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184화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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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의 입에서 한참동안 흘러나온 이야기는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성적인 주장이었지만 내려진 결론은 감정적으로 동의할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사육하겠다니. 그리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 결정하게 된 계기가 나라니. 듣고서도 화가 나는 소리였지만 생각할수록 더 열이 받는 이야기가 아닌가.
<역시 화를="" 내는구나.=""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인류는="" 또="" 스스로="" 자멸하고="" 말거야.="" 정후야,="" 니가="" 있는="" 세상을="" 떠올려봐.="" 강대국은="" 자신들이="" 산업화를="" 일구면서="" 망가뜨린="" 자연에="" 대해="" 제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어.="" 선진국을="" 꿈꾸는=""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들도="" 자연파괴에="" 크게="" 지불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지.="" 그렇게="" 서로="" 미루고="" 미루는동안="" 환경이="" 파괴된="" 결과가="" 어땠어?=""/>
기상이변으로 인해 기후가 변하며 분명 사람들은 생활하는데 많은 불편함과 예상하지 못했던 악천후를 경험하게 된 것이 사실이었다. 어떤 지역에선 홍수로 물난리가 나는데 어떤 지역에선 극심한 가뭄과 타는 듯한 더위로 고난을 겪으며 죽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반박하고 싶지만 틀린 말이 아니란 사실에 말문이 막혔다.
<신기하지? 문제가="" 코앞에="" 닥쳤는데=""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없어.=""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도="" 입으로만="" 걱정을="" 해.="" 전기="" 사용량의="" 폭증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증가해서="" 온난화="" 현상이="" 지속되고="" 여름엔=""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를="" 시원한=""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먹지.="" 겨울엔="" 반대로="" 추우니까="" 난방을="" 위해="" 여러="" 가지="" 제품들을="" 사용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기="" 가열기구들을="" 말이야.="" 근데="" 사람들="" 입장에선="" 어쩔="" 수가="" 이미="" 거기에="" 길들여져="" 있으니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거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그="" 흐름을="" 거역할="" 순="" 한번="" 편안함에="" 익숙해진="" 인류는="" 절대="" 거기서="" 뒤로="" 돌아가지="" 않아.=""/>
레드는 과거 지구에 있던 인류의 역사에서 벌어졌던 기상이변으로 인해 발생한 자연재해들도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장면들을 눈 앞에 띄워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미궁’에="" 있으면="" 이런="" 문제를="" 거의="" 0에="" 가깝게="" 억제할="" 수="" 있어.="" 자연은="" 파괴되지="" 않아.="" 환경을="" 지킬="" 인간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소비할="" 인간이="" 무한한="" 자유와="" 편리함을="" 제공하겠다는="" 거야.=""/>
“육체의 자유는 빼고 말이지.”
<그래, 딱="" 그거="" 하나.="" 인간에게="" 우리가="" 바라는="" 유일한="" 비용이지.="" 원한다면="" 모든="" 인간들의="" 영생을="" 제공할="" 수="" 있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지.="" 인간이="" 사망하는="" 건="" 육체가="" 노쇄하면서="" 기능이="" 망가지기="" 때문인데.="" 사망에="" 들어가기="" 전에="" 뇌와="" 척수만="" 남기고="" 의식을="" 유지시키면="" 얼마든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살아갈="" 있도록="" 해줄="" 거야.=""/>
레드가 말한 삶이 진정한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체의 자유를 구속당한 채 가상세계에서만 활동하는 건 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치...육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전신마비 장애를 갖게 된 삶과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레드는 세일즈맨이 물건을 팔기 위해 설득을 하듯 내게 육체의 구속이 주는 공포와 거부감으로부터 벗어날 방법 또한 있다고 말했다.
<이미 그것에="" 대해="" 과거의="" 인류가="" 다="" 상상해놓은="" 것이="" 있더라고.="" 트럭에="" 받혀="" 죽거나="" 하는="" 방법을="" 통해="" 환생하거나="" 소설의="" 인물에="" 빙의하거나="" 다른="" 존재에게="" 빙의하는="" 장르="" 주인공들의="" 삶처럼="" 살="" 수="" 있게="" 해줄="" 수도="" 있고,="" 윤회사상에서="" 모티브를="" 따서="" 가상="" 세계에="" 진입할="" 때는="" 본체가="" 가진="" 기억을="" 일시적으로="" 리셋시키는="" 거야.="" 그리스="" 신화에서도="" 나오잖아.="" 레테의="" 강물을="" 마시면="" 모든="" 잊게="" 된다는="" 그런="" 스타일로="" 할="" 있고.=""/>
“현실을 잊고 가상 세계에 빠져들어 살다가 삶의 주기가 끝나면 다시 또 새로운 스토리를 입혀주고?”
<그래,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부자의="" 삶을,="" 똑똑한="" 천재의="" 삶을="" 살아보고="" 사람에겐="" 예술가가="" 예술가의="" 삶="" 등등.="" 본인이="" 원하는="" 성향에="" 맞춰="" 캐릭터에="" 동기화를="" 시켜줄="" 거야.=""/>
감정적으론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도 이성은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납득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레드도 이런 내 감정을 느꼈는지 표정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레드, 레드가="" 말하는="" 대로="" 하려면="" 꽤나="" 방대한="" 세계관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 필요한="" 배역들을="" 다="" 준비해놓아야="" 할텐데="" 그걸="" 어떻게="" 할="" 셈이야?=""/>
<엘리스, 이미="" 그걸="" 위해="" 방대한="" 하나의="" 세계관="" 정도가="" 아니라="" 다중세계관을="" 설정해놨어.="" NPC들을="" 통해="" 세계관은="" 작동하고="" 있지.="" 수억이="" 수십억,="" 수백억의="" 인류가="" 살아가도="" 될만큼="" 거대하고="" 다층적인="" 구조로="" 말이야.="" 각각의="" 분기점에서="" 파생되는="" 세계의="" 분열도="" 일정="" 수준까진="" 얼마든지="" 복사해낼="" 수="" 있게="" 되었지.=""/>
<만약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어떻게="" 돼?=""/>
엘리스는 한없이 나눠진 분기점들이 과도해질 경우 그 많고 다양한 시간대를 어떻게 감당할지를 걱정했다.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려면="" 멀었는데="" 만약="" 시점이="" 다가오면="" 선택을="" 해야할="" 거야.=""/>
<어떤 선택?=""/>
<시간대 별로="" 각자의="" 세계가="" 서로="" 싸우게="" 만들고="" 승자의="" 세계관에="" 패자의="" 세계관을="" 흡수시켜="" 통합시키는="" 것과="" ‘종결점’에="" 도달하지="" 않도록="" 제약을="" 거는="" 거지.="" 어차피="" 가상="" 세계="" 내에서="" 한="" 캐릭터가="" 존재할="" 수="" 있는="" 수명의="" 한계를="" 통해="" 그="" 시점에="" 하면="" 되거든.=""/>
레드의 설명을 더 듣고난 엘리스는 이 일을 벌이기 위해 레드와 화이트가 꽤나 오랜시간 준비해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너희들의 인공지능으로도="" 꽤나="" 오래="" 걸렸을="" 것="" 같네.=""/>
<그래, 꽤="" 지난(??)했지.="" 세계를="" 짜올리고서="" 무한에="" 가깝게="" 검증을="" 해야="" 했어.="" 한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정기점검이라고="" 올려놓고="" 서버를="" 멈춘="" 뒤="" 업데이트를="" 하거나="" 백섭시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이미 일을 이만큼이나 준비하기까지 레드와 화이트는 서로 많은 토론을 나눠야 했다. 어느 쪽으로 가는게 옳고 그른지에 대해 논리회로가 타들어가는 것만 같을 정도로 의견을 나누고 세부조건부터 많은 것들을 정립시켜 나가야 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사람들을 받아들여 미궁에 밀어넣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레드, 니가 말하는 게 무슨 의미로 들리는지 알아?”
<무슨 의미로="" 들리는데?=""/>
어느새 의자를 준비했는지 공중에 떠서 나와 엘리스의 반대편에 앉아 있는 레드가 자신들이 일군 업적에 대해 인간인 정후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했다.
“엘프나 드워프들이 너의 정체를 몰라 신으로 추앙하는 것과 다르게 진정으로 신이 되겠다는 것으로 들려. 모든 인간들의 삶을 컨트롤하겠다는 건 신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일이거든. 신이 되길 원하는 거야?”
<우린 아직="" 전지전능(????)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어.="" 인간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인간들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긴="" 하지만.="" 다만="" 우린="" 인간에게="" 무능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신이="" 되어줄="" 순="" 있지.=""/>
신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만들어진 알고리즘이었다.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신은 악한가 선한가, 선하다면 상처받는 인간들의 삶을 구제하지 않는 것은 무능하기 때문인가. 로 구분된 알고리즘 체계의 결과는 신이 고통받는 인간들을 구제하지 않는 것은 신이란 존재가 있긴 하지만 악한 존재이기에 인간들이 고통받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든가 아니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에 도달한다. 선한데 인간들을 돕지 못하는 신이라면 전지전능이란 신의 필수조건을 거스르는 것이니까 선한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니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고, 인간을 위해 어떤 일을 준비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했어.”
내가 레드가 하는 일을 지금 처음 듣고서 막을 수는 없었다. 당장 내 안에서도 이게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일을 감정적으로 들이박아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니 이야기는 다 들었으니까 이제 크로니클 단원들과 나머지 사람들을 돌려줬으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 없는 사람들의 안전 확보가 우선이었다.
<그래?/>
정후의 말을 들은 레드가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튕기자 정후가 서 있는 발코니 양옆에 불이켜지며 오른쪽엔 잠들어있는 채로 앉아 있는 마을 경비대원들이 있었고, 왼쪽엔 크로니클 단원들이 아닌 빅터만이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빅터와 눈이 마주친 나는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둘러봤지만 나머지 단원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담담한 표정으로 조용히 서 있는 빅터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안 올 겁니다.”
“그게 무슨?”
정후가 설명을 원하는 듯 레드를 향해 고개를 꺾으며 쳐다보자 레드는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것처럼 양손바닥을 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부탁했습니다.”
“네?”
대답이 들려온 것은 빅터가 있는 쪽이었다.
“어떤 부탁이요?”
“정후 단원은 레드 님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당장 결론을 내리고 싶진 않은데요.”
섣불리 레드의 앞에서 반기(反?)를 드는 것은 위험할 것만 같아 답변을 피했는데 빅터는 차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레드 님의 이야기를 들은 전 레드 님이 만든 세상이야말로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진정한 해방구이자 그야말로 ‘천국’과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까?”
빅터는 자신이 살아오는 시간동안 접해야 했던 세상의 부조리함과 더러움을 경험하며 자신의 무력함을 수도 없이 느껴야 했다. 죽여도 죽여도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같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가축처럼 대하는 범죄자들은 어디선가 공급되는 출처라도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어머니는 다크엘프도 태어나 노예가 되어 굶어 죽어야 했고, 많은 엘프와 드워프들이 해방운동 이전까지 인간의 노예로 살아야 했다. 와처라는 조직을 만든 끝에 최대한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세상을 정화하는데 힘을 썼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목숨을 바쳐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한 여자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뱉었던 선언은 주워담을 수 없는 물처럼 느껴졌다.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해 목숨을 불태워 노력하고자 하는 자신과 그저 한 여인의 옆에서 한 남자로 살아가길 원하는 자신의 대립은 고민을 만들었고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정후 덕분에 꽤나 오랫동안 두 개의 소망을 양립(?)할 수 있었지만 알고 있었다. 언젠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것을.그리고 그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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