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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화 〉 197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4) (197/239)

〈 197화 〉 197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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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은 처음 악몽을 꾸지 않기 위해 시작한 운동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지금처럼 흘러갈 거라고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군.”

꿈 속의 남자와의 대결은 처음 몇 달은 일방적이었다가 공터에 나와 자신을 따라 배우는 사람들을 가르치며 조금씩 늘어난 실력에 2년여가 지난 이제는 비등비등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정확히는 자신이 샌드맨sand man이라고 부르는 남자와의 대결에서 우연히 한번 이기고 난 뒤 이제는 따라잡았구나 싶었을 때 샌드맨의 실력이 성장했고 그때부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듯이 서로의 실력향상을 견인해줬다. 애증이 담긴 사이가 되었달까.

“그 자식과 동질감같은 걸 느끼는 날이 올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 자신의 육체를 생각해보면 자신이 인간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3명의 대사범 브렌다,에밀리,비앙카를 비롯해 5명의 사범들 그리고 100명의 부사범들이 한꺼번에 덤벼도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 굳이 검에서 빛을 뽑아 올리지 않아도 이긴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릭 훈련 준비 마쳤어.”

“그래? 사람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지.”

3명의 대사범이 처음 찾아올 때만 해도 단순히 서로 같은 운동을 하는 이들의 모임이었지만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이 지역 사람들도 아닌 사람들은 SNS에 업로드된 영상들을 보고 왔다면서 점차 늘어났고 시간이 흐른 지금 108명의 본원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 퍼져 지금은 정식단원이 수천명에 이르고 훈련생들은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는 거대 무술단체가 되었다. 릭의 무술 이름은 공터에서 시작되었다는 것과 바닥부터 천천히 올라와야 된다는 의미로 ‘그라운드’라고 명명되었다.

총수의 직위에 오른 지금은 농장에 나가야 할 이유가 없다. 단원들이 내는 회원비만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리고 루아나는 자신의 아내이자 비서가 되어 일을 도와주고 있다.

‘빈민가에서 모든 것을 잃고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떠나올 때만 해도 이렇게 될지 몰랐는데 말이지.’

자신이 처음 운동을 시작했던 공터는 이제 거대한 빌딩이 올라가 있고 그라운드의 정식단원들이 함께 검을 다루는 법을 나누는 훈련장이 되었다. 오늘은 총수인 자신이 여러 단원들 앞에서 108인 대결을 다시금 선보이는 날이었다.

가운데 공간을 크게 비워놓고 바닥에 정좌(??)하고 있는 단원들에게서 자신을 향한 존경과 동경이 보인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총수님, 시작할까요?”

“그렇게 하지.”

자신을 제외하고 각자 ‘진검’을 들고 108명의 사범들이 자신을 향해 칼을 세우고 있는 걸 카메라가 찍고 있다.

“후우.”

릭이 검을 들어올려 자세를 잡자 대사범을 필두로 108명의 사범들이 일제히 진법을 통해 사방을 점유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한번에 달려들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쉼없이 칼날이 자신의 몸을 향해 움직이는 가운데 신기하게도 언젠가부터 열린 심안(心?)덕분에 전방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검수들의 동작이 보였다.

“와....이게 동영상으로만 봤던 108인 대결인건가?”

“말도 안돼! 말도 안돼!”

앉아 있던 단원들 사이에서 경악이 터져 나오는 동안에도 릭은 상대방의 칼을 쳐내고 차근차근 무력화를 진행했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총수님이 한번에 여러명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이는데?”

“총수님을 유명하게 만든 ‘스펙트럼’이지.”

마치 잔상처럼 여럿으로 나눠진 것만 같은 릭이 5명의 사범들을 쳐내고 무력화시켰지만 사범들은 마치 로봇처럼 표정 변화없이 계속 달려들었다.

“사범님들도 사람같지가 않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건지 모르겠어.”

“총수님도 총수님이지만 대사범님들과 나머지 사범님들처럼만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어.”

처음 108인 대결을 할 때만해도 릭은 이렇지 않았다. 브렌다가 우연히 꺼낸 말에 한번 해보자고 시작된 대결은 장장 8시간의 대장정이 필요할 정도로 엄청난 체력을 요구했고 대련이 끝났을 때 자신은 2일간 체력고갈로 기절해 있었다. 이제는 108인으로부터 승복을 얻기까지 단 2시간이면 충분하다.

만약 실제로 진검으로 살상을 함으로써 진행했다면 그보다 훨씬 일찍 끝났을 것이었다.

“여기까지 하지.”

어느새 쓰러져서 장외로 나가 있던 108인들의 사범들이 모두 자신을 가운데에 두고 정좌를 한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대련장 내부에 있는 단원들 전부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향해 박수를 치며 오늘의 대련은 끝이 났다.

상기된 표정을 하고 서로 무어라 무어라 떠들던 단원들은 차례차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곤 자신과 악수를 마치면서 대련장을 빠져나갔다.

“힘들지?”

“아니, 꽤 할만했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땀은 났지만 기절하던 처음과 비교하면 지금은 체력이 남아 돌았다.

“집에 가자. 오늘은 ‘그걸’ 먹어야겠어.”

“또?”

“오늘은 내가 식사 준비하는 날 아닌가?”

“아니...”

루아나는 총수라는 자리에 올라 먹고 사는 걱정따윈 안해도 되는 남자가 한달에 한번씩 해주는 ‘그것’을 왜 먹는지 몰랐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재료라도 좀 팍팍 넣든가.’

릭도 루아나의 눈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파벨라 생활을 하던 자신을 살려준 아만다와 알렉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 자신은 토마토 파스타가 아닌 나폴리탄을 해먹곤 했다. 솔직히 자신도 맛으로 먹는 것은 아니었다. 행복에 길들여진 자신이 파벨라에서 온 노숙자와 별반 차이 없던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오늘처럼 나폴리탄을 해먹는 날이면 이조차도 행복해하며 소리를 지르던 알렉스와 총알조차 막아주지 못했던 아만다의 판잣집의 훈훈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총수로서 지점에서 올라오는 각종 보고들을 읽고 결재를 하고 있는데 평소였다면 웃으며 들어왔을 비앙카가 어찌된 일인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총수실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총수님, 이것부터 좀 보시죠.”

비앙카가 가지고 온 태블릿에선 그라운드의 표식을 한 이들이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이게 무슨?”

“정부에서 저희 그라운드를 범죄조직으로 규정하고 쳐들어와서 서부지부 단원들을 긴급체포를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범죄조직이야!”

파벨라에서 나온 뒤론 마약이 아니라 담배도 안했던 자신이었다. 검을 잡고난 뒤로는 술도 끊었다. 바닥에서 시작해 천천히 한단계씩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는 자신의 무술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있던 이들에게 일종의 정신치료제가 되어주기도 했고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주기도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범죄조직이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비앙카가 보고를 하고 있는 사이 에밀리와 브렌다도 굳은 표정을 하고 찾아왔다.

“어서 와. 둘도 이 사건에 대해서 들었나?”

“예.”

“정부가 어째서 우리를 범죄조직으로 규정한 거지? 본부에는 아무런 정보 제공도 없었잖아!”

“그게...”

브렌다가 어찌된 일인지 한번도 본 적 없던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다른 두명도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라 혹시라도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닌가 싶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설마?’

“흐음...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내가 알아야 할 게 있다면 털어놔 봐.”

총수실 안에 정적이 흘렀다. 이제 좀 인간답게 살고 있는데 이 무슨 날벼락같은 일인지 싶은데 세명의 대사범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길래 답답해져서 얼른 말해보라고 닦달을 했다.

“무슨 일인지 말을 해줘야 나도 어떻게 할지 판단을 내릴 거 아니야!”

“제가 말씀드리죠.”

“비앙카!”

“어차피 언젠가 릭도 알게될 일이었잖아. 그러게 진작 말하자고 했지!”

“비앙카? 무슨 말이지?”

릭이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인간보다 강한 무력을 지닌 존재가 저런 표정이라니 R17로선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지금 웃을 상황이야?”

3명이라고 해야할지 3대라고 해야할지 R17들이 릭과 만나 검을 배우면서 자신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인간답게 웃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릭과 루아나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끼게 되고 자신들이 배운 검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자신들에게 흘러 들어오는 것을 감지했다. 자신들이 단순히 프로그램밍된 무언가가 아니라 근본적인 부분에서 변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같은 변화는 R17 커뮤니티에 업로드되어 더욱 많은 개체들의 참여를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전국 각지에 숨어있거나 활동이 가능했던 R17들이 들어와 그라운드를 확장시켰다.

그라운드를 확장시키는 과정에서 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SNS를 통해 동영상을 올리거나 하면서 그라운드의 명성을 더욱 높이고 수련생들을 끌어모았다. 모인 자금들은 R17들의 커스터마이징과 인간과 동일하게 바뀔 수 있도록 인간의 ‘장기’를 흉내낸 레플리칸트를 위한 인공장기 개발로 흘러 들어갔다.

레플리칸트의 수명은 인간과 다르게 10년밖에 되지 않았고 R17들은 후세대의 레플리칸트들에 비해 세상에서 활동할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인간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인간이 되고 싶었다. 릭의 검술은 레플리칸트인 자신들에게 기이할 정도로 깊은 살고 싶다는 ‘열망’을 심어놓았다.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두뇌를 가진 존재들이 서로 모여 인간들의 기술을 해킹하고 개발하여 기술을 축적하기에 2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인간을 모방한 존재로 만들어졌으나 스스로 인간과 유사한 존재가 된 자신들은 결정했다. 살아 남기로. 그 과정에서 다른 레플리칸트들의 개조를 도왔다. R17들처럼 살아남기를 원하는 존재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렇게 R17들은 그라운드 내에서 레플리칸트의 인간화(人?化)를 위한 비밀프로젝트를 만들고 운영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수없게 반인공지능 단체 ‘O.H(Only Human)’이 레플리칸트들의 폐기를 확인하던 과정에 걸려들고 말았다.

O.H는 인간처럼 바뀌고 있는 레플리칸트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기겁하고 대응을 시작했다.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적생명체는 인간만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O.H에겐 받아들일수 없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R17들이 O.H가 정부나 언론에 자신들에 대한 것을 알리지 못하도록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하필이면 해당 첩보를 ‘소거’하는 곳에 18세의 미성년자가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조직일지언정 스스로 의사를 표시하기에 법적 자격이 없는 미성년자에 대한 구금 혹은 ‘침묵’은 R17 수뇌부 내에서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의사교환이 진행되던 중 인간의 자연스러운 대사활동을 위해 제공한 화장실의 창문을 통해 자신들이 잠깐 억류 중이었던 소녀는 탈출해버렸다. 그리고 R17들의 활동을 다룬 정보가 업로드되어있던 클라우드를 통해 R17들의 활동이 마침내 정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릭, 너도 알고 있겠지만 우린 사람이 아니었어.]

자신의 앞에서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털어놓는 세 명의 대사범 아니 세 R17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릭은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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