극단적으로 닿은 결과였지만 마치 천일야화에 나올 법한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라스베이거스만 떠나면 51구역까지는 딱히 부딪힐 곳이라고 할만한 곳이 없는 평지의 연속이었기에 야간비행은 특별한 방해없이 일직선으로 날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라스베이거스와 다르게 51구역은 방금 전까지 있던 곳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같이 캄캄하기만 한 곳에 유일하게 비행기 유도등과 헬기 유도등이 박힌 곳만이 빛나고 있었다.
“삭막하네.”
“그러게.”
헬기포트에 헬기가 내려앉고 우리는 허리를 숙인 채 포트장을 빠져나와 달랑 문 하나만 보이는 자그마한 건물 앞에 섰다.
“들어가시죠.”
스탠이 문 앞에서 안구에 무슨 빛을 쏘이며 스캔을 하고 정맥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자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느낌이 이상하네.”
“엘리베이터면 보통 올라가기 위한 건데...”
“막장에 끌려가는 느낌이랄까?”
“그건 좀....그렇다.”
각자의 소감과 다르게 엘리베이터 안은 깔끔해서 신축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환한 불빛이 가득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건 지상 1층이 꼭대기로 되어 있고 그 아래로 터치 스크린만이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이건 내려가는 층을 누를 버튼이 없네?”
“51구역에선 지하에 몇층까지 있는 것이 비밀이니까요.”
대답을 마친 스탠이 다시 한번 지문을 인식하고 터치 스크린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층을 스마트폰의 숫자버튼과 똑같은 형태로 뜬 디스플레이에 입력했다. 정후는 스탠이 누른 숫자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51구역이 비밀구역이라고 해도 무슨 지하 암반수층까지 파고들었나 144층이 있어.”
정후의 감탄을 들은 스탠은 지하 암반수층은 지하 200미터 언저리에 있고 자신들이 가는 144층은 그보다 훨씬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정보비공개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P.I.B답게 굳이 설명해주진 않았다. 인간의 감각으론 자신들이 탄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얼마만큼 내려가는지 인지할 수 없도록 설계된 것이니만큼 조용히 144층에 도착하도록 기다리기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공상태라도 된 것처럼 조용하기만 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엘리스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거의 다 온 것 같네.”
“그래?”
“슬슬 지루했는데 잘 됐다.”
일반적인 상가 건물과 다르게 딱히 볼만한 영상같은 걸 틀어주지 않은 51구역의 불친절하고 심심한 엘리베이터에서 144층까지 내려와야 했던 정후와 섀넌이 별다른 반응이 없이 좋아하는 것과 다르게 스탠은 다시금 엘리스란 존재가 가진 능력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
“다 내려온 것 같다고 144층. 지하 666m”
“그걸 어떻게?”
“700m 넘게 파 놓은 사람들이 뭘 이런 걸 가지고 놀라?”
“말도 안돼.”
51구역의 지하 연구소가 지하로 700미터가 넘게 파고 들어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은 P.I.B 중에서도 아는 이가 몇 없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하지만 엘리스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문이 열리기 전에 툭 내뱉었다.
“뻔하지. 암흑물질이 반응하는 걸 확인하려면 지하 700미터까지는 파고 들어야 하잖아. 이만큼 파고 들 이유가 뭐겠어. 우주에서 날아오는 방사능인 우주선 입자가 지구의 대기에서 핵반응을 하여 이차 입자들을 만들어내고. 이들 이차 입자 중 뮤온 입자라고 하는 게 지표면까지 도달하는데 날아오는 정도가 가로세로 약 30cm²의 면적에 초당 1개씩 날아오거든. 이렇게 많이 날아오는 뮤온입자는 드물게 다른 물질과 반응하여 중성자를 만들어내서 암흑물질의 신호와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문제야. 근데 지하 700미터 정도 들어가면 뮤온이 지상보다 10만분의 1 정도로 줄어들어 암흑물질 신호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적어지니 지하 700미터까지 파고 들었겠지.”
“엘리스...그거 무슨 외계어냐?”
“맞아. 나도 자기처럼 엘리스가 무슨 말하는지 하나도 이해 못하겠어.”
“그냥 그런 게 있어. 암흑물질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실험하려면 인간이 지하로 파고드는 건 뻔하디 뻔한 과정같은 거야.”
“어! 나도 그건 안다. 암흑물질. 근데 우주에 있다는 걸 파악하려고 지구 그것도 땅 아래로 파고 든다고?”
스탠은 과연 엘리스를 51구역으로 데려오기로 한 자신과 상부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
‘얘는 뭐하는 여자애지?’
현재 인류가 알아낸 우주의 비율이 약 5%고 우주를 채우고 있는 25%가 암흑물질이라고 할 때 나머지라고 할 수 있는 70%를 암흑에너지로 보고 있지만 인류는 이 암흑에너지에 대해 전혀 감도 못 잡고 있는 상태였다. 정확히 말하면 암흑에너지는커녕 우주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걸로 추정하는 암흑물질에 대해서도 가설만이 존재할 정도로 인류는 우주에 대해서 아는 것이 5%밖에 되지 않는 무지렁이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했다.
그런 학계의 배경을 가지고 있을 때 한 51구역의 연구원에 의해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4가지 힘과 전혀 무관하게 작동하는 크로노스피어가 어쩌면 암흑에너지의 입자 간에 적용되는 힘. 즉 5번째 힘을 다루고 있지 않을까 하는 사소하다면 사소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우주가 팽창하지 않는다면 은하는 결국 중력에 의해 서로 가까워져 대수축을 일으켜야 하기에 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허블에 의해 확인했다. 한동안 학자들은 우주가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다 점차 속도가 줄어드는 식으로 감속팽창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천체를 통해 속도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팽창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다음엔 일정한 속도로 팽창하는 거라고 가정을 했지만 이 생각도 1998년 초신성 실험을 통해 등속팽창이 아니라 우주가 가속팽창하고 있다는 결과를 보이며 바뀌었다. 학자들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주는 과연 어떤 힘에 의해 팽창 속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인지. 그 결과 만들어진 힘이 바로 ‘암흑에너지’였다.
인간이 현재 발견한 어떤 힘으로도 움직일 수도 변화할 수도 없는 크로노스피어가 암흑에너지에 의해 움직이고 유지되는 것이라면 크로노스피어에 대한 연구는 우주의 본질을 다루는 연구가 될 수 있었기에 51구역에 대한 연구는 정당성을 획득하며 거대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51구역의 학자들 그러니까 P.I.B들은 크로노스피어를 다루기는커녕 이해할 수도 없어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이게 우리가 발견한 크로노스피어입니다.”
한계점에 도달해서 포기하기 직전일 때 엘리스란 아이가 존재조차 알리 없는 크로노스피어를 자신의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과 인간의 힘으로 다룰 수 없는 힘을 다루는 것 같다는 스탠의 보고는 P.I.B들을 열광하고 호기심으로 불타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 아이가 그 ‘엘리스’로군]
[우리를 이상한 나라로 데려가줄 존재인가]
[난 오히려 아더왕과 엑스칼리버가 생각나는걸]
[그것도 맞군. 전혀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움직일 유일한 존재니까]
[아직은 그것도 저 여자아이의 주장일뿐이지만 말이야.]
CC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학자들이 각자 저마다의 생각을 토해내는 동안 정후네는 마침내 커다란 철제 구체 앞에 다가설 수 있었다.
“여기 크로노스피어가 있습니다.”
“빨리 열어. 현기증 난단 말이야.”
엘리스는 자신의 목걸이에 무슨 이름을 달건 말건 상관 없이 이것이 자신과 아저씨의 힘을 담아 만든 그것이 맞는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돔구장의 돔이 열리듯 철로 된 구형 차폐벽이 사라지자 빛을 내뿜고 있는 원형의 ‘그것’이 모두의 앞에 나타났다.
“내 목걸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엘리스의 손이 철제 구체가 사라지고 남아 있는 원형의 유리벽을 뚫고 이제는 로켓만 남아 목걸이라고 하기도 그것을 손에 쥐었다 잡아당기려고 했다.
[훗, 뭔가 마술을 부리는 것 같지만. 저게 움직일 것 같아?]
[유리를 뚫고 들어간 방법이 뭐지?]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학자들이 각자의 반응을 보일 때 크로노스피어는 여태까지 한번도 없던 반응을 보였다. 빛이 점멸하더니 자연스럽게 엘리스의 손에 의해 유리구체 밖으로 움직였다.
[저게 뭐야.]
[말도 안돼.]
[미친!]
무려 10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바위에 박힌 엑스칼리버마냥 미동조차 하지 않는 구체를 움직여보려 했던 선배님들과 자신들이 쏟아부은 노력에 1번도 화답하지 않았던 크로노스피어가 이제 갓 20살이 넘었을 법한 여자의 손에 의해 아주 간단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이야, 마지막에 봤을 때 그대로네.”
“진짜 예전에 봤던 그 상태랑 똑같다. 목걸이 줄이 없어지긴 했지만.”
엘리스가 이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구체를 두 손으로 감싼 상태에서 손을 펴자 구체를 잇는 목걸이가 생겨났다. 엘리스가 이윽고 그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걸자 점멸하며 빛을 내던 구체는 방금 전까지 빛을 내고 있던 것이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평범한 목걸이처럼 바뀌었다.
“어...어떻게 그게...”
“말했잖아. 스탠. 이거 내거라니까.”
엘리스의 목에 걸린 그것은 51구역의 최대 신비라고 불리던 그 모습이 무색하게 어느 보석가게를 가서 주문을 하더라도 쉽게 구할 수 있을 법한 것처럼 느껴졌다.
엘리스가 보석가게에서 주문한 목걸이를 챙긴 것처럼 목에 걸고 정후와 섀넌 앞에서 폼을 잡고 있으니 어디선가 우당탕탕 누군가 몰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스의 앞에 나타난 4명의 학자들은 엘리스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쳐다보며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한 표정을 하고선 좀비처럼 다가왔다.
“아니...”
“말도 안돼.”
“지금까지 우리들의 노력이....”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지?”
그들이 자신에게 어떤 해도 가할 능력같은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엘리스는 그들의 기괴함에 순간 흠칫해서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걸 지켜보고 있던 스탠이 옆에서 가로막자 4명의 학자들은 비로소 걸음을 멈추었다.
“소장님들...아무리 그래도 이러시면 안됩니다.”
“비켜봐, 스탠.”
“아무 것도 안할테니까 우리 크로 좀 보게 해줘.”
생각해보라. 백인 여성, 흑인 남성, 아시안 남성, 남미 여성의 4명이 홀린 듯 20 초반 여자의 가슴 방향을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장면을.
엘리스가 목걸이 로켓을 쥐면서 가슴을 가리는 것을 본 정후는 그제야 아차 싶어 엘리스 앞에 나서며 엘리스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아저씨, 아줌마들. 눈빛이 조금 껄쩍찌근해. 요즘 같은 세상에 옳지 않아.”
정후의 말을 들은 두 여성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누굴 변태취급하냐고 했지만 정후에겐 통하지 않았다.
“스읍, 말했잖아. 요즘 세상이라고. 여자 좋아하는 여자들도 흔해. 여자라고 같은 여자한테 성추행, 성희롱 못하는 거 아니잖아? 오히려 아닌 척하면서 피해주는 여자들도 많잖아. 서로 조심 좀 하자고.”
졸지에 옆의 동료들과 함께 엮여 성희롱범으로 매도당하는 현실에 분개하려는 찰나 정후가 손가락을 좌우로 살짝 흔들며 뱉은 한마디에 두 여자는 넉다운되고 말았다.
“어, 어? 이봐들,가까이 오지마. 더 이상 가까이 오면 진짜 불손한 의도가 있다고 볼 거야.”
정후도 이들에게 그런 의도따위 없다는 것을 뻔히 눈치채고는 있었지만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해서 쉽게 나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잡고자 살짝 억지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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