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218화미지와의 조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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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조율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만약 자동차끼리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자동주행 자동차들은 각자 어떤 판단이 더 이롭다고 판단해야 하는가. 이를테면 양측의 구제확률이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4인이 탑승한 차를 희생시키거나 2인이 탑승한 차를 희생시켜야 할 때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재산의 총합을 우선시하여 2인이 탑승한 쪽의 차량가액이 비싸고 2인의 재산의 총합이 4인의 재산의 총합보다 많다면 부자의 차량을 구해야 할지 아니면 4인의 목숨을 더 가치 있게 계산하여 4인이 탑승한 차량을 구하고 2인이 탑승한 차량을 포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살리는 쪽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묻자면 사고가 발생하게 된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거지? 자동차 제조사? 아니면 자동주행 시스템을 제작한 회사? 자동차와 인공지능을 제작한 제작사가 동일하다면 프로그래밍을 한 프로그래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이 제품을 판매하도록 마지막으로 허가한 회사의 사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아니면 이 제품이 출시가 되도록 허가한 정부? 관련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
“어...어렵구나.”
“기술적으로만 말하자면 내가 가진 기술만으로도 이미 자동주행 자동차는 만들어줄순 있어. 근데 지금 말한 예시들의 경우처럼 사회적 합의는 모든 국가가 동일하진 않을 거야. 무엇보다 아저씨가 말한 대로 인공지능이 ‘인간성’을 가지게 되어서 대중이 보기에 일관되지 않은 판단을 한다거나 감정적 판단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게 과연 인공지능의 옳은 발전이라고 모두 혹은 다수가 동의할 수 있을까?”
엘리스의 질문은 사회적으로 한발 앞선 기술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기술만이 아니라 법,윤리,철학 등 사회 전반적으로 인간들의 의식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진보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복잡했다. 그저 인간의 목숨과 인간의 발전을 위하도록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 어쩌면 누군가에겐 피해가 될 수도 있고 원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
“머리 좀 식히고 와야겠다.”
“그래...”
얼마 전부터 무언가 머리에 가득한 것들을 치워놓고 싶을 때면 세차장에 오는 취미가 생겼다. 셀프 세차장에 도착해서 드라잉 공간에서 차를 식히는 동안 실내에 쌓인 먼지들을 실내세정제를 묻힌 전용 타월로 닦아내고 바닥에 있는 시트를 꺼내 세척기에 넣고 돌리는 등의 실내 세차를 마쳤다. 실외 세차를 위해 베이에 차를 옮겨 놓고 전용 장비를 차례차례 꺼내 놓은 뒤 압축 분무기에 물을 넣고 일정량의 APC(다목적 세정제)를 따라 넣어 희석시켰다. 본 세차에 들어가기에 앞서 프리워시 prewash 과정에서 화학적으로 차에 달라붙은 이물질들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APC를 뿌리기에 앞서 이제 충분히 식은 휠과 타이어 4짝에 약제를 뿌려주고 어느 정도 반응이 올라오길 기다렸다. 환자들끼리 갈변반응이라고 해서 타이어 위에 뿌려둔 약품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도장면과 다르게 빳빳한 브러쉬로 마치 빨래하듯이 빡빡 문질러 타이어를 닦아내고 휠 구석구석에 쌓인 분진을 제거하고자 휠 전용 브러쉬로 문질러주었다. 약제가 말라붙지 않도록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바퀴에 깨끗한 물을 끼얹어 주면 휠 세척 과정은 끝이다.
휠과 타이어를 닦아준 나는 희석된 APC를 가지고 차 주변을 돌아다니며 압분을 통해 빠지지 않은 곳이 없는지 확인하며 뿌려준 뒤 세차장에 있는 폼 건을 이용하여 APC가 뿌려진 차 위에 2차로 폼을 얹어주었다. 겨울에 내린 눈처럼 뽀얀 폼을 차 위에 얹어주자 어느 정도 기분이 맑아졌다. 차 위에 얹어 놓은 폼이 차 도장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동안 버킷에 물을 담은 뒤 카샴푸를 풀어놓은 뒤 비커에 이 물을 담아 여자들이 파운데이션 화장할 때나 쓸법한 부드러운 브러쉬로 적셔 차체 사이의 틈새를 구석구석 닦아냈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잡념들을 치워내듯이.
폼이 어느 정도 흘러내려 창문까지 내려왔을 때면 폼이 말라붙기 전에 고압수를 통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쓸어내듯이 차에 올라가 있는 약품들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고압수가 나오는 시간을 조절한 덕분에 카샴푸가 담긴 버킷에 건을 집어넣고 고압수를 쏘아낼 여유가 있었다. 고운 거품이 버킷 안에서 몽글몽글 솟아올랐다.
“이제 프리워시가 끝이났네.”
세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압수로 폼을 닦아내고 나면 그걸 끝으로 물기를 닦아내고선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같은 세차 ‘환자’들은 이제 본세차를 할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부드러운 거품이 가득 찬 버킷에 자동차 도장면을 닦아내기에 좋은 부드러운 전용 미트를 담가서 푹 적신 뒤 차를 8부분으로 나누어 차량 전면부부터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듯이 힘을 가하지 않고 닦아주었다. 그렇게 한 판넬을 닦아낸 미트는 미트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떨궈 주기 위해 버킷 안에 배치해둔 그릿가드 위에 대고 문질러준다. 거미줄이 방사형으로 퍼진 것처럼 생긴 형태의 이 그릿가드라는 도구는 버킷 안에서 이물질들이 섞여 돌아다니지 않도록 와류를 방지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처음엔 그냥 사장님이 이것도 같이 사는 게 좋겠다고 해서 바가지 쓰는 기분으로 샀는데...다 이유가 있는 거였지.”
그렇게 차를 카샴푸가 묻은 워시미트로 닦아낸 뒤 나는 다시 한번 고압수로 차체에 묻어있는 카샴푸의 잔여물들을 전부 헹궈주었다. 물기가 촉촉이 젖어있는 말끔해진 차체가 눈에 들어왔다.
“흐음, 오늘은 카나우바 왁스로 LSP(last step product)를 해줄까?”
물왁스로 간단하게 LSP를 할 거라면 여기서 차체에 묻은 물기를 제거하는 드라잉 과정으로 들어가기 위해 차를 드라잉 공간으로 옮겨야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왁스를 얹기로 마음 먹었기에 차를 베이에 올려둔 상태로 도장면 위에 남아 있는 이전에 작업한 코팅들을 정리하기 위하여 물기가 젖어있는 상태에서 작업하는 습식 페인트 클렌저를 차 위에 장난치듯 뿌려주었다.
습식 페인트 클렌저를 이용해 차 도장면을 닦아주는 용도의 테리어플로 차 전체를 문지르며 중간 중간 마르지 않게 다시 떠온 버킷의 물을 적셔 주었다. 도장면을 그렇게 모두 닦아준 뒤 다시금 고압수로 세척하는 과정을 마친 나는 그제서야 드라잉 공간으로 차를 옮겼다.
드라잉 공간에는 나말고도 마지막 작업을 위해 차를 단장 중인 비슷한 사람들이 몇몇이 보였다.
‘밤이 늦었는데...나같은 사람이 혼자는 아니네.’
습식 페인트 클렌저로 탈지를 마치고 나면 도장면은 목욕을 마친 후 바디 로션을 발라주지 않은 사람의 피부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아주 부드러운 극세사로 이루어진 드라잉 타월을 가지고 혹시라도 차 도장면에 스월이 남지 않게 툭툭 두드려주듯 물기를 조심스럽게 제거해냈다.
“벌써 3시간이 지난 건가? 마무리까지 후딱 하자.”
물기가 모두 제거된 도장면 위로 전용 어플로 왁스를 묻혀 연지곤지 찍듯이 여기저기 왁스를 찍어준 나는 빈틈이 없게 차량 도장 면 전체를 뱅글뱅글 원을 그려가며 발라주었다.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도장 면 위에 발라진 왁스가 말라붙지 않고 적당하게 경화(?化)되었기에 차량 도장면을 덮은 여분의 왁스를 걷어내는 버핑 작업을 시작했다. 물광화장을 한 사람의 피부처럼 차량 도장 위에 광택이 올라왔다. 마무리로 유리까지 전용 세정제로 말끔하게 극세사 타월로 닦아준 나는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흐음, 이제 다 했나? 어디 보자~”
도장면이 마치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비추는 모습을 차를 돌아보며 확인한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뿌듯한 장장 4시간이 넘게 진행한 결과물을 남기고자 사진 몇장 찍어주었다.
“어?”
사진으로 찍은 결과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타이어 광택 작업을 빼먹은 것이 떠올랐다. 광택이 좌르르하고 흐르는 차와 다르게 허옇게 뜬 타이어가 눈에 거슬렸다.
“흐음, 이걸 까먹었네. 에이.”
전용 광택제로 타이어와 플라스틱 트림 부분들까지 코팅해주자 그제서야 완벽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진짜 끝!”
깔끔하다 못해 광택이 제대로 입혀진 차를 지켜보며 혼자 만족하고 있는데 새벽인데도 나처럼 차를 닦는 것이 취미인 ‘환자’들의 웅성거림이 주변에서 들려왔다.
“이야, 체력하고 집중력이 대단하십니다.”
“아닙니다.”
박수를 치며 감탄하는 머리가 훤한 아저씨에게 두 손을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있는데 다른 배나온 아저씨가 음료수를 들고 오셨다.
“아니긴요. 번개처럼 쉬지도 않고 계속 움직이시며 작업하시는 그 체력에 놀랐지만 무엇 하나 빠짐없이 챙기는 꼼꼼함에 또 놀랐습니다. 목 마르실 것 같아서 여기 음료수 하나 뽑아왔는데 드세요.”
“아,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시니까 이건 잘 마시겠습니다.”
어차피 타이어에 광택제를 발라 도장면에 타이어 광택제가 튈 수 있어 바로 갈 수 없는 상황인데다 음료수까지 챙겨줘서 아저씨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동세차로는 이런 뿌듯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가 없죠.”
“맞습니다. 자동세차는 차 도장면 여기저기에 스월마크도 생기고 도장면이 작살나니까 셀프세차를 시작하고 나선 가본 적이 없어요.”
세명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제 모든 것을 마쳤는지 젊은 사람이 와서 끼어들었다.
“뭐, 자기 만족이죠. 워시프릭 아저씨. 중고차였다면 저도 그냥 자동세차하러 다닐 거 같아요. 그게 돈도 훨씬 덜 들고.”
‘옆의 아저씨랑 아는 사이인가?’
“돈이 덜 들기는? 셀후왕자야.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도장면이 칙칙해지니 말끔하게 만들려면 재도색을 해줘야 돼서 돈이 더 들지.”
“워시프릭 아저씨, 중고차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도장면에 광택 안 나온다고 불만스러워하고 그러나요? 어지간하면 그냥 끌고 다니죠. 우리같은 환자들이나 이 새벽에 차 닦고 그런 거에요.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죠?”
“아....”
젊은 사람의 생각도 맞다고 생각했는데 옆의 아저씨가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어서 대답하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기에 젊은 남자의 편을 들어주기가 뭐했다.
“우리같은 환자들이 있어야 이런 셀프세차장이 먹고 살고 늘어나지. 다 자동세차만 하러 다니면 셀프세차장 사장들 다 망해. 뭐든 손님이 있어야 유지가 된다고. 당장 나만 해도 카센타하는데 앞으로 전기자동차 생각하면 갑갑하다.”
“전기자동차가 왜요?”
카센타를 한다는 배 나온 아저씨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기차는 카센타에서 바꿔줄 부품이 많이 없어요. 고쳐야 하거나 바꿀 부품이 필요하면 제조사로 들어가서 수리받고 나와야 하죠. 앞으로 전기차가 보급될수록 카센타하면서 먹고 살던 사람들은 폐업 확정인 상황이랄까? 그래서 예전같았으면 카센타하겠다고 하면서 기술 배우는 친구들 보면 후배들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는데 요즘은 조만간 접을 업종에 들어오는 걸로 보여서 안쓰럽게 보이고 그럽니다.”
“아...그래서.”
전기차의 보급이 자동차 수리업자들의 밥벌이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여기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예전에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컴퓨터 학원이 늘어날 때 주판을 가르치는 주산학원들이 줄줄이 망해나갔다. 전기차의 보급으로 자동차 수리업자들의 폐점도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인 것이었다. PC방이 늘어날 땐 오락실들이 줄줄이 망했고, 온라인 판매가 활발해질수록 오프라인 소매점들이 망해간다.
타이어에 바른 광택제가 도장면에 튈 일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다음에 만나면 그땐 인사도 하고 그럽시다.”
“좋은 제품 있으면 빌려드릴게요. 그쪽도 좋은 제품 있으면 알려주세요.”
“예. 다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차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새벽의 공기가 어느새 차가워진 것이 느껴졌다.
“가을인가...후우.”
생각을 정리하러 가서 좋았는데 문득 느낀 차가워진 공기 때문에잊고 있었던, 아니 잊고 싶었던 눈이 가득 덮힌 말라야히마의 풍경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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