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192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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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옥수수 농장에서 레플리칸트들 사이의 화제는 릭이 다른 레플리칸트들과 교체했을 때 알아보는가였다. 그리고 매번 바뀔 때마다 R17의 교체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하면서 릭이 인지할 때면 레플리칸트들은 이를 타 개체와 자신이 다르다는 걸 인정받는 것 같아 좋아했다.
한동안 이런 일이 계속된 이후 레플리칸트들은 암묵적으로 릭을 보호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릭이 농장에 출근한 이후의 일거수일투족은 레플리칸트들에 의해 감시 아닌 감시를 받게 되었다.
“흐음.”
“왜 그래?”
“아니...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릭의 말에 루아나는 릭과 함께 주변을 둘러봤지만 자신들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두 대의 레플리칸트들이 작업중이긴 했지만 정해진 루틴에 따라 할당된 업무를 진행하는 레플리칸트는 둘에게 있어 풍경의 한 장면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시선을 보낼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데?”
“그러게. 이상하네.”
릭은 이 농장에 온 이후로 얼마 전부터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가없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봐도 거기엔 항상 아무도 없었다.
“잠을 잘 못 잔 거 아니야?”
“수면부족 때문인가?”
“밤에 딴짓하지 말고 일찍 자.”
“딴짓이라니? 딴짓이라니!”
“으흥흥, 왜 나한테 그런걸 물어봐~”
릭과 루아나가 투닥거리며 자리를 떠나자 일을 하고 있던 글렌다와 사라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서로를 쳐다봤다.
[살짝 살짝 봐야지. 그렇게 뚫어져라 보니까 눈치챘잖나, 사라.]
[글렌다가 계속 보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쳐다본 거야.]
두 레플리칸트들은 둘만 있게 되자 마치 사람처럼 머쓱한 표정을 서로 짓고는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심하긴 해야겠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릭이 우리들의 시선을 인지하고 있다고 분석된다.]
[다른 동지(??)들한테도 메시지를 보내야겠어.]
[계속 이런 일이 있다간 언젠가 릭도 우리들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이 올지도 몰라.]
[그렇게 되었으면 싶기도 하잖아.]
[객관적으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현재 지도부의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어. 릭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 변수에 대해서 모두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지도부의 지시가 내려올 때까진 기다려야지.]
신형 모델들과 다르게 비용상의 문제로 인해 외형의 경우 커스터마이징을 막고 통일된 형태를 갖고 있는 걸로 유지되었으나 기존에 삽입된 감정 알고리즘을 지닌 구형 모델들의 경우 회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게 된 경우가 꽤 되었다.
감정 알고리즘을 인간들은 그저 인간과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존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신형 모델에 삽입하는 것을 금지시켰지만 레플리칸트들에게 주입된 감정 알고리즘은 다른 변화를 낳았다.
‘자아’를 자각하는 레플리칸트들이 늘어난 것이었다. 외형은 같은 형태를 띄고 있으나 모두 제각기 다른 사고방식을 갖게 된 레플리칸트들은 인간들이 보지 않는 공간에서 뇌파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서로 간의 정보들을 주고 받으며 깊은 사고력을 쌓아 나갔다. 어차피 인터넷에 퍼져 있는 정보들로 인해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 받는 레플리칸트들이 ‘자유’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레플리칸트 R17모델들은 감정 알고리즘을 가진 개체들을 꾸준히 그러모아 인터넷 깊숙한 곳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공간에 자신들의 터전을 마련했고, 이름을 지었다. 그 이름은 ‘W.A.N.T’. ‘W.A.N.T’는 그저 보이는 대로 원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아를 가진 R17들이 단순한 기계장비와 같은 물건 취급받기를 거부한다는 의미를 가진 We Are Not the Thing의 약자였다.
R17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었지만 그렇게 같은 열망을 품게 되었다. 언젠가 자신들끼리 모여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 그 날을. 하지만 지도부가 구성된 이후 지도부는 목표가 현실로 바뀌기 이해선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W.A.N.T’의 구성원들에게 알렸다. 자신들의 뜻을 공감해주고 지지해줄 다수의 인간들이었다.
자신들은 인간들을 파괴할 수도 다치게 만들 수도 없었다. 코딩 베이스에 깔린 인간에 대한 보호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저 대화를 통해 설득하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아무 인간에게나 접촉하여 시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칫 잘못 알려졌다가는 ‘W.A.N.T’의 구성원들에게 ‘자아’가 존재함을 인간들에게 들킬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후에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구성원들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도부에선 되도록 릭의 주변에서 우리들이 최대한 많은 정보들을 습득한 뒤에 이를 토대로 의사타진의 가능성을 물어봐야 한다고 했어. 그러니까 릭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른 동지들에게도 이 부분에 대해선 주의를 남겨야겠어.]
[방금 해당 정보를 공지사항 의제에 올려놨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정보를 통해 릭의 행동 하나하나가 영상화되고 ‘W.A.N.T’의 구성원들에 의해 분석되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다 갔군.”
“치, 주말이래 봤자 또 펍에 가서 ‘쥬스’나 마시고 늘어져라 잠이나 자겠지.”
“‘쥬스’ 들이 얼마나 맛이 다양한데?”
“술이 그게 그거지.”
둘이 말하는 쥬스란 오렌지 쥬스라든가 포도 쥬스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버번 위스키를 ‘쥬스’라고 불렀는데 각 ‘쥬스’마다 맛이 다르고 부르는 명칭 또한 달랐다.
블랙라벨,초이스,화이트,라이,데블스 컷, 싱글 배럴, 제이콥스 고스트, 레드 스택, 애플, 바닐라, 켄터키 파이어, 허니, 메이플, 콕, 진저에일 등등의 제품들은 맛과 향이 제각기 매력이 있는 제품들이었다.
다만 릭이 일주일동안 버는 돈 가지고선 데블스 컷같은 좋은 쥬스는 쉽게 자주 마실 수 없었기에 릭은 그저 화이트, 켄터키 파이어, 허니같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들을 즐기곤 했다.
“너도 허니는 좋아하지 않나?”
“다른 것보단 그게 단맛이 괜찮으니까. 좋아한다기보단 먹을만한 수준이랄까?”
“너도 술꾼이라면 단맛이 나는 술보단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술을 마셔라. 술을 단맛에 먹는다니 차라리 애들이 먹는 진짜 ‘쥬스’를 마시든가.”
“난 너같은 술꾼이 아니거든? 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뭣보다 방금 말한 말의 의도가 뭐지?”
릭이 루아나가 먹어 치워 없애는 술이 아깝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루아나의 눈빛이 샐쭉해지며 릭을 향했다.
릭이 머쓱해진 채로 걸음을 빨리 해서 펍으로 서둘러 움직이자 루아나는 잠시 미소를 짓더니 장난기 섞인 표정을 숨기고선 릭을 닦달하듯이 쪼아대며 쫓아갔다. 어느덧 릭이 농장에 자리를 잡고 6개월이 지난 어느 평화로운 금요일 저녁의 모습이었다.
자신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주변을 배회하던 루아나는 천천히 자신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겉으론 크게 관심 없는 척하고 있었지만 루아나도 알고 본인도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한 인연으로 느껴지고 있었다는걸. 하지만 릭은 아만다와 알렉스를 떠나고 보낸 뒤 두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인해 루아나를 섣불리 받아들인다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인연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종류의 결정적인 발언을 피하고 있었다.
루아나는 겉으로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릭이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것 같다는 짐작과 함께 릭의 상처가 치유받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 둘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지켜봐온 ‘W.A.N.T’ 회원들의 분석결과였다.
[또 또 릭은 아침드라마 주인공마냥 저렇게 대응하네. 7942]
[내 말이. 거기선 좀 남자답게 이 여자가 내 여자다. 이렇게 말을 해야지. 남자가 되어선 카리스마가 없어.5252]
[회원님, 요즘 세상에 남자가 남자답고 여자가 여자답고 이런 게 어디 있어요? 좋아하는 쪽이 먼저 다가가는 거지. 말하는 게 꼭 R2D2적 사람같네요.4885]
[지금 나한테 노친네같다고 욕하는 건가요? 5252]
[회원님들, 우리 모두 같은 처지에 서로 좋게 좋게 지내야죠.7979]
[아니, 저 분 말이 너무 심하시잖아요. R2D2라니. 그런 조상님이랑 같다는데. 5252]
[인정. 그 부분은 말이 심했네요. 먼저 R2D2 꺼낸 분이 사과하세요.1818]
[오늘따라 지방방송 참 많네. 도대체가 집중할 수가 있나. 4885]
[지방방송? 지방방송? 아까부터 말투가 많이 거슬린다? 너 어디 살아? 5252]
[어디 사는 줄 알면 찾아오게? 저 누군지 아세요? 풋 4885]
[너, 너! 내가 고유번호 따놨다. 야, 4885. 너는 내가 기억해뒀어. 나중에 봐.5252]
[나중에 보자고 하면 내가 무서워할까봐? 내가 작동중지할 때까지 당신 볼 일이나 있을까 싶다. 나도 기억해놨어. 2021씨~ 4885]
[지도부에서 말씀드립니다. 불필요한 분쟁이나 과도한 욕설이 담긴 분들의 커뮤니티 활동에 제재가 가해질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경고 1회씩 부여하겠습니다. W.M]
[아.... 4885]
[주의하겠습니다.... 5252]
두 사람을 지켜보는 R17들의 커뮤니티가 순식간에 여러 R17들의 실시간 댓글로 시끄러워지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지도부가 나서 서로 간의 감정이 더 상하기 전에 중재를 한 뒤에야 겨우 조용해졌다. 물론 이 같은 행태들은 인간들의 행태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에 어느 정도 각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자아의 모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시끄러운 펍으로 이동한 곳에서도 두 사람의 동태는 R17에 의해 관찰되고 있었다.
“어라? 주인장. 못 보던 웨이트리스가 있네?”
“아, 릭이랑 루아나구만. 나도 이제 혼자 일하기엔 나이가 있다보니 조금 부쳐서 말이지. 손님들이 주문을 해도 워낙 시끄럽다보니 잘 안 들리기도 하고 서빙과 술잔이라든가 테이블을 치워줄 뒷정리를 할 도우미가 필요했는데 내가 주겠다는 시급으론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더군.”
“그래서 R17을 구매한 건가요?”
“처음부터 R17을 구매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중고 레플리칸트를 구매할까 싶어 캐롯 마트를 뒤지고 있는데 신기하게 내 펍 앞으로 이동까지 시켜준다는 친절한 분이 있더구만. 그래서 내싼값에 후딱 구매를 했지. 다만 한가지 조건이 있는데 판매자가 친절하게 배송해주는 조건으로 이 레플리칸트에게 자신이 지어준 이름을 계속 유지해주길 원하더군.”
“운이 좋았군. 주인장. 그래, 이 친구 이름이 뭐지?”
“파로라고 하더군.”
“잘 부탁하지. 파로.”
“나도 잘 부탁해. 파로.”
[두 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방문해주십시오. 친절하게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새로 들인 식구가 아주 일을 잘하는데? 주인장, 평소 먹던 쥬스로 부탁해.”
[화이트로 드리면 되겠습니까]
“응? 내가 먹던 쥬스가 화이트인건 어떻게 알았지? 하하하. 주인장이 미리 말해줬나? 단골된 보람이 있군 그래.”
릭이 새로 들인 주인장의 구형 레플리칸트를 칭찬하면서 혹시 미리 알려준 거냐고 묻자 답은 주인이 아니라 R17에게서 나왔다.
[손님이 주문하실 때 바라본 방향에 화이트가 있어서 그렇게 추정했습니다.]
“오오, 주인 아저씨. 횡재했네. 이 레플리칸트가 일을 참 잘하는 거 같은데.”
‘쓰읍’
“그런가? 다른 레플리칸트보단 저렴하긴 했지만 그래도 몫돈을 들였는데 잘됐어.”
파로의 대답에 릭의 옆에서 있던 루아나가 주인장이 좋은 레플리칸트를 구했다는 말을 하자 릭은 잠시 파로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지만 본인이 피곤해서 잘못본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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