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212화스노우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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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느 기업가가 외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구 밖으로 나가 지구를 보고난 뒤 자신은 한가지를 깨달았다면서 인류라는 생명체가 태동한 지구는 생명체들이 살아 숨쉴 수 있는 우주에 단 하나 유일한 별이라며 이 지구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인터뷰 내용이었다.
“여기는...꿈 속에서 봤던 곳 같은데...”
섀넌은 일어나자 잠시지만 꿈의 내용이 떠올랐다. 꿈 속에서 자신은 정후와 똑같은 세상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었지만 꿈 속의 자신이 진정한 자아가 아니란 사실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신기했다. 분명 꿈에서 경험한 일들이라면 깨고 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머리에서 휘발되고 대강 어떤 꿈이었다 정도의 잔상만 남는 편이었는데 이 꿈은 그런 꿈이 아니었다. 자신에겐 25년간 대한민국에서 자라고 성장한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침대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어났어요, 산영씨?”
연인이 되고 서로 반말을 하고 있던 자신들인데 정후는 마치 자신을 낯선 이로 대하듯 익숙하지 않은 눈빛과 낯선 말투로 말을 걸어왔다.
“정후, 왜 나한테 존댓말로 말해?”
“산ㅇ, 섀넌이야?”
“응. 여기는...”
“내 집이야. 지구라는 별 안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 있는 내 집.”
산영의 기억 덕분인지 섀넌은 데쟈뷰라는 기시감을 느끼며 침대에서 일어난 뒤 방을 나와 유리창으로 보이는 외부를 둘러봤다.
“여기가 지구...”
더스트에 인류가 이주하기 전 원시인류가 살았다는 그곳에 자신이 와 있는 것이었다. 동시에 산영으로서 느끼는 더스트에 사는 화성인류에 대해 떠오른 기억들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산영으로서 얻은 기억들은 그 과정에서 섀넌 안에 서서히 소화되어 마치 어릴 때의 기억처럼 새겨졌다. 그리고 나서 허기짐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꼬르르륵”
“배고파?”
“응, 햄버거가 먹고 싶은데...”
“그래? 배달시켜 먹을까?”
“배달...”
집에서 스마트폰이라는 전자통신장비를 작동하여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하여 가상의 화폐체계를 이용하여 배달시켜 먹는다. 산영일 때의 자신에겐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아주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섀넌으로서의 기억에는 최첨단의 기술이자 최첨단의 문화였다.
“불고기 버거 올엑스트라 추가해서 콜라는 라지로 하고 감튀 대신에 너겟으로 교체한 세트로 먹을래.”
“와우.”
정후는 기분이 묘했다. 산영의 입에서 참깨빵 송을 듣는 것만 기분이랄까. 섀넌이라면 알 리가 없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모습에 섀넌이 아니라 산영이 섀넌인척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먹을 것에 진심인 저 눈빛을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그거면 돼?”
“일단은 가볍게 먹고 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른 것들도 먹어야지.”
“그래, 그럼. 나도 같은 걸로 주문해야겠다.”
정후가 스마트폰을 꺼내 주문을 마치자 섀넌은 정후의 스마트폰을 넌지시 쳐다봤다.
“응, 왜? 이거? 이건 스마트폰이라는 건데...”
“나도 그게 스마트폰인건 알아.”
“아, 알고 있구나.”
정후가 머쓱해져 뒷통수를 긁적이고 있는데 섀넌이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한가지를 요구해왔다.
“내 걸로 하나 개통해줬으면 좋겠는데 난 이곳에 신분증같은 게 없잖아.”
“엘리스한테 말해서 가능한지 물어봐야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 앞에 누군가 찾아온 소리가 들려왔다.
“어, 벌써 배달이 왔나?”
하지만 아니었다. 배달을 하는 이라면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렸겠지만 나타난 이는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둘 다 왜 그러고 서 있어? 산영은 괜찮아요?”
“넌 어디 갔다 이제 오냐.”
“나도 바쁘다니까. 근데 꼭 배달 시킨 사람마냥 그러고 있네.”
“어.”
“응?”
잠깐의 해프닝이 있고 뒤늦게 온 엘리스의 요구에 따라 햄버거 주문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내가 섀넌 신분증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지?”
“너도 만들어야 되지 않아?”
“난 안 만들어도 돼.”
“왜?”
“예전에 만들어놨으니까.”
엘리스가 인공지능으로서 활동하느라 법인처럼 몇 개의 가상 신분을 생성시켜 놨기에 엘리스는 그 중 하나를 살짝 조작해서 자기 사진을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섀넌의 것도 그 중 하나를 골라 데이터를 변조하자 섀넌은 이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란 실존인물로서의 신분을 지니게 되었다.
“이따가 주민센터 가서 재발급 받으러 갔다고 하면 신분증 발급이 가능할 거야.”
폭풍같은 식사를 마친 뒤 센터에 들러 신분증을 발급받고 나오자 섀넌은 묘한 표정으로 신분증을 쓰다듬었다.
“왜?”
“그냥...한국인으로서 산영일 때 받았던 신분증이 아니라 한국에 귀화한 ‘섀넌 미냐르’로 받는 신분증이라서 그런 것 같아. 주민등록증 속 증명사진도 지금의 외모이고.”
“그것도 그렇겠네.”
신분증을 만들고 난 섀넌은 자신의 이름으로 스마트폰을 신규발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익숙해서인지 주민등록증만큼 새로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새롭게 구매한 스마트폰에 이런 저런 어플들을 다운받아 깔던 섀넌의 표정이 잠시 흐려지는 게 보였다.
“왜? 기계에 무슨 결함같은 거 있어? 교환하러 갈까?”
“아니...그런 게 아니라...”
섀넌은 여러 어플들 중 이전에 산영으로서 쓰던 SNS 어플을 받아 습관적으로 로그인을 하려고 했으나 한참을 해도 되지 않아 아이디를 조회했더니 없는 아이디라는 결과만 출력하는 것을 보고 그랬던 것이었다.
“그치...난 섀넌이니까...”
오랫동안 자신이 쌓아온 인간관계라든가 학창시절의 추억조차도 어디에서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섀넌은 꽤나 씁쓸해했다.
“새로 등록해야겠네.”
“아이디 만들면 알려줘 나도 등록하게.”
“응. 오늘은 조금 일이 많아서 그런가? 왠지 피곤하네...”
섀넌은 피곤하다며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방을 쳐다보고 있을 때 어디 갔다 왔는지 엘리스와 지후가 돌아왔다.
“뭐하고 있어?”
“어? 아무 것도 아니야.”
“형수는?”
“오늘 신분증도 발급받고 스마트폰도 만들고 해서 그런가 돌아다녔더니 좀 피곤하다네.”
“아...그것도 그렇겠네.”
“쯧쯧”
둘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엘리스가 혀를 찼다.
“뭐야, 왜 혀를 차고 그래?”
“아...지후 삼촌도 이럴 때 보면 정후 아저씨 동생이 맞다니까.”
지후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엘리스는 지후의 여자친구가 지후가 눈치가 없어 고생하겠다며 핀잔을 주더니 나를 베란다로 끌고 갔다.
“산영이 아니라 섀넌이란 것에 혼란스러워해서 그런 거지?”
“혼란스러워한다기보단 또 다른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마음이 좀 그런가봐.”
“흐음...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부캐는 부캐니까.”
“근데 넌 어디 갔다 오는 길이길래 지후랑 같이 들어와?”
“아...그거?”
둘만의 대화를 마치자 섀넌은 혼자 중얼거리는 지후 쪽으로 돌아와 셋이서 이야기를 해야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엘리스가 인공지능일 시절 정후의 허락을 받고 진행한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있었다고 했다. 프로젝트들 중 한가지가 바로 막대한 자금력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한동안 신경쓸 여유가 없어 잠시 미뤄두었다가 지구로 돌아오고 나서 진행 사항을 확인해본 결과 꽤나 흡족할만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프로젝트 중 하나가 관련 있는 게 웨더노믹스였어.”
“웨더노믹스면 TV에서 몇 번 들어본 것 같아, 엘리스.”
“지후 삼촌은 아는 것 같은데 정후 아저씨는 처음 듣는 눈치야.”
“그게 뭐냐?”
웨더노믹스란 ‘기후(weather)’와 ‘경제학(economics)’의 합성어로 기후변화가 이젠 경제의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라는 게 엘리스의 설명이었다.
“근데 그게 왜?”
“사람들은 그동안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에 대해 남의 나라 취급하는 경향이 강했어. 그러다 알게 된 거지.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이 불거나 가뭄이 생기거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일이 벌어져도 남의 이야기가 결코 아님을.”
환경을 보호하자는 말이 캠페인에 그치고 환경운동가들과 기후 관련 학자들의 경고가 계속 되어 왔음에도 사람들은 크게 체감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점유율을 가진 회사의 반도체 공장이 위치해 있는 지역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전력난이 발생하면서 반도체 수급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원안에 맞는 생산량을 회복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보이자 자동차업체들은 다른 반도체 생산업체를 통해 부족분을 채울 수 있을까 했으나 전혀 다른 위치에 있는 곳에선 가뭄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필요한 물을 감당할 수 없어 생산공장이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필요한 반도체를 수급할 수 없는 자동차 공장들이 연이어 생산속도를 낮추거나 일시적으로 정지할 수밖에 없게 되어 뉴스를 탔을 때 사람들은 가뭄과 눈보라와 같은 기후변화로 인한 악재가 지구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계기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지금 알았다. 그동안 뉴스같은 걸 제대로 볼 여유가 없어서.”
“웨더노믹스 쪽 관련 업체에 투자해서 대박친 거야?”
“어찌되었든 화성에 이주한 모선(??)에는 지구의 미래에 관련해서 일부 자료들이 남아 있었거든. 그래서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지는 쪽에 베팅을 해서 크게 이익을 남겼지.”
엘리스의 말을 듣자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악재가 돈을 버는 계기가 된다는 게 양심에 살짝 걸리네.”
“형,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는데 그걸 가지고 돈 좀 번 게 나쁜 건 아니잖아. 엘리스가 기상이변을 조장해서 돈을 번 것도 아니고. 그치, 엘리스?”
“어???”
지후가 엘리스의 편을 들어주려고 든 예시에 엘리스가 당황해하는 것 같아 형제에겐 의아함이 피어올랐다.
“뭐야...그 반응은.”
“엘리스, 장난 치지마. 무서워...”
엘리스를 계속 추궁한 끝에 엘리스가 지은 표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원래 일어날 재난의 위치를 살짝 조정했다고?”
“앞으로 화성에 이주할 때 이용할 테라포밍 기술에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기술을 만들게 되는 기업에 투자를 했거든.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기술을 몇가지 알려줬어. 해당 장비를 만들면 내가 원하는 위치에 옮겨서 실험을 하는 조건으로.”
“근데 그 실험 때문에 원래 발생할 기상이변 위치를 살짝 옮겼다. 이거야?”
내 말을 들은 엘리스는 내 눈치를 살짝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낼거야, 아저씨?”
“아이고 두야, 인마! 너 인공지능일 때 내가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면 안된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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