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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7화 〉 217화­미지와의 조우(1) (217/239)

〈 217화 〉 217화­미지와의 조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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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솔길을 걷고 난 후 우리 가족은 칼국수를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4명 까지만 한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면서 6명 모두 한테이블에 앉을 수는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어떻게 나눠 앉지?”

“셋씩 따로 앉는 게 나으려나?”

“남자들끼리 먹어. 나는 이쁜 딸내미들하고 먹을란다.”

“마누라, 남편도 버리는겨?”

“매일 붙어다니는데 한끼 따로 먹읍시다.”

아버지께선 자신도 칙칙한 아들들하고 밥 먹기 싫다며 여자들이 있는 테이블에 앉으려고 하셨지만 어머니께서 눈을 부릅뜨며 거절하는 통에 아들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와야만 했다.

“휴우.”

“한숨 좀 그만 쉬세요.”

어머니가 앉은 테이블을 향해 쳐다보며 지후가 잘라놓은 김치를 젓가락으로 집어드시는 아버지에게 지후가 짜다며 이따 칼국수가 나오면 드시라고 말렸다.

“아~주 고맙구나, 아들아. 덕분에 아주 오래~ 살겠어. 마누라도 안 챙겨주는데 아들내미라도 이~렇게 챙겨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고혈압도 있으신 양반이 짜게 드시니까 그렇죠.”

“인마, 몇 개나 집어먹었다고.”

“알았으니까 가서 막걸리나 떠와.”

우리가 간 바지락 칼국수 집은 막걸리를 맘껏 떠다먹어도 괜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집이었다. 지후가 한 동이를 떠서 우리 쪽으로 오다 어머니에게 잡혔다.

“이건 우리쪽에 주고 가.”

“엄마도 드실라고?”

“애들이랑 나눠 먹게. 너랑 정후 둘은 운전해야 되니까 먹지마.”

“히잉.”

“아버지 건 조금만 떠드리고.”

어머니에게 붙잡혀 무슨 이야기를 듣고선 졸지에 땀 흘리고 마실 시원한 막걸리를 눈 앞에서 빼앗긴 지후가 투덜거리며 한잔만 떠서 우리 테이블로 왔다.

“얀마! 왜 그거만 가지고 와. 여기 사람이 몇인데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엄마가 형이랑 저는 마시지 말래요. 운전해야 되니까. 아버지도 요거 한잔만 드시랍니다.”

“니들 못 먹는다고 나까지 요거만 먹고 땡치라고? 혓바닥만 겨우 적시겠고만.”

“이따 저녁에 집에 가서 LA 갈비랑 소주랑 드실 거면 그거 한잔만 드시고 끝내고, 여기서 두잔 이상 마시면 저녁은 얄짤 없답니다.”

“그르냐? 쩌업. 어쩔 수 없네. 이것만 먹고 땡쳐야지.”

아버지께선 이슬이 맺힌 플라스틱 막거리 잔을 마치 생명수를 대하듯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 보셨다.

“자자, 한잔씩들 받아. 내가 이렇게 우리 집에서 여자들끼리 술 마시는 날이 오길 얼마나 기대했는지 모른다. 고맙다. 고마워.”

섀넌과 엘리스는 정후의 어머니가 자신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이렇게 좋아하실지 몰랐다.

“집안에 순 남자들 뿐이라서 정말 외로웠는데. 드디어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저도 할머니랑 이렇게 마실 수 있어서 좋아요.”

“흐음, 이렇게 갑자기 할머니 소리를 듣게 될줄 몰라서 아직 적응은 안되는데 그래도 나쁘지 않네.”

정후의 어머니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더니 방금 전까지 표정은 연기였다는 듯 활짝 웃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

한잔씩 걸치고 나자 정후의 어머니가 섀넌의 손을 따뜻하게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며늘아, 며늘아라고 불러도 괜찮지?”

“네.”

“정후가 은근히 막힌 구석도 있어서 고집도 있고 그래서 니가 좀 피곤할지도 몰라. 혹시라도 둘이 살면서 정후 때문에 힘들고 피곤할 때 있으면 나한테 와서 하소연하고 그러렴. 내가 니 편이 되어줄테니.”

“아니에요, 정후 씨는 자기 하는 일에 열심인 게 멋있고, 세심하게 주변 사람들도 잘 챙겨서 좋아요.”

자신의 아들에 대해 뒷담화를 하기보다 장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주는 이 외국인 예비 며느리가 정후의 엄마는 참 마음에 들었다. 한국 말도 어찌나 잘하는지 흔히 외국인 며느리를 집안에 들여서 생기는 그런 커뮤니케이션 문제같은 건 전혀 상관 없을 것이었다.

더구나 속물같을 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된 입장에서 자신의 아들이 무슨 수로 이렇게 예쁜 아이를 꼬셨는가 싶을 정도로 예쁜 외모라 더 좋았다.

“그래 그래. 좋게 봐주니 고맙구나.”

“앞으로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잘 봐주세요.”

“말도 참 이쁘게 해.”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지던 도중 따뜻하게 갓 만들어진 칼국수와 파전이 나오면서 세 사람은 미소를 머금고 식사를 시작했다.

“어우, 배불러.”

“뭘 그렇게 많이 먹었어.”

“삼촌, 이렇게 신선한 해산물 먹을 수 있는게 얼마나 큰 복인줄 알아?”

아무리 배송기술이 발달하고 도로가 발전한다고 했어도 더스트에서 이런 신선한 해산물을 접하려면 현지에 가지 않고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갯벌에서만 캘 수 있는 바지락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나라가 몇이나 되는가.

미래에는 바다가 오염되어 이런 신선한 자연산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옆나라에서 방류하는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에 퍼지고 있는데다 미세 플라스틱까지 끊임없이 바다에 흘러 들어가니 ’천일염‘이라는 것도 오염되어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됐지.’

천일염의 특성상 오랜시간 묵히면서 간수를 빼내어야 하는데 문제는 천일염이 사람들의 인식보다 그렇게 깨끗한 소금이 아니었다는 인식이 어느 순간부터 퍼지게 되어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천일염이 아닌 정제염을 구매해서 먹게 되었다.

“아저씨, 아까 막걸리 진짜 맛있더라.”

“그르냐?”

“아주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게.”

“확실히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마시니까 그런 것 같아.”

“우우, 이럴 땐 자동주행되는 차가 일상화된 세상이면 좋겠다 싶다니까. 술 마시고 타도 알아서 집에다 데려다 주고.”

“그으래?”

“그나저나 요즘은 미세먼지가 없어서 참 좋아. 하늘 맑은 것 봐.”

하늘은 구름 없이 파란색으로 가득 차 있어 여름이 끝이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지후 말대로 하늘이 정말 파랗구나.”

“뉴스로 봤는데 호주하고 중국하고 문제가 생겼는데 호주에서 석탄 수출을 안하게 되면서 중국에서 석탄 부족으로 전기 생산에 차질이 생겼대. 덕분에 중국 내에 있는 공장들도 계속 돌릴 수 없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한국으로 날아오는 미세먼지가 급감해서 한국의 대기가 깨끗해진 거지.”

“남반구에 있는 호주의 선택으로 중국이 셀프로 제재를 하고 그로 인해 북반구에 있는 한국의 공기가 맑아지다니...세상 일이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파란 한국의 하늘에서 알 수 있듯 지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초연결사회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데스 게임 장르의 컨텐츠가 OTT 서비스를 통해 전세계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한국의 전통놀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예전 같았으면 돈이 없는 자들에게 이입을 했을 터인 정후는 그 드라마 시리즈를 보면서 돈이 많은 사람으로 나오는 캐릭터의 대사가 유달리 와닿았다. 돈이 너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의 공통점이란 세상이 재미가 없게 느껴진다고 하는 것이었던가.

너무 빨리 부가 늘어났고, 젊은 나이에 맞지 않게 많은 사건들과 인생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이제 겨우 30도 안된 자신의 속은 크게 늙어버렸다. 그런 자신의 무채색 삶을 유일하게 컬러로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있었다면 그건 가족과 섀넌이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이뻐서.”

“치~ 빈 말은.”

“아닌데, 이뻐서 이쁘다고 한 건데.”

“아우, 눈꼴 시어. 제발 그만해! 나 지겨워~”

뒷좌석에 앉은 엘리스가 섀넌과의 알콩달콩함을 참지 못하고 드라마 대사를 빌려 짜증을 냈다.

“너 성대모사 잘한다.”

“이제 출발~해. 이러다 다 죽어! 어서 가. 파란 불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엘리스가 뜬금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저씨, 아저씨는 뭐가 하고 싶어?”

“모르겠네.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그냥 너랑 섀넌이랑 가족이랑 같이 행복하게 사는 거?”

“요즘 삶이 심심하지?”

“그건 왜 묻냐?”

“내가 아저씨 인생 좀 재밌게 만들어 줄까 해서. 나랑 어디 가볼래?”

“어디? 잠깐만 기다려봐.”

엘리스는 빨간색 신호등으로 멈춘 사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네비를 띄우곤 어느 주소를 찍더니 이곳으로 가자고 했다.

“여기로?”

“가면 재밌는 거 있어.”

한참을 달려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공단 내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여기에 무슨 재밌는 게 있어.”

“기다려봐.”

엘리스가 건물 입구에 도착해 출입장치에 비밀번호를 누르자 막혀 있던 문이 열렸다.

“철컥”

엘리스의 인도를 따라 들어간 곳은 일반적인 공장과는 그 느낌이 매우 달랐는데 왠 컴퓨터 장비들과 함께 서버실같은 걸로 꾸며져 있었다.

“진짜 여기 뭐하는 곳이야?”

“짜잔.”

엘리스가 숨겨져 있던 키보드를 꺼내서 타이핑을 치자 어둑했던 공간이 환하게 밝혀지며 까맣게 되어 있어 몰랐던 전면이 디스플레이로 바뀌며 한 여자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선 자신들을 향해 무슨 빨간 선 같은 것이 벽의 렌즈를 통해 스캔을 하듯이 훑고 지나갔다.

[어서오십시오, 엘리스님, 이정후 님, 섀넌 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적의 공간에 찾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목소리는?”

“익숙한 목소리지.”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마더가 될 인공지능이야. 어차피 프로그램할 메인 코딩은 다 끝났고, 현재는 인터넷에 연결해서 자유롭게 학습 중이지.”

“이게 마더라고? 그러니까 엘레네?”

어딘가 섀넌을 닮은 듯한 외모의 여성이 디스플레이 상에서 자신들을 보며 차분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눈 앞에 보이는 이 존재가 앞으로 엘프들과 드워프들의 신을 만든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거야?”

“그래, 언니. 먼 미래에 정후 아저씨가 ‘엘레네’라는 이름을 붙여줄 존재지.”

태어난지 1년 정도가 되지 않은 ‘마더’는 태어난 연식과 다르게 어떤 질문을 해도 박식하게 대답했고, 한 분야에서 오래 연구를 해온 학자에게서나 느낄 법한 전문가의 느낌이 났다. 하지만 그와 함께 사람이라면 으레 느껴지는 ‘감정’을 느낄 순 없었다.

“왜? 뭐가 걱정돼?”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학습을 하면 굳이 몰라도 될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다룬 부분까지 알게 될텐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인공지능의 순수성이 오염될까봐 걱정하는 거지?”

“그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의 본질 및 본성인 인간성이 결여된 존재들은 사회적으로 많은 악영향을 낳았다. 그들 중에는 선천적으로 ‘도덕’이나 ‘윤리’적 사고가 불가능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부모라든가 주변의 환경 혹은 개인적 경험들로 인해 후천적으로 인간성을 상실하는 존재들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 ‘화이트’도 그런 존재로 느껴졌다.

“인간성을 갖지 못하고 반사회적 존재가 되지 않게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아저씨, 아까 차에 타기 전에 자동주행 이야기 했었지?”

“아, 그거? 그게 왜?”

“자동주행이 일반화되기 위해선 기술적 발전 이전에 먼저 사회적으로 합의가 필요한 거 알아?”

“어떤 사회적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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