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화 〉 180화Labyrinth(2)
* * *
우리들 앞에 놓인 문의 개수는 몇 명이 알고 오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11개였다. 문 위에 장식된 11개의 붉은 등이 어딘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한 사람당 하나씩 들어가라는 건가?”
“원하는 대로 꼭 한명씩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다 같이 문 하나로 들어가는 게 안전할 것 같은데.”
문 앞에서 우리끼리 옥신각신하며 한참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누구도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가 없었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평행선을 향해 달렸다.
“그만 그만. 누가 옳은지 모르는데 우리끼리 싸워서 무슨 소용이 있어.”
코엘이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곤 각자 어느 쪽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엘리스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을 살펴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요?/>
“응?”
엘리스는 우선 확인해봐야할 것이 있지 않느냐고 했다.
“뭘 확인해?”
<이 문="" 열리긴="" 하는="" 건가요?=""/>
“어?”
그제야 우리는 문 앞으로 몰려가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를 살펴봤지만 문고리도 없고 여닫는 문도 아닌 특이한 구조의 문은 열 방법이 없었다.
“그러게, 이거 어떻게 열어야 돼?”
<이건 우리가="" 열="" 수="" 있는="" 문이="" 아니에요.=""/>
“그럼?”
정후의 질문에 엘리스는 문의 구조를 살펴본 결과 관리통제부에서 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니 말은 레드가 문을 열어줘야 우리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지?”
<맞아요./>
정후가 엘리스의 말을 듣고 우리는 쓸데없이 시간낭비한 거냐는 눈빛으로 나머지 10명을 쳐다봤다.
“크흠.”
그렇게 우리가 서로 뻘쭘한 상황이 되어 있을 때 천장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큭/>
“레드?”
<언제까지 떠들고="" 있나="" 가만히="" 지켜보려고="" 했는데="" 엘리스만="" 눈치챘네.="" 자기들끼리="" 뭐가="" 맞고="" 틀리네하는="" 이야기="" 잘="" 봤어.=""/>
“초대한 건 너잖아. 손님을 이렇게 대접하는 게 어디 있어? 좀 기분 나쁜데.”
정후가 살짝 열이 올라 스피커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방향을 향해 외쳤다.
<아~ 미안해.="" 손님이="" 이렇게="" 직접="" 생텀으로="" 찾아온=""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들떴나봐.="" 각자="" 문앞으로="" 서면="" 열릴="" 거야.=""/>
“문 하나당 한명씩 서라고? 다 같이 들어가면 안돼?”
<당연히 안되지.="" 그럼="" 내가="" 뭐하러="" 쓸데없이="" 문을="" 11개씩="" 만들어놨겠어.=""/>
“사람들이 너무 불안해 하잖아.”
<정후야, 내가="" 너희들을="" 잡아먹겠어?="" 아니면="" 죽일까봐?=""/>
“그건 아니겠지만...”
<간만에 손님이="" 온다고="" 해서="" 나름="" 웰컴="" 이벤트를="" 준비한="" 거야.="" 약속할게.="" 아무도="" 다치지="" 않을="" 그러니까="" 정후야,="" 커맨드="" 센터로="" 와.="" 기다리고="" 있을게.="" 삐익=""/>
“우리가 뭘 믿ㄱ.....”
레드는 자이온이 말을 꺼내기 전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스피커를 끊어버렸다.
“이런 무례한! 붉은 마녀! 만나기만 해봐!”
자이온과 함께 경비대원들이 길길이 날뛰자 버크 아저씨가 진정하라며 달래는 사이 빅터,섀넌,드마코,코엘,섀넌은 정후와 이야기를 나눴다.
“괜찮을까?”
“레드 말대로 우리를 해치려고 했다면 진작 뭔가를 했겠죠.”
“불안하군.”
우리가 잠시 의견을 나누는 사이 버크 아저씨 덕분인지 경비대원들도 진정상태가 되었다.
“붉은 마녀를 만나려면 어찌 되었건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거지?”
“그렇다잖아. 라모.”
“이 무례함은 잊지 않을 거야.”
“반드시.”
잠시후 11명의 인원들은 각자 긴장한 표정으로 문 앞에 한명씩 자리잡고 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네모난 직사각형 위의 등이 붉은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고 문이 열렸다.
“후우, 각자 무탈하게 다시 보자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열린 문 앞으로 들어서자 문이 닫히고 초록빛의 등은 흰색으로 바뀌더니 그곳에 문이 있었는가 싶게 벽으로 바뀌었다.
<들어왔네./>
<시작할까?/>
<그래/>
레드가 모두 문 안으로 들어온 것을 모니터로 확인하고선 화이트를 바라보자 화이트는 레드의 대답을 듣고서 기관을 작동시켰다.
적대적인 의사를 표시한 경비대원들이 나눠서 들어간 그곳은 문이 닫히고 나서 어둠으로 가득해졌고 경비대원들의 인내심이 슬슬 줄어들 때가 되었을 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딛고 있던 바닥이 갑자기 사라졌다.
“허억.”
“으악.”
5명의 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크로니클의 단원들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이와 다르게 크로니클 단원들이 들어간 곳은 잠시 후 백열등이 켜지며 크로니클 단원들이 갈 길을 비추었다.
“흐음.”
빅터는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게 준비된 상태로 천천히 목숨에 위협을 가할만한 기관같은 것이 있진 않은지 길 전체를 살펴보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좁은 길은 이내 끝을 맞이했고 오른쪽으로 나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그 앞엔 자신이 여태까지 봐왔던 벽화들이 다시 양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계속된 길 속에서 벽화는 엘프, 드워프, 인간이 서로 이합집산하면서 싸우고 있던 것을 반복하는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건 문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봤던 내용이....또 그려져 있는 건가?”
빅터는 조심스럽게 위험한 기관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벽화를 세심하게 살펴봤지만 들어오기 전에 기억해뒀던 내용과 크게 다른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빅터의 머릿속에 의문이 커질 때쯤 빅터의 옆으로 뭔가 나타났다.
<벽화들을 본="" 소감은="" 어때?=""/>
“당신은 정후의 친구라는 레드?”
<맞아. 정확히는="" 본체는="" 아니고="" 홀로그램이지.=""/>
“홀로그램?”
빅터가 홀로그램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자 레드는 홀로그램을 움직여 빅터의 몸을 통과했다.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레드의 홀로그램에 무기를 뽑아들며 빅터가 반응하자 레드의 홀로그램은 양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자신은 해를 끼칠 의사가 없음을 표시했다.
‘존재감이 없다. 그저 환영인가?’
홀로그램이란 것이 실체가 없는 영상에 불과하다는 걸 빅터가 인지하는 것 같자 레드는 천천히 한발씩 앞으로 걸어나갔다.
‘발자국 소리가 없어.’
그렇게 몇발 앞으로 뗀 레드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으면 따라오라며 빅터에게 손짓했고 빅터는 잠시 머뭇거리다 레드를 따라갔다.
“왜 우리를 이렇게 따로 들어오게 한 거지?”
<너희들은 내가="" 누군지="" 잘="" 모르잖아.="" 그러니="" 나도=""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너희에게="" 소개할="" 시간=""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겠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사람들까지="" 적으로="" 대적하는="" 건="" 피곤하기도="" 하고="" 내="" 성향에도="" 안="" 맞거든.=""/>
“그런가?”
의심의 뿌리를 걷어내지 않는 걸 신체 전반적으로 나타내는 빅터의 모습에 레드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에="" 개개인이="" 가진="" 생각이="" 오염될="" 수="" 있잖아.="" 누군가는="" 내="" 말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옆="" 사람들이="" 괜히="" 부정적으로="" 나오면=""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 흘러갈="" 있으니까.=""/>
“친절하게 따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설명해줄 수도 있지 않나?”
레드는 피식 웃으면서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태로 설명을 해줘봐야 말라야히마 경비대원들이 화를 내는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빅터는 차분하게 생각해봤지만 레드의 말이 완전히 틀리진 않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많이="" 엇나갔는데="" 벽화를="" 본="" 소감은="" 어땠어?=""/>
“소감? 많은 이들이 서로 싸우고 공존하고 문명을 이룩하고 또 흩어지고를 반복하더군. 지금도 별반 차이 없는 이야기지.”
빅터의 짤막한 답변을 들은 레드는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하며 빅터의 옆에서 천천히 보폭을 맞춰 걸었다.
<그런 생각해본="" 적="" 있지="" 않아?="" 인간이란="" 존재가="" 목적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는="" 거?=""/>
분명 빅터는 그렇게까지 거창하게는 아니지만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와처의 대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엘프든 드워프든 인간이든 문명을 건설할 정도의 지적능력을 가진 이들이 서로 이익에만 충실할뿐 어떤 발전방향을 정하고 움직이고 있다거나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회의감을 느껴야 했다. 그 와중에 노예로 종속된 이들은 양지에서 혹은 음지에서 수없이 죽어나갔다.
빅터가 답변을 하지 않았음에도 레드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벽화를 봐.="" ‘인간’이란="" 존재들은="" 수십세기라는="" 긴="" 시간동안="" 지켜보면="" 삶에="" 목적이="" 없어.="" 야생에서="" 사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단="" 말이지.="" 그저="" 눈="" 앞에="" 자신의="" 탐욕을="" 자극하는="" 것이="" 있으니="" 상대방의="" 것을="" 가져오기="" 위해="" 싸우고="" 그걸="" 협력하고="" 다시="" 배신하고="" 싸우기를="" 반복하지.=""/>
“하지만 그 와중에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은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된다.”
<더 나은="" 삶?="" 편리한="" 삶을="" 말하는="" 거야?=""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편해지지.="" 다시="" 말하면="" 더="" 많은="" 걸="" 소비하게="" 된다는="" 거야.="" 자연부터="" 시작해서="" 같은="" 인간을="" 소비하기까지="" 하지.안타깝게도="" 그="" 과정에서="" 기술을="" 발전시키길="" 원하는="" 개인들의="" 노력과="" 재능은="" 효율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지.="" 좋은="" 사장(死?)되기도="" 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가="" 어이없이="" 죽거나="" 노예가="" 되어="" 허무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도="" 빈번해.=""/>
빅터는 인간이 인간을 소비하게 된다는 말에 오래전 아사(?死)해버린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자신의 어머니는 노예였으니까.
<인간은 이익을="" 위해="" 자신도="" 팔고="" 타인도="" 팔지.=""/>
“자신을 판다고?”
<남의 돈="" 혹은="" 물건을="" 얻기="" 위해="" 일하는="" 건="" 본질적으로="" 자신을="" 파는="" 거야.="" 내="" 시간을="" 소비해서="" ‘돈’을="" 벌기도="" 하고="" ‘물건’을="" 얻기도="" 하지.="" 무엇을="" 얻는지와="" 상관없이="" 투자해야만="" 얻을="" 수="" 있는="" 그="" 와중에="" 개인의="" 능력에="" 따라="" 개인이="" 태어난="" 집안="" 위치="" 그리고="" 타고난="" 재능="" 등의="" ‘운’에="" 의해서="" 벌어들일="" 것들의="" 총체적="" 양과="" 질은="" 증가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론="" 시간.="" 그러니까="" 자신이="" 가진="" ‘생명’을="" 쪼개서="" 거지.=""/>
생각해본 적 없는 관점이었다. 자신을 파는 것은 몸을 파는 이들. 즉, 홍등가의 여자들 혹은 용병들과 같이 일부의 사람들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십년이 넘는="" 자신의="" ‘생명’을="" 판="" 끝에="" 인간이="" 운="" 좋게="" 살아남아="" 노인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이="" 갖게=""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해?="" 부?="" 명예?=""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 자손을="" 거?=""/>
빅터는 레드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인간이란 존재가 노력이든 운이든 시간을 들여 마지막에 얻게 되는 것들이 허무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행위를 함으로써 배우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다.”
<그래, 성장하지.="" 한="" 사람의="" 인간이="" 자라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집어삼키면서="" 말이야.="" 근데="" 그렇게="" 높은="" 위치에="" 올라갈수록="" 인간은="" 점점="" 더="" 것을="" 필요로="" 하지.="" 그게="" 돈이든,="" 자신을="" 지지해줄="" 사람이든,="" 군대든,="" 물건이든="" 꼬마였을="" 땐="" 그저="" 간식="" 하나만="" 있으면="" 만족하던="" 존재가="" ‘어른’이="" 되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원하게="" 된단="" 말이지.=""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걸="" 마침내="" 얻었을="" 때="" 그걸로="" 만족하냐?="" 아냐,="" 그="" 만족이란="" 게="" 길게="" 보면="" 아주="" 일시적인="" 순간의="" 감정이란=""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강자가="" 만족을="" 얻게되는="" 과정에서="" 여자든="" 남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구분="" 없이="" 약자들은="" 희생당해.="" 그들이="" 가진="" 재능과="" 가능성과는="" 별개로=""/>
빅터는 눈 앞에 있는 환영이 도대체 왜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잠깐만, 대체 왜 내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와="" 생각이="" 비슷할="" 것="" 같아서.=""/>
“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