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4화 〉 214화­추석(1) (214/239)

〈 214화 〉 214화­추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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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인간이 모여 의사교환 과정을 거쳐 서로 합치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모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에 하나의 공통된 결론에 도달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인간은 전원 찬성 혹은 전원 반대와 같은 만장일치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민주주의 제도 하에 ‘다수결 원칙’을 도입했다.

한 국가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조차 각자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 혹은 성향 등 다양한 가치관에 의해 갈등을 빚게 된다.

단적인 예로 성장과 분배가 있다. 누군가는 이미 충분히 성장했으니 분배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이야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아직 멀었다며 분배를 하긴 하되 그 비율을 낮추거나 시점을 미루고 더욱 성장을 해야한다고 말할 것이다. 서로 지지하는 바가 다를뿐 성장이 잘못되었고 분배가 옳다거나 분배가 옳고 성장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여기에 투표는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지식과 소득 수준 등 대부분의 개인이 지닌 배경들이 동일할 수 없기에 서로의 의견이 대립되고 갈등으로 이어질 여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민주주의란 참여자의 의사 통일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겐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한 개인이 볼 수 없는 요소들을 다른 이들이 확인함으로써 자칫 잘못된 길로 갈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기에 혹자는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투표는 최악이 아닌 차악의 선택을 추구한다고도 말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아니, 탕수육은 기본적으로 부먹이라니까!”

“형! 스톱 스톱!”

“삼촌, 아저씨 말려!”

“나는 부먹이든 찍먹이든 아무거라도 상관 없어, 자기.”

“이 언니가! 다수결 다수결로 정하자고!”

“우리 숫자가 넷인데 무슨 다수결이야.”

정후가 탕수육을 인질로 잡고 부먹을 하겠다고 소스를 뜯고 들어올리는 순간 이 상황이 시작되었다. 섀넌은 그러거나 말거나 군만두를 집어 자신의 간짜장 그릇에 옮겨 담아서 먹기 시작했다.

“형, 반은 붓고 반은 각자 원하는 대로 찍어먹기로 하자.”

“탕수육은 볶먹이 근본이라니까. 찍먹은 배달과정에서 만든 차선책일뿐이야. 너네는 짜장면도 짜장 소스에 찍어먹을래?”

“아저씨, 또 그 소리네. 바삭바삭한 튀김의 맛을 왜 포기해.”

“진짜는 소스를 부었을 때 구분할 수 있는 법이야.”

“형수님, 형 좀 말려줘요.”

“자기, 그만하자. 그릇 반은 나눠서 따로 먹을 수 있게 챙겨줘. 후루룹.”

“어.”

섀넌이 정후의 팔을 잡아끌며 앉히자 방금 전까지의 소란이 마치 거짓이라고 하듯 식탁에는 섀넌이 면을 흡입하는 소리만이 가득해졌다.

“휴, 이러니까 얼마나 좋아.”

“좋기는. 내가 만들었는데 주는대로 먹기나 할 것이지. 우리 자기 봐. 얼마나 잘 먹어. 여기 입가에 살짝 묻었다. 내가 닦아줄게.”

섀넌이 산영으로서의 자아를 받아들이고 나서 현대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자 둘의 사이가 더 돈독해진 뒤로 지후와 엘리스는 못볼 걸 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후가 휴지를 들자 섀넌이 볼을 가져다 대고 정후는 마치 소중한 아기새를 대하듯 섀넌의 입가에 묻은 춘장 소스를 살살 닦아냈다. 그러더니 서로 쪽하고서 뽀뽀를 나누더니 다시 식사에 임하는 게 아닌가.

“형, 인간적으로 밥 먹는데 적당히 하자.”

“맞아. 누구는 애인 없어서 서러워서 살겠나.”

“어, 엘리스. 난 여자친구 있는데...”

“그래 그래. 누구만 만년솔로지.”

“엌, 너 진짜 만년 넘게 솔로인 건 아니냐?”

“아저씨, 선은 넘지 말자.”

오랫동안 지도자로 인공지능으로 살아왔던 엘리스가 연인을 만들고 서로의 애정을 나눌 시간같은 것이 있었을 리가 없었다. 엘리스가 정색을 하면서 굳은 표정을 하자 밥상에는 면을 씹어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형, 근데 이제 곧 추석이잖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맞네. 얼마 안남았네. 근데 그게 왜?”

“형수도 이번엔 같이 가는 거지? 엘리스도 그렇고.”

“어?”

“나도 가야지. 그럼 그럼. 가족행사잖아.”

옆에서 시끄럽게 바삭바삭한 튀김 맛을 포기할뻔했다며 주절거리는 엘리스를 무시한채 정후는 슬쩍 섀넌의 눈치를 보았다. 언젠가 부모님에게 소개하긴 해야할 터였다.

“내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줄게.”

섀넌도 한국인으로서의 기억이 있기에 지금 둘이 나눈 대화가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서인지 정후의 집에 ‘예비신부’로 갈 생각을 해서인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자 고개를 푹 숙이곤 아무 말 없이 군만두를 씹어삼켰다.

“커컥컥.”

“언니, 물 마셔. 여기. 천천히 먹어. 천천히.”

“그게 아니라 먹다가 고개를 숙였더니 목에 걸린 거야.”

물을 주고받는 섀넌과 엘리스를 지켜보며 형제의 눈빛이 조용히 오갔다.

“형, 왜 그래. 형수 집에 데려가서 소개할 거 아니야?”

“맞지. 맞는데. 순서라는 게 있잖냐. 엄마랑 아부지 입장에서도 여태까지 딱히 전조라는 게 없던 아들 놈이 떡하니 유럽 느낌나는 미녀를 눈 앞에 데려와선 앞으로 결혼할 여자라고 하면 어떻겠어. 그리고 섀넌 입장에서도 마음 준비를 할 필요가 있고.”

“진작에 준비했어야지.”

“아, 그러셔? 이번에 제수씨도 오냐?”

형제끼리 따로 커피숍에 나와 대화를 나누는데 정후가 질문을 하자 지후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래서 대충 둘러댔다.

“형, 요즘은 명절에 각자 집에 가는 게 트렌드라고 하더라고.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우리 집에 부르기가 좀 그래.”

“제수씨도 얼른 결혼하길 원할텐데. 적당히 하고 식 올려.”

“나도 가고 싶다. 형님아. 근데 여태까지 아주 커다란 돌덩어리가 길을 틀어막고 안 가고 있어서 말이지.”

“나때문이라는 거네?”

“돌덩어리가 이제 눈치를 좀 챘네. 알았으면 부모님한테 전화드리고 넌지시 이야기 살짝 흘려.”

“알았다. 스읍.”

오늘따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쓰게 느껴졌다.

[네, 엄마. 어. 다른게 아니고 이번 추석 때 어디 안 가지?]

[얘는 뜬금없이 전화해서 뭐라는 거니. 너 무슨 일 있구나. 생전 안 물어보던 걸 전화해서 물어보고.]

[이야. 우리 엄마 눈치가 백단이다 백단.]

[너 무슨 사고친 건 아니지?]

[아직은 안 친 것 같은데 치긴 쳐야지? 그래야 우리 부모님 손주도 안아보고 그러지.]

정후가 슬쩍 말을 흘리자 잠시 전화 상에 정적이 흘렀다.

[너 이번에 색싯감 데려오니?]

곰인척 하지만 어머니는 눈치가 백단인 분이시라 평소에도 감히 속일 수가 없는 분이었다. 대충 암시만 줬는데도 바로 알아차리셨다.

[어..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기는. 지후가 곧 좋은 소식 있을 거라더니 이거였구나.]

[그 자식도 참 입이 가벼워.]

[가볍긴. 근데 지후 말로는 살짝 충격받을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게 좋을 거라던데...]

[아, 별건 아니야.]

[니 동생이 별거 아닌 걸로 그렇게 운 띄울 애가 아닌데 무슨 별게 아니야.]

[아! 됐고. 아부지한테도 이야기해줘. 이번 추석에 며느릿감 방문할 거라고.]

[알았다. 나도 드디어 마지막 남은 두 개 숙제 중 하나 끝내겠구나.]

엄마는 예전 사람이라 그런지 비혼이라든가 만혼에 대해 이해는 하셔도 내 아들이 그러면 슬플 것 같다면서 아쉬워하는 기색을 가끔 보이신 적이 많았다.

그러면서 친구들의 자녀분들의 결혼식 소식을 들을 때마다 친구분들을 부러워하며 자기 숙제는 언제쯤 해결이 될지 알 수가 없어 안타깝다는 말을 간혹 하셨다.

“띵동! 띵동!”

“엄마, 우리들 왔어요~.”

“비밀번호 다 알면서 무슨 벨을 누르냐 벨을.”

“당신도 참. 우리 아들들 왔구나!”

부모님께선 입구에서 두 아들들을 환대로 맞이해주셨다. 어머니는 하던 요리가 있으셨는지 서둘러 부엌으로 가셨지만 형제가 안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자 정후의 아버지는 안 들어오고 뭐하냐고 손짓을 하셨다.

“빨리 들어와. 혹시라도 모기 들어올라.”

“저기...어머니, 아버지. 색싯감 데리고 왔어요.”

“뭐?”

정후의 아버지는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건만 깜짝 놀랐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명의 아리따운 외국인 여성을 보고선 더 놀랐다.

“그...아들아? 우리나라에선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허용하고 있지 않고 있는 거 알고 있지?”

“아부지!”

정후는 서둘러 엘리스와 섀넌을 번갈아쳐다보며 두 손을 휘저으며 오해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정후 아버님은 유머감각이 독특하시네.”

“그러게.”

집으로 들어가서 제대로 소개를 드리겠다고 한 뒤 6인이 모여 테이블에 둘러 앉게 되었다.

“여기는 저랑 결혼할 사이인 섀넌 미냐르.”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섀넌이라고 부르셔도 되고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그리고...”

정후는 사실 섀넌보다도 부모님께 엘리스를 뭐라고 소개를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 큰 외국인 처자를 데리고 와서 “제 딸입니다.”라고 하면 미친 놈 소리를 듣기 좋을 것이었고, 그렇다고 아는 여자라고 표현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냥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해버렸다.

“이쪽은?”

“이쪽은 제 딸이요.”

“아, 그래 니 딸이구나.”

아버지께서 커피를 한모금 들이켜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잘못 들었나? 얘가 이 처자를 보고 자기 딸이라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당신도 들었어요?”

“분명 그랬지. 지 딸이라고. 케켁켁.”

“아들,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지?”

부인이 재차 확인을 하는 동안 정후가 꺼낸 이야기를 곱씹으며 의미를 되짚어 본 정후의 아버지는 근엄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던 것도 잊어버리고 자신이 들은 내용에 놀라 사레 들리고 말았다.

엘리스는 자신도 따라가기로 결정되었을 때 이 순간이 오면 정후가 과연 자신을 부모님께 뭐라고 소개할지 궁금했었다. 딸이라고 할지 그냥 친한 지인이라고 소개할지. 하지만 자신을 딸이라고 공언해준 순간 그 말이 마음에 들어와 콱 박히며 퍽 감동적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도장을 찍기로 결정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정후 아빠 딸 엘리스입니다.”

“그...그래. 만나서 반가워요.”

“니가 정후 딸이라고?”

두 분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으면서도 엘리스를 찬찬히 들여다 봤지만 동양인의 모습따윈 하나도 없는 엘리스에게서 정후의 유전자적 닮음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찌어찌해서 그렇게 정후의 부모님께는 충격과 공포를 선사해준 소개시간이 지나갔다.

원래 정후의 아버지가 충청도 사람이라 추석에는 당일에 정후의 할머니, 할아버지 묘가 있는 곳으로 아버지 형제분들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성묘를 가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이번 기간은 아무래도 때가 때인만큼 아버지의 형제들은 각자 시간을 달리해서 성묘를 가기로 해서 다행히 이상한 상황을 맞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정후에겐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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