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9화 〉 179화­Labyrinth(1) (179/239)

〈 179화 〉 179화­Labyrint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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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에 오른 뒤로 체력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숨쉬기가 부자연스러운 고산지대에서 눈바람을 거슬러 걷는 행위는 마치 도트 데미지를 받는 것처럼 꾸준히 체력을 빼앗아갔다.

필파워 900의 패딩덕분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체온을 유지하며 걸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힘들게 오래 걷고 나서 나트륨이 듬뿍 담긴 뜨끈한 라면 국물의 맛은 경험해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으리라.

높디 높은 고산지대에서 차디찬 눈바람을 해치고 수시간동안 걸은 뒤 먹는 라면의 맛을 현대인들 중 경험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하는 것이 순식간에 라면 두봉지를 먹어치운 뒤의 내 소감이었다.

함께 고생을 하고 밥을 같이 먹자 경비대원들과도 은근하게 팀워크가 형성되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기업에서 신입사원들을 받으면 워크샵을 하는 건가?’

서로 경쟁적으로 라면을 집어먹고 나서 각자 햇반까지 까서 밥을 말아먹고 나자 사람들의 얼굴에 온기가 피어올랐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추운 날 뛰어놀다 들어온 애들처럼 순박해 보여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정후야, 오늘처럼 날도 추운 날에는 ‘그거’ 어때?”

드마코 형이 사람들이 먹고 난 그릇들을 눈으로 닦아내며 슬쩍 운을 띄웠다.

“야~ 드마코가 역시 최고야. 꺼내 봐. 정후야.”

“한잔씩만 마시는 겁니다.”

“정후군, 우리가 뭐 놀러 나온 것도 아니고 몸 좀 녹일 겸 한잔만 하자는 거지. 크크크.”

버크 아저씨는 한잔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손까지 비비면서 달아오른 것 같았다.

‘코까지 빨가니까 꼭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같네. 근육질의 산타 할아버지가 딱 저런 느낌이지 싶은데...’

아공간에서 내가 보드카를 꺼내자 크로니클 단원들의 눈이 빛이 났다.

“추울 땐 역시 보드카지.”

드마코 형의 말에 빅터까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동의의 의사를 표했다. 보드카 병의 뚜껑을 따고 사람들에게 따르면 딱 한잔이 나오는 샷잔에 보드카를 따라서 한명씩 나눠줬다.

“한잔이라서 내심 기대했는데 이건 너무 작지 않아?”

드마코 형과 비슷한 기질을 가진 아왕 대원이 슬며시 툴툴거렸다. 그러자 드마코 형이 씨익 웃으며 그거면 충분하다고 답했다.

“우리 말라야 사람들을 너무 무시하는 건데 이건.”

“맞아. 어지간한 술로는 취하지도 않는 우리에게 염소똥만큼 작은 잔에 고작 한잔이라니. 이 정도 가지곤 몸을 녹이긴커녕 혓바닥만 축이고 끝나겠구만.”

대검이 주무기라는 잠파가 은근히 허세를 부렸다.

“하하, 이 친구들이 양이 부족했나?”

버크 아저씨는 그러지 말고 일단 마시고 나서 부족하면 더 주겠다고 다독인 뒤 건배사를 꺼냈다.

“모두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자고! 건배!”

““““““““““건배!””””””””””

건배 구호와 함께 들고 있던 잔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크어억.”

“워어......”

“으윽.”

“하아아아아아”

“크흠...콜록콜록”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는 경비대원들의 모습에 크로니클 단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 보라고!”

“처음엔 다 그런 법이지, 허허.”

“위와 내장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느껴지지 않아? 하하하하하.”

예전에 단원들과 마실 때야 마시기 전에 단단히 주의를 줬지만 허세를 부리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장난기가 동해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그런 내 마음처럼 우리 단원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지 어지간하면 조심하라고 이야기해줄 법한 빅터와 섀넌까지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기대가 된다는 눈빛만 보일뿐 딱히 경고를 해주진 않았다.

내가 들고 있는 병에 적힌 이름은 Spirytus Rektyfikowany. 흔히 우리가 스피리터스라고 술로 사실 정제된 알코올의 한계치의 도수를 가진 술인데 보통 이 상태 그대로 마시는 것보단 이것 저것 섞어서 도수를 낮춰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술이다.

‘이런 술을 그대로 마시게 했으니....크읍’

‘정후 아저씨도 좀 짓궂은 구석이 있어. 저 사람들이 화 내면 어쩌려고’

‘에이, 그럴 사람들은 아니야.’

인간이 식용으로 마실 수 있는 한계치인 96도짜리 이 술은 독주 중의 독주라고 불리는 약 75도짜리 바카디보다 무려 20도나 더 높은 술이다. 그러니 아무리 단련된 이들이라고 해도 내장까지 단련하는 것은 아닐테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한바탕 기침을 하고 콜록거리던 경비대원들은 이렇게 독한 술은 처음 마셔본다고 자신들이 너무 거만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워후, 영혼이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술이었소.”

“그렇지? 몇 번 마시다 보면 어떻게 호흡을 하면서 마셔야 하는지 감이 오는데 처음이라 꽤나 힘들었을 거야.”

아왕의 너스레에 드마코 형이 맞장구를 쳤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술기운이 몸으로 퍼졌는지 발그스레한 낯빛으로 내가 아공간에서 꺼내준 방한침낭 속에 다들 기어 들어가 고치 속의 애벌레마냥 잠이 들었다.

“간에 기별도 안 갈 것 같다더니 무사히 잘 간 것 같군.”

“다들 피곤했을텐데 잠깐 눈 붙이고 쉬어요. 위험한 상황이다 싶거나 눈보라가 잠잠해질 때쯤이면 엘리스보고 깨워달라고 할테니까. 부탁 좀 하자, 엘리스?”

<걱정 말고="" 쉬세요.=""/>

“고맙네.”

약간의 담소를 멈추고 난 뒤 섀넌과 난 한 침낭 안에 들어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아저씨, 아저씨!=""/>

“어...어?”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았는데 엘리스가 옆에서 사람들을 깨우곤 날 깨우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이야.”

<기상상태가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지금="" 빨리="" 짐을="" 거두고="" 출발한다면="" 오늘="" 내로=""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

엘리스의 말을 들은 모두가 서둘러 물건들을 치우고 설동 밖으로 나왔다.

“와아!”

“장관이군.”

아공간에 짐들을 챙겨넣느라 사람들이 나가는 동안 설동 안에 있던 나는 도대체 뭘 봤길래 사람들이 저렇게 감동을 느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가 그리 멋있는데요? 입구에 서 있지 말고 좀 비켜봐요. 나도 좀 나가게!”

사람들을 밀치며 밖으로 나서자 아까 전까지만 해도 눈바람이 휘몰아치느라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눈 앞에서 그림처럼 나타났다. 그곳엔 커다란 태양이 내려쬐는 가운데 말라야히마 산맥의 정점을 감싸고 구름이 피어오르며 마치 이곳이 인간 세상이 아닌 것만 같다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미쳤네....이거 이럴 게 아니라 찍어놔야겠다.”

아공간에서 DSLR을 꺼내서 영상모드를 이용하여 360도를 전부 영상으로 담았다.

풍경이 주는 황홀한 기쁨을 느낀 우리들은 서둘러 발을 옮겨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생텀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이 모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전설을 품은 곳, 생텀인가?”

“그런...것 같군.”

“근데 내가 생각한 그림이랑은 조금 다른데...정후야?”

“그래요?”

우리가 도착한 생텀의 입구는 사람들이 상상했던 것처럼 거대한 문이 닫혀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활짝 열려져 있었다.

“이 문은 아직까지 옛날 그대로 잘 있네. 마법을 걸어놓은 건가?”

“정후군, 그게 무슨 이야기지?”

버크 아저씨는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고 난 격납고의 문을 고대로 베껴서 달아놓은 생텀의 입구가 내가 엘프들과 드워프들을 이끌고 떠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자 더욱 놀라워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마치 어제 달아놓은 것만 같지 않은가.”

세월의 흐름을 빗겨나간 문을 본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대단함을 느꼈는지 도착했다는 기쁨의 표정이 아니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들어오라고 문 열어놓은 것 같은데 들어갈까요?”

“흠....”

내 말에 빅터가 의문을 표했다.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던 것 같은데 그것과 다르게 이렇게 문을 열어 놓은 것은 조금 이상하군요.”

“다들 주의해. 정후가 이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일지는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까 말야.”

코엘 누나의 경고를 들은 우리는 긴장한 표정으로 입구 안으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들어갔다.

<정후 왔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벌써는 무슨.="" 준비가="" 다="" 되었으니=""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주변의="" 눈보라들을="" 걷어놨더니="" 이제="" 도착한="" 거지.=""/>

<다들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즐겁게="" 즐겨줬으면="" 좋겠다.=""/>

<기대된다. 이게="" 얼마만의="" 손님이야?=""/>

둘이 손을 자그맣게 마주치며 박수를 하는 공간은 그렇게 넓었지만 화면으로 비치는 부분을 제외한 곳들이 텅비어 있지 않았는지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어서 와,="" 우리들이="" 준비한="" 미궁에.="" 이런="" 미궁은="" 처음일거야.=""/>

화면을 쳐다보는 레드와 화이트의 눈빛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이거 뭐, 내가 알던 곳이 아니네요. 리모델링 엄청 해놨네.”

<그러게요./>

우리들이 어느 정도 들어오자 양쪽에는 벽을 조각하여 양각과 음각이 섞인 돌로 된 그림들이 길게 놓여져 있었다.

“이건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인간이 서로 적대하며 싸우고 있는 그림인가?”

“그런데 입고 있는 옷은 지금과 많이 다르군.”

“뭐지?상상화인가?”

“그림이지만 돌을 깎아서 만들어서 그런지 엄청 실감나는 그림이야.”

‘엘리스, 이 그림들 무슨 의미인 것 같아?’

‘아무래도 우리가 이곳을 나간 순간부터 그 이후의 순간을 입구에서 안쪽으로 조각해놓은 것 같은데요.’

‘그렇지?’

입구의 그림들은 커맨더 시절의 내가 사람들을 이끌고 생텀 밖으로 나가는 그림이 조각되어 있었고 그 이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나오는 그림들은 엘프와 드워프들을 데리고서 엘븐하임에 자리를 잡고 엘븐하임에서 나온 인류가 더스트 전체로 퍼져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건 엘븐하임 같은데...지금처럼 나무가 아니라 정후가 세웠던 공장같은 것들이 잔뜩 그려져 있어.”

“그러게...”

주의를 해야한다는 것도 어느새 잊은 우리는 양 옆의 그림을 번갈아 보면서 빠져들 듯 멍하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여태까진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두워질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양쪽의 그림들이 보기 좋게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그다지 주의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벽화를 보며 걷던 중 마침내 많은 인류가 서로 전쟁으로 공멸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자 하늘에서 내려온 레드와 화이트를 닮은 존재가 인간들을 이끌고 생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끝으로 그림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했던 어두운 공간에는 문들이 있었다.

“다같이 하나의 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문들 앞 바닥에 박힌 석판에 적힌 글을 쪼그려 앉아 읽어낸 섀넌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어떻게 하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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