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187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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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의식을 차렸을 때, 집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으으...”
“아직은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회복되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움직이지 말라고 하는 이가 혹시라도 내게 위협이 되는 상대 파벌에 속한 이가 아닐까 싶어 섣불리 말하지 못하고 있는데 알렉스가 경쾌한 목소리로 그녀가 내게 누구인지를 설명해줬다.
“우리 엄마야, 아만다(Amanda). 이쁘지?”
나도 모르게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확실히 알렉스의 말대로 예쁜 축에 속하는 외모였다. 갈색 빛이 감도는 피부를 가진 그녀는 피곤해보이긴 했지만 20대 정도로 보였는데 라틴 계열의 피가 강하게 흐르는 외모를 가진 그녀는 길거리에서 본다면 애엄마라고 생각되지 않을 몸매의 소유자였다.
“핏.”
“엄마, 웃었다.”
“내가 언제 웃어, 웃기는.”
“그럼 안 웃었어?”
“사내 녀석들이 다 그렇지 싶어서 그런 거야.”
“나도?”
“으이구, 넌 아직 사내가 아니라 꼬맹이지.”
그녀가 알렉스의 양볼을 부여잡고 잡아당기자 알렉스는 아프다면서 여자의 손을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의 완력을 이기기엔 아직 2차성징도 오지 않은 아이의 몸으론 어렵지 싶었다.
“내 이름은 내 아들한테 들었지? 아만다야. 고맙다는 인사는 굳이 받지 않을게. 집 앞에 피흘리는 사람을 죽도록 내버려 두면 두고 두고 꿈자리가 사나워서 그럴 것 같아서 그런 거니까. 다 나으면 빨리 떠나줬으면 좋겠어.”
“후....그래도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으니 감사의 말은 해야지.”
아이를 대하는 것과 다르게 꽤나 싸늘한 목소리로 알렉스를 자기 쪽으로 당기면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제야 20대의 처녀가 아니라 확실히 아이를 보호하고자 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느껴졌다.
“아저씨, 엄마가 아저씨 살릴 때 내가 옆에서 도와준 거 잊지 마.”
“그러냐? 너도 잊지 않으마.”
자기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생색을 내는 알렉스의 모습에 릭이 살며시 미소를 짓자 그녀는 경계심이 약간 풀렸는지 릭의 상처를 봐주겠다면서 다가갔다.
“잘 쉬면 금방 아물겠어. 다행히 총알이 피부쪽으로 스쳐 지나가서 산 거야.”
“간호사라도 되는 건가?”
“간호사씩이나 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면 여기서 이러고 살지도 않겠지. 후우.”
피에 젖은 헝겊을 떼어내고 다른 옷감으로 감아준 그녀는 마무리를 하기 위해 들고 있던 가위를 침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한숨쉬듯 말했다.
“간호사가 아닌 것치곤 꽤나 응급처치를 잘한 것 같은데.”
“이봐, 호구조사는 적당히 해. 서로 모르는게 좋잖아? 여기가 무슨 클럽도 아니고.”
“그것도 그렇군.”
은근슬쩍 상대방이 뭘 하고 사는 사람인가 정보를 구해보려던 얕은 수는 금방 들키고 말았다.
‘아직 경계심이 덜 풀렸군.’
릭이 아만다가 붕대 대신 감아준 헝겊이 감긴 복부 우측을 지그시 누르며 다시 누웠다.
“엄마, 엄마. 엄마가 저 아저씨 살렸어.”
“알렉스, 저 사람이랑 너무 친해지지마. 쓸데없이 물어본다고 구구절절 대답하지도 말고.”
“응. 알았어.”
아만다가 금방 시무룩해진 알렉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의시켰다. 파벨라의 땅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건 너무 익숙한 일이었고 그런 죽음에는 저 남자같은 거리의 상인들이 항상 끼어있곤 했다. 아직까진 자신도 운이 좋아 이렇게 아이와 목숨을 부지하고 살고 있지만 그 운이 언제까지 계속될 거란 보장은 없었다.
마을에서 제일 나이 먹은 사람이 지금 세상에 겨우 40대 중반의 여성인 걸 생각하면 이 마을의 평균수명은 30대 언저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아이가 더 자랄 때까지 자신이 지켜주기 위해선 최대한 위험요소들을 피할 필요가 있었다.
죽음의 씨앗을 뿌리고 다니는 거리의 상인들 중 한명에 불과한 저 남자에게 아버지 없는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점차 기운을 차리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아만다는 파벨라 조직의 허락을 받고 매립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뒤져 나오는 재활용품이나 적당한 물건들을 모아 파는 스캐빈저scavenger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총을 맞고 일어나 온몸으로 스며드는 맛에 감동하며 먹었던 맛있는 치킨수프는 스캐빈저인 그녀가 전날 운좋게 주웠던 음식물 쓰레기 봉투 속에 담긴 닭고기를 고아 만든 수프였다.
“아저씨, 엄마가 또 닭고기나 소고기 가져왔으면 좋겠다. 그치?”
“넌 주워온 걸 무슨 마트에서 사오는 것처럼 말하냐. 우욱”
“아저씨, 아직 상처가 덜 나은 거야?”
“아, 아니다.”
알렉스가 꺼낸 말에 내가 먹은 치킨 수프가 쓰레기 매립지에서 건진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음식이라는 걸 상기하자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치밀었다. 나중에 내가 먹은 것이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재활용 음식임을 알게 되었을 땐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었지만 맑은 눈빛을 땡글거리면서 말하는 알렉스의 앞에서 구토를 할 순 없었다.
‘쯧, 매립지 인간들이 이러고 산다는 이야기는 얼핏 듣기는 했지만...’
“쩝, 저번에 엄마가 가져온 닭고기는 살코기가 많아서 좋았는데...또 먹고 싶다.”
나와는 다르게 입맛을 다시고 있는 알렉스의 비위에 속으로 다시 한번 놀라며 아직 다 낳지 않은 몸을 움직여 알렉스를 도와 집안청소를 했다.
스캐빈저인 그녀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거나 버려진 전자제품이라든가 가구 혹은 냄비라든가 후라이팬같은 가정용품들을 챙겨서 판 돈으로 1주에 300달러를 벌어들인다고 했다. 온갖 악취가 나는 쓰레기 구덩이를 요즘같이 태양이 내리쬐는 때에도 땀으로 온몸을 적셔가며 일해야 한달에 겨우 1200달러 정도를 손에 쥐는 셈이었다.
청소를 하면서 본대로 스캐빈저인 그녀와 알렉스가 살고 있는 이 집에 있는 살림살이들 중 새것은 없었다. TV, 냉장고는 어딘가 하나씩 고장이 나서 정상적인 제품은 아니었고, 더운 와중에도 자신의 일을 다하기 위해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는 사람의 손이 팬에 닿지 말라고 씌워둔 케이스는 이미 없어졌지만 여전히 날개를 돌리며 바람을 쏟아내고 있었다.
내가 의식을 찾게 된 두 사람의 집이라는 것도 콘크리트와 골조를 가지고 제대로 만들어진 집은 아니었다. 그저 판자떼기들을 그러모아 대충 집 흉내를 내서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할 수준을 겨우 갖춘 집 형태의 무언가라고 해야 옳은 것이라고 할까. 그러나 알렉스와 알렉스의 엄마 아만다에겐 튼튼함과는 거리가 먼 이 구조물조차도 안락한 보금자리로서 충분히 기능하고 있었다.
“얼추 다 치우지 않았냐?”
“그러네.”
집이라고 하는 게 그렇게 넓지도 않고 세간살이라는 것도 많지도 않고 쓸고 닦아봤자 오랜 세월이 묻어 나오니 청소라는 것은 그저 먼지를 털어내고 물기로 닦아내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다.
“다했으니까 이제 숙제하는 거 도와줘,”
“어.”
알렉스는 빈민촌인 파벨라의 아이답지 않게 학교에 다니며 읽고 쓰는 걸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고작 평일 중 오후 3시간 정도밖에 안되는 시간동안이라도 배우기 위해 걸어서 30분이 넘게 걸리는 공립학교에 갔다. 알렉스는 가기 전에 점심을 먹고나면 오후 1시 20분에 맞춰 집을 나서는 것이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학교가 좋냐?”
“응, 가면 친구들도 있고 글도 배울 수 있잖아.”
“그런 거 배워서 뭐하려고?”
“경찰.”
“어?”
“경찰이 될 거야.”
‘지금 호랑이 새끼를 키우고 있는 건가?’
파벨라의 사람들에게 경찰이란 존재는 길다란 낫을 들고 해골 대가리를 가진 그림 리퍼와 다를 바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이 파벨라에 등장하는 때면 우리같은 거리의 상인들을 잡아들인답시고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는 덕분에 누군가 재수없게 눈 먼 총알에 맞아 꼭 죽어나갔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총알은 거리의 상인들뿐만 아니라 파벨라에 사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몇 명의 시체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너, 니가 되고 싶은 희망직업이 여기서 무슨 취급받는지는 알고 말하는 거냐?”
“알아. 그러니까 내가 착한 경찰이 돼서 아무런 죄도 없는 파벨라의 사람들도 죽지 않게 가운데서 사이좋게 지내라고 할 거야.”
“그러냐?”
‘될 리가 있냐, 꼬마.’
“경찰이 되려면 선생님이 학교 수업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어. 공부 못하면 경찰이 될 수 없대...그러니까 경찰 되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돼.”
“어, 거기 철자 틀렸다. a가 아니라 e로 써야지.”
“맞네....”
“꼬마, 너, 정확히 알고 맞다고 하는 거냐. 아니면 내가 틀렸다고 하니까 대충 아는 척 하는 거냐.”
“아니거든, 알고 있었거든? 그리고 꼬마가 아니라 알렉스라고 부르라고 했지.”
“그래~”
알렉스의 말을 들어주면서 선생이란 작자가 파벨라 애한테 도대체 뭔 소릴 지껄인 건가 의문을 가지게 되었지만 꽤나 열성적으로 학업에 임하는 알렉스의 국어숙제를 도왔다. 부분부분 잘못 쓴 부분들을 지적해줄 때면 알렉스는 삐질삐질 땀을 흘리면서도 지우개로 노트에 잘못 적힌 알파벳을 박박 지운 뒤 불러주는 대로 철자를 고쳐나갔다.
“알렉스, 공부하고 있었네~”
“엄마다!”
땀에 푹 절은 채로 온몸으로 쓰레기 매립지의 악취를 그대로 몸에 붙이고 왔음에도 알렉스에게 아만다는 냄새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엄마였다. 알렉스가 두팔을 벌려 아만다를 끌어 안으려고 하자 아만다는 자신의 몸에 밴 쓰레기 냄새가 알렉스에게 옮겨 붙을까 두 손으로 밀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를 찾아 달려드는 아이의 열정은 그렇게 쉽게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만다에겐 알렉스야말로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었으니 자신을 향해 항상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는 알렉스의 존재는 희망의 빛이었다.
“아들, 숙제 다 했어?”
“응, 아저씨가 도와줘서 금방 끝났어.”
“그래?”
아만다가 눈을 가늘게 흘기며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모르는 척 그저 고개를 돌려 TV를 켜고 낡아빠진 소파로 천천히 자리를 옮겼다.
“엄마, 씻고 올테니까 이거 냉장고에 정리해서 넣어놔. 금방 씻고 밥해줄게”
“아니야, 천천히 씻어. 엄마.”
“우리 아들, 배 안고파? 오늘 이거 챙기느라고 좀 늦었는데.”
“괜찮아. 그러니까 나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씻어.”
아만다가 뭔가 가득 들어있는 검은 봉지를 건네자 익숙하다는 듯 알렉스는 봉지를 받아들고 자신의 엄마의 등을 밀었다. 아만다가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자 알렉스는 검은 봉지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건 뭐냐?”
“뭐긴 오늘 먹을 저녁밥이지.”
“저녁밥?”
검은 봉지 안에는 파스타와 식용유 밀가루 소금같이 가정이라면 어느 집에도 필수적으로 있는 것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종류별로 들어 있었다.
“사온 건가?”
릭이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알렉스가 대답했다.
“아니야, 구호단체에서 준 거야.”
“아!”
알렉스의 설명을 듣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가끔 파벨라의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준다며 찾아오는 거추장스러운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 녀석들은 자신들이 구호단체랍시고 파벨라 여기저리를 돌아다니곤 했다.
외부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건 마약조직들 입장에선 경찰들의 앞잡이일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라디오 보이 시절에 이들을 쫓아다니며 추척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구호단체라며 파벨라로 들어온 녀석들이 아무 대가없이 먹을 거리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날이면 지금처럼 동네에 웃음꽃이 피며 인간들이 모여사는 동네같지 않았던 이곳에도 사람 사는 세상같은 조그마한 온기가 퍼져나가곤 했다.
‘조만간 온다고 보스가 애들한테 말해서 허튼 짓거리하진 않는지 주의하라고 했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며칠 전의 총격전이 있었음에도 약속한 대로 온 구호단체 녀석들에게 성가심이 아니라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오늘은 쓰레기 음식을 참고 먹지 않아도 되겠군.’
알렉스가 익숙한 듯이 집 안쪽에 마련된 조그만한 마당으로 나가 냄비에 물을 받고선 화로에 올리고 불을 붙였다. 알렉스가 그렇게 파스타를 끓일 물을 준비하는걸 도와주고 있자 아만다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은 채로 다가왔다.
‘샴푸냄새’
“알렉스, 너 손은 씻고 하는 거지?”
“그럼, 엄마. 나 손 씻었어.”
알렉스가 은근슬쩍 내게 눈짓을 하며 그렇다고 대답하라고 입모양으로 말했지만 이미 아만다도 아는 눈치라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진짜야?”
아만다가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알렉스를 쳐다보자 알렉스가 내게 매달려왔다.
“아저씨, 아저씨가 봤잖아. 왜 말을 안해줘. 빨리 엄마한테 그렇다고 대답해줘.”
대답하지 않고 냅두면 애가 찡얼거릴 것 같아 울기 직전인 알렉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씻는 걸 분명히 봤다고 대답해줬다.
“그래? 아저씨가 그렇다고 하니까 한번 믿어줄게.”
“진짜라니깐.”
“그렇단 말이지? 알렉스가 말도 잘 듣고 집도 잘 치워놨으니까 오늘은 특별히 토마토 파스타 해줄게.”
“진짜지? 신난다! 아저씨도 좋지?”
“그, 그래.”
노을이 내려앉고 있는 마당을 돌아다니며 신이 나서 폴짝 폴짝 뛰는 알렉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에 자신을 잘 따르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짓다가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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