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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화 〉 211화­이상한 나라의 산영(5) (211/239)

〈 211화 〉 211화­이상한 나라의 산영(5)

* * *

엘리스와 섀넌을 데리고 지구로 간다고?

“한번에 둘을 데리고 가는 게 가...가능한가?”

“아저씨 현재 능력대로면 나랑 섀넌 정도는 무리 없이 데려갈 수 있잖아.”

“내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뭐하러 이런 허허벌판 눈 위에서 자. 잠은 편하게 자야지. 편하게.”

“근데 니 말대로 갈 수 있다고 쳐도 다시 돌아오면 지금 이 시간일텐데? 돌아와도 밤길을 걸을 순 없는 노릇이잖아.”

“그건 내 능력으로 살짝 조정하면 돼.”

“말도 안돼.”

“돼.”

둘이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나누는 대화가 산영에게는 이상하게 들렸다.

“저기...두분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데요.”

“에이...편하게 하라니까. 편하게.”

“그...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건가요?”

“잘 이해했네. 아저씨, 빨리 가자. 뜨끈한 물에 몸 담궜다가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고 푹 자고 싶네.”

“뜨끈한 국밥?”

산영의 입에 침이 고였다. 고기를 좋아했지만 패스트푸드 냄새에 질려 고기를 멀리하고 풀을 가까이 하던 자신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스읍.”

“봤지. 산영도 뜨끈~한 국밥 먹고 싶어한다고.”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집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산영이 있었다. 잠시 산영을 뒤로 한 채 엘리스를 따로 불렀다.

“지구로 다시 돌아가서 섀넌이 받을 충격은 어떻게 할 거야. 자신이 홀로그램 속의 자아라는 걸 알면 패닉이 올지도 몰라.”

“아저씨, 힘들고 위험하다고 외면하기만 해선 안되는 일들도 있는 거야. 일부러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서라도 섀넌을 불러 와야지.”

“그건 그렇다만...”

자연스럽게 두손을 꼭 모아쥐고 소망하는 듯한 자세가 된 섀넌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다.

“조건이 있어. 엘프의 모습 그대로인 섀넌이 대한민국에 넘어간다면 이질적일거야.”

“알았어~ 딱 한국에 놀러온 외국인 느낌나게 바꿔줄게.”

이야기가 정리가 된 나는 엘리스로부터 건네받은 힘을 지닌 채로 지구로 돌아가는 차원문을 열었고 두 사람과 함께 이동했다.

엘프 특유의 이질적인 모습이 사라진 섀넌은 북유럽 국가에서 넘어온 듯한 모델 포스를 풍겼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면서도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다른 육체에 산영은 꽤나 어색해했다.

“이게 제 원래 몸이라는 거죠?”

“엘프 느낌만 살짝 드러나지 않게 마법적으로 위장해놓은 것만 빼면 그렇지.”

우리는 간단하게 각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길로 나왔다.

“여긴 아직 여름이 다 안 갔네.”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몰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추웠는데...”

춥디 추운 고산에서의 경험들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파란 하늘 아래 따끈따끈한 여름의 끝자락이 계절감을 풍기고 있었다.

“근데 이거 되게 갑갑하네요.”

“아...”

산영이 있던 곳에선 코로나가 번지지 않아서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들과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요구하는 각종 인증과 체온 측정 절차가 낯설었다.

‘진짜 다른 세상이구나.’

자신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진 산영은 주문한 국밥이 나와서 한술 뜨자 깊은 국물 맛에 속이 데워져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크으윽 좋다.”

“아이구, 외국인 처자가 먹는 폼은 완전 한국인이야. 한국인!”

정후가 추가한 공깃밥 두공기를 가져다 주던 주인 아줌마는 누가 봐도 외국인인 것 같은데 오장육부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내뱉는 모습이 너무 신기한 것 같았다.

“예...”

“많이 먹어요.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고.”

“감사합니다.”

“한국 말도 잘하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건만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산영은 외국인 취급을 받는 지금 상황이 꿈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주인 아줌마에게선 어떤 악의도 살펴볼 수 없기에 그저 묵묵히 국에 밥을 말아 묵묵히 뱃속을 채웠다.

배가 든든해지고 나자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진짜 자신이 시뮬레이션 속의 자아인지 아닌지.

“저기...”

“편하게 말해.”

“제가 일하던 곳에 가볼 수 있을까요? 제가 살던 원룸도 가보고 싶은데...”

“...”

엘리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정후를 쳐다봤다.

“왜, 뭐! 가자는데 가야지.”

“그으래~?”

“감사합니다.”

“감사할 건 없는데...마음 단단히 먹어.”

“그게 무슨...”

“아니야, 됐어. 가자!~”

엘리스가 마치 부부의 아이처럼 가운데에 끼어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섀넌이 자기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려고 했지만 이 세상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갑도, 카드도 있지 않다는 걸 잠시 경험하는 해프닝을 겪으며 산영은 추욱 가라앉은 상태로 바뀌었다.

“(너무 한번에 충격이 몰아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야.)”

정후가 팔꿈치로 엘리스를 쿡쿡 찌르며 걱정하는 가운데 엘리스는 슬쩍 정후를 쳐다보곤 대답하지 않은 채로 눈을 감았다.

“이게....여기에 있으면 안되는데...”

섀넌과 함께 도착한 그곳엔 산영으로서 일하던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아니라 엄마손이라는 이름의 프랜차이즈가 있었다. 설마설마하던 것들이 현실로 바뀌고 아닐 거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자취방이 있던 건물은 산영의 우려와 다르게 똑같은 건물이었지만 정작 안으로 들어가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하자 자취방은 열리지 않았다. 도리어 누구신데 자꾸 문을 열려고 하냐면서 자신 또래의 남자 대학생이 문을 열고 나온 순간 방 안으로 보이는 풍경 속에 자신이 기억하던 공간이 없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자, 여기.”

충격받아 다리가 풀린 산영을 데리고 근처 커피숍으로 찾아와 평소 섀넌이 좋아하던 달달한 바닐라 라떼를 주문해 가져다 줬다.

“감사합니다.”

산영은 남자가 가져다 준 바닐라 라떼를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아이스 아메리카노 좋아하는데...’

그러나 입안으로 감기는 바닐라 라떼의 맛은 자신이 기억하는 자신의 취향과 달랐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착 감겨 혓바닥에 달라붙는 것만 같았다.

‘이 집이 잘하는 건가?’

자신이 기억하던 모든 공간에 자신을 증명할 어느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평범한 일반인인 자신을 데리고 깜짝카메라를 찍을 리도 없었다. 10대에도 한 적 없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무거워지고 있었지만 그런 자신의 시끄러운 속도 모르고 입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바닐라 라떼는 달짝지근하기만 했다.

생각에 잠긴 섀넌을 지켜보는 엘리스와 정후는 혹시라도 섀넌이 극도의 불안장애라든가 패닉증세를 일으키지 않을까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이 되어버린 섀넌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저기...좀 많이 피곤하네요.”

“그래요? 집으로 갈래요?”

비틀거리는 산영을 데리고 다시 지하철을 탈 순 없는 노릇이기에 세 사람은 택시를 불러탔다.

‘처음 보는 어플이네...’

산영은 초콜릿 택시를 주로 썼는데 남자가 쓴 앱은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택시 어플이었다. 콜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온 뒤 산영은 정후의 안내에 따라 정후의 침대에 누웠다. 이불에선 자신이 아는 체취가 느껴졌다. 침구에 남은 남자의 체취는 불쾌하다기보단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슬퍼보이면서도 자신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눈빛을 한 남자와 눈을 마주친 산영은 이루말할 수 없는 피로감에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섀...섀넌!”

“아저씨, 죽은 거 아니거든? 그냥 자는 거야. 자는 거.”

그 이후로 의식을 잃은 것처럼 며칠간 내리 잠만 자는 섀넌의 모습에 정후는 초조해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엘리스가 내린 진단에 따르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 맞이하는 순간들이 연속되며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였다가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 이후 의식하지 못했던 피로감을 인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로’라는 진단을 내려준 엘리스는 할 일이 있다며 집 밖으로 나갔다.

“아니...지가 무슨 여기에 만날 사람이 있다고. 약속이야 약속은...”

엘리스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 건만 괜시리 섀넌을 깨워주지 않는 엘리스에게 심통이 나서 투덜거리며 잠자고 있는 섀넌이 혹시라도 무슨 문제가 일어날까 싶은 불안감에 지켜보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섀넌은 때때로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식은 땀을 흘리기도 했지만 쉽사리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섀넌...내가 많이 기다리고 있어. 그만 일어나. 섀넌이 보고 싶다고 했던 세상이야...”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섀넌의 한 손을 잡아 자신의 볼에 정후가 부비고 있는데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스가 벌써 왔나?”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있는데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언제 왔어?”

“지후냐?”

호적메이트인 동생과의 재회에 무슨 깊은 감동이라든가 애틋한 마음이 끼어들 여지따위 정후에겐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거...누구? 형수야?”

정후는 시끄럽게 구는 지후를 쳐다보며 잡고 있던 섀넌의 손을 내려 이불 속에 고이 넣어준 뒤 지후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인마, 형수가 니 친구냐. 친구야? 짜식이 말이야. 섀넌을 봤으면 형수님이라고 해야지. 그리고 사람 자는 거 뻔히 알면서 큰 소리를 내면 되겠어, 안되겠어?”

“혀...형.”

“이 자식이. 이 자식이!”

가볍게 지후에게 꿀밤을 두어방 내린 뒤 문을 닫고 지후를 끌고 나가자 잠들어 있던 섀넌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으으음. 여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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