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4화 〉 204화­PAUSE(3) (204/239)

〈 204화 〉 204화­PAUS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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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말해도 좋다.”

자신이 황제의 심중을 헤아려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충직한 감찰단장의 말에 황제는 서둘러 대답해보라며 허락을 내렸다.

“아무래도 신성왕국과의 교역에서 생긴 문제때문이지 싶습니다.”

“대충 짐작하고 있는 것 같구나. 감찰단장이 그동안 일을 소홀히 하진 않은 모양이야. 재정부를 담당하는 파이낸스가 감찰단장을 위해 설명해보거라.”

황제는 세븐시티에서 만들어진 자기에 담긴 엘프티를 한모금 입에 머금으며 재정부 대신이 감찰단장에게 전하는 내용을 함께 들었다.

“이제 이야기를 모두 들었으니 내가 무얼 원하는지 확실히 말할 수 있겠느냐?”

“폐하께선 감찰단에서 신성왕국을 조사하길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맞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눈이자 비밀스런 칼인 감찰단을 쉽게 잃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제국과 신성왕국이 맞닿아 있는 접경지에 감찰단이 나가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관찰하고 있다가 무슨 변화가 생기면 이를 빨리 내게 알려라. 수도에 전 국민을 모아놓고 저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만약 전쟁을 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오래 참고있진 못할 것이다.”

감찰단장은 황제가 자신들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확실히 이해했다.

“알겠사옵니다. 제국의 군대가 제 때에 대응할 수 있도록 폐하께 바로 정보를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한시도 지체해선 안될 일이니 감찰단을 급파하라.”

“명을 받듭니다.”

감찰단장이 자리를 비우자 황제는 말했다.

“제국은 신성왕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도록 해야겠다. 그러니 비상대책위를 소집하여 그동안 준비해왔던 계획을 다시 검토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폐하.”

황제는 만약 신성왕국이 언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면 어느 정도 준비를 해놓고 신성왕국의 국경상태를 보아 대처를 하는 것이 최선의 수라고 생각했다. 신성왕국의 군대가 이동을 한다고 하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결코 짧은 시간 내에 제국의 안으로 밀고 들어올 순 없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 신성왕국에선 사제와 성기사들을 제외한 모든 국민의 ‘수용’이 끝이 났다.

“이제 사제들은 땅굴을 통해 제국으로 들어가 ‘포교’를 실시하라. 그대들이 선교의 씨앗을 뿌리고 나면 그 공로는 천국에서 인정받으리라.”

3명의 사도 중 덩치가 큰 남성이 출정을 명하자 사제들이 등을 돌려 자신들이 뭘 해야할지 교육받은 대로 움직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가운데 들리는 소리는 오직 법복의 스치는 소리뿐이라는 점이 매우 기이했다.

“미리 제국 내부에 설치해둔 ‘천국의 문’과 지하철도를 이용한다니...두 신께선 거대한 안배를 해두셨구나...”

“엘프들과 드워프들의 번영을 위해서 인간이 저지르는 파멸을 막기 위함이니까.”

버크와 코엘은 이전과 다르게 자신들이 그동안 쌓아올린 세븐시티의 파멸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두 신을 찬양하는 말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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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드디어 육체를 수복했네.”

엘리스는 어찌된 일인지 정후가 캡슐에 갇히고 의식을 잃게 되면서 정후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로 엘리스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정령체와 유사한 현재의 형태로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한계가 존재했다. 그러기 위해서 떠올린 것이 인류를 더스트로 퍼뜨리고 나서 인간의 DNA를 통해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비가 레드와 화이트도 모르고 엘레네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생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엘레네는 인간이 된 이후 인공지능이 되어버린 엘리스에게 많이 미안해했고 엘레네가 인간이 되어 다시 태어나기 전에 엘리스가 자신처럼 육체를 갖고서라도 위안을 받길 원했다. 하지만 자신에겐 이걸 딱히 쓸만한 이유가 없었다.

오랫동안 봉인된 장비는 엘레네의 마법으로 인해 장비 위에 먼지 한 톨 없이 처음 숨겨둔 그 상태 그대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고 보관되어 있었다. 언제든지 가동할 수 있도록 축적된 마력 에너지는 ‘육체’ 하나를 구성해내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뭔가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이야.”

이렇게 육체를 지니게 되어 주변사물을 ‘체감’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정령체로 느끼는 감각과는 너무나 달랐다. 나신의 상태로 인큐베이터를 나온 엘리스의 외형은 정후의 옆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외형만 그런 것이었다.

정후가 떠난 뒤 오랜 시간 엘레네와 합동연구를 통해 인체의 중심에 에너지를 축적하고 압축시키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냈고 연구 과정에서 참조한 문헌에 나온대로 단전이라고 명명했다. 이 단전에 마력을 압축시킨 코어를 이식하는 것만으로 인간이 오랜시간 수련을 쌓아올려야만 움직일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를 몸 안에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진보가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거대한 에너지를 저장한다고 할지라도 이를 운반할 수 있는 길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선 인체만이 아니라 일종의 아스트랄 바디를 마법으로 구현하여 인체에 덧씌워서 동기화시켜야만 했다. 코어에 담긴 거대한 마력은 그랜드 마스터의 육체라고 할지라도 버틸 수 없는 인외의 힘이었다. 인체와 아스트랄 바디라는 심령체를 동기화시킴으로써 물질의 형태로 구체화되어 있는 에너지를 현실로 뿜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기존의 검술가들이 마스터에 오르거나 마법사들이 대마법사의 오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아무리 육체를 재구성하는 경지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근본적인 부분에서 인간이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이 몸은 인간의 외형이었지만 인간이라고 볼 수 없었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나라는 것을 운용할 때 검사든 마법사든 자신의 몸을 도구로 하여 움직인다는 점에서 밥을 먹을 때 스푼이라든가 포크와 같이 다른 도구를 각 식문화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몸으로 사용하는 마나는 마치 맨손으로 식사를 하는 것과 같았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아무리 대단한 검사와 마법사도 ‘가공’이라는 한단계를 거치는 인체를 가졌지만 자신의 몸은 직접적으로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투영할 수 있었다. 굳이 가공할 필요 없이 의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의지에 맞게 움직인다는 점에서 신이라는 이미지에 가깝다는 것이 엘레네가 내린 결론이었다.

“마더의 설명은 그랬지만 실제론 어딘가 좀 이질적인 느낌은 버릴 수가 없네.”

요가처럼 스트레칭을 천천히 하며 자신의 의지에 맞춰 움직이는 마나의 흐름을 느끼는 엘리스는 이제 안착한 자신의 육체가 아직은 완전히 자신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이면은 기존의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감각과 정령체로서의 감각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몸에 익숙해지는 길들이기 작업을 마친 엘리스는 ‘옷’의 형태를 이미지화해서 떠올렸다. 오래 전 정후와 다닐 때와 똑같은 옷이 엘리스의 앞에 나타났다.

“얼추 비슷한가?”

속옷부터 차근차근 옷을 입자 살짝 부분부분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엘리스는 이 또한 이미지를 통해 조정함으로써 오로지 자신의 몸에 맞도록 딱 제작된 맞춤옷처럼 만들었다. 분명 겉보기엔 옷이었지만 일반적인 의복이 바느질한 흔적이 있는 것과 다르게 처음부터 그 형태로 구현된 엘리스의 옷은 ‘천의무봉(??無?)’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했다.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엘리스는 다음으로 이전에 들고 다니던 전용 무기를 떠올렸다. 한동안 몸을 키웠을 때야 망치나 도끼를 휘두르며 마치 바바리안처럼 싸우곤 했지만 무게와 파괴력을 중시하면서 싸우는 스타일을 버린 이후론 기사들의 검이라고 부르는 양손검인 아밍소드와 버클러를 사용하곤 했다. 그러다가 버클러도 버리고 손을 보호할 수 있도록 그립 윗부분에 가드를 둥그런 모양으로 뼈대를 만들자 사이드소드나 레이피어처럼 바뀌었다.

텅스턴 소재를 섞어 만든 합금으로 된 이 검은 마스터나 그랜드 마스터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플라즈마에 가지는 저항성도 뛰어나 엘리스가 좋아하는 병기였다.

압축된 오러와 맞부딪힌 검은 오러를 감싼 검으로만 상대할 수 있는데 오러와 오러가 맞부딪히게 되면 오로라나 번개와 같은 플라스마 활동과 함께 고열이 발생하는데 이는 검의 내구도를 낮추곤 했다. 그래서 뛰어난 검수일수록 좋은 검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순간의 충격을 받아들여 부러지지 않으면서도 오러끼리 부딪혀도 침식되지 않는 좋은 검은 아무리 드워프라도 쉽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스가 휘두르던 무기를 공기 중에 휘두르자 공기가 갈라지는 듯한 픽픽 거리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잠시 그 느낌에 취해 정후에게서 배워 자신이 개량한 전용 검술을 시전한 엘리스는 간만에 몸을 움직이자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아아.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이 잠깐 팔렸던 엘리스는 정령체일 적에 느꼈던 정후의 파장이 발산되는 곳을 감지하기 위해 자신의 마력을 주변으로 흘려 무선탐지를 위해 사용하는 레이더의 마이크로파처럼 날려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후의 마력 파장을 감지할 수 있었다.

“흐음, 찾았다. 근데 아저씨는 자고 있는 건가? 굉장히 반응이 미약하네. 아저씨 찾으러 가볼까나. 보니까 레드와 화이트는 없는 것 같고.”

엘리스는 정후를 찾으면서 레드와 화이트가 생텀에 있는지도 함께 감지해봤지만 레드와 화이트의 파장은 감지할 수 없었다.

엘리스가 정후가 있는 곳으로 움직일 마음을 먹자 엘리스의 몸이 마치 공기 중에 녹아드는 것처럼 사라졌다.

엘리스가 정후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자 정후는 눈을 감고 조용히 자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엘리스가 정후를 향해 의식을 집중하자 현재 정후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마치 MRI를 통해 스캔한 것처럼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꼭 자고 있는 것만 같은데 의식은 각성해 있네. 신기한데?”

인간의 뇌에선 깊은 수면시 델타파가 나오고 얕은 수면 상태에선 세타파가 나온다. 델타 수면 상태에 이르면 일반적으로 잠을 자지 않는 각성 상태와 다르게 뇌도 휴식 상태에 빠진다.

반면, 잠을 자고 있지 않는 뇌에선 베타파나 알파파가 나오는데 베타파는 눈을 뜨고 어딘가로 사고를 집중하고 있을 때 알파파는 눈을 감고 의식을 이완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뇌파라고 할 수 있다.

엘리스가 감지한 대로면 정후의 뇌파에서는 깊은 수면 혹은 명상을 할 때나 나올 법한 델타파와 함께 집중하고 있는 각성 상태의 베타파가 동시에 나오고 있었다. 의학적으로야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엘리스가 스캔한 바에 따르면 정후는 육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상태에서 억지로 깨웠다간 정후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엘리스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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