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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7화 〉 227화­크로노스피어(2) (227/239)

〈 227화 〉 227화­크로노스피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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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미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구로 넘어오기 전 분명 한번 밖에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마더와 두 여왕이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소멸하지 않은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19세기 중반의 지구에 도착해 있었던 것인지 엘리스는 도무지 납득을 할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엘리스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듣게 된 스탠은 엘리스가 크로노스피어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을 하자 의문점이 생겨났다.

“크로스피어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것 같군요.”

“맞아. 내 목걸이니까.”

“아, 당신 거라구요. 당연하...? 당신 것이라구요? 160년 전의 물건입니다만?”

“이 목걸이는 내 거야. 당연히 소멸해서 없어진 줄 알고 찾지 않았던 거였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진작 찾았을 거야.”

스탠의 입장에선 19세기 중반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목걸이가 어떻게 21세기의 소녀의 것이 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지...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건가?’

“그...그렇군요. 하지만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현행 법상 이미 100년이 넘게 찾지 않고 내버려둔 물건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법적 권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건 이제 미정부의 자산입니다.”

“이건 미국뿐만 아니라 지구인들에게 허락된 물건이 아니야.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 종속된 물건이야. 너희들에겐 애초부터 내 목걸이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가지고 있어도 써먹지도 못하잖아? 인간의 법으로 소유권을 주장하지마.”

분명 그러했다. 무려 16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인류는 이제 구체만 남은 크로노스피어를 단 1mm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떤 장치와 어떤 힘을 사용해도 구체는 마치 등대처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160년이란 시간동안 인류가 크로노스피어에 대해 최근에 알게 된 것은 해당 구체를 연결하고 있던 금속 목걸이 줄이 지구에 존재하는 금속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는데 이조차도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고 나서야 NASA를 통해 확인한 정보였다. 그 이전에 분석의 결과로 얻은 것들 중 가장 기묘한 것은 열역학 제 2법칙. 보통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시간에 따른 엔트로피의 증가를 무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처음 에너지를 조사한 이후 언제나 동일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류가 가진 지식으로는 크로노스피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모든 지식들과 법칙에 위배되는 물건이거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래서 우리는 시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이 물건을 크로노스나 만들었을 법한 물건이라고 생각해 크로노스피어라고 이름붙였던 겁니다. 혹자는 이 물건의 힘을 깨닫고 나면 과거 진시황을 비롯해 많은 권력자들이 꿈꿨던 불로불사(死)를 이룰 것이라고 믿고 있죠.”

“헤에, 이건 그런 거랑 아무런 관련도 없어. 그렇게 쓰는 물건도 아니고.”

인간이 만들지 않았다면 누가 만들어서 가지고 있던 물건이었을까 크로노스피어를 처음 접했던 순간부터 궁금해했던 스탠은 그 궁금증이 조금 가시는 기분이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다움과는 거리가 먼 눈 앞의 젊은 여성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일부분 납득할 수 있었다.

“가지러 가야겠어. 내 것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걸 안 이상 이렇게 내버려둘 순 없지.”

“51구역은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어떤 미국인도 출입허가 없이 51구역에 들어간 역사는 없다. 미합중국은 이 물건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느낀 이래로 허가받지 않은 이의 출입에 대해 철저히 금지해왔다. 당장 51구역이 유명해진 지금도 PMC를 고용하여 51구역 외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고, 51구역 내부는 군대와 경비조직 그리고 CCTV부터 각종 기계장비를 통해 감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난 아무나가 아니야.”

“그...그렇지만!”

“쉿!”

엘리스는 아저씨에게 자신의 목걸이의 존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물건이 제대로 작동하기만 한다면 자신들이 더스트로 돌아가 화이트를 막을 수 있었다. 인간이었을 적 자신의 힘을 담은 목걸이는 얼마든지 과거로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엘리스는 자신의 입에 검지 손가락을 가져가며 스탠을 조용히 시켰다.

“나중에 다시 올테니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당신 친구들은 내가 떠나고 한 30분쯤 지나면 정신을 차릴 거니까 크게 걱정하지 마. 딱!”

엘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손가락을 튕겨 테이블을 없애고선 건물 밖으로 움직여 차를 타고 정후가 있던 캠핑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니까 ‘그것’이 미국 51구역에 있다고?”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

“말이 안되니까 그렇지. 생각을 해봐. 미래에 만든 물건이 왜 과거로 넘어가 있어.”

“아저씨 인벤토리 능력이나 더스트로 공간을 넘어가는 능력은 말이 되고?”

혀를 차며 니가 쓰는 능력부터 말이 안된다고 말하는 엘리스의 정석적인 답변에 정후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끄응.”

“가지러 가자~ 아저씨, 가지러 가자~.”

“그치, 가지러 가는게 맞긴 하지.”

옆에서 침낭을 두르고 아침엔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며 추운 산속의 아침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커피를 마시던 섀넌이 엘리스의 편을 들어줬다.

“왜? 후릅.”

“아니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참 맛있어 보이네.”

“내가 자기 것까지 타줄까?”

“자기?”

“...”

지구에 온 이후로 자신과의 대화가 더욱 편해진 섀넌이 자신에게 ‘자기’라는 표현을 쓰게 될 날이 올거라고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정후에겐 작은 단어였지만 큰 변화였다.

“섀넌이 나에게 자기라고 해줬다.”

정후가 입을 꾹닫고 부끄러워하는 섀넌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주절거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엘리스가 도저히 못 듣겠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에이씨, 사람이 지금 진지한 이야기하는데 커플이라고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지면서 꽁냥거리기나 하고 도저히 못 들어주겠네.”

“엘리스, 앉아. 너도 이게 흔한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알잖아. 섀넌 입에서 ‘자기’라는 표현이 나왔다니까?”

“2절만 해. 거기서 그치지 않고 3절, 4절, 뇌절까지 하면 내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정후 씨 얼굴에 뿌려버릴 거야.”

호들갑을 떨어대는 정후를 진정시키는 것은 엘리스의 급발진이 아니라 섀넌의 정색이었다.

“흠흠, 그래서 미국을 가자? 51구역을?”

“응응.”

51구역에 가서 물건을 가져오자는 말을 무슨 미국의 유명한 테마파크나 랜드마크처럼 이야기하며 보이는 엘리스의 천진난만한 표정에 정후는 순간 현실감이 휘발되는 것만 같았다.

“하아, 일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제만 해도 51구역에 가는 게 말이 안된다며 엘리스에게 진정하라고 하던 자신은 어째선지 지금 엘리스, 섀넌과 함께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네바다 주의 라스베이거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에 앉아 미국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탄식을 내뿜는 자신의 앞에는 아주 정중한 자세를 보이는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혹시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바로 조치해드리겠습니다.”

“아...네.”

엘리스가 어디서 데려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미국인 남자. 스탠이라는 남자는 엊그제 처음 만나 캠핑장에서 대화를 나눴던 마리, 수지와는 아주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했다.

‘그냥 아는 사이인데 왜 우리한테 퍼스트 클래스를 끊어주고 팁 잔뜩 받은 가이드처럼 저렇게 친절한 미소인 거야. 누가 보면 퍼스트 클래스 담당하는 객실 사무장인줄 알겠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앉은 수지랑 마리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은 구성에, 평범하지 않은 대접이었다.

“아저씨, 어디 불편해? 배고픈거야? 뭐 필요한 거 있어?”

“안 불편해. 필요한 거 없어. 너야말로 조용히 앉아 있어.”

“난 아저씨 생각해서 그러지.”

엘리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 어색한 자신을 신경 써주면서 마치 칭얼거리는 애 취급을 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와와, 퍼스트 클래스. 진짜 최고야!”

그리고 그런 자신의 옆에선 평생 살면서 한번도 못 타볼 퍼스트 클래스를 다 타봤다면서 어느새 와인을 서비스 받은 것인지 와인을 홀짝이며 텐션이 업된 섀넌이 있었다.

“섀넌도 좋지, 그치? 사람은 역시 개처럼 일해서 정승처럼 써봐야 한다니까.”

“엘리스, 너 개처럼 일해서 돈 벌어본 적 없잖아. 누가 보면 알바라도 해본 줄 알겠다.”

“왜 그래. 우리가 이렇게 퍼스트 클래스 타고 가는 거 엘리스 덕분이라잖아. 당신도 너무 그러지마.

평생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한 생산적 삶을 살아본 적이 있을 리 없는 엘리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정후는 와인을 한모금 마시며 자신을 아기 취급한 엘리스에게 반격을 가했다.

“아저씨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말도 못해? 쳇.”

정후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 지금도 저 앞에 앉아 어정쩡하게 수시로 뒤를 살피는 세 사람이 가장 눈치보고 있는 사람이 엘리스라는 건 자신이 아니라 바보가 아니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 꼬마녀석.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닌 거야.’

엘리스는 정후의 말에 삐져서 마카다미아 땅콩을 안주 삼아 와인잔에 가득 찬 와인을 순식간에 비워내더니 스튜어디스에게 부탁해 어느새 리필을 부탁하고 있었다.

“방금 전에 줬던 걸로 한잔 더 주세요.”

“어? 리필이야? 나도 나도.”

자신의 양 옆에서 와인에 환호하며 신나하는 두 여성의 모습을 지켜보던 정후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저도 부탁드립니다. 스튜어디스 님.”

“예.”

정후와 엘리스, 섀넌은 이코노미석의 식사와 전혀 다르게 마치 고급 레스토랑의 그것처럼 애피타이저부터 시작해 메인과 후식까지 순서대로 차근차근 가져다 주는 코스 식사를 했다. 총 11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약간의 수면시간과 식사 시간 이외에는 틈틈이 와인을 들이켜며 라면, 쿠키, 브라우니 케이크, 피칸 파이, 삼각 김밥과 같은 간식들을 모두 섭렵하고 아침식사로 나온 우거지 갈비탕으로 해장을 하고 그 이후에 끝내 과일과 커피까지 모두 빠뜨리지 않는 풀코스 먹방을 마쳤다.

“휴우, 이게 도박과 향연의 도시의 냄새인가?”

“캬아! 좋구만! 그치, 섀넌?”

“퍼스트 클래스. 또 타고 싶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여 선글라스를 끼고 관광객스러움을 뽐내는 세 명의 옆에는 세 사람이 먹어치우던 어마어마한 식사량에 질린 한 남자와 두 명의 직원이 있었다.

‘돼지들.’

‘위장에 구멍난 거 아닌가?’

‘우리 나갈 때 분명 스튜어디스가 퍼스트 클래스에서 진상 때문이 아니라 먹는 거 서빙하다 지쳐보긴 처음이라고 그랬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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