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 190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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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대도 멀쩡하고 파벨라 남자 특유의 마약에 찌든 모습을 볼 수 없는 릭의 멀끔함을 본 뒤 카렌은 겨우 애 하나 딸린 아만다보다는 애를 셋이나 먹여 살려야 하는 자신이야말로 저런 남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만난 남자들은 하나같이 쓰레기같은 놈들이었지만 자신의 젊음과 미모가 언제까지 계속되지 않을 거라는 걸 카렌은 매일 거울을 보며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더 늦기 전에 괜찮은 남자를 만나야만 자신과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왔던 카렌은 그러던 중에 만난 릭이 쓰레기 더미에 묻힌 보물임을 직감했다. 아만다를 향한 진중한 눈빛과 입에 욕을 달고 다니는 놈들과는 달리 정제된 언어를 통해 이 남자의 진가를 알아챘다.
‘이런 남자가 이런 곳에 있으니 내가 못 찾았지.’
릭은 자신을 향해 이상한 표정을 하며 눈을 깜빡여대는 카렌에게서 비호감을 느꼈다.
‘뭐야, 이 여자. 눈을 왜 저렇게 떠? 기분 나쁘게.’
소고기 부위를 따지듯 자신을 빙 둘러보며 위 아래로 훑어본 옆집 여자가 아만다와 이야기를 나누고선 떠나자 릭은 방금 그 여자는 뭐하는 여자냐고 물어봤다.
“카렌은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당발이야.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의 마음에 든 사람들은 좋은 일자리를 알선해주곤 하거든.”
“그래? 별로 좋아보이진 않는데...”
아만다는 릭을 향해 꼬리를 치듯 척을 하는 카렌에게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나 주변에서 그나마 믿을만한 사람이 카렌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같은 상황에선 잠시 자신의 개인적 감정은 접어둘 필요가 있었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하면 감사의 의미로 첫달 월급의 10% 정도만 수고비로 줘야 해.”
“뭐? 10%나? 완전 도둑년이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신의 자유인데 절대로 그 여자 앞에서 내색하지마. 적당히 지내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니까.”
릭은 패밀리로만 돌아간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앞에서 굽실댈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자존심을 굽혀가면서 일을 구해야 하나 싶었지만 파벨라로 들어오기 전 제대로 된 삶을 살았던 때를 떠올리며 지금이 마약 중간 상인으로서 뒤가 없이 살다 죽는 것보단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여기기로 했다.
“후욱, 후욱.”
카렌이라는 그 여자가 자신에게 구해다 준 일자리란 파벨라 밖에 있는 손세차장이었다. 차를 한 대 닦아줄 때마다 세차비 30달러를 받는데 세차장에서 장비와 화학제품같은 것들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50%를 떼가고 나면 자신에게 남는 건 15달러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어라 닦아도 처음엔 하루 10대는커녕 6대도 채우기 어려웠다.
다행히 세차장에는 세차를 하는데 사용하는 케미컬들이 휘발되거나 차에 말라붙어 도장면을 상하지 않도록 차양막이 설치되어 있어 더운 날씨에도 버틸만했다.
정작 버티기 힘든 것은 때때로 찾아와 옆에서 귀찮게 구는 카렌때문이었다.
“어머, 자기 땀을 왜 이렇게 흘려, 쉬면서 해. 쉬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몸은 지켜가면서 해야지.”
땀에 흠뻑 젖어 몸에 달라붙은 티셔츠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저 눈빛을 볼 때면 짜증이 솟구치지만 아만다의 신신당부를 잊지 않았기에 성질은 내지 않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그러다 쓰러지면 어떻게 해.”
손으로 부채질을 옆에서 하는 카렌의 모습에 오히려 열이 더 뻗치는 릭의 속도 모르고 카렌은 군침을 삼키기 바빴다.
‘어머 어머, 몸 좋은 거 봐. 배가 안나온 정도가 아니라 아주 기름기가 쫙 빠졌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야.’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가 릭의 몸을 더듬거릴뻔한 걸 겨우 참고 있는데 릭이 드라잉을 멈추고선 서서 자신을 쳐다봤다.
“무슨 할 말 있으십니까?”
“아니, 뭐. 무슨 할 말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소개해줬는데 잘하고 있나 알아볼 겸 그런 거지.”
검사차 왔다는 카렌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릭은 말이 날카롭게 나갔다.
“이번 달에 받게 되는 돈의 10%는 잊지 않고 드리겠습니다.”
“별꼴이야. 정말. 누가 그쪽한테 돈 내놓으라고 닦달했어?”
한 푼의 감정도 없이 칼같이 자르며 돈 이야기를 꺼낸 릭에게 카렌은 기분이 팍 상했다.
‘내가 언제 돈 달라고 그랬어?’
“사람 돕자고 하는 일이라 나선 건데! 이게 무슨!”
세차장에서 카렌의 큰 목소리가 나자 내심 카렌을 마음에 두고 있는 세차장 사장 디에고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카렌은 릭에게 수작을 걸어보려고 하는데 욱해서 감정이 상한 판에 배가 불뚝 나와서 못생긴 얼굴로 자신을 볼 때마다 추근덕대는 디에고까지 옆에 오자 화가 더욱 뻗쳤지만 여기서 성질을 더 부려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해서 대충 상황을 수습하고선 자리를 떠났다.
“어이, 릭이라고 했나? 카렌 양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그쪽을 고용한 건 철저하게 카렌 양의 추천때문이었어. 오늘 일 마치고 나서 직접 사과하고 오도록. 나중에 물어봐서 사과하러 간 적이 없다고 하면 나도 인간답지 않은 사람을 계속 고용하고 싶진 않으니까 알아서 해!”
열심히 일하다 이 무슨 봉변인가 싶은 상황에 릭은 어이가 없었다. 사장이란 놈이 자리를 떠나고 난 그곳엔 물기를 반쯤 닦은 차 한 대와 릭만이 불퉁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길을 걷다가 큰소리에 고개를 돌린 한 남자가 몸을 숨긴 채 멀뚱하니 서 있는 릭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저 인간, 죽은 거 아니었어?’
일주일 정도 지나서 적응하는가 싶었는데 벌어진 상황에 릭은 오늘 하루 종일 더러운 기분을 안고 일을 겨우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운수 더럽네. 더러워. 젠장. 사과까지 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릭. 어쩌다 니 꼴이 이렇게 됐냐.”
붉게 타오르다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노을을 등지고 터벅터벅 힘빠진 걸음으로 돌아와 집에 다 왔는데 어쩐 일인지 집 주변이 시끄럽다.
“뭐지?”
어찌된 일인지 패밀리들이 파벨라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이곳에 와서 총질을 하며 싸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판자로 만들어진 아만다의 집은 총알이 날라와도 막아줄 벽같은 게 제대로 있지 않은 집이었다. 아만다의 집뿐만 아니라 이 주변 집들이 전부 그랬다.
‘괜찮으려나.’
헐레벌떡 뛰어온 아만다의 집은 총알이 사방팔방 박혀 벌집이 된 상태였다.
“안돼!”
총격음을 뒤로 하고 집에 들어가자 릭은 아만다의 목소리가 마당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마당으로 나가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알렉스의 모습과 함께 카렌이라는 여자의 목을 조르면서 아만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한 남자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X발, 일이 왜 이렇게 된 거야.”
릭이 속해 있던 루카스 패밀리를 배신하고 마르셀 패밀리에 붙은 페르난도는 릭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자 카렌이라는 여자의 뒤를 쫓아왔다. 숨어서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지 지켜보고 있는데 카렌이라는 여자가 어떤 여자와 남자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가 릭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걸 듣고선 확신을 가졌다. 셋이 릭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을 내린 페르난도는 총을 들고 세 사람을 위협하며 아만다의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한편, 릭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일어나 루카스 패밀리를 배신한 누군가가 있었음을 생각했던 것처럼 루카스 패밀리의 생존자들은 패밀리를 배신하고 내부정보를 흘린 놈을 찾아 복수하기로 다짐했고 그 과정에서 릭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확인했다. 생존자들은 릭이 배신자인지 아닌지 확인을 하기 위해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릭이 배신자라기엔 릭은 마치 패밀리로부터 잊혀진 김에 새로운 삶을 살려고 준비 중인 것처럼 다른 패밀리와 접촉하는 징후가 없었다.
그러던 중 릭과 함께 죽은 줄로만 알았던 릭의 직속부하 페르난도가 화려한 복장을 하고선 총을 들고 세 사람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저 새끼가 배신자였군.”
루카스 패밀리의 생존자들은 주변에 아이와 여자가 있건 없건 총질을 시작했고 세 사람과 페르난도는 서둘러 아만다의 집 안으로 도망쳤으나 방탄 기능따윈 기대할 수 없는 아만다의 집에서 결국 눈 먼 총알에 알렉스가 맞고 말았다.
울부짖으며 알렉스를 끌고 가려는 아만다를 방패삼아 마당으로 겨우 도망쳤을 때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사이 누군가 인기척을 내면서 집으로 뛰쳐들어오는 걸 페르난도는 느꼈다.
“페르난도? 넌 죽은 거 아니었어?”
“하, 죽기는 누가 죽어! 이 몸은 파벨라를 통일할 남자인데.”
총격전을 하고 나서 흥분했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페르난도의 모습을 찬찬히 본 릭은 일단 아만다가 피 흘리고 있는 알렉스에게 정신이 팔려 따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렉스가 맞은 부위가 부디 생명에 위독한 부위는 아니어야 할텐데.’
총을 맞은 충격에 의식을 잃은 듯한 알렉스의 다리 쪽에서 피가 퍼져나오는 걸 본 릭은 알렉스에게 다가가며 아만다에게 소리쳤다.
“아만다! 정신차려!”
“어?”
자신의 아들이 죽은 거라고 생각해 정신을 잠시 놓았던 아만다는 릭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릭이 온 것을 확인하고 멍하니 쳐다봤다.
“뭐하고 있어! 지혈하게 알렉스 다리를 묶을 끈 좀 가져와봐.”
알렉스의 다리를 꾸욱 눌러 지혈하면서 릭이 재차 소리치자 그제서야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던 아만다는 마당에 길게 걸려 있는 빨랫줄에 매달린 수건을 챙겨 릭에게 가져다줬다.
“여기 누르고 있어.”
자신이 손을 떼면 피가 다시 꿀렁이며 솟아날거라고 생각한 릭은 자신을 대신해 누르라고 하고 알렉스의 다리를 지혈하기 위해 수건을 입으로 뜯어 반으로 잘라 길게 만든 뒤 피가 나고 있는 부위의 위쪽을 묶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페르난도는 어이가 없었다.
“이이이익! 뭐하고 있는 거야!”
급한 불은 껐다고 생각한 릭은 그제야 페르난도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는데 꽤나 비싸보이는 시계를 팔에 차고 꽤나 비싼 돈을 준 것 같은 하와이안 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페르난도의 모습에서 페르난도가 배신자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니가 배신자였구나.”
“배신은 무슨! 파벨라에 있는 패밀리에 의리같은 게 언제부터 있었다고. 움직이지마! 가만히 있어!”
페르난도가 총을 흔들면서 삿대질을 하자 정작 알렉스를 바라보느라 정신 없는 아만다와 다르게 카렌이 소리를 질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시끄러워!”
목을 조르면서 있는데 카렌이 발버둥을 치며 질질 짜자 페르난도는 가뜩이나 언제 다른 놈들이 총을 쏘면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인질이라고 잡고있는 여자까지 거슬려서 들고 있는 권총의 아래쪽으로 세게 후려갈겼다.
“아악”
꽤나 세게 후려갈겼음에도 덩치가 좋은 카렌을 기절시키기엔 부족했는지 머리에선 피가 나는데도 카렌은 쓰러지지 않았다. 후려친 머리에서 피가 나는 것을 알고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발작하는 카렌을 제압하고 있기가 더욱 어려워졌을뿐.
카렌 쪽으로 총구를 돌리며 위협하자 카렌은 젊은 나이에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마스카라가 번져 검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연신 살려달라면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 돼지 년이!”
페르난도가 인질을 잘못 잡았다면서 잠시 정신이 팔린 순간 아만다의 집 마당으로 누군가 총을 쏘며 들어왔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페르난도를 향해 날아온 총알은 페르난도가 인질로 잡고 있던 카렌의 몸에 박혔다.
“커억.”
페르난도는 대응사격을 한답시고 서둘러 총구를 돌려 쏴봤지만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쏘는 총으론 누구도 맞히기 어려울 것 같았다. 정신없는 총격전이 벌어지는 중간 릭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몸으로 알렉스와 아만다를 등으로 가렸다.
제대로 사격 교육을 받은 적 없던 이들의 총격전이 끝나고 난 아만다의 집에선 그날 네명의 시체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