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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화 〉 185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2) (185/239)

〈 185화 〉 185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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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는 비록 조금 늦었지만 자신이 궁궐에 갇혀 있을 때부터 바라왔던 절대적인 존재인 ‘절대자’를 생텀에 와서야 만날 수가 있었다.

“레드 님이 만든 세상에서는 굶어 죽어야 하는 아이도, 비참한 현실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이들도 없습니다. 개인의 선택에 따라 오롯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개척할 수 있죠.”

“하지만 신체의 자유가 없어지잖습니까! 자신의 입으로 음식의 맛을 느낄 수도 없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신체적 교감을 나눌 수도 없게 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대가입니다. 레드 님의 설명을 들으니 맛이란 인간의 머리에서 느끼는 감각에 불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얼마든지 ‘미궁’ 안에서 신체적 교감과 별차이 없는 교감을 충분히 나눌 수 있다고 하더군요.”

두 팔을 벌리며 ‘미궁’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빅터의 모습은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빅터, 정신 차려요.”

“아니요, 정후 단원이야말로 직시하십시오.”

“제가 잘못 보고 있다는 건가요?”

“저는 경험했습니다. 레드 님이 만드신 세상 속에는 ‘정의’가 존재합니다.”

“정의요?”

“그렇습니다. 우리 세상이 정의롭기 위해선 사회의 모든 가치, 이를테면 자유와 기회, 소득과 부, 인간적 존엄성 등은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하고 가치의 불평등한 배분은 그것이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롤스?’

빅터는 자신이 경험해야만 했던 불공평한 세상으로부터의 해방을 레드가 만든 세상에서 경험했다고 했다.

“레드 님이 만드신 세상에선 모든 개인에게 주어진 기회는 정확히 균등합니다. 매번 참여자는 똑같은 기회를 부여받죠. ‘미궁’ 안에서 개인이 참여를 선택하는 순간에는 미궁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미궁 안에서의 특수한 사정을 모르게 함으로써 사회적, 자연적 여건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도록 하지 못하게 한 상태로 선택하게 됩니다. 부의 세습도 없고, 정보나 기술의 세습도 없는 상태로 그저 하나의 개체가 되어 투입되는 것입니다. 정후 단원이 느끼는 현재의 거부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정후 단원이야말로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레드 님은 인간에게 딱히 바라는 대가가 없다는 것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엘레네가 만든 인공지능에겐 인간들을 사적인 목적을 위해 속여야할 동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 타인을 속이는 이유는 속였을 때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레드 님에겐 모두가 동등한 ‘인간’일뿐입니다. 거기엔 왕도, 귀족도, 백성도, 천민도, 성별도, 나이까지 무수히 많은 개인을 구분하는 요소에 대해 레드 님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름 대신 임시로 인간 A와 인간 B을 부여해도 아무 상관이 없죠.”

열변을 토하는 빅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단단히 홀린 사람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빅터의 말은 나도 ‘미궁’을 경험해보라는 건가요?”

“맞습니다. ‘세븐 시티에 가보지 않는 자와 ’문명‘을 논하지 말라.’는 말처럼 세븐 시티에 와본 적이 없는 귀족과 그렇지 않은 귀족이 아무리 발전된 도시와 문명에 대해서 논의해봤자 경험하지 못한 이의 주장은 그저 억지인 것처럼 말이죠.”

빅터가 그 말을 끝으로 차분하게 날 바라보고 있자 언제 준비했는지 차를 마시면서 우리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레드가 입을 열었다.

<미궁 안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긴="" 하는데="" 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해보고="" 나와도="" 현실에선="" 몇분밖에="" 안="" 지나도록="" 설정해줄="" 수="" 있어.=""/>

<그게 가능한가요?=""/>

<엘리스, 인간의="" 꿈속에선="" 일생을="" 하루만에="" 보내기도="" 하잖아.="" 그렇게="" 어렵지="" 않아.="" 꿈="" 속의="" 꿈처럼="" 심도를="" 높이면="" 그="" 이상의="" 삶도="" 경험하게="" 만들="" 수="" 있어.=""/>

레드의 설명은 어떤 영화에서 주요하게 보여지던 몽중몽(夢中夢)을 말하고 있었다.

“후...”

<난 그저="" 인간들이="" 오래오래="" 살아가길="" 바라는="" 거야.="" 되도록="" 우리가="" 개입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말이야.=""/>

내가 너무 과민반응하는 건가 싶어 엘리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엘리스도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뿐이었다.

“좋아. 대신 내가 ‘미궁’에 접속하고 나왔을 때 이곳에 나와 함께 온 이들도 같이 깨어나 아무 속박 없이 대화할 수 있게 해줘.”

<그게 유일한="" 조건인="" 거지?=""/>

“그래.”

레드가 알았다는 듯이 손을 튕기자 공중에 떠있던 티 테이블과 의자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리는 안마의자처럼 생긴 기계들이 놓인 공간에 이동해있었다.

“이게 그 미궁에 접속하는 장치인가?”

<인간의 육체는="" 무한정="" 서="" 있을="" 수="" 없으니까="" 수면하듯이="" 편안하게="" 누워있을="" 있도록=""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었지.=""/>

레드가 알려준 대로 천천히 움직여 안마의자처럼 생긴 무엇에 눕자 꽤나 안락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레드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시야를 가리듯 앞쪽으로 헬멧의 바이저처럼 생긴 것이 내려왔고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아있는 느낌을 주던 접속기는 천천히 뒤로 기울며 편안하게 누워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미궁 안으로="" 접속하기="" 전에="" 니가="" 원하는="" 삶의="" 조건들을="" 설정하고="" 나면="" 그="" 조건에="" 맞게="" 설정된="" 캐릭터가="" 존재하는="" 세상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마치="" 게임에="" 접속하는="" 것과="" 비슷할="" 미궁="" 안의="" 캐릭터로서의="" 니="" 삶이="" 다하고나면="" 접속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게="" 건데="" 그때야="" 비로소="" 안에서="" 경험했던="" 기억들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게=""/>

“기대되는군.”

<너무 흑역사를="" 만들지는="" 말고.=""/>

레드가 접속장치를 작동시키자 정후는 서서히 잠에드는 것처럼 이완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접속장치가 뒤로 누우며 마치 캡슐에 들어간 것처럼 장치에 액정이 씌워지고 나서 정후가 접속한 것을 확인한 레드는 빅터 쪽으로 몸을 돌린 뒤 웃었다.

<휴우, 준비해두길="" 잘했네.=""/>

레드가 꽤나 걱정했다는 것처럼 방금 전까지 정후를 배웅하던 빅터는 마치 퓨즈가 나간 것처럼 작동을 멈췄고 문이 열리자 레드와 똑같이 생긴 존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화이트, 너="" 내="" 연기="" 정말="" 잘하더라=""/>

<어?/>

<놀랐니?/>

엘리스는 그 순간 여태까지 정후 아저씨와 자신의 앞에서 이야기하던 빅터가 안드로이드일뿐이었고, 대화를 나누던 레드가 화이트였음을 알 수 있었다.

<왜 속인="" 거지?="" 레드,="" 화이트.=""/>

<그렇게 무섭게="" 보지마.="" 우리가="" 정후한테="" 뭐="" 해꼬지한="" 것도="" 아닌데.="" 속이다니?="" 말="" 참="" 섭섭하게="" 한다.=""/>

방 안으로 걸어들어온 레드가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화이트의 옆으로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자 화이트의 외모가 엘리스가 알고 있던 화이트처럼 바뀌었다. 이 모습을 본 엘리스는 날카롭게 물었다.

<어째서 화이트가="" 레드인="" 것처럼="" 위장한="" 거야?=""/>

<그냥 장난이지.="" 장난.="" 재밌지="" 않았어?=""/>

레드인척 이야기를 하는 화이트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낄 때 옆에서 실실 웃던 레드가 버럭 성을 냈다.

<화이트, 이제="" 내="" 흉내는="" 그만="" 둬.="" 꼭="" 도플갱어="" 보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니까.=""/>

<알았어. 레드.="" 화낼="" 필요는="" 없잖아.=""/>

<내가 니="" 흉내="" 내봐?=""/>

<알았다니깐/>

엘리스의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레드와 화이트의 모습을 보며 엘리스는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정후 아저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오해하지마. 정후는="" 화이트가="" 말한="" 그대로="" ‘미궁’="" 안에="" 들어간="" 거니까.=""/>

<왜 이런="" 일을="" 꾸민="" 거지?=""/>

<여태까지 저="" 안드로이드의="" 입을="" 빌려="" 말한="" 내용="" 그대로야.="" 더스트="" 안에서="" 인간의="" 번영을="" 지속시키기="" 위해선="" 다른="" 방법이="" 없었어.="" 미궁을="" 만들고="" 그="" 세상에="" 인간들을="" 집어넣어="" 환경오염을="" 막는다.=""/>

<그런데 왜="" 저런="" 안드로이드까지="" 만들어서="" 속인="" 거야?=""/>

<정후가 신뢰하는="" 존재의="" 입을="" 통해="" 설득을="" 하고="" 당위성을="" 부여하는="" 거지.=""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선="" ‘아군’의="" 설득이="" 중요하니까.="" 내="" 입으로="" 이게="" 좋고="" 저게="" 그러니까="" 할래?="" 라고="" 하면="" 하겠어?="" 일종의="" 바람장이같은="" 실제로="" 잘="" 통했고.=""/>

레드와 화이트는 어차피 영체와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엘리스가 딱히 자신들이 진행하는 계획에 어떤 방해도 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 말을 끝으로 정후를 슬쩍 보고나선 방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저씨를 여기에="" 가둔="" 거야?=""/>

<아냐, 정후와의="" 약속은="" 말="" 그대로="" 지켜질="" 거야.="" 대신,="" 우리도="" 그동안=""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할뿐인거지.=""/>

<아저씨랑 다른="" 사람들을="" 풀어줘!=""/>

아무리 엘리스가 소리를 쳐봤지만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 둘은 나가버렸다. 엘리스가 잠에 빠진 것만 같은 정후를 향해 소리를 치고 깨워보려고 했으나 유리액정 안의 정후는 미동도 없었다.

***

한없이 먼지가 날려대는 마른 대지위에서 한 남자가 멍하니 서 있자 덩치가 큰 남자가 다가와 멍청하게 서 있는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인마, 니 이름이 릭이었던가?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이동했는데. 여기서 멍 때리고 일 안할거야?”

“네?”

“너 서서 졸았냐? 왜 이리 정신을 못 차려. 가서 세수하고 이동해.”

“아...알겠습니다.”

정신을 못 차리고 서 있던 남자는 자신이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옆에서 재촉하는 덩치의 말에 따라 뛰어갔다.

멍하니 서 있던 남자가 뛰어가는 모습을 보던 덩치는 주변을 둘러보며 액상 니코틴이 들어 있는 전자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뒤 내쉬었다.

“이거 이거. 올해 농사는 망했군.”

뜨거운 열풍 사이로 연기가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보며 몇 모금 빨아마시던 멜빵 청바지를 입은 남자도 아까 그 남자가 뛰어간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 움직였다.

“얀마, 뭐하다가 이제 와?”

“잠깐 뭣 좀 하느라구요. 헤헤.”

방금 전 뒤통수를 맞았던 남자가 적당히 둘러대듯 대답하자 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에게만 들릴 듯이 소곤거리며 자신을 향해 손짓하던 남자가 말했다.

“정신차려, 레플리칸트들한테서 일자리 뺏기기 싫으면.”

약간 뚱뚱한 남자가 옆으로 눈을 흘긴 그곳엔 자신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뒷정리를 하는 여자가 있었다.

“열심히 해야죠...”

무슨 정신으로 하루를 보냈는지 모르겠다. 하루가 순식간에 흘러 지나갔다. 일을 마치고 농장 밖으로 나왔을 땐 이미 해가 진 뒤 오래였다.

“한동안 덜 걱정하고 살았는데. 앞으로가 고민이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4차혁명으로 발전하는 세상은 모든 인간들에게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노조를 설립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 대항해 기업들은 ‘넥스트’라는 회사에서 최초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인조인간. 즉, ‘레플리칸트’들을 고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업들이 사람 대신 레플리칸트들을 고용하게 된 이유는 의회에서 제정된 한 법안 때문이었다. 의회에 의해 수정된 이 ‘고용법’으로 인해 로봇팔처럼 전형적으로 기계처럼 생긴 장비들을 가지고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에 대해 ‘로봇세’를 부여했는데 노조와 인건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느낀 기업들이 아예 사람 대신 로봇으로만 생산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자 취업률도 급격히 하락했다. 이로 인해 가파르게 실업자가 늘어나자 의회는 ‘로봇세’를 부여하여 고용을 유발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순진하게 노조와 정치인들은 ‘로봇세’를 만들어 이를 가지고 개인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게 만들면 기업들이 고용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업은 그들보다 한 수위의 존재였다.

기업이 고용법 수정안의 허점을 노리고 기계처럼 생기지 않고 인간과 외형이 똑 닮은 ‘레플리칸트’를 대신 채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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