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8화 〉 228화­크로노스피어(3) (228/239)

〈 228화 〉 228화­크로노스피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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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 16시간이 느린 도박과 향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의 겨울은 한국과 다르게 낮에는 여름같았다. 다만 습도가 없어 푹푹 찌는 느낌같은 것이 없는 뜨거운 여름. 하지만 밤이 되면 10도 정도가 떨어져 선선한 가을날씨로 바뀌어 관광을 하기에 꽤나 좋은 계절감을 보이는 도시였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들은 안에 자기들의 테마에 맞춘 카지노들이 있었는데 호텔과 호텔 사이의 길이 이어져 있어 굳이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낮에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다른 호텔이나 카지노를 구경하기에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섀넌, 왜 그래?”

“여기 실내인데도 공기가 살짝 서늘하고 쾌적하다고 해야 되나?”

“맞네?”

분명 오가는 사람들이 많고 일부 공간에선 담배를 피는 이들도 있어 창문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실내라면 공기가 텁텁하고 다소 온도가 높을 수도 있건만 어찌된 일인지 그렇게 덥다는 느낌이라든가 숨쉬는 동안 불쾌감을 느낄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건 저기 보이는 공기순환장치 때문이야. 그쪽으로 돈을 좀 쓴 것 같더라고.”

영화 도박기술자를 보면 극중 설계자인 마담을 통해 외부의 시간 변화를 인지할 수 없게 백화점처럼 창문을 가려서 도박에 집중하도록 만들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도 같은 맥락으로 실내에서 불쾌하거나 갑갑함을 느끼지 않게 하여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공기순환장치에 꽤나 많은 비용을 투자하여 맑은 공기를 실내에서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 엘리스의 설명이었다.

“와...그래서 꼭 숲 근처에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았던 건가?”

양손에 햄버거와 탄산음료를 들고 있는 섀넌이 엘븐시티가 생각난다며 숨을 들이켰다.

‘아니, 누구라도 그렇게 먹고 즐기고 돌아다니면 기분이 좋지 않을까, 섀넌?’

하지만 난 굳이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던지지는 않았다. 기분이 좋을 때의 여자친구가 거슬릴 소리는 안하는 것이 내게 이롭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배웠으니까.

“여기는 이집트 느낌이네.”

“아까는 이탈리아 베니스 느낌이었는데”

이 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바뀌는 테마들은 마치 놀이공원이나 외국에 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카지노 호텔의 주인들의 목적대로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들었다.

처음엔 그저 이것 저것 먹고 마시며 부른 배를 살짝 소화시킬겸 산책의 목적으로 돌아다닌 것이었지만 어느새 목적이 바뀌어 우리는 관광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모습을 탐탁치 않아 하는 존재가 우리의 옆에 붙어 있었다.

“저기....실례지만 엘리스님? 언제까지 여길 돌아다니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맞다. 스탠도 있었지?”

“예...”

“이것만 보고.”

우리의 뒤를 따르며 많은 편의뿐 아니라 먹고 마시는 비용까지 전담하는 스탠 덕분에 우리는 아무런 걱정하지 않고 높은 물가를 보이는 라스베이거스의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계를 본 엘리스는 이제 슬슬 밖으로 나가는 것 어떻겠냐고 나와 섀넌에게 물어봤다.

“그럴까?”

“이젠 해도 져서 바깥도 낮이랑 다르게 선선해졌을거야.”

“엘리스님?”

“아, 이것만 보고.”

“예...”

살짝 토라진 것 같은 스탠과 함께 밖으로 나온 밤의 라스베이거스는 실내와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마치 다른 나라로 온 것처럼 선선한 온도와 거대한 놀이공원에 온 것만 같은 건물들과 조형물들 그리고 이 도시에 놀러온 것을 기뻐하며 환호하는 관광객들의 무리가 가득 차 있었다.

“사람 엄청 많네.”

“꼭 무슨 할로윈같다.”

“냄새는 별로네.”

실내와 다르게 거리 곳곳에선 담배와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풀을 태우는 쿰쿰한 냄새가 느껴졌다.

‘대마인가?’

그런 가운데 길거리에선 영화 속의 등장인물처럼 복장을 꾸며입고 지나다니는 사람들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이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런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지나갔다.

“와우, 복장 봐...이 날씨에 저 복장이면 안 추운가?”

“자기는 저런 스타일 좋아하나봐.”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분명 15~16도 정도를 오가는 기온에 추위를 느낄리도 없건만 갑자기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것 같아 섀넌을 쳐다보자 바닐라쉐이크를 마시는 섀넌의 눈빛에서 냉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섀넌같은 스타일 좋아하잖아.”

섀넌의 손을 잡고 볼에 살짝 입을 맞추자 굳어졌던 섀넌의 표정이 풀어지는게 느껴졌다.

‘조심해야겠어. 함부로 눈돌리지 않도록.’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본능적인 아이 트레이싱이 발동하지 않도록 운전자마냥 고개를 전방에 주시하고 걷고 있는데 영화 301의 스파르탄들을 흉내낸 듯 웃통을 까고 돌아다니며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던 남자 세명이 우리에게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다가왔다.

“이 도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이라니, 사진 좀 찍어드릴까요?”

자연스럽게 섀넌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가져가 우람한 덩치를 가진 남자가 자신의 동료들과 자세를 잡더니 섀넌과 엘리스를 사이에 두고 순식간에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어어 하다 보니 짧은 시간동안 일어난 상황이었다.

“아...고맙습니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방금 전까지 건치 미소를 내뿜던 남자들은 험악한 표정이 되어 우리를 붙잡았다.

“이봐, 돈을 주고 가야지.”

“돈?”

“그래, 돈. 서비스를 받고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퉁치려고?”

지들이 와서 찍어주겠다고 했고 사진을 찍더니 갑자기 돈을 내놓으라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벙쪄 있는데 나보다 머리 하나는 커 보이는 덩치가 내게 다가와 손을 펼치며 주변에 다 들으라는 듯이 사진 찍어준 값을 내놓으라고 했다.

“헤이, 칭크. 딱 보니 그쪽이 물주같은데 지갑 좀 여시지? 많이는 안 줘도 돼. 100달러만 받지.”

윙크를 하며 어깨를 들썩이며 손가락을 부비는 이 인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싶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녀석은 이걸 내가 얼었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동료들과 능글맞은 미소를 주고 받으며 실실 쪼갰다.

‘요것들 봐라?’

뒤에서 이 모습을 모두 지켜보던 스탠이 문제가 생기지 않게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의 얼굴이 박힌 달러를 남자들에게 주려고 하던 찰나 내가 스탠의 손을 붙잡았다.

“이 돈 못 주겠는데?”

“워어, 들었어? 집사님이 알아서 상황 판단하고 돈을 주겠다는데 우리 물주님이 굳이 좋은 거래를 마다하고 벌집을 건들려고 하시는구만.”“이봐, 옐로우 맨.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100달러에 자존심까지 걸 필요는 없잖아? 좋게 좋게 해결하자고.”

옆에서 히피족마냥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태닝한 백인이 시비조로 내 어깨를 툭툭치며 스탠의 손에 있는 지폐를 가져가려고 하길래 나는 감정을 실어 그 손을 툭하고 쳐내고 지폐를 쥐었다.

“좋은 게 좋은 거긴 한데. 차라리 저기 있는 홈리스들에게 이 돈을 주면 줬지. 강도처럼 돈을 내놓으라는 니들에게 주고 싶지는 않은데?”

라스베이거스는 강원랜드처럼 이 도시에 와서 가산을 탕진한 이들이 많았는지 길거리 곳곳에서 홈리스들을 찾아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좋게 좋게 말하니까 안되겠군.”

덩치가 좋은 리더가 내 멱살을 틀어쥐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럼에도 섀넌과 엘리스가 딱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세 놈들은 자신들의 위세에 우리가 눌렸다고 생각했는지 주변에 다 들으라는 듯이 서비스를 받으면 돈을 내놓는게 미국의 법이라며 소리를 쳤다.

“이봐, 흰둥이. 할 말은 다했나? 그리고 이 손은 놓지.”

“뭐? 흰둥이? 이 자식이! 어억!”

아직까지 멱살을 틀어쥐고 있던 남자의 팔목을 잡아 뒤틀자 빨래가 돌아가듯 거구의 남자가 공중을 돌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자신의 동료가 바닥을 구르는 걸 본 두 놈들은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들고 달려왔다. 난 두 놈의 주먹을 슬쩍슬쩍 피하며 어깨와 가슴근육을 잇는 혈자리인 운월(雲月)이란 곳을 검지와 중지를 세워 푹푹 찔러주었다. 다 큰 어른들이 어울리지 않게 애처럼 자지러지는 듯이 놀라며 제 어깨 쪽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억, 내 팔! 내 팔!”

“총...총이다! 911 불러!”

두 남자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프다고 죽는 소리를 하자 구경거리가 난 건가 싶어 이를 지켜보던 군중들 중 한 배나온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슨 총이야. 총소리같은 건 나지도 안 않았는데. 이것들 사기꾼이구만!”

“길거리에서 사진 찍어준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관광객들 상대로 사진 찍고 사기치려다 안되니까 공갈협박까지 하는구나.”

그제야 자신들의 팔에서 어떤 총알구멍을 찾아볼 수도 없고 피같은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 두 남자는 여전히 어깨쪽이 마비된 듯 주무르면서 머쓱해했다.

“모럴, 일어나...어서.”

“으윽, 내 팔 부러진 거 아니야?”

“안 부러졌어. 쪽팔리니까 빨리 일어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이 제각기 스마트폰을 들고 자신들의 영상을 찍고 있는다는 걸 인지한 세 남자는 그제야 분위기 파악을 하고 더 이상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면 안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야유하는 군중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두르고 있던 망토로 얼굴을 가리고 도망쳤다. 그러자 관중들은 사기꾼을 간단하게 제압해서 물리쳤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헤이, 브루스! 미녀들하고 다닐 자격이 있군. 그래!”

“와우, 오늘 대단한 구경을 했어.”

“멋있는데. 슉슉”

제 딴에는 내 동작을 따라해보려고 하는지 주변의 친구들하고 내 흉내를 내는 녀석들도 보였다.

“갈까?”

우리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더 이상 거리 구경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서 우리 숙소가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미스터 리가 브루스 리처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스탠은 거구의 남자를 순식간에 제압해버린 이정후란 남자의 물리적인 힘과 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확인한 정보에는 그런 내용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별거 아닙니다. 스탠.”

“그래도 뭔가 본때를 보여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군요.”

“스탠,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네.”

“네?”

엘리스는 정후의 손길이 닿은 세 남자가 한동안 어깨와 팔이 마비되어 힘도 제대로 못 쓸 것을 모르고 아쉽다고 하는 스탠을 보며 혀를 찬 뒤 스탠을 향해 51구역으로 가자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

“됐고, 언제 갈거야?”

“지금 가셔도 좋다면 지금이라도 좋습니다.”

“그래?”

“헬기는 아까부터 진작 호텔 옥상에 준비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헬기를 준비해놨으면 진작 말하지. 알았으면 날 밝을 때 가자고 했을건데”

"그러게. 밤에 가는 것보다 안전할 거고."

스탠은 그만 호텔로 가자고 할 때마다 “이것만 보고”를 외치던 건 너희들 아니었냐고 말하면서 화를 내고 싶었지만 법보다 가까운 엘리스와 정후의 힘을 떠올리며 굳이 입 밖으로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머쓱한 미소만 지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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