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220화미지와의 조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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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프로그래머로 오랜 시간 일하던 저는 현실에 지쳐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습니다. 너튜브에선 그런 제 심리상태를 알고리즘으로 인지했는지 ‘paradise’라는 채널명에 올라온 이국적인 정취가 담긴 영상들을 추천해줬습니다. 우물우물”
분명 입에 음식이 있는데도 말을 하는데 음식을 주변에 튀기지 않는 깔끔한 식습관을 보여주는 더치스는 넉넉히 시켜놓은 햄버거 세트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아, 나도 저기가 어딘지 한번 꼭 가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근데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추천해준 지역들을 바탕으로 아무리 두들 맵을 뒤져봐도 똑같은 곳을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꿀꺽.”
‘아직 배가 덜 찬 것 같은데?’
“여기 한 세트 더 먹어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이거 갑자기 찾아와서 민폐가 따로 없네요. 이 은혜는 보답하겠습니다.”
“은혜까지야...”
“그래서요? 찾아봐서 없으니까 어떻게 했어요?”
“지후야, 일단 먹게 좀 냅둬.”
“아저씨, 나도 궁금해.”
“나도. 우적우적.”
우리들 식성에 맞게 시킨 4스택 버거의 포장이 다시 하나가 벗겨졌다. 어찌된 일인지 섀넌은 더치스란 여자를 향해 경쟁심을 불태우며 자신도 비슷한 속도로 새 포장지를 까서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때부턴 일종의 취미가 되었죠. 이 영상 속에 나온 곳이 어디인지 시간 날때마다 찾았어요. 근데 6개월 정도 그렇게 찾아도 안나올 때 이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혹시 그 영상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냐구요. 그치, 하트?”
“응, 와우, 이거 배고플 때 먹어서 그런가...맛있네.”
더치스란 안경 쓴 흑인 남자는 입맛을 다시며 아직 덜 먹었음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버거 하나를 건네줬다.
“여기. 지후야, 치킨 좀 시켜.”
“감사합니다.”
“대충 6마리면 되려나?”
“사람이 몇인데 그걸 누구 코에 붙여, 1인 1닭은 되어야지.”
조용히 먹던 섀넌이 한국말로 1인 1닭을 외치자 그걸 들은 더치스와 하트에게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졌다.
“1인 1닭? 그게 뭐죠?”
사람 수대로 치킨 한 마리씩 시켜 먹는 걸 1인 1닭이라고 설명해주자 더치스는 마치 영어단어를 외우던 우리들의 학창시절처럼 1인 1닭을 읖조렸다.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만들어진 영상이 아닌가까지. 쪼옵”
옆에 있는 하트란 친구는 꽤나 단짝인 듯 콜라를 빨아마시며 더치스를 도왔다.
“아, 그랬지. 만들어진 영상인가 싶을 때부터 하트와 함께 영상제작자들을 대상으로 내노라하는 영상 제작 관련 기술자들에게 문의를 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 영상이 조작된 적 없는 일반적인 Vlog라는 이야기만 해주더군요. 우리의 서치는 거기서 그렇게 막혔어요.”
“그걸로 끝?”
엘리스의 질문에 더치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우리가 더 이상 진행을 시키지 못하고 갑갑해할 때,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
“정부쪽 인사라는데 정체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신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 당신들의 사생활이 우리 감시 대상에 들어오게 되는데 괜찮겠냐는 뉘앙스로 되물었을뿐.”
“그래서 어디서 온 이들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죠. 정상급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다 보면 이래저래 정부 인사들하고 엮이는 경우가 있어서 비밀스럽게 프로젝트 진행하고 그러다 보니 주변 친구들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 검은 수트 정부 요원들은 왜 온 거래요?”
“채널에 올라온 영상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알고 있는대로 브이로그인 것 같은데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해줬죠. 그러니까 알겠다고 하고 떠나더군요.”
“흐음. 뭐지?”
우리들끼리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더치스가 두 번째 세트를 먹어치우고선 손가락을 휴지로 닦은 뒤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냥 이상한 헛짓으로 시간낭비를 했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정부 쪽에서 사람이 찾아오니 너무 이상한 겁니다.”
“맞아, 우리가 뭐 대단한 국가비밀을 뒤적거린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래서 영상 속에 뭐 이상한 점이 있나 싶어 그때부턴 영상 하나하나를 마치 인체를 분해하듯 초 단위로 나눠서 봤어요.”
“무슨 이상한 점이 보이던가요?”
지후의 질문에 더치스가 진지한 자세를 취하자 하트도 어느새 다 먹었는지 자세를 제대로 했다.
“별자리요.”
“별자리?”
“영상들 중 밤하늘이 언뜻 나오는 장면이 딱 한번 나오더군요.”
“밤하늘? 혹시...”
더치스는 그저 하늘에 꽉 찬 밤하늘에서 감동만 받았는데 다시 보니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별의 배치가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사뭇 달랐다는 것이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취미가 천체동아리였거든요. 밤하늘이라는 것도 결국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영상 속에서 나오는 별자리는 유럽이 아니라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별자리였어요.”
“우리는 이게 지구의 별자리가 아니라면 어디의 별자리일까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화성’의 별자리인데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화성’에서의 별자리로 나오더군요.”
“이런...”
“더치스!”
“나도 봤어. 하트.”
엘리스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결과라는 사실에 낭패가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행동이었다. 더치스와 하트는 엘리스가 보인 표정이 비밀로 하고자 하는 바가 실수로 들켰을 때 나오는 표정인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영상 속에 나온 그쪽 이름이 ‘정후’였는데 맞죠? 정후 씨는 이 영상들 지구에서 찍은 게 아니죠? 컴퓨터 그래픽같은 것도 아니고.”
정후는 이 사람들이 대충 눈치를 챘음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쇠를 취하고자 아닌 척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저희들이 만든 그래픽이 꽤나 정교했나봅니다. 기술자들 눈에도 그저 일반적인 영상으로 보였다니.”
정후가 덮으려고 한다는 걸 엘리스도 눈치채고 정후에게 동조했다.
“제가 만든 컴퓨터 그래픽 제작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어떤 세상이든 상관 없이 그 세상 속에 있는 것처럼 영상을 만들 수가 있어요.”
“그럼 이 영상들을 올린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될까요?”
사실 별다른 큰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당시 너튜버 열풍에 나도 이세계에서의 경험들을 영상으로 찍어 내 채널에 올리고 싶다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우리의 기술력을 자랑하려고 올린 겁니다. 그뿐이에요.”
“그렇습니까? 흐음, 그래픽 제작 실력이 대단하네요.”
서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치스와 하트는 원하는 정보를 밝혀내고 싶은 입장이었고, 정후 쪽은 되도록 진실을 알리길 원하지 않는 입장이었다. 더치스는 이 사람들이 어디까지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 지켜보며 진실을 말해주길 원해서 미끼를 던졌다.
“그렇다면 제가 헐리우드 영상 제작자들에게 당신들을 소개해드려도 될까요?”
“당신이요?”
“이렇게 대단한 기술이라면 어느 영화감독이라도 환영할 거에요.”
“더치스, 영화뿐이겠어?게임 그래픽이 이정도라고 생각해봐. 누구라도 이 게임을 하고 싶을 거야. 당신들이 사용하는 영상 제작용 엔진은 뭐죠? 노리얼 엔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확신합니다. 노리얼 엔진을 만든 개발사는 긴장해야 할 것 같군요.”
더치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짝친구인 하트도 바로 눈치챘다.
“저기...그게...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3D 엔진따위 만든 적도 없으니 이름이라고 정한 것도 없었다. 이때 섀넌이 나섰다.
“언아더 월드 another world에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세상이라도 담을 수 있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죠.”
“그렇습니까?”
“그래요, 그런데 시간이 늦은 것 같은데 이만 좀 저희들끼리 시간을 보내도 될까요? 처음 뵙는 분들에게 손님 대접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은데...”
더치스와 하트는 자신들이 무례한 손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유럽식도 아니고 북미식도 아닌 한국인들이 하는 발음이 섞인 영어를 하는 섀넌이란 백인 여자는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들을 쳐다 봤다.
“이거...갑자기 찾아와서 시간도 빼앗고, 밥도 얻어먹고 죄송했습니다. 시간 여유가 되실 때 저희에게 연락을 주셔도 될까요?”
“네, 시간 될 때 연락 드리겠습니다.”
“제 전화번호 여기 적어놓고 갈테니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오늘 식사에 대한 보답도 해드리고 싶습니다.”
더치스는 만년필을 꺼내 티슈에 천천히 로밍 가능한 자신의 스마트폰 전화번호를 적었다.
“휴우, 섀넌, 잘했어. 아주 대단해.”
“이야, 형수님, 거기서 그렇게 태연하게 이야기하는데 난 무슨 영화배우 대사 보는줄.”
“잘 내보내긴 했는데...”
“아저씨, 난 우선 저 사람들이 여기 찾아오면서 남긴 정보들 중에 우리들에게 해가 되거나 할 정보들은 차단시키는 작업을 해야겠어.”
“그래. 부탁 좀 하자. 그리고 앞으로 혹시라도 비슷한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좋은 대응방법 생각해놓자. 저 사람들이 찾아왔으니 언제든지 누구라도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해. 올린 채널은 아예 지워버리고.”
“아깝다. 너튜버 구독자 수도 많았는데...”
“51구역에 끌려가도 아쉬울까?”
“엘리스, 내가 당장 지울까?”
정후의 지적에 지후는 화들짝 놀랐다.
“아냐, 서버 우회도 해야 되고 IP 주소 추적같은 거 되지 않게 내가 작업할게.”
“분명 그 사람들이 만든 영상은 게임 그래픽같은 게 아니야. 더치스.”
“나도 알아. 척하면 착이지. 하지만 거기서 괜히 그 사람들 불안감만 자극해봐야 좋을 게 없잖아. 편하게 만들어줘야 입을 열고 우리에게 마음을 열지. 프리드먼의 문지방 기술대로 가는 거야. 천천히 부담스럽지 않게 한발씩.”
“이거 한국에서 있는 시간들이 아주 흥미진진해질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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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들이 한국으로 왔습니다. 아무래도 영상 제작자들을 찾아낸 걸로 보입니다.”
[추적하고 있다는 걸 들키지 말고 조용히 지켜보도록.]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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