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 225화정후를 쫓는 사람들(5)
* * *
“아저씨, 나 오늘 차 좀 쓸게.”
“어, 갔다 와...”
엘리스는 정후와 섀넌이 잠들어 있는 텐트 밖에서 말을 하고선 정후의 차를 끌고 캠핑장 밖으로 나왔다.
“요것들을 어찌 해야 좋을까.”
엘리스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살짝 흘려놓긴 했지만 하필이면 아저씨와 보내는 행복한 시간에 끼어들어 방해를 하려고 든 P.I.B가 괘씸했다. 제프 머스크야 특별히 검은 속내가 있다기보다는 화성에 대한 열망이 큰 자였으므로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지만 자신이 네트워크를 통해 확인한 정보로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을 경우 ‘제거’까지 생각한 P.I.B에 대해선 간단하게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며칠간 정후들과 시간을 보내며 몇가지 대응책에 대해 생각을 마쳤다.
“여긴가?”
엘리스가 도착한 곳은 아주 평범해 보이는 듯한 ‘크로노스피어 로지스틱스’란 이름의 물류회사였다.
자신이 도착한 것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회사의 정문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엘리스 님 되십니까?”
“맞아”
정중하게 대한다고 대했는데 보자마자 존대가 아니라 반말부터 박는 여자의 기세에 P.I.B의 필드요원인 체셔는 베테랑 요원임에도 속내를 숨기기가 쉽지 않았다.
‘뭐지...’
[체셔, 정중하게 모셔오게. 정중하게.]
“다 들리니까 굳이 그렇게 속삭이지 않아도 돼, 스탠~”
스탠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청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소리가 새어나갈 가능성이 그다지 없는 밀폐형 리시버를 통해 내리는 지시에 대답을 하는 엘리스의 능력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자고, 체셔”
“예...예.”
체셔는 접객실로 엘리스를 안내했다. 가는 내내 엘리스는 뭐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흐응, 이렇게 생겼구나. 오호, 흐음, 한국에 저런 걸?” 등등 굉장히 의미심장하고 신경 쓰이는 혼잣말을 다 들리게 떠들어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올라와 616이라는 숫자가 붙어있는 접객실 앞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 그곳엔 스탠과 주가지, 이말희가 앉아 있다가 일어나며 엘리스를 맞이했다.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엘리스 님.”
“난 이렇게 보게 되어서 심히 불쾌한데...? 가지랑 말희도 있네?”
도대체 싸우자는 건지 아니면 뭔가 대화를 나누자고 온 것인지 그 의도가 심히 걱정되는 말투임에도 선뜻 주가지와 이말희는 대응할 수가 없었다. 필드 요원으로 세계의 험지에 투입된 경험이 경고성을 발하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장비를 활용하여 ‘무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흐응, 둘은 보디가드인가 봐?”
“하하, 딱히 그렇다기보다는 저번에 얼굴을 뵌 만큼 아무래도 혼자 오셔서 처음 있는 낯선 공간에서 좀 더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준비한 저희의 배려였습니다.”
‘쟤가 퍽이나 이런 곳에 혼자 왔다고 마음에 부담을 가질까 싶다.’
‘동의’
주가지와 이말희는 당장이라도 허리에 찬 권총을 꺼낼 수 있을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에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불편하시면 내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수지...가 아니라 가지 요원? 이 분께 드릴 차를 부탁해도 되겠나?”
“네”
인사를 마친 둘이 접객실 밖으로 문을 닫고 나왔다.
“휴우,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불안했어.”
“지금도 높은 곳 위에서 아무 것도 없이 줄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것만 같은 느낌이야.”
“빨리 차 가져다 줘.”
“그, 그래야겠다.”
방음이 잘되는 곳이라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도 내부의 소리도 밖으로 오갈 수 없는 곳이건만 엘리스는 두 사람이 나간 뒤 피식 웃었다.
‘뭐가 웃긴 거지.’
스탠은 호랑이나 사자 우리에 들어온 것만 같은 서늘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 찾아오시겠다고 하셨는데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찾아오신 건지 궁금합니다.”
엘리스는 아는지 모르는지 사자의 아가리에 입을 넣었다 뺐다 하며 장난질을 치는 이 우매한 중생에게 한번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제프만큼이나 P.I.B도 우리 아저씨한테 관심이 참 많더라?”
주가지와 이말희를 통해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이정후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엘리스는 이정후와 혈연관계는 아닌데 이지후에게는 삼촌이라는 혈연관계에서나 부를 법한 지칭을 하고 있는 묘한 관계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이란 곳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아무런 그 백그라운드가 존재하지 않는 신기한 존재였다. 뒤늦게 엘리스 자신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가 담긴 신상정보가 생겨났지만 출신 고등학교라고 우기는 곳이라든가 출신 대학교라고 하는 곳 어디에도 엘리스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디지털 세상에서 존재하는 파일들만이 엘리스가 실존함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관심은 있습니다. NASA를 통해 화성에서 채취해온 물질에서나 확인 가능한 원소들이 포함된 악세사리를 만드는 회사 ‘드워브스’의 실질적 주인이자 지구상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곳, 별자리를 통해 추측하기론 마치 화성에서 찍은 것만 같은 영상을 찍어 너튜브에 올린 남자. Martian man, 이정후에 대해 저희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겠죠.”
“거기까지 알아냈구나. 그래서 우리 아저씨를 데리고 뭘 하고 싶은 거지?”
“저희가 현재 가장 궁금한 것 두가지는 ‘어떻게 화성을 오가며 화성의 금속을 가져오는 것인가’와 ‘먼지밖에 없는 화성의 표면이 아니라 마치 지구와 다를 바 없는 환경으로 보이는 영상 속의 공간은 어디인가’입니다. 한가지 더 있다면 이정후는 과연 지구인인가 하는 것이구요.”
“그래서?”
“요원들을 통해 점차 친해져서 해당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거기까지뿐?”
“뭐, 여차하면 이곳에 모셔와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눠볼까도 했습니다만. 기이한 능력을 보이는 엘리스 님이 이곳에 오셨으니 엘리스 님을 통해 얻어볼까 합니다.”
엘리스는 차를 가져오겠다며 나섰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주가지가 뭘하고 있나 싶어 투시를 해서 보다 616호실을 둘러싸고 총기를 장비한 채로 대기 중인 인원들을 확인했다.
“그런데 주가지 언니는 이제 안 올건가봐?”
“아, 차 말씀이십니까?”
엘리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주가지는 쟁반에 찻잔 두 개를 올려놓고 들어왔다.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카모마일하고 커피입니다. 혹시 몰라 두가지 종류를 준비해왔으니 개인 취향에 맞게 기호에 따라 골라 드세요.”
“그래? 고맙네.”
차를 내려놓고선 쟁반을 챙겨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문밖으로 주가지가 나가고 난 뒤 엘리스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커피잔을 들자 스탠은 자연스럽게 남은 카모마일 차를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음, 커피 향이 좋네. 케냐AA인가?”
“묵직한 바디감이 좋은 커피죠.”
“그래, 다 좋네. 한가지만 빼고.”
“어떤 점이 별로이신지?”
“나중에 이야기해주지.”
“나중 말씀이십니까? 궁금하군요.”
고릴라도 금방 재울 수 있는 마취 성분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도 나중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스탠은 궁금했다.
카모마일 차에도 동일한 성분이 들어 있었지만 미리 접객실에서 대기하는 동안 복용해놓은 중화제로 인해 자신에겐 작용하지 못할 것이었지만 엘리스는 곧 잠에 빠질 터였다.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커피를 다 마신 엘리스는 잘 마셨다면서 커피잔을 들어 머리 위로 탈탈 털었다. 조만간 잠이 들 것도 모르고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커피잔을 털어대는 엘리스의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뭐가 그렇게 웃길까? 아, 이거?”
손을 머리 위에서 위 아래로 한번 더 흔든 엘리스는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분명 시간이 흘렀는데도 멀뚱멀뚱 자신의 눈을 쳐다보는 엘리스의 모습에 스탠이 의아함을 느낄 때쯤 엘리스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카메라가 있는 허공을 쳐다보며 이상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스탠에게 물어봤다.
“이상하지? 코끼리도 잠들만한 충분한 마취제가 들어갔는데 왜 쟤는 기절하지 않는 걸까?”
“뭐...뭣?”
“그리고 어째서 쟤가 아니라 내가 슬슬 졸음이 오는 걸까. 중화제를 미리 투약해서 졸음이 올 리가 없는데. 하고 말이야.”
“어떻게...윽”
엘리스가 말을 마치며 오른손으로 검지와 엄지를 튕기자 스탠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고개가 고꾸라지며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616호실을 둘러싸고 전후좌우 4면에서 구멍들이 열리며 총구가 겨눠졌다.
“잘 생각해. 이해할 수 없는 걸 건드릴 때는. 마지막 선을 넘지 않도록.”
[어떻게 한 거지?]
“궁금해?”
엘리스의 질문에 주가지는 대답하지 않고 무력시위진압용으로 쓰이는 고무탄을 발사하도록 허가를 내렸다.
“투투투투투투투투툭”
수십개의 총에서 탄창 하나가 비워지도록 고무탄이 쏘아져 나갔지만 어느 것 하나도 엘리스의 몸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 무언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버렸다.
[말도 안돼!]
“돼.”
엘리스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멈춰 있던 고무탄들이 가을에 떨어지는 밤송이처럼 후두둑하고 바닥에 모두 떨어져 나뒹굴었다.
“이젠 내 차례지?”
[뭐?]
당황한 주가지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들리고 엘리스가 다시 한번 오른손으로 스냅을 하자 스피커를 통해 질량이 꽤 나가면서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물질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몇초가 지나자 마치 이 건물에 방금 전까지 들렸던 소음이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오늘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세운 원칙이야. 만약 진짜 총을 쐈으면 여기 있는 모든 인원들을 그저 기절만 시키고 끝내는 친절한 대우는 없었을 거야.”
엘리스는 차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엘리스와 스탠이 방 안에서 사라지고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기절한 채로 사라졌다.
크로노스피어 로지스틱스 건물 깊숙한 곳에 위치한 비밀의 공간에 모든 사람이 모여 널부러져 있는 것을 둘러본 엘리스는 스탠만 조용히 깨워냈다.
“으윽, 내가 왜...잠에 들어 있던 거지.”
스탠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비상대피 공간이자 패닉룸에 건물에 있던 모든 요원들이 마치 테트리스처럼 구겨져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잠은 잘 잤어?”
“이 목소리는?”
자신의 등 뒤에서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스탠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어?”
자신을 보고 동공이 확장되며 크게 놀라는 스탠을 마치 스탑모션의 인형처럼 멈춘 엘리스는 스탠을 한바퀴 빙 돌아가며 말을 걸었다.
“자, 여기서 문제. 마취제를 썼는데 정작 자신이 기절한 것뿐만 아니라 모든 요원을 숨겨진 공간으로 옮겨 놓고선 자신만 깨운 이해 불가의 능력을 지닌 존재를 건드린 스탠이 앞으로 해야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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