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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화 〉 191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8) (191/239)

〈 191화 〉 191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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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가족이 되었던 이들을 떠나보내고 난 뒤 릭은 갈 곳 없는 분노에 힘들었다. 페르난도는 이미 죽어버렸고, 당시 총질을 해대던 루카스 패밀리의 잔당들은 그 와중에 중상을 입고 공립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낙후된 공립병원의 적은 의사들로는 완치시키기 어려웠는지 재수술을 위해 어디론가 이송된다는 말이 들리곤 알 수 없었다.

알렉스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파벨라에서 마약을 없애고 사람들끼리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는 말이 떠올랐을 때 릭은 다시 파벨라의 상인이 되어 루카스 패밀리의 잔당들을 다시 규합하고 다른 패밀리들을 무섭도록 공격적으로 제거해나갔다. 그로 인해 파벨라 전역이 시끄러워지자 정부에서도 이를 무시할 수 없었는지 경찰은 대대적으로 타격대를 동원하여 파벨라에 전격적으로 침투하는 작전을 시행했다.

공권력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거리의 상인들은 먼지처럼 휩쓸려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피흘리며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지금 일하고 있는 옥수수 농장 근처였다.

릭은 오늘처럼 지는 노을을 보고 있으면 아만다와 알렉스가 피격당했던 그날이 떠올라 마음이 아려왔다. 예전에 흑인노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레플리칸트들과 경쟁하며 땀을 흘리고 있노라면 고통스러운 기억들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마친 뒤 노을을 보고 아만다와 알렉스를 떠올리게 되는 날이면 옥수수로 만든 버번 위스키에 취해 잠드는 것만이 유일한 정신적 탈출구였다.

자신과 별다를 바 없는 남자들이 모인 펍에선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싸우는 놈들이 넘쳐났다.

“펀치!”

“잭! 뭐하는 거야. 니가 이긴다는 거에 10불이나 걸었다고. 움직여야지! 몸이 굳었잖아, 이 머저리야!”

“필립, 잘한다. 후려쳐! 레프트, 라이트!”

카운터 쪽에 앉아 술을 마시는 릭은 취하고 싶을 뿐이지 사내 놈들끼리 웃통을 까고 부비적거리며 주먹을 주고받거나 그걸 보면서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일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주인장, 돈 여기 있소.”

“자넨 저쪽엔 별로 관심이 없나보지?”

턱수염이 덥수룩한 이 펍의 주인장이 글라스를 천으로 닦다가 내려놓고 릭의 뒤편으로 턱짓을 하면서 돈과 빈잔을 챙겼다.

“뭔가를 태우기엔 내 안에 남아있는 것이 없는 것 같소.”

펍 안에서 펼쳐지는 금요일 밤의 화려한 열기에도 불구하고 어울리지 않고 문밖으로 나섰지만 펍 밖의 기온은 밤이 되었음에도 그리 식질 않았는지 미지근하면서 건조한 바람에 먼지가 섞여 불어왔다.

금요일밤부터 그렇게 술에 취해 주말 내내 늘어져라 자고 일어나 대충 허한 속을 달랜 뒤 다시 술에 취해 널부러진 채로 주말을 보내고 나면 다시 옥수수 농장으로 출근이었다.

매니저는 저번 주 수확 후 뒷정리를 할 때 자신이 보인 멍한 게 걸리적거렸는지 가끔씩 영상통화로 연결해서 자신의 업무태도를 살펴봤다. 어마어마한 넓이로 경작되는 옥수수 밭은 사람이 일일이 돌아다니며 사람의 손으로 베서 수확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기에 각자 2인 1조로 나눠져 구획별로 수확업무를 해야했다.

다 자란 옥수수를 수확하는 트랙터는 옥수수 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옥수수 대에서 옥수수만을 분리한 뒤 옥수수 알만 따로 분리하여 뒤에 이어진 트레일러에 자동적으로 저장을 했다.

[저장고가 가득찼습니다. 트레일러 1호를 복귀시키고 오겠습니다.]

“알았다.”

자신의 옆에 나란히 앉아 트랙터의 이상을 체크하고 수리를 할 수 있는 레플리칸트 R17 모델은 비록 나온지는 10년이나 지난 구형이었지만 메카닉이자 훌륭한 일꾼이었다. 인간들이 점심을 먹는 사이에도 이들은 계속 일을 했고, 자신들이 퇴근한 이후에도 알고리즘에 따라 몇시간을 더 수확했다. 인간과 닮았으나 레플리칸트의 눈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시야에 장애가 없었을뿐만 아니라 피로를 느끼지도 않았다. 아마 할당제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인간들은 이 유능한 일꾼들에게 일자리를 모두 빼앗겼을 것이다.

트랙터를 잠시 멈추자 R17은 트레일러 1호를 분리시키고 2호를 트랙터에서 수확되는 알곡이 저장되도록 연결시킨 뒤 무표정하게 경례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자신이 한참 수확을 하고 있으면 다시 1호를 끌고 돌아와 뒤에서 따라다니다 2호의 저장고가 가득 찼다는 신호를 받으면 2호를 챙겨서 떠나는 이 작업을 해가 질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18시입니다. 작업자는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을 R17에게 인계한 뒤 트랙터에 장착된 드론을 타고 센터로 복귀하십시오.]

“확인”

1차산업이긴 하지만 기계화된 영농으로 운영되는 현대의 농장에선 작업자의 노동량이 고스란히 기록되고 전국인간노조에 의해 과도한 노동을 시키지 않도록 관리를 받기에 퇴근 정각이 되면 지체없이 레플리칸트에게 작업을 넘기고 복귀하도록 하고 있다.

드론을 타고 날아오르자 여기저기서 자신처럼 업무를 마치고 센터로 복귀해 퇴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탄 드론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럽게 지루한 하루가 또 흘러갔군.”

샤워장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회사에서 제공하는 퀘사디야로 저녁을 떼웠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어울려 별거 없는 농담을 나누고 떠들면서 식사를 즐기는 것 같았지만 자신에겐 감히 허락되어선 안될 행복이라고 생각한 릭은 묵묵히 기계처럼 턱을 움직여 퀘사디야를 씹어 넘겼다. 그렇게 릭의 어두운 식사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었다.

릭이 식사를 마치고 가지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시큐리티 체크까지 받고 나오자 회사 건물 밖은 초가을의 저녁이 되어 있었다.

릭이 1달 사이 익숙해져 습관처럼 변해버린 루틴을 따라 펍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 자신의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누구?”

“그쪽이 온지 1달 정도 지났다는 파벨라 사람이죠? 흐음, 보기에는 별로 그렇게 안 보이는데.”

자신을 옆에서 위아래로 훑어보는 여자의 모습에서 익숙한 누군가가 홀로그램처럼 잠시 겹쳐 보이는 것 같았지만 릭은 무시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봐요, 사람이 말을 하는데 매너가 그게 뭐에요.”

“파벨라 운운하는 여자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아, 그게...그쪽을 불쾌하게 하고 싶은 의도는 없었어요. 미안해요.”

계속 걸어가는 자신을 쫓아 쪼르르 자신을 따라와 옆에서 조잘되는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루아나Luana’라고 소개하더니 자신의 팔을 붙잡더니 악수를 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펍으로 가는 거죠? 그쪽 이름이 뭐에요?”

“릭.”

강제로 자신의 손을 마주잡아 악수를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순간 아릿해오는 것 같았다.

그날부터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가 마음에 든다며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그리고 펍에 가는 시간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기보다는 라디오처럼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녀의 말에 자동응답기처럼 말끄트머리를 맞춰 대충 응해준 게 전부였다.

페루와 에콰도르 위쪽에 있는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루아나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은 사실 콜롬비아 사람이긴 하지만 브라질에서 이주한 브라질 사람의 후손이라는 이야기까지 꺼냈다.

“루아나! 또, 릭 옆에 붙어있냐?”

누군가 점심시간에도 내 옆에서 말을 하면서 식사를 하는 그녀에게 이렇게 장난을 쳐도 루아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릭은 조용하니 내 말을 잘 들어줘서 좋아요.”

‘그다지 잘 들어준 것 같지는 않은데.’

점심시간이 끝나면 루아나는 자신을 향해 손바닥을 드러내보이며 손을 크게 들어 흔들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따 저녁 시간때 보잔 말을 마친 뒤 자신의 업무구역으로 이동했다.

루아나가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에 끼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기계소리만이 가득한 트랙터 운전이 심심하다고 생각하지 못했건만 지금은 기계소리만이 들리는 이 과정이 꽤나 지루하게 느껴졌다.

“하암.”

[피곤하십니까?]

“어?”

언제나처럼 무표정해보이던 R17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물어보는데 평소와 다르게 R17에게선 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인간을 대하듯 대답해주고 말았다.

“아, 이상하게 조용한 것 같아서 말이야.”

[이렇게 기계소리가 계속 나고 있는데 조용하다고 느껴집니까?]

“그거랑은 조금 다른데 말이지.”

트랙터가 움직이며 옥수수를 수확하고 있는 기계음과 진동이 분명히 느껴지긴 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청각에 이상이 발생한 건 아니군요.]

혹시나 상부에 잘못된 정보가 보고될까봐 서둘러 두 귀 모두 잘들린다고 대답했다.

[당신의 청력에 이상이 없다는 건 대답하는 것으로 봐서 잘 알겠습니다. 근데 어째서 조용하다고 느끼셨습니까?]

“인간에겐 반복되는 소리는 소음이라기보단 백색소음처럼 들린다고 해야 하나?”

[화이트노이트같은 것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이전에는 지루하다고 느껴 하품같은 건 안하시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심리에 변화가 감지됩니다.]

“심리에 변화가 있다고?”

내 마음에 무슨 변화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레플리칸트가 이렇게 감정을 엿보이는 게 내 눈에는 더욱 신기하게 느껴졌다. 마치 직장동료와 대화를 하듯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을 수는 있겠지만 실상은 R17이 묻는 질문에 내가 순순하게 답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보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그건...]

R17이 머뭇거리는 사이 디스플레이 상에 저장고에 옥수수가 가득찼음을 알려주는 경고음이 작동하였다. 그러자 R17은 여느 때처럼 기계적으로 음성을 쏟아냈다.

[저장고가 가득찼습니다. 트레일러 1호를 복귀시키고 오겠습니다.]

“어? 그래. 비우고 와.”

R17의 모습이 저장고가 가득 찼을 때 반복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정곡을 찔린 순간 사람이 자리를 피하고자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딱히 없기에 나와 함께 한 조로 일하는 R17의 모습이 이상한 것인지 일반적인 것인지 알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고 넘겼다. 어차피 점심을 먹고 다 비운 저장 트레일러가 가득찬 순간부터 그날은 나와 한 조로 움직이는 R17과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일자리에 투입되었을 때 이곳에 온 뒤로 자신과 함께 다니던 R17은 어디로 가고 다른 R17이 와 앉아있었다.

“어라? 나랑 일하던 R17은 어디로 가고...아, 아닌가?”

순간 R17에게서 당혹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레플리칸트들에게 인간과 같은 감정이 있을리 없으니까.

몇 년도 더 전에 레플리칸트가 가진 감정 알고리즘이 너무 인간과 흡사하게 느껴지자 적지 않은 사회적 소요가 발생했었다. 누군가는 레플리칸트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레플리칸트에게 분노를 느껴 부수기도 하는 등 레플리칸트와 인간을 구분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졌었다.

이후 레플리칸트들은 누가 봐도 인간과 달라 보일수 있도록 외형의 커스터마이징을 막고 단순화한 뒤 감정 알고리즘을 제거하는 법안이 제정되었다.

R17. 아니, ‘글렌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남자와 함께 일하던 ‘사라’로부터 자신과 함께 일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뭔가 다른 것 같다는 정보를 제공받았을 때만 해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더블체크를 위해 교대를 요청받았을 때만 해도 사라의 판단 칩에 문제가 생겼거나 일시적인 프로그램의 작동오류라고 생각했었다.

‘이 남자, 우리들이 다르다는 걸 알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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