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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화 〉 193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0) (193/239)

〈 193화 〉 193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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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을 보고 있노라면 드는 생각은 언제 저걸 다 수확하나 싶은 막막함이

먼저다. 어지간한 나라 수준의 넓이의 밭에선 옥수수가 수확되고 또 옥수수가 재배된다.

인간이 먹는 것들 중 옥수수가 직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다. 당장 먹거리만 해도 옥수수를 가루로 만들거나 옥수수의 전분을 이용하거나 옥수수에 있는 당분을 뽑아내서 만든 것들을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먹고 있는데 소에게 먹이는 사료까지 옥수수다.

“옥수수는 정말 이제 지겨워.”

옆에서 레플리칸트가 듣던 말던 릭은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며 수확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사라는 속으로 생각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짐빔도 그렇게 생각하나?’

릭은 마치 사라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빨리 일이나 끝나고 쥬스나 마시러 가고 싶다고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일할 때도 한잔씩 하면서 하면 정말 좋을텐데.”

[업무 중 알콜 섭취는 절대 금지입니다.]

여태껏 하는 푸념에는 한마디도 반응하지 않으면서 이럴 때만 칼같이 반응하는 R17에게 릭은 살짝 움찔했지만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냥 하는 소리지.”

[실제로 업무 중 알콜 섭취로 인해 강제 퇴사 조치 당한 직원들의 사례가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사측은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매뉴얼에 입력되어 있는 대로 경고를 말하는 와중에도 디스플레이들과 전면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는 R17의 모습에 레플리칸트들끼리도 술을 마시는지 물어봤다.

“니들도 일 끝나고 나면 술 한잔 하고 그러냐?”

사라는 최근 R17 커뮤니티에서 릭을 통해 퍼지고 있는 버번 위스키 열풍을 떠올렸다. 지금의 레플리칸트들이 이전의 레플리칸트들과 다르게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로봇임에도 레플리칸트라고 지칭되는 것과 다르게 구형 모델인 R17은 레플리칸트답게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에 현재는 바이오 디젤로 작동하지만 처음에는 인간의 소화기관과 유사한 내부기관을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따라서 내부 부품을 술을 섭취해도 괜찮도록 살짝 커스터마이징하기만 하면 바이오 디젤과 함께 술을 섭취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는 R17이 많았다.

[저희는 술에 취하지 않습니다.]

술에 취한다는 것은 생물만이 가능하다. 알콜이 체내에 흡수되고 혈액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인지와 지각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을 마비시킬 때 생명체는 ‘취한 상태’가 된다. 인공두뇌를 사용하는 레플리칸트에게 취한다는 인간들의 행동 자체는 모방할 수는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취할 수 있는 레플리칸트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릭이 술에 취해 보이는 모습들이 너무나 인간적이라고 느껴졌는지 이를 흉내내는 것이 R17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인생의 참맛 중 하나인데 안타깝구만.”

입맛을 다시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릭에게 사라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한편, 릭은 매일 꿈속에서 정신차리라고 하는 한 남자의 꿈을 매일같이 이어지듯이 꾸고 있어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 않고 피곤했다. 꿈 속의 남자는 어서 빨리 일어나서 할 일을 하라고 하지만 자신은 이미 일주일에 5일동안 이렇게 일을 하는 노동자로 살고 있다. 얼마나 더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꿈 속의 남자 때문에 점점 잠자는 것이 두려워지고 있는 이유는 일어나라고 하는 남자가 처음엔 말로 설득을 하는가 싶더니 언젠가부터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걷어차다 못해 어디서 났는가 싶은 빛으로 감싼 검을 들고 와서 자신을 찌르고 난도질을 하면서부터였다.

잠을 자는 것이 무서운데 몸은 한없이 무거워지는 것 같다. 하지만 술에 진탕 취하고 나면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어드는 것 같아 릭은 처음엔 다른 이유로 그냥 마시던 술을 이제는 제대로 자고 싶은 마음에 취하도록 마시고 있는 상황이었다.

[노동자 릭, 요즘 업무 집중도가 하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측에서 ‘주의 처분’을 내리지 않도록 술을 줄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도 줄이고 싶다. 진심으로.”

눈 밑이 거뭇거뭇해진 상태의 릭은 꽤나 무기력해보였다.

[릭이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술을 마시는 이유를 아는 사람 있나?]

[알콜이 주는 쾌락에 지배되고 있어 술을 끊어야 한다고 자각하면서도 스스로 끊어내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알콜중독의 형태가 아닌가 싶다.]

[현재 입수된 정보들을 가지고 알콜중독의 진단을 내리기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쾌락을 위한 알콜 섭취를 계속하고 있는 것치곤 알콜중독자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폭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영상들을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단순한 수면장애 쪽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수면제 대신 알콜을 복용하고 있다는 거군.]

[어찌되었건 알콜도 약물이니까.]

[윗분들은 무슨 의료계 종사자야?]

[현재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병원에 간병인이 부족해서 동원되는 회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쪽인가?]

[맞다. 노년화된 인류는 이제 외국인 노동자들을 수입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인 인구비율이 증가된 상태니까. 국가에서 노인들을 위해 저렴한 비용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많은 레플리칸트들이 고용된 상태이다.]

[그쪽도 심각하구만.]

[강제적으로 60% 할당제를 지키고 싶어해도 일할 사람이 없다. 중남미 인력들을 수급하는 것에도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하더군.]

R17들의 이야기는 이후 인간들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으로 이어졌지만 사라는 현재 릭의 상태가 알콜중독이 아닐거란 의견에 첨부된 여러 논문을 읽어본 결과 릭은 확실히 알콜중독자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편안하게 잠이나 자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지 술 마시고 싶다고 외치며 손을 떠는 부류는 아니었으니까.

일과처럼 업무를 마치고 술까지 마시고 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지만 정작 잠에 들려고 누웠을 땐 서서히 잠에서 깨버렸다. 잠을 자고 싶어도 꿈 속의 사이코패스가 만드는 공포심 때문에 잠들기가 무서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샌드맨이라도 와서 도와줬으면 싶군.”

릭은 자신에게 필요한 건 나이트메어가 아니라 샌드맨이라고 생각했다. 오래전에 만들어지고 OTT 서비스를 통해 방영되었던 걸로 유명한 드라마 샌드맨에는 꿈의 왕 샌드맨이 나오는데 얼마 전 잠이 오지 않아 티브이를 뒤적거리다 우연히 보게 되었다. 꿈의 왕이라니. 제발 좀 자신의 꿈에 나오는 미친놈을 잡아가줬으면 싶었다.

어찌된 일인지 자신은 수면제를 먹어도, 수면 유도제를 먹어도 약발이 서지 않는 특이체질인지라 한동안은 좋아하는 술을 마셔서 취해서 잠이 들고는 했지만 슬슬 쥬스가 주는 약발이 줄어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꿈 속에서 미친 놈이 자신을 찌르고 회를 칠 때 드는 감각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고통스러운데 잠에선 깰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잠이 부족한데 잠에 선뜻 들지 못하는 이유였다.

침대에 누워서 살풋 잠이 드려는 찰나에 자기도 모르게 잠들뻔했다면서 움찔하면서 깨버리고 나면 몇시간동안 불면증 상태가 되었다가 도저히 버틸 수 없어 피곤에 찌든 상태로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고 나면 꿈 속의 싸이코패스와의 칼의 대화가 시작되곤 했다.

“오죽하면 그 놈이 내게 휘두르는 칼질이 익숙해지는 기분이야.”

꿈 속에서 그 신묘한 칼질에 대항하고자 근래엔 자신도 칼을 만들어 대항해보지만 싸이코패스의 칼질을 버텨내며 발악을 해봤지만 결론은 항상 똑같았다.

“죽겠구만.”

처형장에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몸을 질질 끌며 농장으로 가는 무인버스에 몸을 태우고 흘러간느 풍경에 의식을 맡기고 싶었지만 여느 때처럼 옆에서 말을 거는 루아나로 인해 멍을 때릴 수도 없었다.

“요즘 왜 이렇게 피곤해해? 밤에 잠 안자고 뭘하는 거야?”

“나도 제발 자고 싶다.”

“매일 취해서 집에 데려다주는 여자 앞에서 뭐라는 거야. 데려다 줄 땐 취해서 정신 못차리잖아.”

“근데 침대에만 딱 몸을 얹으면 귀신같이 잠이 깨버려.”

자고 싶다를 연달아 중얼거리는 릭에게 루아나는 지나가듯이 자신이 잠이 안 올 때 해결책에 대해 꺼냈다.

“땀을 쭉 빼고나서 잠들면 난 그냥 기절하듯이 잠드는데.”

“뭐?”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운동 실컷하고 나서 씻고 침대에 누우면 기절한다고.”

“그래, 그거야!”

자신의 말을 들은 릭은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금과 은의 비율을 구분할 방법을 깨우치고 알몸으로 길거리를 나가며 ‘유레카’라고 외쳤던 것처럼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거였어. 술 가지곤 안돼.”

릭은 그날부터 일과가 끝나자 펍이 아니라 공터로 나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펍에 릭이 안보이는데 아는 사람 있어요? 내가 요즘 펍의 일이 바빠서 커뮤니티도 할 시간이 없었네요.]

[몰랐구나, 릭 운동 시작했대.]

[아니...이럴 거면 내가 여기 펍에 뭐하러 왔어. 릭이 맨날 술 마시러 오길래 힘들게 여기로 온 건데.]

[풉, 너 4885지? 꼴 좋다. 술집에서 취객 상대하는 거 드럽게 피곤하고 힘들던데. 크크큭]

[이씨...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너 누구야!]

[4885의 불행을 행복해할 레플리칸트지 누구긴 누구야.]

[너 5252지? 나중에 두고 봐.]

[누가 그러더라. 작동중지할 때까지 볼 일이 있나 싶다고.]

[그쪽들 번호 나도 기억나네. 저번에 지도부 통해서 주의하라고 경고받지 않았나? 조심하지. 또, 지도부에 걸리면 1주일간 게시 금지당할텐데. 그래도 좋으면 계속 싸우고.]

[아...]

[고마워요.]

[나도 릭이 요즘 일과 후에 뭐하고 지내는지 궁금하긴 하거든.]

R17들이 자신이 뭘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지도 모르는 릭은 집 근처의 공터를 뛰느라 숨을 헐떡이는 중이었다.

“헉....헉....헉”

그 사이에 몸이 술에 찌들었는지 그거 조금 몇바퀴 뛰었다고 몇 년 전만해도 잘 뛰어다녔던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입으로 호흡하지 말고 코로 호흡해야 해.”

자신의 옆에서 제자리 뜀걸음을 하는 루아나를 슬쩍 쳐다본 릭은 땅바닥에 누워버렸다.

“아, 도저히 못 뛰겠다.”

“힘들 때 한번 더 뛰어야 한다니까. 한바퀴만 더 뛰자. 그래야 여태껏 술에 쩔은 몸에서 술기운을 다 뽑아내지.”

해가 지는 노을을 뒤로 한 채로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언뜻 이 장면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루아나, 너 지금 꼭 누구같았어. 헉...헉.”

“누구가 누군데?”

“그냥 지금 니가 한 말을 누군가 했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어. 헉헉.”

데자뷰같은 느낌이 들어 누가 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그런 느낌의 어설픈 이미지는 떠오르는데도 누가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뭐지...분명히 누가 나한테 비슷한 말을 지금처럼 지쳐 있을 때 했던 것 같은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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