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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화 〉 188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5) (188/239)

〈 188화 〉 188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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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만다는 남자가 자신의 아이를 도와 글을 가르쳐주거나 아직 상처가 다 낫지 않았음에도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옆에서 챙겨주는 모습에 릭이라고 하는 남자가 파벨라에 넘쳐나는 썩은 놈들과 다르게 그렇게 나쁜 남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아이를 보다가 저렇게 아련한 표정을 짓는 걸까.

‘알렉스 또래의 애가 있었나?’

“토마토 파스타~ 토마토 파스타~”

아만다는 상념에 빠졌으나 평소보다 더 신이 난 알렉스의 모습에 더 이상 생각을 이을 수가 없었다. 냄비 주변을 원주민처럼 신나게 도는 알렉스에게 아만다가 그만 뛰라고 으르렁거렸다.

“먼지 나, 알렉스. 흙 들어간 토마토 파스타 먹을래?”

“아...알았어. 엄마.”

“부엌에 가서 후라이팬이랑 파스타에 넣을 거 가져와.”

“응.”

다시 한번 폴짝폴짝 뛰어들어가는 릭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끓는 물에 파스타를 넣고선 아만다가 날 조용히 쳐다본다.

‘뭐지? 내 얼굴에 뭐가 묻은 건가?’

아만다는 자신이 바라보자 뜬금없이 옷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닦는 릭의 모습에서 흘러나오는 허술함에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풉”

“뭐야? 얼굴에 많이 묻었어? 아니 웃지만 말고 어디에 묻었는지 말을 해줘야지. 사람이 말이야.”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네.’

알렉스는 엄마가 가져오라고 한 것들을 챙겨서 가지고 나오다 오랜만에 자신이 아닌 사람과 마주하고 웃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더욱 신이 났다.

“엄마, 엄마. 뭐가 그렇게 웃겨, 응?”

릭을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쪼그려 앉아 웃는 엄마의 옆에서 계속 왜 웃는지를 물으려고 하자 릭은 알렉스의 양 팔뚝을 잡고 자신의 얼굴에 뭐가 묻었는지 물었다.

“아무것도 안 묻었는데?”

갸우뚱한 얼굴로 뭐가 묻었냐고 오히려 되묻는 알렉스를 붙잡은 채로 몇 번이나 확인을 하다가 알렉스가 들고 있는 후라이팬과 올리브 오일 그리고 토마토 케첩을 보았다.

“케첩은 뭐하러 가지고 왔냐?”

“토마토 파스타니까 케첩이지.”

“응?”

두 남자가 각자가 가진 상식에 따른 다른 당연함에 서로 의문을 표하자 아만다는 어느새 익어버린 파스타를 건져내고 릭에게 냄비를 치워달라고 했다.

“치우라고?”

여전히 의문을 표하고 있는 릭을 닦달하고 난 뒤 아만다가 건져낸 파스타를 담고 있는 용기를 두손으로 들고 턱짓을 하자 알렉스는 자연스럽게 후라이팬을 세팅하고 올리브 오일을 적당히 뿌렸다.

“아니...토마토 파스타라ㅁ...?”

후라이팬에 올린 파스타에 알렉스가 케첩을 뿌려대자 릭이 냄비를 허겁지겁 내려놓고 알렉스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얀마, 거기다 왜 케첩을 뿌려. 기껏 다해놓은 음식 망쳤네.”

“토마토 파스타에 케첩을 뿌리지 그럼 뭘 뿌려.”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알렉스의 표정에서 그제야 어찌된 사정인지 짐작한 릭은 슬쩍 아만다를 쳐다보았지만 아만다는 방금 전까지 웃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고개를 돌리고선 차분한 표정으로 케첩이 뿌려진 파스타를 천천히 주걱으로 볶다가 옆에 있는 닫힌 용기에서 소금을 살짝 집어 뿌렸다.

“와아~~~~이게 얼마만이야, 엄마.”

“그렇게 좋아?”

알렉스의 미소를 바라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아만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릴적 자신과 동생에 요리를 해주던 엄마의 모습이 잠시 릭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저씨, 들어가자.”

아만다가 어느새 완성된 ‘토마토’ 파스타가 담긴 후라이팬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자 알렉스가 빨리 들어가자고 재촉했다.

“그래.”

전혀 이 집안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엔티크 식탁에는 이미 알렉스가 후라이팬을 들고 나오기 전에 준비해놨는지 포크와 접시가 3개씩 놓여져 있었다.

“아저씨, 맛있게 먹어.”

그랬다. 스캐빈저로 사는 그녀가 파벨라에서 홀로 남자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너무 간과했던 것 같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거기서 나온 유통기한 지난 고기를 먹고 사는 주제에 토마토 파스타란 말에 당연히 토마토 통조림 정도를 생각하며 입맛을 다시던 자신이 너무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릭이 토마토 파스타가 아니라 저 먼 섬나라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기 위해 먹는다는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그것도 다른 부가적 재료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정말 최소한의 것만 갖춘 이 스파게티를 포크로 천천히 집어넣고 있는동안 알렉스는 허기가 심했는지 순식간에 한 접시를 비우고선 아만다에게 한그릇 더를 외치고 있었다.

“천천히 먹어. 아무도 안 뺏어 먹어.”

아만다가 한 접시 더 떠주면서 건넨 말에 알렉스는 아직 채 삼키지도 않은 파스타를 씹으며 조용히 릭을 쳐다보았다.

“아저씨, 맛이 없어?”

“무슨 소리야. 이렇게 맛있는데? 너 조금만 먹어. 아저씨랑 엄마 먹을 건 남겨 놔야지, 너만 입이냐?”

알렉스의 질문에 자신을 살려준 이들에게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 릭은 그제서야 허겁지겁 먹으면서 마치 알렉스의 접시에서 파스타를 가져올 것처럼 장난을 쳤다.

“챙챙”

서로의 포크로 파스타 쟁탈전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만다는 어쩌면 알렉스에게 필요했을지 모를 아빠라는 자리의 부재가 새삼스럽게 크게 느껴졌다.

폭풍같은 저녁식사가 끝나고 릭은 잘먹었다면서 설거지는 자신이 하겠다고 했지만 아만다가 환자를 부려먹으면서 마음 편하게 지켜볼 수는 없다면서 그릇들을 챙겨 마당으로 나갔다.

“아저씨, 배부르다. 그치?”

아만다가 마당으로 나간 뒤 식사를 마치고 그리 깨끗하지 않은 TV화면에서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던 알렉스가 하품을 했다.

“얀마, 이빨은 닦고 자.”

“에이, 귀찮은데.”

“안 그럼 내일 입에서 하수구 냄새 난다?”

“하수구 냄새?”

자신이 문득 꺼낸 말에 갑자기 알렉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장난처럼 한건데 애한테는 너무 심했나? 애들이랑 이야기해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니 뭘 알아야지...’

아이들과 이야기해본지 너무 오랜만이라 어떻게 해야 되나 싶어 당황하다 릭은 알렉스에게 자신이 기분 나쁜 이야기를 했냐고 물었다.

“아니, 아저씨가 한 말때문은 아니야.”

“그럼? 갑자기 왜 그러냐?”

자신때문이 아니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알렉스는 천천히 일어나 양치질 하러 가겠다면서 마당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이때, 설거지를 마친 아만다가 설거지한 그릇들을 챙겨 부엌으로 움지이는데 알렉스의 표정이 시무룩해진 것을 보았다.

“애한테 무슨 짓을 했지?”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만다에게 릭은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알렉스가 만화 보고 그냥 잠들 것 같아서 이빨은 닦고 자라는 말밖에 안했어.”

아만다는 알렉스가 양치질하는 걸 평소에도 귀찮아하긴 했지만 저렇게 시무룩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게 전부냐고 물었다.

“그 다음엔 양치질 안하고 자면 입에서 하수구 냄새 난다고 그랬지.”

“아!”

아만다는 그제서야 알렉스가 왜 갑자기 우울한 표정이 되어 마당에 나가서 양치질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애한테 쓸데없는 말 하지마.”

릭이 큰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알렉스가 마음의 상처를 떠올렸구나 싶어서 괜히 마음이 깔깔해진 아만다가 식사할 때만 해도 웃음꽃이 피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나 싶어서 부엌으로 가 식기들을 정리하고 있는 아만다의 뒤로 절룩거리며 다가갔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가?”

살짝 주눅이 든 채로 냉장고를 쓰다듬으며 이유를 물어보러 온 릭을 본 아만다는 잠시 알렉스가 무얼하고 있나 확인을 하고선 낮은 목소리로 이유를 알려줬다.

“너도 알겠지만 알렉스는 여기서 20분 좀 더 걸리는 거리에 있는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어. 거기에 다니는 아이들 집안 환경이라고 해봤자 다 거기서 거기인 수준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스캐빈저이다보니까 반 아이들이 쓰레기 냄새나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고 몇 번 놀린 모양이야.”

“내가 실수를 했군.”

“그것 때문에 알렉스가 애들하고 몇번 싸우기도 하고 울면서 내가 일하는 곳에 울면서 찾아와선 그렇게 좋아하던 공부 안하고 싶다고 자신도 쓰레기나 치우고 살겠다고 하더라고...”

아이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복사하듯 내뱉고 그로 인해 누군가 상처 입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릭도 알렉스와 같은 경우는 아니었지만 누군가의 생각없는 말에 기분 나쁘기도 하고 화가 났던 적이 있었다.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다.”

자신의 앞에서 굉장히 난처해하는 릭의 모습에 아만다는 쓴웃음을 짓고는 고의는 아니었으니 괜찮다고 했다.

“금방 잊을 거야. 아마도...”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양치질과 세수까지 마치고 온 알렉스의 앞섬은 흠뻑 젖어있었다.

“알렉스, 아저씨가 말이 심했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자신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사과를 하는 릭의 모습에 알렉스는 이 사람이 자신의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릭의 앞에서 입을 삐죽거리며 아무 대답도 없는 알렉스를 본 아만다는 문가에 팔짱을 끼고선 무서운 목소리로 알렉스에게 물었다.

“상대방이 자신이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으면 사과를 받는 쪽은 어떻게 해야하지?”

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자신의 엄마를 슬쩍 본 알렉스는 릭에게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눈물을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되나 싶어 릭이 고개를 돌리자 아만다는 안아주라는 손동작을 하면서 입모양으로 벙긋거렸다.

“남자 녀석이 이런 걸로 울기는 왜 우냐?”

딸국질을 하면서 억지로 웃음을 참으려고 하는 알렉스를 한동안 안고서 릭이 다독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만다는 그녀석이 옆에 있었다면 자신의 아들에게 저렇게 다정하게 해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불리 먹고 울음까지 터뜨리며 감정소비를 마친 알렉스가 금방 눈을 비비며 졸려하자 아만다는 턱으로 고갯짓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 자라고 했다.

“잘 자, 엄마. 잘 자, 아저씨.”

“그래.”

“배 잘 덮고 자.”

“응.”

애가 자러 들어가자 드디어 긴 하루가 끝난 것만같은 느낌에 아만다와 릭이 자연스럽게 TV앞에 놓여진 푹 꺼진 소파에 나란히 늘어졌다.

“애 보기라는 거 정말 어렵군.”

“훗. 애를 보면 얼마나 봤다고. 10살정도면 감지덕지지. 어릴 때는 밤이고 낮이고 밥달라고 똥 쌌다고 울어제끼는걸 혼자 돌봐야 했다고...”

20대 중반쯤인 것 같지만 피로감이 가득한 아만다의 모습은 꽤나 지쳐보였다.

“아아, 확실히 엄마 혼자 남자애까지 키우려면 고생이 많았겠어. 정말 쉽지 않았겠군.”

자신의 고생을 알아봐주고 이해해주는 듯한 말을 하는 릭에게 아만다는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아 조용히 눈을 감고 릭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릭은 자신의 어깨에 실려오는 무게감과 함께 샴푸향기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얼어버렸다.

‘이럴 땐 자연스럽게 키스를 하는 건가?’

어디서 봤을지 모를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아만다를 향해 입술이 불쑥 튀어나와 키스할 것처럼 마중을 나가던 릭의 눈에 아만다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한줄기가 들어왔다.

그날 꽤 오랫동안 아만다의 판잣집에선 TV에서 흘러나오는 오래된 만화영화의 소리만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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