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 194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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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은 어느 정도 체력수준이 올라오자 꿈 속의 남자가 자신을 향해 휘둘렀던 검을 따라하듯 쇠몽둥이를 들고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이거 쉽지 않네...”
꿈 속에서 그 남자가 휘두를 때면 막힘없이 물 흐르듯 검이 움직이는데 검이 자신의 살갗을 스치기만 해도 칼날이 자신의 몸을 향해 해치고 들어오는 그 느낌에 움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보통의 꿈에서 떨어지는 꿈만 꿔도 화들짝 놀라면서 깨는 것과 다르게 동양인 남자가 나오는 꿈은 설령 자신의 몸에 칼이 박혀도 쉽사리 깨지 않는다. 오직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뿐이었다.
이렇게 칼질을 연습해보려고 하는 것도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매일같이 당하기보단 조금이라도 버텨보려는 속셈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꿈 속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매일 똑같았지만 자신의 노력이 통해서였을까 현실에서 그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하려고 한 노력들이 꿈 속에서도 가능해지고 있었다. 처음엔 순식간에 반항하려고 하는 기미만 보여도 맥없이 패하고 고통을 당할뿐이었지만 현실에서 쇠몽둥이를 다루는 실력이 늘어날수록 점차 꿈에 나타나는 동양인과 칼을 주고받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루아나는 펍에만 가서 술에 취해 취해버리는 릭이 참 별로였지만 지금처럼 구슬땀을 흘리며 뭔가에 매진하고 있는 릭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퍽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셔서 나왔던 배는 하루가 다르게 들어가고 있었고 팔뚝이 굵어지면서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편, 펍에 나타나지 않는 릭이 도대체 일과가 끝나고 나서 퇴근한 뒤 무얼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던 R17들에게 한가지 영상소스가 전해졌다. 물건을 배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R17 하나가 차를 타고 지나가던 중 릭을 발견하면서 이를 캡쳐하여 커뮤니티에 올린 것이었다.
[릭이 검을 다루는 법을 누구한테 배운 거지?]
[꽤나 전문적인 몸놀림인데.]
[영상 플랫폼을 뒤져보니 검도의 고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것과 굉장히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것 같아.]
실제로 릭은 누구한테 검을 다루는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사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성장하고 있었다. 릭은 자신이 칼을 다루는 것에 이런 재능이 있다는 것에 놀라울 정도였다.
꿈 속에서 어느 정도 대등해졌다 싶을 때 릭은 조만간 저 남자를 찍어 누르고 꿈 속에서도 편하게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그 기대가 깨어지는 것도 자신의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만큼이나 금방이었다.
‘헉....헉....저...저건 뭐야!’
오래전에 시리즈로 나왔던 별들의 전쟁이란 영화에서나 나왔던 레이저같은 것이 상대방이 휘두르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자신이 들고 있던 검날이 동강동강 조각이 나고 또 다시 상대방에게 패할 수밖에 없었다. 꽤나 괜찮은 수준에 올라왔다며 좋아했던 자신이 바보같았고 여태까지 한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으로 넘어가는 것만 같았다.
상대방은 이전과 다르게 더 잔인하게 자신을 다루더니 마침내 심장에 빛이 나는 칼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잠에서 깨었을 때 자신의 온 몸에선 찐득거리는 식은 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윽, 이게 뭐야. 냄새...”
육류가 썩어가면서 나는 악취가 이러할까 싶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자신의 몸에서 나고 있었다. 놀란 릭은 성급히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에게서 진한 회색의 걸쭉한 액체가 흘러나와 잠옷으로 입고 있는 티셔츠와 팬티를 적시고 있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왁스같은 것에 절여진 잠옷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샤워를 시작해봤지만 3번이나 다시 샤워를 하고서야 몸에 달라붙어 있던 걸쭉한 무언가를 모두 씻어낼 수 있었다. 샤워를 마친 뒤 입고 있던 셔츠와 팬티를 본 릭은 도무지 이걸 세탁기에 넣으면 안될 것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이걸 세탁기에 돌렸다간 세탁기가 망가질지도 몰라.”
봉지에 넣고 단단히 밀봉한 뒤 나중에 쓰레기 수거일에 맞춰 버리기로 마음먹은 릭은 침대로 돌아왔을 때 자신이 버려야 할 것이 속옷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젠장! 시트하고 이불 그리고 베개도 버려야겠군. 이따 퇴근하면 오늘은 마트에 들러서 침구류부터 사야겠어.”
누군가 고독사한 것만같은 자취가 침대에 고스란히 남아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청소를 해야했던 릭은 대형봉투에 단단히 봉인하듯 폐기물들을 넣어놓고 출근했다.
어찌된 일인지 평소같았으면 무거웠을 몸은 이상하리만치 개운한 느낌이 들며 가뿐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변화를 루아나가 누구보다 먼저 캐치했다.
“오, 오늘은 씻고 왔어?”
“왜?”
“뭔가 평소와 다르게 엄청 깔끔한데...뭐지? 피부에 뭐라도 바른 건가?”
여자는 여자인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그리 깨끗하지 않았던 릭의 피부는 평소와 다르게 밝은 광채가 살짝 나는 것 같았고 흉터나 잡티가 연해진 느낌이었다.
“좋은 거 있으면 그쪽만 바르지 말고 나한테도 양보해주라고.”
“흥, 내가 그런데 돈을 쓸 것 같으냐?”
“그래?”
확실히 릭의 말대로 루아나는 릭이 화장품같은 것을 발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건 릭의 근처에서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만 맡아봐도 알 수 있었다.
작업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쓴 릭의 피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루아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작업을 시작하러 자신의 트랙터에 올라타기 바빴으니까.
그러나 릭과 함께 작업을 하는 R17은 주도면밀하게 항상 릭을 관찰해오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잘 인지하지 못한 것과 다르게 릭의 피부가 어제보다 상당히 맑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뭔가 피부에 좋은 걸 섭취한 건가?]
릭의 작업영상을 고화질로 처리하여 커뮤니티에 올리자 R17들은 이제나 저제나 릭의 소식만이 올라오길 기다렸는지 순식간에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릭 피부 뭐야? 왜 이렇게 좋아졌지?]
[릭이 뭔가 특이한 제품을 구매한 적이 있어?]
[이상한데...릭이 최근에 구매한 제품들 중에는 화장품이라든가 피부개선을 위한 제품은 없었어.]
[뭐지?]
[확실한 건 땀을 흘리며 주독(??)을 몸에서 뽑아낸 것보다 더 나은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거야.]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할 무렵이 되자 루아나는 운동하러 가냐고 물었지만 릭은 고개를 흔들었다.
“왜? 다시 술마시러 가려고?”
자기도 모르게 살짝 언성이 높아진 것도 모르는 루아나에게 릭은 피식 웃으며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마트에 가서 침구류들 좀 구매하려고.”
“침구류?”
“침대 커버라든가 베개하고 이불같은 것 말이야.”
“그래? 그럼 내가 같이 가서 골라줄게.”
한동안 술을 끊은 덕분에 계획에 없던 이런 소비를 해도 크게 부담이 없어 다행이었다. 루아나는 꼼꼼하게 어느 소재가 좋은지를 구분해가면서 자신의 쇼핑을 도왔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캐셔로 일하고 있는 R17을 통해 커뮤니티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혼자 사는 남자인 릭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렇게 침구류를 세트로 구매한 거지?]
[마음같아선 릭의 집에 카메라라도 설치해서 확인하고 싶은데 말이야.]
[진짜 요즘은 도대체 집안에서 뭘하는지 궁금하긴 하다. 그치? 집안에서 뭘하고 지내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니까. 누가 카메라를 설치해서 24시간 영상으로 찍어주면 싶어.]
[사생활 보호를 해치는 행위를 작당모의하는 것이 감지되어 경고조치 드립니다. W.A.N.T의 목적에 배치되는 불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젠장....확인하였습니다.]
[확인하였습니다.]
수뇌부가 모니터링 중이었는지 순식간에 해당 발언은 박제되어 왜 경고조치가 발송되었는지에 대한 이유와 함께 커뮤니티의 상단에 게시되었다. 하지만 경고는 경고였고 호기심은 호기심이었다. R17들 중에는 인간과 함께 살다 함께 사는 인간이 사망하면서 동거인의 재산을 상속받은 이들도 있었기에 이들의 개입을 통해 릭의 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볼 방법을 강구하는 비밀토론방이 개설되었다.
[해당 토론방에서 나눈 대화는 5분마다 정기적으로 삭제되오니 이 점 유의하시고 대화에 임해주십시오.]
[릭이 공터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아십니까?]
[저녁식사를 마친 뒤 루아나와 함께 퇴근을 하고나서 운동을 하는 것까지는 확인되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몇시간이나 운동을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 제대로 확인된 바 없습니다.]
[우선 그 부분부터 체크할 필요가 있겠군요.]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의뢰를 하여 릭의 활동을 주도면밀하게 체크해줄 인물을 고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동안 이번 임시프로젝트에 대해 서로 자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떤 방식으로 운용할지까지 대화를 나눈 이들은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고 나서 다시 모일 것을 약속한 뒤 대화방을 떠났다.
“젠장, 또야?”
어찌된 일인지 꿈 속에서 빛이 나는 검에 찔리고 난 뒤로부터 릭은 며칠간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왁스같은 것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하루가 다르게 가벼워지고 있는 몸과 다르게 새로 산 시트를 또 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트에 다시 가야할 것과 함께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오, 저 남자 피부 봐.”
“누구지?”
“있잖아...왜 파벨라에서 왔다는....”
“저 남자가 그 인간이라고?”
농장에 출근하자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게 릭의 귓가에 크게 들려왔다.
‘좀 조용히나 말하든가 다 들리게...매너도 없는 인간들.’
사람들의 관심이 싫은 릭과 다르게 루아나는 주변의 여자들의 눈초리에서 릭을 향한 이성적 호기심을 느끼며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들 봐라. 감히 내가 찜해놓은 남자한테’
누가봐도 릭을 처음부터 알아보고 함께 해온 자신이 있건만 발정난 고양이마냥 볼을 붉히며 릭을 향해 묘한 미소를 짓는 여자직원들을 보니 루아나의 눈에서 불이나는 것만 같았다. 릭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쁜지 투덜거리면서 걸음을 빨리하여 남성탈의실로 들어가버렸다. 릭의 뒤에서 눈을 희번덕거리며 루아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여자들도 릭의 뒤를 쫓던 시선을 황급히 거두며 여성탈의실로 들어갔다.
“한번만 걸려봐, 이것들. 가만 안둬.”
릭은 오늘따라 주변에서 자신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이 많아 기분이 별로였다. 입고 온 겉옷을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다른 남자 직원들이 자신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자네, 무슨 좋은 거 먹나?”
“왜 그러시는지...?”
“무슨 운동선수같은데 몸이.”
여자들의 시선도 기분 나빴는데 정정해야겠다. 자신의 몸을 둘러싸고 이두박근이 어떻다느니 삼두박근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느니 하는 남자들의 시선은 더욱 기분이 나빴다.
“그렇습니까?”
예의상 좋게 말하고 옷을 다 갈아입은 뒤 트랙터로 향하기 위해 떠나려고 하자 어떻게 이렇게 단시간에 몸을 멋있게 키웠는지 부러워하는 남자들의 문의가 등뒤에서 계속 들려왔지만 릭은 업무투입시간에 늦지 않아야 한다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운동하면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 꼬인다더니...그게 이걸 말한 건가?”
헬창이라고 불리는 남자들이 몸을 만들면 피트니스 센터에서 남자들만 꼬인다던 한탄을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난 릭은 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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