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200화O.H vs W.A.N.T(3)
* * *
그라운드가 있는 마을 근처에 집결하고 있는 O.H의 인력들이 감시체계에 감지되었고 이는 릭에게도 전파되었다.
“미친 것들 아니야? 아무리 세상이 예전과 다르게 무법자들이 늘었다고는 해도 저렇게 총을 들고 온다고?”
[저들은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들이 아니야. 만약 외부의 시선이라든가 국가의 권력에 순응하는 이들이었다면 자신들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마스크를 쓰지도 않았겠지.]
어느 정도의 준비를 해왔는지 확인한 결과는 놀라웠다. 이 땅이 비록 개인의 무력장비에 대해 온건한 법적 체계를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닌 무기들은 AR 계열의 소총을 기본으로 하여 샷건 그리고 권총까지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국가가 공인한 군대라든가 경찰과 같은 기관이 아닌 개인이 장비할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우릴 모두 죽일 셈인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알라의 요술봉’도 있었어.]
“하...도대체 저걸 어디서 다 구해온 거야.”
[집결한 O.H의 무력집단의 인원 파악이 모두 끝났다.]
“몇이나 돼?”
[100명 정도 되는 인원인 걸로 확인된다.]
영화에서야 수백명이 전투를 하는 것이 쉬울지 모르나 100명의 전투물자를 준비하고 이들을 수송해서 총격전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가받지 않은 무력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것이 이 나라였다.
“준비한 게 없었다면 큰일날뻔했군.”
[맞아. 다행인건 우리가 준비한 나노테크놀러지 기반 장갑은 저들의 무기로는 어느 정도까지는 크게 무리 없이 보호가 가능하다는 거야.]
“그거 준비한다고 돈이 얼마나 깨졌는데.”
[그라운드의 자금력만으로는 3명 정도밖에 무장할 수가 없었어. 우리 W.A.N.T가 가진 자금력까지 동원해서야 겨우 20명의 인원들이 무장할 장갑을 준비할 수가 있었지.]
“아...그 돈을 처발랐는데도 겨우 3명이라니...너무 단가가 안 맞아.”
[죽고 나면 수억 달러가 있어도 무소용이야.]
“그거야 그렇지.”
상황실에서 세 대사범과 함께 100명의 O.H 무력집단과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그라운드의 사범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대한 사망자가 없는 쪽으로 움직여야 할 거야.”
[아무래도 인간들의 입장에선 우리같은 레플리칸트들이 인간들을 살해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아직까진 크게 나쁘지 않은 레플리칸트의 ‘감정’ 알고리즘 찬성 여론에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으니까.]
“선공은 안돼.”
[거주지 방어법은 지켜야지.]
이 나라의 정당방위는 크게 2가지를 통해 성립되는데 한가지가 통칭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이라고 해서 캐슬 로(Castle Law), 거주지 방어법(Defence of Habitation Law)이라고도 불리는 법과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Stand Your Ground)라는 법이 바로 그 2가지를 말한다.
전자는 자신의 집 혹은 사유재산지를 ‘성’으로 간주하여 이 성에 무단침입하는 자에 대해 자신의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사살하더라도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법이고, 후자는 단순히 자신의 사유지뿐만 아니라 길거리와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자신을 향한 생명의 위협에 대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살상이 가능한 캐슬 독트린의 확장 버전에 해당하는 법이다.
이 법대로면 저들이 우리의 사유지인 그라운드에 대해 ‘총기’를 가지고 무단으로 침입하는 행위는 스스로 자구책을 발동시킬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말하고 있지만 문제는 앞서 말했듯 그것이 어찌되었든 레플리칸트에 의해 사람이 죽었을 때 ‘생명’이 아닌 ‘도구’로 취급받는 레플리칸트들이 현재는 그라운드에 속한 장비로서 그들을 죽였다 할지라도 정당한 법절차를 따른 합법적인 권리 수단으로 작용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법에 한해서만 정당성을 부여할뿐 이에 대해 혹시라도 나중에 알게 될지 모를 대중들이 받아들일 감성적 부분에서의 정당성까지 부여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레플리칸트 수뇌부에선 회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 맞춰서 ‘준비’도 해놨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야.]
“계획대로 하자. 계획대로만.”
[그렇게 되도록 해야지.]
“드디어인가? 그라운드의 본사가 산산조각 나서 없어지고 나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그래.”
“총수님, 타격대 공격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시작해. 인간들의 특권을 감히 손대려 한 것들이 어떤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지 증명해주자고.”
“알겠습니다. 〔타격대, 작전 개시하라.〕”
러드의 옆에서 공격 명령을 확인한 남자가 무전을 통해 명령을 하달했다. 러드는 영상을 통해 이를 지켜보고 계실 대모님께 또 하나의 자랑스러운 업적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밤을 지나 새벽 3시쯤 되자 저들이 움직이는 것이 포착되었다. 아무래도 주변에 그렇게 많은 시설이 있는 것이 아닌데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고 레플리칸트들만이 본사에 남아있을 시간을 노려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O.H의 타격대 그라운드 본사 근처로 달려오는 중]
발소리를 죽여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무리가 다가와 본사의 문 앞에서 뭔가를 준비하더니 다른 인원들보고 뒤로 가라고 손짓했다.
“사제 폭탄인가?”
잠시후 격발음이 들리고 작은 폭음이 센서를 통해 감지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현관에 내려진 셔터는 그을음만이 남아 있었을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뭐, 뭐야?”
“폭탄이 잘못된 건가???”
〔입구 확보 실패, 입구 확보 실패.〕
현장에 있는 타격대로부터 폭탄을 터뜨렸음에도 입구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무전이 러드의 귀로 들려왔다.
“이게 무슨!”
러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유나보머가 오두막에서 지역 도서관을 오가며 습득한 사제폭탄 제조술은 가히 놀라워서 그동안 여러 건의 경우에 사용되었으나 한번도 그 효과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특별히 유나보머가 상대적으로 폭음은 낮추고 폭발력을 높인 물건이라며 가져다 준 것이었기에 그 기대감이 더욱 컸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기대감과 다르게 어찌된 일인지 현장에 비춰지는 그라운드의 셔터는 그을음만이 묻었을뿐 여전히 한치의 구겨짐 없이 굳건했다.
“흐음. 폭탄이 제대로 터진 것이 아닐 수도 있으니 준비된 다른 폭탄을 설치해서 터뜨려 보라고 해!”
“알겠습니다.”
〔재설치 후 점화하도록.〕
〔명령 확인〕
O.H의 인원들이 입구에서부터 당황해서 버벅이는 지도 모르고 그라운드 상층에서 대기 중인 릭은 이 상황이 살짝 어이가 없었다.
“뭐야? 폭탄 터뜨린 것 같은데 쟤들 왜 못 들어와.”
[저번에 말했던 ‘방화문’ 건은 기억해?]
“어, 말 그대로 불 났을 때 건물 사이사이로 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거라며 설치했잖아.”
[현관에 있는 건 충격흡수 기능도 포함되어 있거든.]
브렌다의 설명에 따르면 그라운드 정문에 설치된 방화문은 불에도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을뿐만 아니라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시 집중된 충격을 전체로 분산시켜 그 힘을 흘려 버리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게 가능해?”
[니가 우리들에게 검술을 가르쳐줄 때 상대방이 강력한 힘으로 찍어누를 때 힘을 분산시키는 기술이라면서 ‘흘리기’라고 하면서 보여준 것 있잖아? 그게 가능하도록 한 거야.]
브렌다의 설명대로면 우리 건물의 정문은 폭탄을 상대로 검술을 실현하고 있는 셈이었다.
“워....”
가만히 저들이 하는 모양을 지켜보고 있자니 또 똑같은 물건을 설치했음에도 폭발하는 순간 출렁이던 그라운드의 정문에는 그을음만이 더 늘어났을뿐 큰 변화는 없었다.
“쟤들 당황한 것 같은데?”
〔그라운드의 정문 진입 실패. 진입 실패. 현재 장비한 폭탄으로는 뚫을 수 없다. 다른 방법을 알려주기 바란다. 이상.〕
O.H에선 시작부터 틀어진 계획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러드만 해도 다른 게 아니라 문에서 변수가 발생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총수님, 어떻게 할까요? 현장에서 명령하달을 해달라고 합니다.”
자신의 옆에서 믿음으로 가득 찬 눈빛을 하고 쳐다보는 비서실장에게 러드는 괜스레 짜증이 났다.
“왜 이렇게 보채! 문이 뚫리지 않는 건 나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리고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같이 들었잖아. 넌 무슨 계획 없어?”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시면 저도...잘.”
“그것 봐! 사람이 말이야. 준비한 적 없는 상황이 오면 당황하고 그런다고!”
“근데, 쟤들 이러고 만약 돌아가면 나중에 더 이상한 거 들고 오는 거 아니야? 이왕이면 초장에 확 무너뜨려야 될 것 같은데. 어설프게 때리면 더 골치 아파진다고.”
어릴 적 하던 게임을 해본 기억에 따르면 그랬다. 언젠가 용사가 나타나 마왕을 죽일 거라는 예언가의 말이 세상에 퍼지고 마왕도 이 예언을 접한다. 그리고 마왕을 죽이기 위해 모험을 시작한 용사후보는 처음엔 무슨 비범한 재능이 있을지라도 평범한 행인1보다 나은 수준이었지만 단계별로 다가오는 마왕의 부하들을 무찌르면서 이런 저런 장비들을 주워서 착용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뜻과 맞는 동지들을 만나 팀을 이룬다. 마침내 용사후보에서 진정한 용사로 거듭난 용사가 마왕의 앞에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나타났을 땐 마왕은 자신의 부하들을 많이 잃게 되어 혼자 상대해야 되거나 중간 보스급 인물들이 먼저 나서 처리하겠다면서 용사의 경험치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구리로 돌아가면서 레이드를 해서 마왕을 무찌르고 엔딩을 본 릭은 생각했다.
“마왕은 용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면 비리비리한 부하들을 보낼 것이 아니라 본인이 가서 처음부터 가서 용사 후보들을 처단하면 되지 않나? 내가 마왕이면 문제가 되겠다 싶은 것들은 싹이 돋기도 전에 치워버릴 거야.”
릭의 말을 들은 세 레플리칸트는 릭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니 말은 열어주라고?]
“한번 더 무슨 시늉을 하면 대충 거기에 맞춰서 당황하는 척하면서 열어주고 움직이자.”
[그...그런가?]
[그게 맞아?]
문을 열어줘버리라는 릭의 말에 브렌다와 에밀리는 이게 맞나 싶었다. 비앙카 역시 둘과 다르지 않아 상황 봐서 열어주라는 말을 릭이 재차 꺼내자 뒤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보통 이럴 땐 수성전같은 방식으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분명 어느 정도 폭탄이 영향을 줬을 거라는 러드의 지시에 따라 O.H의 타격대는 다시 한번 폭탄을 설치하고 준비했다.
“이번엔 열릴까?”
“에이...총수님이 열릴 거라잖아. 하다 못해 구멍이라도 생기겠지.”
뒤에서 수군거리는 대원들을 조용히 시킨 타격대장은 폭탄을 담당하는 대원에게 격발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준비한 폭탄이 퍽 소리를 내며 큰 빛과 함께 터졌다.
“어?”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그라운드의 정문은 뚫리지 않았다. 다만 마치 상어의 이빨처럼 위아래로 나뉘며 열려버렸다.
“열렸다!”
“연 건가?”
“이걸 우리가 열었다고 해야할지 저들이 열어줬다고 해야할지...”
“거기 둘! 시끄럽다!”
“네...넵!”
타격대장은 어찌되었든 열린건 열린거라는 러드의 음성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대원들에게 진입명령을 내렸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들어가는 모습은 이상하게도 러드에겐 괴물의 아가리에 스스로 죽으러 들어가는 것처럼 찜찜하게 느껴졌다.
“에이...괜찮겠지.”
소총과 샷건 그리고 권총에 ‘요술봉’까지 지닌 자신의 최강 무력집단이 절대 무너질리 없다고 생각한 러드는 현장에 투입된 대원들의 캠을 통해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