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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화 〉 189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6) (189/239)

〈 189화 〉 189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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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를 먹은 저녁 이후 세 사람은 누가 누구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점차 원래부터 가족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가족의 모습으로 바뀌어나갔다.

릭의 상처가 나아가는동안 릭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을 두고서 다시 자신이 있던 패밀리로 돌아가 마약을 파는 상인들을 관리하는 매니저 일을 한다고 입을 꺼내기가 어쩐 일인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패밀리를 때려치고 아만다와 함께 스캐빈저로 살자니 그것도 성에 차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어영부영하며 상처가 다 아물기 전에 릭은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정신차려, 이 머저리야! 지금 니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으으,뭐?”

“아저씨,이제 일어났어? 벌써 해가 하늘 꼭대기에 떠 있어.”

“방금 뭐라고 했냐, 알렉스.”

“이제 일어났냐고...”

알렉스는 잠에 깨서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선 뭔가 굉장히 듣기 싫은 소리를 들은 것만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릭이 잠꼬대를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아니, 그 전에.”

“그 전에 아저씨한테 말 안했는데”

“그래?”

릭은 자신을 향해 누군가 소리를 질러대며 정신차리라고 한 것이 그제서야 알렉스가 아니라 꿈 속에서 들려온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아아, 이젠 무의식이 말을 거는 건가?”

침대에서 멍하게 앉아 앞을 바라보고 있는 릭의 앞에 알렉스가 양 허리에 손을 얹고선 소리를 질렀다.

“빨리 가서 세수하고 와! 어른이 되어서 언제까지 늘어져 있을 거야.”

“이봐, 난 환자라구. 환자.”

“엄마가 이제 거의 다 나았다고 그러던데?”

“젠장...”

자신의 등을 떠밀며 마당으로 내모는 알렉스에게 릭은 대항할 수 없었다. 자신 보고 세수하라는 알렉스는 마당으로 나가는 자신을 보고 간단하게 먹을 점심을 챙기고 있었으니까

“으윽.”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빛이 너무나 눈부시다.

“아침부터 드럽게 덥구만.”

“아침이 아니라 점심이겠지!”

중얼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문 안쪽에서 알렉스가 대답해온다.

“알았다. 알았다.”

마당에 놓여 있는 대형 버킷에서 물을 떠서 옆에 놓여져 있는 재생비누로 세수도 하고 늘어져라 자면서 눅눅해진 머리까지 감고 나자 한결 개운해졌다. 대야에 놓인 물을 마당 한 귀퉁이에 뿌려버리고 물기를 뚝뚝 흘리며 들어가자 알렉스가 기겁했다.

“아, 아저씨. 수건 가지고 갔어야지.”

“이거 말이냐?”

릭은 알렉스가 호들갑을 떨며 가져온 꽤나 오랜 역사를 가진듯한 수건이었던 것을 들고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알렉스는 그저 식탁에 놓여진 자신의 밥상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앉으라고 재촉할뿐이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백수야?”

“왜 식전부터 시비냐.”

“엄마가 새벽부터 어디로 일하러 가는지는 아저씨도 알지?”

릭은 분명히 잘 알고 있었다. 한달에 1200달러 정도를 벌어들일 수 있는 스캐빈저로 자신과 자신의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녀는 쓰레기 매립지를 뒤지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이후론 늘어난 식비를 감당하기 위해 그녀는 그나마 휴일이었던 일요일 오후까지 포기하고 일해야만 했다.

“어.”

“이제 몸이 얼추 나았는데 슬슬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 보고 쓰레기를 뒤적거리라는 거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알렉스는 정색하더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아, 미안. 실수했다.”

그나마 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치껏 바로 수습을 하자 알렉스는 방금 전보다 아주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굳어 있는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아저씨가 악의가 없었다는 건 알지만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지마. 아저씨를 살릴 수 있었던 것도, 나와 엄마가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구걸하지 않고 피해를 입히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에는 엄마의 희생이 있었으니까.”

“미안하다니까...”

“그래. 좋은 소리도 한두번인데 더 길게 안할게.”

이럴 때 보면 꼭 애늙은이같다. 10살짜리가 좀 애다우면 좋으련만 빈민가의 아이라서 그런지 알렉스의 모습은 빈민가의 아이들이 보이는 통상적인 패턴 2가지 중 하나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들은 그럭저럭 먹을만한게 사는 수준이상이 되는 집 아이들과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현실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현실의 벽을 절실하게 느끼고 빠르게 포기한 뒤 빈민가의 일원으로 살아남도록 체념의 자세로 살아가거나 알렉스의 경우처럼 빨리 철이 들어 시간이 부족한 것처럼 어른으로 성장해버린다.

‘애 아빠가 있었으면 좀 달랐을텐데...’

잠깐동안 이어지던 상념은 길게 말하지 않겠다던 알렉스가 꺼냈던 방금 전의 화제로 깨져버렸다.

“그래서 뭐 해먹고 살거야?”

아만다가 나보고 빨리 회복하기 위해선 필요한 음식이라며 자신이 알고 지냈던 동양인 가족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 무슨 동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뼈를 고아 만든 수프를 퍼먹고 있다가 체할뻔했다.

‘자식이 꼭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진학 이야기 꺼낼 때처럼 타박이야. 타박이.’

“돈 벌어야지.”

“그니까 뭘로?”

“시간을 좀 줘.”

“쓰읍.”

저 눈빛은 분명 이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둬도 괜찮을까 싶어 갈등을 하던 릭의 엄마가 보였던 눈빛과 비슷했다.

알렉스는 알렉스대로 걱정이 산더미같았다. 파벨라의 남자들은 대부분 쓰레기거나 놈팽이들이라 마약에 찌들어서 지 가족도 팔아먹을 정도의 인간쓰레기거나 여자와 아이들이 가져온 먹을거리를 빌붙어서 얻어먹고 사는 해충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릭이 그런 남자들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은 금방 늘어지고 그러다 보면 점점 집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아가지 않게 된다고 주변의 아줌마들이 모여서 빨래를 할 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알렉스는 릭이 엄마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자신들의 울타리가 되어줬으면 싶었다.

“며칠 이내로 대답해주마.”

진지한 눈빛을 하고 대답하는 릭을 알렉스는 더 이상 닦달할 수는 없었다. 어느덧 학교갈 시간이 다 되었기에 알렉스는 접시에 놓인 수프를 후루룩 들이켜곤 설거지통에 그릇을 담은 뒤 릭에게 말했다.

“점심 먹은 건 아저씨가 설거지해줘. 식사 준비는 내가 했으니까.”

“걱정하지마.”

“엄마 오기 전에 해놔야 돼.”

집 밖을 나가기 전까지 신신당부를 하는 알렉스에게 알았다면서 엉덩이를 살짝 걷어차주며 빨리 학교나 가라고 했다.

알렉스가 떠난 집에선 적막이 흐르긴커녕 주변 집 애들의 울음소리와 뛰어다니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한숨 더 잘까 했는데. 자기는 틀렸군.”

알렉스의 부탁대로 설거지를 하고 뜨거운 바람만 전달하는 선풍기 앞에 앉아 TV에서 흘러나오는 재미도 없는 채널을 틀어놓고 릭은 생각에 빠졌다.

‘우리 패밀리가 밀렸을까? 밀렸으면 왜 밀린 거지? 구역을 할당받은 라디오 보이들이 제때 무전을 보냈다면 그렇게까지 될 상황이 아니었어. 흐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자 한가지 가정이 떠오른다. 누군가 설마 경찰들에게 자신들의 패밀리를 팔아 넘기고 상대 패밀리와 붙어먹은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배신자가 있지 않고서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중간관리자들과 상위관리자들을 찾아내서 타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단순히 경찰들이 운이 좋았던 건 아닐까도 생각해봤으나 회복하는 내내 고민을 해봐도 그게 아니란 건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경찰들이 무장한 타격대까지 끌고 와서 패밀리를 조지려면 릭이 있는 패밀리에 대해 상세한 정보가 미리 전달되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그래, 라디오 보이도 안 통해. 숨어 있는 곳도 찾아내.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우리 매니저들과 상위 관리자들을 찾아내? 배신자가 있다. 이게 내 결론이야.”

그렇다면 배신자를 찾아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 자신의 조직은 괴멸되었을 것이다. 라디오 보이들과 마약을 파는 거리의 말단 상인들이야 다른 패밀리에 벌써 흡수된지 오래일테니 1달러의 가치도 없을 복수따윈 집어치우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 모른다.

“아....근데 고추달린 남자가 파벨라에서 벌써부터 스캐빈저로 살기엔 아직 내 나이가 많이 창창하단 말이지.”

스캐빈저 말고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우선 다른 루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따가 아만다가 오면 한번 물어봐야겠군.”

“그래서 돈을 벌만한 거리가 없냐 이거지?”

자신과 함께 나란히 침대에 누워있던 그녀는 눈을 감고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침대 헤드에 등을 받히고 앉아 내쪽을 쳐다봤다.

“마약팔이는 안하겠다는 거 확실하지?”

“내가 돌아가 봐야 남은 것은 복수뿐이야. 그렇지 않고서 자리 잡을 방법따윈 없어. 회사에서 이직하듯 다른 패밀리로 기어들어가 매니저를 하고 싶어도 그쪽 패밀리에는 이미 매니저 하겠다는 자원자들로 넘쳐날테니까.”

“흐음, 일단 옆집 카렌네한테 슬쩍 물어볼게.”

아만다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신들을 떠나 피냄새나는 패밀리의 일원으로 돌아가 복수를 하겠다고 해도 말릴 권리따윈 자신에게 없었는데 이 남자는 고맙게도 자신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비어져 흘러 내렸다. 어릴 적 알렉스를 임신시킨 그 놈이 문득 떠오른다. 그 뒤로 부모님은 일치감치 거리의 상인들의 싸움에 휘말려 총을 맞고 죽은지 오래라 혼자서 애를 낳고 키우는 동안 얼마나 힘든 나날이었던가.

“왜 울어...”

“아니야, 그냥 좋아서.”

“울지마. 이젠 내가 너희들을 지켜줄게.”

릭은 자신을 향해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마주하는 그녀와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다음날 저녁 아만다는 카렌이라는 여자를 달고 집에 같이 왔다.

“그쪽이 아만다가 말한 릭?”

“그렇소만?”

이 여자는 누군가 싶어 아만다를 바라보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릭이 대답하자 카렌이라는 여자는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쓸만한데?’

아만다로부터 누군가의 이야기라고 들은 한 남자의 이야기는 자신의 마음에도 꽤나 드는 이야기였다. 피 한방울 안 섞인 다른 남자의 자식을 자신의 자식처럼 돌봐주고 애딸린 여자를 보호하겠다며 나서는 남자는 파벨라에선 멸종위기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다.

그저 여자의 육체만을 탐하고 아이를 임신시키면 도망치는 놈들이 한 트럭이 넘는다. 자신이 괜히 애 셋딸린 싱글이 되었던가. 뒤늦게 이 놈이 그놈이고 저놈이 이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셋째를 배에 임신한 뒤였다. 자신만은 다를 거라던 그 놈도 아이가 생겼다는 말에는 차가운 표정을 하고 욕설을 지껄인 뒤 피우고 있던 담배를 자신을 향해 집어던지고 떠나버렸다.

아만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카렌은 직감했다. 이 이야기가 아만다의 이야기라는 걸.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쓰레기장을 뒤지고 다닐 여자가 어디서 누구의 이야기를 주워들을 수 있을까 싶어 곰곰이 아만다의 최근을 떠올려보았다. 최근 들어 일요일 오후까지도 일을 하면서 평소와 다르게 피곤하지도 않은지 무슨 생각에 빠져 실실 웃곤 하는 그녀를 보면 자신이 아닌 누구라도 그녀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었으리라.

‘아만다, 이 남자 내가 가져야겠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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