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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화 〉 209화­이상한 나라의 산영(3) (209/239)

〈 209화 〉 209화­이상한 나라의 산영(3)

* * *

산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자기 집에서 잠들었건만 눈을 뜨고 일어나보니 생전 처음 보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자신의 앞에 한 명의 아름다운 여성과 한 명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성이 나타났다.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모두 가짜라 이건가요?”

“섀넌, 오해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어.”

“제 이름은 산영인데요.”

갑작스럽게 억지로 끌려온 것만 같은 상황도 황당해 죽겠는데 자신의 이름이 부모님게서 숲이 가득한 산에 조용히 내리는 비라는 의미를 담아 지어주신 임산영(山?)이 아니라 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섀넌 미냐르란다.

“섀넌, 그대는 임산영이 아니라 섀넌 미냐르야. 꿈이 길다고 해서 비몽사몽해야 되겠어?”

“이 사람들이 정말! 가뜩이나 처음 보는 곳에 끌고 와선 이게 무슨 짓이에요!”

자신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분명 자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었다. 그러나 어이없는 상황에 화를 내는데 자신을 이 황당한 곳에 끌고온 이들은 생각보다 강경하게 억압적으로 구는 것이 아니라 매우 난처해하는 기색이 강했다.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캡슐 안에서 섀넌의 자아를 깨웠어야 했을까? 이렇게 심각할지는 몰랐는데...”

“아저씨, 말했잖아. 임시적으로 레드나 화이트의 시선으로부터 차단한 상태이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 이 곳에 있는 것도 사실 그렇게 안전한 상황은 아닐 수 있다고.”

“그래, 알아. 알아서 이렇게 생텀 밖으로 나온 거잖아. 근데 섀넌이 저렇게 혼란스러워하니까...”

분명 연배는 비슷해보이는데 기이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는 남자에게 아저씨라고 하고 남자는 또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공기가 엄청 맑다.’

자신이 처음 눈을 뜬 공간은 캡슐이었고 캡슐의 문이 열리자마자 빨리 이동해야 한다는 말에 정신없이 끌려나와 보니 눈 앞엔 얼마나 오래되었을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설산이 놓여져 있었다.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고 꿈에서나 봤던 히말라야의 안나 푸르나랑 비슷한 느낌의 풍경이었다.

‘여기가 그렇게 높은 고산지대라고?’

한국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자신의 몸으론 아무리 등산이 취미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높은 지대에서 산소마스크도 없이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의 머리칼 색을 봐도 검은 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기요, 그쪽 이름이 이정후라고 했죠? 분명 이곳이 진짜고 내가 있던 곳이 가짜라고 했는데 왜 당신은 한국 사람인 거죠?”

자신의 질문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던 남자는 머리 뒷부분을 벅벅 긁어대며 대답해줬따.

“섀넌...난 지구에 있는 한국에서 온 사람이니까 그런 거지.”

“???”

분명 섀넌의 외형을 하고 있는데 짓는 표정이나 하는 행동은 영락없는 대한민국 여자같은 모습에 정후는 괴리감을 느끼면서도 익숙한 모순적인 감정에 낯설었다.

“여기가 화성이라면서요. 화성에서 지구까지 오가는 우주관광 시대가 열린 건가요? 좀 이해가 잘 안되는데. 그리고 그쪽은 자꾸 절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전 당신 본 지도 얼마 안되었거든요. 반말로 하지 말아주세요. 섀넌인지 뭔지로 부르지도 말고 임산영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친한 것처럼 말도 막 놓지 마시구.”

“친한 것처럼 말 놓지 말래. 크크크큭”

“여페서 자꾸 끄불지 므르.”

“어허, 이를 그렇게 악 물고 말하면 뭐라고 하는지 알 수 가 있나.”

잠시 들었던 모순적인 감정은 섀넌의 차가운 표정과 함께 뿜어지는 ‘타인’을 대하는 어조에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사라졌다.

‘하아...결혼까지 약속했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그리고 생각보다 큰 부작용에 엘리스에게 따지듯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야, 분명 자아가 혼동될 거라며. 이건 혼동이 아니라 사람이 그냥 바뀐 거잖아. 섀넌은 언제 깨는 거야.)”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행동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깰거야. 기다려봐.)”

아주 태평한 소리를 하며 엘리스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엘리스 말을 믿은 내가 바보지.’

“섀...산영아.”

“산영 씨!”

강경한 섀넌의 반응에 일단 맞장구를 쳐주기로 했다.

“그래요, 산영 씨.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정후는 여태까지 있었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풀어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설명을 모두 들은 섀넌 아니 산영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쪽이 진짜 한국 사람인데 아직 화성을 여행하는 그런 세상이 온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우리가 아는 화성이 맞긴 하지만 전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화성인지라 당신이 각성한 능력을 통해 이곳으로 왔다 이건가요, 후루룹?”

오랜 시간 설명을 해주며 걸었더니 산영에게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간단하게 버너로 라면 5개를 끓여서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아, 난 원래 라면같은 거 안 좋아하는데 2시간 넘게 걸었다 먹으니 입에 착착 달라붙네요.”

“에이, 섀넌이? 라면을 안 좋아해? 올해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웃긴 소리다. 라면 먹을 때면 입가심 수준으로 3봉지는 드시고 시작하는 삼봉 섀넌 님께서 라면을 안 좋아한대 크크큭.”

“저기요, 그쪽도 함부로 반말하지 ㅁ.”

“알았습니다~. 네이네이. 드시던 라면이나 마저 드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그릇에 라면과 국물을 함께 떠 후루룩 마셔버리는 저 여자와 자신은 잘 안 맞는 것 같았다.

‘근데 라면은 맛있게 잘 끓였네. 산에서 먹는 라면이라 그런가.’

한국의 알바생은 감히 입을 수도 없는 최고급 패딩을 입고 눈 덮힌 高山(고산)을 걷다가 이렇게 뜨끈한 국물을 뱃속에 넣는 호사를 누리니 이쪽이 오히려 꿈만 같았다. 하지만 매끈하고 부드러운 피부와 이전에도 그리 못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정후라는 남자가 건네줬던 거울을 통해 본 수려한 외모를 가진 이 육체는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넌 산영이 아니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자신의 자아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

“커피까지 주나요?”

“라면 먹고 커피는 국룰이라고 누가 그랬거든요.”

분명 섀넌이었을 때 자신과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은 남자가 타준 커피는 평소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던 믹스커피를 2봉지나 탄 커피였는데도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맛있다.’

자신의 앞에서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만족한 표정의 섀넌은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섀넌이었지만 섀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섀넌의 것과는 달랐다.

“와, 언제쯤이면 히말라야 구경 한번 가보나 싶었는데 이렇게 만족하게 되네요. 언제 한번 알아보니까 나같은 등산 비전문가들이 히말라야 가려면 세르파 고용도 해야 되고 산소탱크라든가 이런 저런거 필요한 비용까지 전부 6천만원 정도는 들어야 한다고 하던데 그쪽 덕분에 6천만원 굳었네요. 히말라야 갈 돈이면 전세부터 구해야 하는 것이 내 신세였는데 이렇게 따뜻하니 좋은 패딩까지 걸치고 오다니.”

“산영? 한국 기준으로 치면 그쪽 부자야. 그쪽이 말한 돈 걱정 전혀 안해도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 없는 부자.”

남자를 도와 버너와 코펠을 정리하던 여자가 툭하니 내뱉은 말은 산영을 다시 한번 충격으로 이끌었다.

“제가요? 제가 부자라구요?”

“당장 그 손에 끼고 있는 반지만 해도 지구 기준으로 치면 30억은 넘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는 50억은 될 거고. 이것 저것 자질구레한 거 다 합치면 몸에 걸치고 있는 것만 100억은 넘겠다.”

“히이익!”

어떤 미친 년이 산을 타면서 100억원이 넘는 악세사리들을 주렁주렁 걸고 다닌단 말인가. 섀넌이라는 자아를 가졌을 때의 자신은 미쳤던 것이 분명했다.

“이럴 게 아니라 빨리 풀어서 보관해야지.”

서둘러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빼려는 자신의 손을 남자가 붙잡더니 슬픈 표정을 하고 말했다.

“산영, 당신이 지금 끼고 있는 반지의 가치는 보석으로서의 가치보다 위험한 순간에 당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로서 기능하고 있는데 있어요. 그러니 풀지 말아요. 그대가 가진 자산을 모두 합쳐보면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비싸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30억짜리 반지가 제가 가진 것 중 소박한 축에 속한다구요? 선생님, 이전의 저는 어떤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던 건가요?’

아무렇지도 않게 라면이 담긴 코펠 그릇을 받을 때도 긁혔던 기억이 있는 자신으로서는 흠집이 나지 않았나 싶어 다시금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떠보니 아름답다 싶은 외모와 탄탄한 몸을 가지고 수십억짜리는 그냥 일상 악세사리로 걸칠 수준의 자산가가 자신이란다.

커피까지 한잔 걸치고 나니 배가 불러서일까 세상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이건 자신이 속물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상상에서나 보던 여행을 하며 맑고 깨끗한 자연의 환경 속에 있어서 인게 분명했다.

‘좋구나~’

다시 한참을 걸으니 입이 심심하게 느껴질 때쯤 남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육포 한봉지를 뜯어 줬다.

“먹어요.”

“고맙습니다.”

입에 육포를 찢어 넣어 씹고 있자니 이렇게 호사스러운 여행은 해본 적이 없는 자신임에도 이상하게 익숙하게 느껴져 이상했다.

‘좋은데 너무 편해. 난 여기가 처음이라 편하면 안되는 것 같은데도’

길을 가던 도중 갑자기 남자와 여자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뭐, 뭐죠?”

“흐음, 별거 아니에요. 설표 어미랑 새끼같아요.”

“새끼한테 사냥하는 법 가르쳐 주러 나왔나보다.”

“그러네.”

남자가 가르킨 방향을 보자 그제서야 눈 색과 별 차이 없는 털가죽을 가진 설표가 눈에 보였다. 설표를 보고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딱히 설표 모자가 사냥할만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산양이라든가 잡아먹을 만한 무언가는 없는데 뭘 가지고 사냥 연습을 한다는 거지?’

“(가만히 둬도 될까?)”

“(괜찮아. 괜찮아. 활도 등에 메고 있고. 여차하면 우리가 나서면 되잖아.)”

설표를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섀넌의 모습에 정후는 살짝 마음이 걸렸다. 자신과 엘리스가 있으니 섀넌이 다칠 일은 없지만 충격요법 삼아 한참 전에 설표를 발견하고 가볍게 내쫓을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기세를 죽여 평범하게 위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온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설표 2마리가 고양이들이 먹이를 향해 달려들 때처럼 몸을 살짝 웅크려 말더니 뛰기 시작했다.

‘히이익, 이쪽으로 오는데?’

“저...저기요?”

무서워서 눈도 돌리지 못하고 자신들 쪽으로 달려오는 설표들에 바짝 긴장해 낮은 목소리로 두 사람을 불러봤지만 어찌된 일인지 두 사람은 대답이 없었다.

“이 이봐요! 표, 표범이 달려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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