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3화 〉 203화­PAUSE(2) (203/239)

〈 203화 〉 203화­PAUS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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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왕국의 국민들이 천국이라는 이름의 미궁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제국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세븐시티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물자들은 제국에서 소비되기도 했지만 제국을 거쳐 신성왕국으로 흘러 들어감으로써 엄청난 세수를 벌어들일 수 있게 되었고, 신성왕국은 막대한 생산품들을 소비하는 거대한 시장으로서 기능하고 있었기에 신성왕국으로 가던 무역품들이 멈춘 시점에 제국의 물건의 가치들이 하락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제국도 이 점에 대해서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지만 매번 신성왕국으로 가는 상단들이 마치 개미지옥에 빨려들어가는 개미들처럼 사라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진상을 조사하는 과정에 제국의 경제에도 무시하지 못할 악영향이 누적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와처의 진상조사단까지 복귀하지 않았단 말인가요?”

“예,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성왕국으로 떠난 이들은 돌아올 수 없다는 소문이 슬슬 퍼지고 있습니다.”

요크는 오빠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이 말라야히마를 가게 된 지금에서야 벌어지는 이 상황에 대해 빨리 해결하고 싶었지만 당장 문제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마당에 해결책을 내놓을래야 내놓을 수가 없었다. 와처의 올빼미들에게 부탁했을 때는 최소한의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돌아온 것은 와처 단원들의 추가실종 보고였다. 이조차도 조사단 중 일부가 돌아와서 보고를 한 것이 아니라 예고된 최후시점까지 복귀 보고가 없을 경우 실종으로 ‘간주’한다는 와처의 내부규칙에 의한 것이었다.

“심각하네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와처의 단원들이 불숲에도 뛰어들 정도로 용감하다고는 하지만 이 상황에서 스스로 신성왕국에 가겠다고 하는 인원들은 더 이상 없습니다.”

버크 오빠나 코엘 언니 아니면 빅터가 있었다면 또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어찌된 일인지 정후 일행들에게선 아무런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요크가 고민에 빠진 사이 와처의 검은 올빼미의 수장이 잠깐 주저하더니 한가지 문서를 들이밀었다.

“다만 정보분석팀원 중 하나가 신성왕국의 이전 활동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고 하면서 이것이 현재 인원들의 실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분석을 올렸습니다.”

“신성왕국의 이전 활동이요?”

검은 올빼미의 수장이 준 문서에는 신성왕국 내에서 쌍둥이 신의 사도 세명이 수도에 나타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과 함께 많은 이들이 수도에 몰려들고 있다는 세작의 보고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게 왜 보고가 되지 않았죠? 전 처음 듣는 소식인데.”

“그게...이 보고를 끝으로 신성왕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끊겼는데 당시에는 왜 정보가 끊겼는가에 주목하기도 했고 정보의 진위파악에서 말도 안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 보고내용이 오염된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후엔 무역상단들의 연이은 실종과 세븐시티 수출의 급감이 더욱 문제가 되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하아...”

물건을 만들었는데 사줄 수 있는 시장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정후는 세븐시티의 확장 당시 이 점에 대해 크게 걱정했었다. 폭발적으로 산업이 성장할 때 이를 받쳐줄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산업의 성장이 정체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산업의 성장을 전제로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다 시장상황이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이는 세븐시티로 반작용이 돌아올 수 있다고 했었다. 다만, 당시 상황에서 시장상황이 악화될 거라고 볼 수 있는 징후는 하나도 없었기에 세븐시티 내부에선 몇 번이나 보수적으로 판단한 끝에 프로젝트의 확장을 진행하게 되었다. 성장에 기댄 투자와 이 투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사업들은 많은 수익을 보장해주었지만 공격적인 투자가 정후의 예견대로 이젠 독이 되는 상황이 되었다.

급한대로 세븐시티의 공장들의 가동률을 뒤늦게 낮추기는 했지만 이렇게 몇 달만 지나고 나면 세븐시티의 많은 공장들이 도산하고 세븐시티에는 엄청난 경제적 불황이 찾아올 수 있었다. 정후가 가르쳐준 대로면 물건을 쌓아놓고 팔지 못하게 되면 세븐 시티 내의 기업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고, 해고된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또 감소하면서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40%에 가까운 판매시장의 급작스러운 손실은 그토록 뼈아쁜 것이었다. 세븐시티로 이주를 원하는 제국민들은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아니, 얼마전 받아들인 인원들도 세븐시티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요크는 패닉 직전이었다. 떠난 사람들은 연락이 끊기고 세븐시티는 고사(?死)할지 모른다. 방법을 강구하다 한숨을 돌리기 위해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 밖으로 보이는 행복해보이는 시민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요크의 가슴에 깊게 가슴에 와서 박힌다.

‘되도록이면 조만간 방법을 구해야 해. 시간을 끌수록 모두가 위험해져. 오빠, 정후야...어디들 있는 거야...빨리 돌아와.’

세븐시티의 총시장 역할을 맡고 있는 요크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 제국에서는 수출길이 막히면서 세수가 급감하게 되자 황제도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대로 가다간 제국이 흔들린다?”

황제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넘치는 부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금이 걷히면서 제국의 부흥기를 자신이 만들었다는 찬탄이 쏟아졌는데 신성왕국의 수출 거부(?)가 길어지게 되는 것만으로 제국이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폐하, 제국이 부흥하는만큼 제국의 귀족들의 씀씀이도 커졌습니다. 문제는 귀족들이 자신들의 씀씀이를 지키고자 그 돈을 은행에서 융통했다는 점입니다. 대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영지였지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래도 문제가 없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수출하는 동안 거둬들이는 통행세를 비롯해 여러 세금들이 귀족의 주머니를 채워줬습니다. 이는 세븐시티 뱅크에서 제공하는 규약에 따라 대출을 받은 귀족들의 대출금 상환을 미룰 수 있는 이자로 나갔지요. 세븐시티 뱅크에선 대출금의 이자만 내도 일정기간 대출 상환을 유예해주는 제도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귀족들의 주머니에 여유가 없습니다. 대출금 상환이 가까워지면 귀족들은 영지를 팔아야서라도 대출금을 갚아내야 합니다. ”

황제는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 싶었다. 귀족들의 영지가 팔려가봤자 결국 귀족들에게서 세븐시티 뱅크로 소유권만 바뀔 뿐 제국 내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던가

황제에게 불려진 재정부 대신도 황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폐하, 귀족들이 각자 영지를 따로 파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영지를 동시에 파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동시에 파는 것이 문제가 된다?”

“제국의 부흥기에 들어서면서 영지의 가치도 같이 상승했습니다. 영지를 갖고 있는 귀족들은 막대한 소비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영지가 없는 귀족들은 장기적으로 돈이 될 영지를 원하고 영지가 있는 귀족들 중 급전이 필요해 판매를 원하는 귀족들은 거기에 맞춰 가격을 높여서 팔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순식간에 영지 물량이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게 되면 구매를 원하는 귀족들도 가격이 더 떨어질 거라 생각해서 기다리게 됩니다.”

“가격은 더욱 폭락하겠군. 영지가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급전이 필요한 이들은 조금이라도 싼 값일지라도 서둘러 팔아서라도 돈을 구하려고 할테니.”

“그렇사옵니다. 제국의 귀족들의 주머니가 비게 되면 황제께 들어오는 세금도 다시 세븐시티가 세상에 나오기 전처럼 줄어들 것입니다. 사치품에 매겨진 세금은 더욱 그러하겠지요.”

세븐시티산 사치품에 대해선 빅터의 제안을 받아들여 높은 세금이 매겨졌다. 이는 황제의 내탕금 마련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불어가는 내탕금을 보면서 자신의 후대 황제들은 길이길이 자신을 찬양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황실 차원에서 세븐시티가 진행하는 사업들에 투자한 것들도 회수가 어려워지겠군. 하여튼 신성왕국 놈들은 가만히만 있어주면 좋겠건만 꼭 사고를 치는구나...”

제국이 신성왕국을 병탄()하지 않는 것은 굳이 제국으로 만들 이득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전쟁을 일으켜 어마어마한 군비를 소모하는 것도 손해였고, 세븐시티를 통해 산출되는 상품들을 비싼 값에 팔아치울 시장이 없어진다는 것도 손해였다. 신성왕국을 경제적으로 예속해두기만 하면 가마우지라는 새를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아들인다는 낚시꾼의 기술처럼 신성왕국은 제국을 위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돈을 토해내는 역할을 할 것이었다. 그게 신성왕국이 거슬리지만 굳이 점령하여 제국의 영토로 만들지 않은 이유였다.

일전의 대화재가 신성왕국을 통해 번졌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도 잠시 신성왕국을 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귀족들 사이에서 퍼졌지만 신성왕국을 벌하기 위해 누가 군비를 낼 것이냐는 자신의 질문에 모든 귀족들이 닭이라는 동물마냥 대가리를 숨기고 자신의 눈을 피했었다. 그때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신성왕국은 굳이 건드릴 가치가 없는 벌레같은 것들이다. 가만히 두면 큰 이익도 없지만 큰 손해도 없다. 그렇다고 그 거슬림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하물며 신성왕국민들은 교화도 되지 않는다. 제국의 품 안에 들여도 제국민으로 정신을 탈바꿈하는 동안 얼마나 더 큰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영광을 위해 손수 자기 손을 더럽히는 청소부와 같이 자신의 곳간을 털어 군비를 내고 고됨을 감수하려는 고마운 귀족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총사령관의 명예로 보답하겠다. 그래, 누가 나서겠는가?”

이후 신성왕국은 지금의 관계가 이상적이기에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제국의 총의(??)가 되었다.

“신성왕국 놈들은 왜 무역을 거부하는 것이지?”

“그게...무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신성왕국에 가면 돌아오질 않습니다.”

“돌아오질 않는다?”

“상단도, 와처의 조사단도, 어느 누구도 신성왕국으로 들어가면 연락이 끊깁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신성왕국 놈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아무런 정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라는 건가? 여봐라, 누구 없느냐? 누가 감찰단장을 불러와라!”

황제가 크게 외치자 독대를 하느라 밖에서 대기 중인 인원의 대답이 들려왔다.

“명을 받듭니다! 폐하.”

시간이 흐르고 감찰단장이 재정부 대신과 독대를 하는 공간에 찾아왔다.

“폐하, 감찰단장이옵니다.”

“들어오라.”

“부르셨사옵니까?”

“혹시 감찰단장은 내가 왜 불렀는지에 대해 짐작하는 바가 있는가?”

감찰단장이 재정부 대신을 슬쩍 보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감히 폐하의 깊은 속내를 제 짧은 식견으로 짐작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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