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5화 〉 205화­PAUSE(4) (205/239)

〈 205화 〉 205화­PAUSE(4)

* * *

“일단 깨워야 데리고 나가든지 할텐데...”

엘리스는 캡슐 안에 잠들어(?) 있는 정후를 어떻게 일어나게 해야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깨우는 것일지를 고민하다 정후의 의식세계에 접촉하여 각성시키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엘리스가 검지손가락을 들어 캡슐로 다가가자 분명 전면부가 투명한 창이 있어 막혀 있음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되고 정후의 이마에 닿았다.

“너무 자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엘리스의 손가락이 정후의 손에 닿는 순간 엘리스는 정후의 의식이 존재하는 곳에 자신을 투영시킬 수 있었다.

정후는 이곳에서 릭이라는 이름으로 마더 엘레네와 같은 인공지능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레플리칸트가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싸우던 시점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엘리스가 릭이라는 자아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정후 아니 릭 역시 엘리스를 인지할 수 있었다.

“누구냐!”

“흐음, 신기하네. 생긴 건 분명 아저씨가 아닌데 알맹이는 아저씨야.”

릭은 정신이 없었다. 얼마 전 유나보머와의 소송이 끝이 나고 세상이 레플리칸트로 시끄러운 와중 자신의 눈앞에 처음 보는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꽤나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친밀감이 느껴졌다. 자신의 앞에 나타난 여성은 검을 차고 자신을 마치 물건을 품평하는 듯 한바퀴 빙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의 존재감은 느껴지는데 난 전혀 못 알아보네.”

아무리 친밀감이 느껴진다고 해도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앞에서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하는데 기이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침대 옆에 놓여진 검을 검집째로 들어 상대방에게 향했다.

엘리스는 정후가 자신에게 가르쳐줬던 기수식을 하며 자세를 잡는 릭의 행동에 살며시 웃음이 나왔다.

“왜? 그걸로 나 찌르려고? 나 엘리슨데?”

“니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갑자기 내 집 안에 이렇게 허락도 없이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릭이 마음을 다잡으며 소리치자 여자는 검집을 살짝 미소를 짓더니 살며시 잡아당기며 검에서 검집을 분리시켰다.

“아니, 아저씨에겐 지금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게 중요해.”

“무슨 소리냐! 난 널 처음보는데!”

“그래?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반짝이는 검날의 끝을 향해 여자가 자신의 턱을 들이밀자 릭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뒤로 물렸다.

‘응? 내가 왜 뒤로 움직였지?’

“내 이름은 엘리스야. 아저씨.”

처음 자신과 정후가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엘리스가 생글거렸다. 릭은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한 아련함을 느꼈다. 분명 엘리스란 여자를 처음 본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쪽 이름은 잘 알겠어.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내 이름은 릭이야. 니가 알고 있는 그 아저씨란 사람이 나랑 닮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널 처음 봐.”

“아저씨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랑 전혀~ 안 닮았어.”

“그런데?”

‘왜 남의 집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깨워 이렇게 당황스럽게 하는 걸까?’

릭은 의문이 가득 차는 것 같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로 비켜놓으며 기이할 정도로 내키진 않지만 검을 앞으로 내밀고 언제든 상대방을 향해 휘두를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아저씨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아.”

‘미친 년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대치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 릭은 검면으로 상대방을 기절시켜 제압시켜놓고 생각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제 결정을 내렸어? 아저씨답지 않게 판단이 진짜 느리네.”

엘리스란 여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을 눕히며 검면으로 상대방의 관자놀이를 향해 검을 움직였다.

“헉! 어떻게?”

비록 지금 자신의 몸 안에 축적된 기운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방금의 한 수는 아무리 검을 수련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섣불리 대응할 수 없는 수였다. 엘리스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오는 검날이 머리 옆에 지척으로 날아오는 직전까지도 대응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타격을 당하기 직전 순식간에 자신의 검날을 검지와 중지 사이로 잡아 멈춰 세웠다.

“에이...이 정도는 진작에 졸업했지. 아저씨한테 한 두 번 당한 것도 아닌데.”

엘리스도 릭이 생각한 것과 똑같이 일단 제압해놓고 정신 속으로 접속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에서 목적은 달랐지만 릭이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라운드를 이끄는 수장이 이토록 무력하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검을 회수함과 동시에 자신이 명명한 ‘마나’라는 힘을 이용하여 방금 전의 한 수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빠른 속도로 후려치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가뿐하게 뒤로 움직이더니 차고 있던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자신의 검과 매우 닮은 듯 달의 형상을 닮은 그녀의 검은 매우 아름다웠다.

여자는 자신의 검지로 그녀의 검을 퉁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대로 잘 구현이 됐네. 아저씨가 그랬지. 맞으면서 배워야 한다고.”

“뭐?”

저 말은 꿈 속의 남자가 자신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그 아저씨가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정말 싫어하는 남자가 하는 말버릇이랑 비슷하네.”

“그래? 큽”

엘리스라는 여자는 뭐가 그렇게도 웃긴지 킥킥대면서 웃었다.

“뭐가 웃기지?”

“아아, 아저씨도 나중에 지금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 웃음이 나올 거야.”

‘이 여자 미쳐도 심각하게 미친 것 같은데’

아주 오래 전 어릴 적에 TV에서 해주던 ‘미저리’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스토커 여성의 모습만 같아 온 몸으로 닭살이 싹 돋았다. 젊은 나이에 어쩌다 저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빨리 제압해서 911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한 릭은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팔이나 다리 정도는 부러뜨려야겠다고 판단했다.

“미친 소리도 거기까지.”

아직은 꿈 속의 남자처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문라이트라고 붙힌 이 기술은 검의 표면에 달빛과 같은 빛을 덮어 씌워 이전보다 더욱 강한 절삭력과 파괴력을 얻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릭의 검에 정후가 쓰던 월광검(月光?)처럼 은은한 빛이 맺히자 엘리스는 더욱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아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지만 이 남자가 바로 정후라는 것을.

더 이상 대화를 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팔을 부러뜨릴 것처럼 릭이 달려들었다. 엘리스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정후의 뒤를 점하고 자신이 들고 있는 칼이 아닌 손날로 목부분을 가격했다.

“끄윽, 어떻게...”

순식간에 자신의 뒤를 점하고 목 뒤를 후려치는 여자의 힘에 거대한 충격을 느끼며 릭은 의식을 잃으면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자신을 검으로는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자신했건만 어떻게 이렇게 가볍게 자신을 제압할 수 있단 말인가.

[릭! 릭! 무슨 일이야? 문 좀 열어 봐!]

정후가 의식을 잃는 것을 확인한 엘리스는 동시에 문 밖이 소란스러워지는 것 같자 정후를 자신의 어깨 위헤 들쳐메고 정후가 있는 침실 밖으로 등장했던 것처럼 소리 없이 사라졌다.

엘리스가 릭을 데리고 사라짐과 동시에 문 어딘가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고 침실의 문이 마침내 열렸다.

루아나가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무리 문을 두들기고 열어보려고 해도 문을 열 수 없다는 말을 하며 울며 전화를 하는 것을 듣고 찾아온 세 명의 사범들은 릭의 온기만이 남아있는 방 안에서 자신들이 납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숲 한가운데로 데려와 곤히 잠들어있는 것만 같은 릭을 조금 지켜보던 엘리스는 오래 끌 필요 없이 캡슐 속 정후에게 다가갔던 것처럼 릭이라고 주장하는 정후의 머리로 자신의 검지를 내밀었다.

“아저씨, 그만 일어나. 레드랑 화이트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내버려둘거야?”

엘리스의 검지가 정후의 머리에 닿는 순간 릭의 갈색머리가 검게 변하며 릭이 정신을 차렸다.

“허억 허억.”

“이제 정신이 들어?”

“에...엘리스?”

정신을 차린 정후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릭이라는 놈의 의식 안에 갇혀 매일같이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자신의 목소리는 릭의 안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그때부턴 릭이라는 녀석을 죽여도 보고 별 짓을 다했지만 언젠가부터 자신이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자신의 검술을 따라하더니 자신과 똑같이 검을 쓰는 모습에 사투에서 결투로 결투에서 대련으로 바뀐 형태로 스승처럼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왜 엘리스가 내 눈앞에 있지? 그것도 그 ‘버서커’처럼 덩치 좋을 때 이전의 모습으로...”

순간 엘리스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것만 같은 으득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방금 정신을 차린 정후에겐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아니, 아저씨 앞에 있는 거 나 맞는데. 그리고 버서커라니?”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엘리스의 앞에 선 정후는 두 손으로 엘리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양쪽 볼을 당기면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를 가늠해보려고 했다.

“흐지믈라구~”

정후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엘리스를 정령체가 아닌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꿈에서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해서 두 볼을 만득이 인형처럼 주물럭거리다 엘리스를 꼬옥 품에 안았다.

“엘리스...엘리스...다시는 이런 모습으론 볼 수 있을 줄이야. 신이여, 꿈이라도 감사합니다. 흑.”

엘리스는 자신을 껴안자 살짝 당황해서 정후를 떼어 내려다가 눈물을 흘리며 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정후의 말에 자신도 정후의 등을 살짝 토닥여줬다.

“고생했어.”

“꿈인데 꼭 진짜같네.”

품에 안고 있던 엘리스는 다시 떼어내고 엘리스의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좋아하는 정후에게 엘리스는 슬슬 감동이 사라지고 짜증이 살짝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만하지?”

“이야, 이 표정도 진짜같다. 엘리스가 꼭 나한테 짜증나면 이 표정이었는데 말이야.”

자신의 볼을 쿡쿡 찌르며 좋아하는 정후를 애정어린 눈에서 치켜뜬 눈으로 바꾼 엘리스는 정후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그만하라고 했지.”

엘리스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정후의 손을 팍 꺾어버리자 정후는 기겁하며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낙법을 펼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하마터면 손가락 부러질뻔했네. 어? 꿈이 아닌가?”

엘리스의 손을 붙잡고 바닥을 뒹굴면서도 정후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엘리스? 너야?”

“어, 나야. 그러니까 거기까지.”

정후의 손가락을 놔주면서 두 손을 탈탈 터는 그 모습에 정후도 자신의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그러니까 진짜 엘리스?”

“아저씨가 아는 그 엘리스는 맞는데 아저씨도 나도 지금 둘다 진짜는 아니야.”

“응?”

아직 꿈이 덜 깬 것인가 싶어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어봤지만 느껴지는 곳은 통증뿐이었다.

“꿈이 아닌데?”

엘리스가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튕기자 어느새 숲 속에 티테이블과 의자가 생겨났다.

“설명하자면 기니까 일단 앉아서 이야기해.”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